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퀴 다 못 돌았다.
반 못되게 돌고 편한 길로 내려왔다.
환종주 중간은 운부봉(880).
버스 시간에 맞추려니 어쩔 수 없었다.
쉬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중간 목적지 운부봉 1km 남겨두고
운부 고개(650)에서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은해사 주차장(120)에서 운부봉까지
바닥 거리 6.5km.
램블러 기준으로 8.5km.
산지 거리는 여기에 조금 더 보태야 한다.
운부 고개는
신원리 휴양림과 운부암 골짜기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팔공산 둘레길 13구간(신원리 ~ 은해사)이
통과하는 곳이기도 하다.
무더운 여름철에 오르막길을
6 시간 이상 걷는 것 몸에 안 좋다.
14.5km. 2만 4 천보.
5시간 반 이동. 2시간 반 휴식.
오전 10시 은해사 주차장 출발하여
오후 6시 출발지로 돌아왔다.
구름 낀 하늘이었지만
이날 대구 지역 낮 최고 기온 32도.
능선길 숲그늘 속이라도
배낭 메고 산을 오르내리면
얼굴에 땀방울이 쉴 새 없이
뚝뚝 떨어진다.
이런 날 무리하면 더위 먹는다.
다부동 오개산에서 시작된
팔공산 주능선은
붓필재~가산~한티재까지 11km.
한티재 ~ 서봉 6km.
서봉 ~ 바른재 4.5km
바른재 ~ 능성재 6km 다.
바른재부터는 팔공산 주능선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다.
산줄기 흐름이 'ㄱ'자 형으로
90도 가깝게 꺾인다.
서에서 동으로 달리다가
방향을 바꿔
이제 북에서
남으로 달린다.
당연히 주능 양쪽 가지능선도
남북이 아니라 동서로 갈라져 나간다.
더운 날씨에도
은해사 능선 환종주를
행복하고 즐거운 산행으로
만들어 주신
도보행복님. 하숙생님.
풀꽃사랑님. 대덕화님.
푸른강님. 산사랑님께
감사 인사 올린다.
대덕화님과 풀꽃사랑님은
3년 만에 나오셨다.
엉성한 대중교통망 때문에
다소 불편할 뻔했던 은해사 도보가
대덕화님 덕분에
엄청 쉬워졌다.
하루 전날 영남대숲길 번개 때
농대연못에서 멍 때리면서 긴 시간 보냈다.
대덕화님은 경산 영대 쪽이 활동 구역인데
자기도 그곳에서
똑같이 지낼 때가 많다고 했다.
도보행복님은 전날
영남대숲길 대학본부 옆에서 뜯은 돌나물로
식초 + 고추장 무침 요리를
해오셨다.
돌나물.
연한 순은 나물로 먹거나 김치를 담글 때 쓴다.
물기가 있는 바위 틈새에서 자란다.
신선하고 사각사각 상큼한 향미가 난다.
돌나물은 돌이 많은 곳에서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출발지 은해사 주차장.
운부능선 진입로
차일지 여수로(물넘이 둑) 지나면
은해사 수림장지가 나온다.
우리나라 대도시 화장률은 95% 이상.
대구는 90%.
시골 지역은 70%선.
부산이 제일 높고.
제주도가 제일 낮다.
은해사 법당 뒤쪽 길쭉한 장방형 임야 전체가 수림장지다.
장폭이 0.5km 정도 된다.
숲은
모든 생명의 탄생지이며 안식처다.
비록 납골한 육신은
땅속에 매장했지만,
그들의 기억은 숲 속에 남아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한다.
수림장 묘지.
죽은 자는 안식하고
남겨진 자는 치유하는 곳이다.
나무에 망자와 유족의 이름을 새긴 금속 명패를 달고
나무 발치에 골분 항아리를 묻는다.
기제사 50만 원. 천도재 200만 원.
평생위패 30만 원. 49재 1500만 원.
반송 소나무 밑은 천만 원대.
나무가 클수록 가격대가 더 올라간다.
비가 많이 온 직후라서 버섯이 다양하다.
개똥인 줄 알았다.
외이재(240)
오늘은 버섯풍년이다. 노란접시껄껄이그물버섯
물고기 화석처럼 생겼다
명산대찰에는 해충이 없다고
절에 다니는 여신도들이 말한다.
큰스님의 법력으로 얼씬도 못한다고 한다.
전부 헛소리다.
식생은 기후와 토양 조건이 지배한다.
도보행복님이
팔 토시를 손에 끼고 팔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다.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모기를 내쫓고 있다.
의자나무
이 소나무는 앉은뱅이다.
나뭇가지가 땅바닥에 붙어있다.
봉산 정상 부근에 권응수 장군묘가 있다.
명당이라는 소문이 돈다.
임진왜란 영천성 탈환 전투에서
맹활약하신 영천 출신 의병장.
나라 녹을 먹던 모든 벼슬아치가
왜군 소식에
바람처럼 사라졌을 때
가솔과 일가를 모아 홀로 나섰다.
영천 혈암산 밑에 배향하는 사당이 있어
지금도 기일만 되면
많은 사람이 찾아와
권장군의 충의 정신을 기린다.
육전에서 왜군을 상대로
처음으로 이긴 전투를 권장군이 지휘하였다.
이 한천 전투에서 권장군의 의병들은
왜군 10여 명을 처단하였다.
그전에는 백전백패였다.
왜군 오기도 전에 꽁무니 내리고 도망치기 바빴다.
우리도 잘 만하면
일본군에게 이길 수도 있다는 걸
우리 조선군에게
보여준 것이다.
이 자리도 비석이 없는 걸로 봐서
아마도 남의 산에다
산 주인 몰래 암장한 것 같다.
능선길 오른쪽은 신원리 마을이다.
왼쪽은 태실봉과 운부암 계곡이다.
흰가시광대버섯
인종 태실이 묻혀있던 태실봉.
칠절송
눈사람바위. 광대바위라고도 부른다.
이 바위 덕분에 산속 알바를 줄일 수 있었다.
능선 정상부만 따라 쫓아가면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다.
운부암 능선은 산객이 편히 가도록
사면을 따라 길을 새로 내었다.
잘록한 안부가 대여섯 군데 나오는데
갈래길이 나온다.
왼쪽 길은 평탄한 사면길.
오른쪽 길은 정상으로 직진하는 길이다.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왼쪽 길 중에는 운부암으로
완전히 빠지는 길도 있었다.
운부암 쪽으로 계속 내려가다가
도보행복님께
전화로 현재 위치 물어보니
눈사람바위란다.
도보행복님 팀만
길 제대로 잡은 거다.
눈사람바위 몰랐다면
산속을 한참 헤매고 다녔을 것이다.
알바 고생을 많이 들어준 고마운 바위다.
소나무 수피. 건강해 보인다.
운부고개(650).
팔공산 둘레길 13구간 통과점이다.
여기서 은해사 방향으로 좌틀하여 하산.
이때가 오후 4시경.
은해사에서 6시 버스 타려면
더 이상 가면 안 되었다.
멈춰야만 했다.
1km 직진하면 운부봉.
우틀하면 신원리 계곡.
운부암 계곡물에 발 담그고 놀았다.
비목나무.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선구자'와 함께 우리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가곡이다.
전쟁의 슬픔을 표현한 가곡 ‘비목(碑木)’은
‘나무로 만든 비(碑)’란 뜻이다.
한국전쟁 때 처참하게 죽어간
이름 없는 젊은이의 초라한 무덤가에
세워진 비목을 비무장지대에서 보고
한명희 씨가 가사로 엮었다.
비목나무는
가곡의 '비목'과 발음이 같아
전쟁의 초연 속에 사라져 버린
비극의 주인공을
상징하는 나무로
떠올리게 된다.
비목나무 잎을 비벼보면 매운 향기가 강하게 난다.
상큼한 향기를 맡으면 산행 피로감이 싹 사라진다.
우리나라 산 어디에서나 자라는 흔한 나무 중 하나다.
지금도 석재 비석은 많은 돈이 든다.
옛날에 서민들이 비싼 돌 비석을 대신해서
자신의 이름을 재질이 단단한 비목나무에 새겨 넣었다.
비목으로 많이 쓰여서 비목나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이 소위 '느패'라는 곳이다.
늪지에는 물이 흔하다.
길바닥이 온통 물이었다.
그래서 '늪'이라는 지명이 나왔을 것이다.
깊은 산골짜기에 이렇게 펀펀한 곳은
처음이다.
이곳 서쪽은 팔공산 주능선
운부봉과 은해봉 사이 '느패재'(800).
느패재를 통해 은해사와
동화사가 내왕하였다.
개울 건널 때 등산화 벗지 않고
쉽게 건너가는 법을 대덕화님께 배웠다.
그렇게 간단한 것을
왜 나는 이제까지 몰랐을까?
땅 속에 들어가는 날까지 배워야겠다.
팔공산 둘레길 안내판
이렇게 운치 있는 길을
버스 시간 때문에 여유 있게 걷지 못했다.
신일지.
운부암 골짜기 물은
다른 곳으로 한 방울도 새지 않는다.
전부 이곳으로 모인다.
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
산자분수령. 맞는 말이다.
은해사 계곡 사방댐
은해사 일주문
은해사 식당가.
파리만 날리고 있다.
문을 연 편의점 하나 없다.
도보의 여왕 도보행복님이
여기서 가두 판매하는 복숭아를 구입하셨다.
주차장에서 나눠먹었다.
그렇게 맛있는 복숭아 처음 먹어봤다.
별명에 딱 맞게 안목이 남다르시다.
지혜자와 함께하면
만사가 형통하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찾았는데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파는 곳이 없었다.
갈증과 공복 해소에 아이스크림보다
복숭아가 더 효과적이라는 걸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