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장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어느 한국 유학생이 영어를 제대로 못해서 강의 때마다 진땀을 흘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심리학 시간만 되면 눈에 반짝반짝 빛이 났다. 다른 선생님들과 비교해서 심리학 선생님은 영어를 잘 못하는 학생들도 장점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 교수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칠판에 이렇게 썼다.
‘만약 당신이 사흘 후에 죽는다면’
이 질문에 대한 세 가지 대답을 생각하고 발표해 보자는 것이었는데, 학생들의 답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1)부모님을 찾아뵙는다.
2)사랑하는 사람과 여행한다.
3)다툰 사람과 화해하고 용서를 구한다.
지극히 평범한 대답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일들이었다. 학생들의 대답을 다 들은 후에 교수는 칠판에 이렇게 섰다.
‘Do it now!’
어수선했던 강의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일시에 조용해질 때 그녀는 말했다.
‘죽음이 닥칠 때까지 그런 일들을 미루지 말고, 지금 즉시 그 일들을 하세요!’
공자는 나이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어 공부하기 시작했고, 30세에 드디어 학문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40이 되어서는 자신이 아는 지식에 확신을 가졌고, 50이 되어서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깨달았다. 나이 60이 되어서는 어떤 말을 들어도 다 이해했으며, 70세가 되어서는 어떤 일을 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았다.
공자는 나이 50이 되어서 하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깨달았다고 하는데, 나는 50세를 바라보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각기 다른 사명을 주셨다. 모든 사람이 얼굴이 다르고 키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지문이 다르고 모든 것이 다 다르다.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나에게 맞는 옷이 무엇인지 몰라서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다. 아주 큰 교회의 목사가 되리라는 막연한 희망도 가졌었다. 그런데 이제 뒤돌아 서서 나의 살아온 길을 살펴보니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이 나에게 입혀주시려고 했던 옷이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나에게 불편하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이 50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교회를 개척해서 13년이 흘렀다. 어린 아들, 딸을 증평으로 데리고 와서 예전 신실 교회 자리를 임대해서 교회를 개척했었다. 그리고 10년 동안 신동에 있는 건물 3층에 서 일했고, 거기서 3년 전에 이곳에 다시 이전을 해 왔다.
나는 어렸을 때 꿈꾸었던 화려하고 큰 옷을 입고 있지는 못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것은 한낱 어렸을 적 꾼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가끔 묻기를 교회가 왜 부흥하지 못했냐고 묻는다. 나는 충청도 증평은 아직 시골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도가 안된다고 변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변명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충청도 시골에서 입고 있는 시골 목사의 옷이 바로 나에게 하나님이 입혀 주신 옷이기 때문이다.
지난 13년간 교회를 유지하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처음 교회를 개척했을 때는 증평에서 일하는 것이 창피해서 청주로 나가서 일을 했다. 청주와 청주 주변의 중국 음식점에 오징어 같은 해물 재료를 배달하는 일이 었다. 그 때는 증평의 중국 음식점에 배달을 오게 되면, 모자를 구해서 깊게 눌러 쓰고 검정 썬글라스를 끼고 배달을 했다. 재료를 받는 중국 음식점 주방장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 보기도 했다.
내수에서 산소, 질소 같은 가스가 든 무거운 통을 배달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 여름에 가스를 배달했었다. 그 때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지금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을까?
새벽에 일당 이만원을 받고 청주, 진천, 광혜원에 있는 초중고등학교로 고기 배달을 하기도 했고, 음성, 금왕, 대소, 광혜원, 감곡까지 우유 배달도 했었다.
장애우 도우미도 한동안 했었다. 씻기고 먹이고 운동 시키고 산책 시켰다.
그렇게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지금도 교회에 매여 있지 못하고 진천 운전 면허 학원에서 강사로 일한다. 그리고 요즘 들어서야 이런 삶의 스타일이 하나님이 나에게 입혀 주신 삶의 옷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들이 자기에게 꼭 맞는 옷을 찾기 위하여 많은 옷을 입어 보듯,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꼭 맞는 옷이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지나야 한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사람은 자신에게 하나님이 입혀주신 옷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서야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나는 나이 50이 되어서야 내가 입고 있는 옷에 대하여 인정하게 되었다.
회개라는 것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벗고 자신에게 맞는 옷을 발견하여 입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과 고라신과 벳새다 마을에서 열정을 가지고 전도하셨다. 권능을 많이 행하셨다는 것은 그들 속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분통을 터뜨리셨다.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자신에게 맞는 옷을 발견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을 것이다.
우리 교회도 이제 13년이 흘렀으니 인간의 나이로 따지면 50정도 된 것이 아닌가? 13년 정도 되었으면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게 입혀주신 옷에 대하여 파악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만 주신 사명이 곧 우리의 옷이다. 모든 사람의 삶이 자기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라면, 우리 교회의 역사도 우리 교회의 참 모습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우리 교회도 13년을 지나오면서 우리 교회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혀 주신 옷에 대하여 알아차리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을 때 가장 편안해 질 수 있는 것이다.
1998년도에 런던의 모 대학에서 "어느 나라 사람이 가장 행복한가?"를 조사했다. 자신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의 순위는 황당하게도 방글라데시와 아제르바이잔, 나이지리아가 1, 2, 3위를 차지했다.
그 후에 영국의 심리학자 로스웰(Rothwell)과 인생 상담가 코언(Cohen)이 2002년에 발표 한 연구 발표에서도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스스로를 가장 행복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사는 것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는데 너무나 가난하게 산다. 하루에 몇 푼을 벌기 위하여 벽돌 만드는 곳에서 하루 종일 일한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자신을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니, 부자 나라 사람들이 자신을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은 모든 것이 채워질 때 금방 싫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선풍기가 귀할 때는 선풍기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선풍기가 생기자 에어컨을 가지고 싶어한다. 에어콘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공기가 안 좋다며 에어컨에 대한 불평을 늘여놓게 된다. 행복은 조건에 있지 않다.
인간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천국도 행복의 이상향이다. TV를 잠깐 보다가 어떤 노인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말하기를
"인간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어떤 사람이 가장 행복합니까? 가장 힘들게 살아온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가장 힘든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힘들게 살아왔지만 지금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금 하는 고생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원천이 된다. 고생한 만큼 행복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