|
허스키 보이스에 담긴 슬픈 사랑 '비처럼 음악처럼' 오늘도 내리네
한국일보 발행 문화교양지 주간한국 연재칼럼
|
|
조용필의 일인독주시대로 대변되는 80년대 대중음악은 그리 간단하게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 어느 때 보다 다양한 뮤지션들과 풍성한 장르의 음악이 넘쳐났던 최대의 활황기였기 때문이다. 주류와 언더의 경계도 모호했다. 주류 인기가수도 음악성이 담보된 명반을 발표했던 시기가 80년대이고 심지어 오락적 요소가 부족한 언더의 뮤지션들도 가요차트에 명함을 들이 대는 이변이 가능했던 시절도 80년대였다. 주류의 대표가수가 조용필이었다면 언더의 대표주자로 김현식과 들국화의 전인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고 김현식은 생전보다 사후에 더욱 화제의 중심에 선 불멸의 뮤지션이다. 포크, 록, 발라드,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그의 음악은 풍성했던 80년대 한국대중음악의 확실한 자양분이었다. 마치 세상 모든 사랑의 고통을 홀로 짊어진 듯 울부짖는 그의 파워풀한 보컬 을 지배한 정서는 슬픈 사랑의 감정이었다. 대중의 마음을 파고든 그의 절절했던 사랑의 노래들은 지금도 불멸의 연가로 불리어지고 있다.
1987년 11월 1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배 천재 뮤지션 유재하와 그는 절친한 사이였다. 묘하게도 3년 후 같은 날 김현식은 세상을 떠났다. 대중음악계에 지금껏 유효한 ‘11월 괴담설’의 진원지다. 그의 짧은 인생은 사랑과 더불어 삶, 죽음의 문제들에 대한 번민과 고통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그의 노래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녹아있는 슬픈 정서는 바로 그 때문이다.
데뷔앨범에 수록된 '당신의 모습'은 고등학교 자퇴 후 다운타운 무명가수시절에 경험했던 실연의 아픔을 그린 노래였다. 데뷔시절 맑은 미성이었던 그의 음색은 힘겨운 삶과 함께 탁하게 변모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거칠고 호소력 있는 김현식 특유의 허스키 보컬은 그의 혼란스런 삶의 궤적과 더불어 더욱 색채가 짙어갔다. 2집 발표 후까지 녹음실 세션들과의 일상적인 음악작업에 불만을 느껴온 그는 1985년 음악후배 김종진, 전태관, 박성식, 장기호와 함께 5인조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을 결성했다.
김현식 최고의 명반으로 손꼽히는 3집은 이들의 합작품이다. 녹음은 서울스튜디오에서 86년 11월에 진행되었고 총 11곡이 수록되었다. 연주곡이 1곡 있고 타이틀 곡 ‘빗속의 연가’ 등 6곡이 김현식의 창작곡이다. 그는 이 앨범 수록곡을 통해 노래만 잘하는 가수가 아닌 뛰어난 감성의 송라이터임을 확인시켰다. 4곡이나 되는 멤버들의 창작곡도 의미심장하다.
이 앨범이 비록 형식적으로는 김현식 독집이지만 ‘봄여름가을겨울’의 공동 작업임을 입증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최대히트곡인 2면 첫 트랙 ‘비처럼 음악처럼’은 후에 ‘빛과 소금’으로 뛰어난 음악성을 뽐낸 박성식의 작품이다. 이외 ‘쓸쓸한 오후’는 현재까지 팀을 유지하고 있는 김종진의 곡이고 장기호의 ‘그대와 단둘이서’,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등도 이 앨범의 완성도에 강력한 주춧돌 역할을 제공했다.
3집은 30만장 판매라는 대박을 기록하며 김현식에게 대중적 인지도를 안겨주었다. 음악적으로는 블루스로 진화하는 가교역할도 했다. 하지만 2, 3집의 연타석 히트로 대중적 인기를 획득한 김현식은 여전히 TV 등 주류 매체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뮤지션이었다. 음악보단 계산된 환경의 방송 분위기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 그래서 그는 3집 이후부터 ‘얼굴 없는 최고의 가수’로 대중에게 회자되기 시작했다.
10주기였던 지난 2001년. 무명음악인들의 삶의 애환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그를 다시 기억하게 했다. 사랑과 이별의 허무함을 노래한 3집 수록곡 ‘빗속의 연가’가 OST로 사용되어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기 때문. 3집은 사후에 그를 따라다니는 ‘사랑의 가객’이라는 평가가 정당했음을
입증하는 김현식 음악의 정수가 담긴 최고의 앨범이다.
입력시간 : 2008-09-12 11:51:46 수정시간 : 2008/09/12 11:52:1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