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한 청개구리
중안 / 조상진
오늘도 저녁을 일찍 먹고 나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책을 나섰다. 동서대로를 따라 길을 걸어가는데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오고 간다. 요즘 탄소 중립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도 머릿속에 담아져 있어서 그런지 자동차들의 오가는 방향에도 신경이 쓰인다. 달려오는 자동차를 마주하는 방향에서는 내 얼굴로 다가오는 탄소의 접근이 지체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자동차의 뒤를 따라가게 되면 배기가스가 가속도까지 붙어 내 얼굴로 달려들 것 아닌가.
마주 보도록 진행 방향을 바꾸려면 신호등을 자주 건너야 하는 번거로움도 신경이 예민한 나에게는 잠시나마 고민이 되지만 그래도 건강이 먼저라는 신념은 변할 수 없으므로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서서 파란색 점등을 기다린다. ‘군자는 대로행’이라고 했는가. 이왕이면 큰 도로를 이용하려다 보니 잦은 신호등이 나타나 동선의 흐름을 잠시나마 끊기게 하는 단점도 있다.
목적지 방향은 성성호수 공원으로 틀었고 다리가 튼튼해야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코스이다. 약 30여 분이 지나서 도착한 곳은 고층아파트들과 상가 건물들이 빼곡하게 둘러싸인 저수지이다. 호수라고 부르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규모는 작고 깊이도 얕아 보이지만, 새로운 아파트의 분양 열기와 상권의 상승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저수지보다는 호수라는 명칭이 더 유리할 상술 개입 역시 불문가지이다.
상가 건물들이 밀집된 입구 지점에는 주차된 차량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찾아온 사람들도 북적거린다. 신시가지 개발에 맞추어 기반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는데 특히 호수 둘레와 호수 중앙을 가로지르며 물 위에 설치된 목재 데크가 특히 인상적이다. 3미터 정도의 폭은 쌍방 교차에도 큰 불편이 없다. 요즘 전국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둘레길에는 목재 데크가 잘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잘살게 된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두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 틈새로 자그맣게 신음하는 소리를 내지만 외롭게 서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으로 생각하니 불쌍하지 않고 내 귀에도 싫지가 않다.
호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데크를 통과하는 사이,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고 기분도 상쾌하다. 이것이 바로 물을 찾아 산책 나온 호강이 아닌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마침 백로 한 마리가 너울너울 날아와서 물 위에 솟아오른 진흙더미에 자리를 잡는다. 나도 걸음을 멈추고 그 자태를 감상한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은 아닐지라도 군어일학(群魚一鶴)으로 평가하고 싶다. 왜냐면 그 백로가 앉은 주변에는 고기떼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외국 어종인 베스, 블루길도 보이고 토종인 피라미, 끄리, 붕어, 가물치 등도 유영으로 시간을 즐기고 있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호수 가장자리에 도달하니 이제는 어린 새끼들을 거느린 어미 청둥오리 2마리가 각각 경계의 목소리를 토하면서 서로 갈 길을 서두르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온다. 늦여름의 따가웠던 햇볕이 서쪽 하늘 아래로 떨어지면서 주위가 불그스레 물들어지는 석양의 모습도 도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호수만의 특별 서비스이다.
잠시 데크를 벗어나니 콘크리트로 포장된 둘레길과 만나는데 비포장 맨땅도 옆에 붙어 있다. 황토는 아니나 맨발 마니아를 위한 배려일 것이므로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땅바닥에 내딛는 순간, 발바닥이 따끈 거리니 몸도 움츠려진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성구를 중얼거리며 약 20분간의 단련으로 생각한 결과 다시 편안한 데크로 이어진다.
이 지점에서는 수심이 더욱 낮고 수풀들이 우거져서 그런지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그 울음소리의 진의(眞意)는 무엇일까? 매미처럼 저들만의 유쾌한 노래 향연일까 아니면 생존본능의 이치로서 짝을 구하는 절규인가. 울음소리만으로는 개구리의 실체를 알 수가 없고 비록 비좁은 우물 속은 아니지만, 사방이 각종 장애물로 막혀있는 답답한 물속에 산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이를 두고 정중지와(井中之蛙)라는 의미가 여기서도 통할지는 모르겠다.
드디어 이 호수의 메인 코스인 둑길이 나타난다. 이 둑에 들어서니 호수 주변의 경관도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최근 유행하는 고층아파트의 밀집성, 이에 발 빠르게 들어선 상권들의 민첩성. 이를 또한 즐기는 남녀노소의 이용객들 3박자가 잘 맞아떨어진다. 약 4미터 폭으로 잘 다듬어진 둑길에는 최신식 전자 불빛과 그림들도 나타나므로 환영받는 기분을 업(up)시키기에도 충분하다. 둑길 가운데 지점에 이르자, 성성호수 공원이라는 입식 간판이 호수를 등지고 구조되어 있다.
그런데 간판 상단의 한쪽 구석에 무언가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 내 눈을 의심케 하는 것이다. 온몸이 파란색이고 이마의 눈 뚜껑은 앞으로 툭 튀어나왔고 눈알은 까맣게 전면을 똑바로 주시하고 있다. 양팔은 팔짱을 끼고 있어서 도도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자세가 걸터앉았기 때문에 양발도 편하게 아래로 향하고 있다. 몸체는 작은 반려견 정도라는 점과 움직임이 없다는 점, 그리고 체온도 없어 보이므로 스스로 뛰어올랐을 것이라는 사실 자체는 논외로 하더라도 모습 그 자체는 청개구리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개구리의 조형물일까? 그 시선도 호수 쪽을 바라보는 미련이 아니라 둑 바깥쪽을 주시하는 도도한 표정이다. 그리고 그 앞을 지나가는 시민들의 다양한 모습과 대화 내용까지 즐기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나는 사람들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는 둑 너머 더 먼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작은 저수지 속을 뛰어넘어 더 큰 강물과 더 큰 호수 더 나아가 해불양수(海不讓水)의 바다까지 상상하는 듯 보였다. 나는 이 청개구리의 도도한 태도에 박수를 보내고 어깨를 툭툭 치면서 “용감하구나”라는 격려까지 아끼지 않았다.
둑길을 지나 원점으로 가고 있는데 탁! 탁! 무언가를 때리는 소리들이 귓전을 흔든다. 그 소리의 출처는 호수를 끼고 자리를 잡은 골프 연습장이었다. 골프공을 때리는 저 사람들은 호수를 감상하면서 운동을 한답시고 자만감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부럽지 않다. 같은 시간의 운동효과 측면에서는 과학적 근거를 동원하더라도 걷기가 최고라고 나는 확신한다. 운동은 폼(form)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군어일학 고고한 자태의 백로, 청둥오리의 무한한 새끼 사랑, 답답한 저수지를 뛰어오른 청개구리의 도도한 모습 등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반면에 미관에도 거슬리는 그물망을 높이 달아놓고 탁 탁 소음을 내며 공공의 호수 분위기를 방해하는 골프 연습장의 이기적 소인(小人)들과 비교도 되었다. 상업적 이익과 공을 때리는 기분에 빠져서 다른 사람들의 불편을 배려할 줄 모르는 행위 역시도, 우물 속에서 헤엄을 즐긴다는 개구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러한 위인들이 청개구리 조형물의 의미와 그 도도한 모습과 용기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