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로 읽는 야구 이야기 >
꼴찌에게도 박수를
김 세 관
교직 생활과 함께 수필을 써보고 싶었지요. 그러나 첫해는 모든 것을 새로 배워가는 과정이었고, 무엇보다 다섯 과목을 맡아 교재 연구에 몰두하느라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대전흥사단'의 소식지인 월보 편집을 맡고 있었습니다. 발령을 기다리며 상임간사로 근무했었는데, 거의 무보수여서 적당한 후임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사정이었지요. 회장께서 월보 편집만 당분간 맡아달라고 간곡하게 당부하는데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8쪽 짜리 월보에 땜방으로 싣게 된 저의 짧은 글을 행정실장이자 천안문협 사무국장이었던 남욱현 씨가 보았다고 합니다.
저를 조용한 곳으로 안내하더니, 천안문협 입회원서와 함께 선물한 책이 바로 박완서 수필집인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깜짝 놀랐지요. 문학에 대한 공부를 전혀 하지 못했다며 적극 사양했습니다. 1978년도의 일이니, 천안에 등단 작가는 극소수였습니다. 이러한 점을 설명하며 강요하다시피 해서, 입회원서에 서명한 것이 문학 활동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오직 1등만이 각광을 받는 세상이지요. 2등도 분명 좋은 성적인 것이 분명한데, 그 2등에 만족하지 못하고 1등을 위해 괴로워해야 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프로 스포츠의 세계는 그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지요. 예전에 삼성라이온즈의 김영덕 감독은 페넌트레이스에서 연속 1위를 하면서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감독직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승부를 다투어야 하는 선수들도 힘들지만, 프로야구 감독은 정말 힘든 자리라고 합니다. 팬들도 승부를 지켜보며 너무 힘이 드는데, 승부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감독은 그야말로 피가 마르는 직업이지요. 물론 대단한 명예와 특혜가 주어지지만, 성적이 좋아도 우승을 못하면 물러나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프로야구 감독은 파리 목숨"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지난해부터 한화이글스의 김성근 감독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지난 해 전반기에 한화이글스가 선전하며 중위권을 달릴 때, 팬들은 열광하며 마리한화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지요. 워낙 오랜 기간 성적이 부진해서 꼴찌를 도맡았기 때문이었지요. 구장의 규모가 작은 편이긴 하지만, 주말이면 으레 매진이었고 최다 매진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금년에는 지난해 막판에 전격적으로 영입하여 대단한 투구를 보여준 로저스와의 재계약 여부가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일본에서 거액을 제시했다는 소문 때문에 어려울 것으로 보았는데, 구단의 적극적인 구애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또한, 그간 우리나라에 영입된 선수 중 메이저리그 성적이 가장 화려한 로사리오와 FA의 대어인 정우람 선수까지 데려올 수 있었지요. 야구 전문가들은 단번에 NC와 함께 우승을 다툴 팀으로 한화를 꼽았습니다.
그야말로 야구 시즌의 시작을 기다리는 한화 팬의 기대는 대단했지요. 한화이글스 팬 카페 '불꽃이글스'가 스프링캠프와 함께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저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최소한 중위권은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금년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잠실 개막 2연전에서 모두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모두 연장전에서 어이없이 패해 사기가 저하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불펜 전력의 과부하가 크게 문제가 되었지요. 더구나 두 게임 모두 선발 투수가 일찍 내려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도무지 꼴찌를 벗어날 가망이 없어보였지요. 승수를 패수와 비교해서 -20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3연전에서 2승 1패의 위닝시리즈 10회를 연속적으로 기록해야 극복할 수 있는 참담한 성적이니까요.
어느 날 갑자기 연승을 달리기 시작했고 연패가 없는 팀으로 환골탈태, 한 게임만 이기면 꼴찌를 면하고, 중위권도 3게임차 정도로 좁혀지게 되어 다시 마리한화가 되었습니다. 6월 11일~12일은 아직 꼴찌임에도 이른 시간에 입장권이 매진되는 진기록을 보였습니다. 모르긴 하지만, 꼴찌 팀의 홈경기가 연일 매진된 사례는 없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꼴찌는 분명 명예롭지 못한 멍에입니다. 그러나 내용에 따라서는 박수를 받을만한 꼴찌도 있겠지요. 월드컵 축구는 본선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나라가 많이 있습니다. 특별한 영재만이 입학이 가능한 영재학교에도 꼴찌는 존재할 있을 수밖에 없겠지요. 매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일 때는 비록 꼴찌라 할지라도 박수를 받을 만 하다고 여겨집니다.
박완서의 수필에서도 꼴찌에게 갈채를 보낸 이유가 있습니다. 마라토너가 많이 뒤처져 있어서 꼴찌가 확정되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42.195 Km의 장거리를 완주한 까닭입니다. 한화는 금년 초반에 워낙 많이 뒤처져 있어서 도무지 꼴찌를 벗어날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제 탈꼴찌는 물론 와일드카드가 주어지는 5위권까지도 가시권에 들어왔습니다. 물론 다섯 팀을 제쳐야 하는 마라톤과도 같은 쉽지 않은 대장정이지요. 그러나 중위권까지라도 올라갈 수 있다면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지 않을까요. <2016.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