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하나만 고르라 하면 <어린왕자>다. 행성 B-612에 떨어진 장미꽃과 함께 살게 된 어린왕자가 그와 크게 다투고 나서 지구로 향한다. 그러다 어린 왕자가 장미꽃의 중요함을 알게 된 건 여우가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말을 건네고서다. 왕자는 분명 장미가 아름다워서 돌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가지가 다 꺾인 볼품없는 들꽃이 행성에 내려앉았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쓰레기 같다고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어린 왕자의 마음을 알고 여우는 ‘겉이 아니라 내면을 보라’고 꼬집어 말했다. 나는 어린왕자를 내 자신과 겹쳐보았다. 어렸을 때의 나 역시도 겉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사람이었다.
실은 내게도 아끼는 장미꽃이 한 송이 있었다. 한창 미술에 빠져있을 때 미술학원에 다니며 여러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은 꽤 괜찮은 소묘 작품을 완성하고서 스스로의 그림에 감탄했었다. 그리고 다른 수강생들이 얼마나 잘 그렸는지 견제하기 위해, 완성된 다른 그림도 둘러보았다. 그러다 <푸른 장미>라는 이름을 가진 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 장미 한 송이가 캔버스를 꽉 채운 평범한 구도의 그림이었지만, 순간 그 그림에 매료되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아름답고 반짝이는 것 같은 푸른색은 처음 본 것이다. 그래서 매일같이 그 그림을 보러 학원에 갔고, 그 그림에 있는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따라하기 위해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어느 날, <푸른 장미> 그림이 사라졌다. 나의 마음을 울렸던 그림이 사라지고 나니, 그림에 대한 열정도 식어버렸다. 그래서 그 길로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내 2번째 장미꽃은 사람이었다. 미술을 그만두고 나서 취미로 피아노를 시작했다. 그런데 나와 같이 피아노를 시작한 친구가 나보다 피아노를 잘쳤다. 그녀가 연주하는 쇼팽의 <흑건>에 매료되다보니, 나도 그녀만큼의 실력을 갖기 위해 진심을 다해 연습을 했다. 그러나 결국 그녀만큼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뒤로도 수많은 장미꽃들이 내 인생에 있었다. '재능있는 친구, 성공한 연예인, 많은 돈' 나는 장미꽃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동경해 그들에 애정을 두었다. 그러나 내가 그들과 같은 아름다움을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애정은 불쾌함으로 바뀌었다. '내 인생에 가질 수 없는 장미꽃이 왜 이렇게 많은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불안한 인생을 살았다.
그러다 셀린디온이 파리올림픽 개막식에서 복귀무대를 가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타이타닉의 OST를 부르면서 화려한 디바로 살았던 그녀가 온몸이 굳어가는 불치병에 시달리게 된지 2년 만이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무대를 기다리면서 어떤 노래를 부를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부른 노래는 영화 <라비앙로즈>의 OST인 '사랑의 찬가'였다. '라비앙로즈(장밋빛인생)‘에 ’사랑의 찬가‘라. 절망에 가득 찬 그녀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그러나 희귀병을 앓고 있는 것도 모를 정도로, 관객을 또렷하게 바라보며 희망에 찬 목소리로 노래하는 셀린 디온을 보니 그녀가 여전히 장미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장미꽃을 받는 디바였다. 그녀를 보면서 마침내 깨달았다. 내 인생의 장미꽃은 타인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걸.
나는 아름다움을 동경하여, 수많은 장미꽃을 쫓았으나 수없이 많은 포기를 했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 그것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밋빛 인생은 보이는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드디어 나만의 장미를 찾을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화려하게 아름답지 않아도, 내가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삶을 살아가기에 아름다워진다. 지금까지 ’어설픈 재능‘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왕자의 여우가 했던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말을 이제 이해하고 있다. 나는 '탐욕, 시기, 교만'으로 가득했던 지구에서 벗어나 이제 나만의 행성에서 장미를 키우고 있다. 수많은 지구의 장미꽃들을 보고서는, 자신이 애정을 가졌던 B-612에 있는 장미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을 깨달은 어린왕자처럼 말이다. 라비앙로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