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에서 살림으로 : 지구를 살리는 마을살이 살림생태계
〈2024 살림학연구소 첫돌맞이 한마당잔치〉
모셔배움(강연) ②
일상이자 현실이 된 기후위기
올여름 더위는 역대급이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여름철 전국 평균 기온은 2018년을 제치고 역대 1위에 올랐고, 열대야 일수는 평년 대비 3.1배인 20.2일로 관측되었다고 한다. 지난 10월 초 살림학연구소 첫돌잔치에서 전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 김정욱 교수는 기후위기를 가리켜 이제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자 일상이라고 진단했다.
기후위기 현실은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지구 한쪽에서는 50도가 넘는 폭염이 발생하고, 또 다른 곳에선 영하 40도에 이르는 기록적인 한파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가뭄과 사막화, 해수면 상승은 동식물들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존도 위협한다. 매해 기온 상승 때문에 1%의 생물이 멸종되고 있다고 한다. 기후재난 발생은 50년 전보다 10배, 경제 손실은 20배 이상 증가했는데, 문제는 갈수록 악화된다는 것이다.
대체 기후위기는 왜 이렇게 심해지는 걸까? 김정욱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는 우리가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고, 쓰레기를 너무 많이 만들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제 몸무게 수천 배의 자원을 쓰레기로 만들어 내는데, 지구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니 기후위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글로벌생태발자국네트워크(GFN)에 따르면 지금 우리나라처럼 에너지를 쓰면 3.5개의 지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태평양에는 지금 한반도 7개 크기의 쓰레기 섬이 둥둥 떠다닌다.
김정욱 교수는 기후위기 극복의 해결책으로 각 지역의 기후, 지리, 문화에 맞고 에너지와 자원을 적게 쓰도록 생태학적 단위로 건설된 작은 규모의 마을살이를 제안했다. 재생에너지에 기반을 둔 분산형 에너지 체계를 만들고, 물질을 순환하는 적당한 규모의 마을이 효과적인 실천이라는 것이다. 또 물건을 아껴 쓰고, 물과 에너지를 절약하고, 고기를 적게 먹는 등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여러 생태적 실천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기후위기 이면에 도사린 자본의 개별화 전략
살림학연구소 지연 살림꾼은 기후위기 이면에 자본의 질서가 숨어 있다고 진단했다. 무한 증식하는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제 몸을 불리는데, 그 작동 방식 중 하나가 공동체를 해체하고 사람들을 개별화시켜 에너지 사용과 소비를 최대한으로 늘린다는 것이다. 물건을 하나 사서 여럿이 나눠 쓰기보다 개개인이 각자 사서 쓰는 것이 자본과 산업 입장에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지연 살림꾼은 자본의 개별화 전략에 맞서 관계를 기반으로 한 마을 생태계를 회복하고 재편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밝은누리와 덴마크 사례를 들어 말했다. 밝은누리는 마을살이를 토대로 지구살림이라는 문제를 통전적으로 접근한 사례로, 덴마크는 지구살림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마을 생태계 운동이 국가운동을 이끌며 상호효과를 낸 사례로 발표했다.
마을살이를 통한 지구살림의 통전적 접근 : 밝은누리
먼저 지연 살림꾼은 밝은누리 사례를 나누었다. 밝은누리는 강원과 서울, 경기 양평과 군포 등 농촌과 도시가 한데 어우러져 서로 살리는 농도상생마을이다. 1991년 서울 인수마을에서 도시문명이 지닌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모여 살기 시작해 대안적인 삶과 문화를 실천하다가 생명의 토대인 농생활의 가치를 깨닫고, 2010년 강원 홍천마을로 분화 개척했다.
공동체가 귀촌한 것은 삶의 근원이 하늘, 땅, 사람을 서로 살리는 농생활에 있음을 고백하고 더불어 사는 하늘땅살이를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귀촌 후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생태뒷간을 만드는 일이었다. 사람이 먹고 싸고, 그것이 거름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 하늘땅살이하고, 그 결과물을 다시 먹는 생태순환 실천을 구현한 것이다. 이외에도 대량생산을 위한 기계를 쓰지 않고, 흙으로 돌아갈 수 없는 비닐멀칭이나 하우스는 쓰지 않는다. 인공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상품성 높은 씨앗 대신 토박이 씨앗을 대물려 나눈다. 하늘땅살이를 경제적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고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 토대로 대하기 때문이다. 실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하늘땅살이는 재생에너지에 따른 탄소 감축 잠재력과 맞먹을 뿐더러, 생태계 손실에 따른 잠재적 손실 보존 측면을 고려한다면 재생에너지에 따른 탄소 감축 잠재력을 앞서기도 한다.
서울에 자리한 인수마을 한 가정(4인)의 전기요금은 작년 한 해 월 평균 7,200원 정도 나왔다고 한다. 평균 가정(4인) 전기요금이 월 5만 7천 원 정도인 데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더불어 사는 마을의 구조적 접근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인수마을 구성원들은 주로 마을밥상에 모여 밥을 먹기 때문에 전기밥솥이나 김치냉장고 등 주방 가전기기를 집집마다 들여놓을 필요가 없다. 또 집집마다 에어컨을 두지 않고 더울 땐 마을찻집에 모여 함께 더위를 식히며 에너지를 절약한다. 서로 공유하는 일상 관계망 위에서 덜 쓰며 살아가는 것이다.
마을학교에서는 별도의 교과과정으로 기후위기나 생태 교육을 하진 않는다. 보통 ‘생태계’ 하면 북극곰이나, 숲, 강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운데, 생태를 다른 생명과 맺는 관계성이라고 생각하고 마을에서 서로 맺는 관계를 통해 생명 감수성을 기른다. 아이들은 마을에서 같이 자라나 깊이 사귀며 서로 살리는 감수성을 기르고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운다. 다른 생명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지구살림 생태계를 조성하는 첫걸음이 된다.
아이들은 계절마다 마을에서 옷나눔잔치가 열리면 이웃 언니오빠, 형누나의 옷을 물려 입으며 관계성을 경험한다. 어떤 물건이 필요하면 누리집 마을살림장터 게시판에 글을 올려 구하고, 쓰지 않는 물건은 나누기도 한다. 작년 한 해 누리집에서 물건이 공유된 횟수가 900건이 넘는다고 한다. 마을 관계망에 토대해 아이들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덜 쓰고, 쓰레기는 덜 만드는 삶을 몸으로 익힌다. 마을살이를 통해 통전적으로 지구살림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마을 생태계 운동이 국가 운동을 이끌며 이뤄낸 성과 : 덴마크
10년 넘게 주한덴마크대사관에서 일하고 있는 지연 살림꾼은 덴마크를 오가며 마을 생태계가 국가 운동과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여 긍정적인 성과를 이뤄냈는지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덴마크는 1970년대 석유 파동 때 에너지 전환을 이뤄냈는데, 그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당시 덴마크는 거의 99%의 에너지를 석유, 석탄 수입에 의존했는데 석유파동을 겪으며 에너지 자립에 대한 국민적 논의가 시작됐다고 한다. 주변 나라들이 핵 발전을 대안으로 선택할 때, 덴마크에서는 체르노빌 등 원전 사고로 반핵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후 폴케센터, 트빈 등 크고 작은 마을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생겨나 풍력 발전 등 재생에너지를 연구·개발하고 실천했다. 이런 실천과 사례들이 모여 1985년 덴마크 의회는 앞으로 석유·석탄·핵 발전 하지 않고 재생에너지만 사용하겠다는 재생에너지법을 세계 최초로 만든다.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에너지 운동에 국가가 화답한 결과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밑바탕에는 사람들 간의 관계가 있었다. 지연 살림꾼은 4천여 명이 살고 있는 한 에너지 전환 마을에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마을 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농부를 만나 비결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참 간단했다. “커피요”라는 말이었다. 사람들과 많이 만나 의논하고 관계 맺으며 쌓은 관계성에 기반해 모든 일을 이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지연 살림꾼은 덴마크를 다니며 크고 작은 공동체를 숱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가리켜 ‘전국민의 동아리화’라고 표현했는데, 모든 국민들이 동아리든 마을 공동체든 협동조합이든 어떤 식으로든 속해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었다. 실로 덴마크 곳곳에서 민의 생태계는 풀뿌리 운동의 가장 큰 동력으로 작동했다. 마을 생태계를 기반으로 국가적 단위의 에너지 전환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구살림과 깨어 있는 민의 조직된 힘
이날 김정욱 교수와 지연 살림꾼은 지구살림을 위한 생태계를 일구는 데 깨어 있는 민의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잘 만든 대안이나 해결책도 실천 없이는 무용지물이고, 있는 그대로 좋은 자연도 깨어 있지 않으면 쉽게 망가져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망가뜨리는 건 순식간에도 가능합니다. 여러분 4대강 보십시오. 잠깐만으로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정신 차려야 됩니다.” (김정욱 교수)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하지요. 그만큼 우리가 바라는 삶을 살 때 깨어 있는 민의 조직된 힘이 필요한데, 지구살림이라는 주제에서도 저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지연 살림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