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집사님과의 만남을 주선하신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00 아우님으로부터 집사님께서 손자를 보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먼저 할아버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몸 상태는 좀 어떠신지요? 구급차에 실려 가셨다가 퇴원하셨다면서요?
4월 2일에 출국하신다고 메시지에 00아우가 썼던데 한국에 오신 일은 성과가 있었는지요?
어머님께 집사님의 마음을 전하겠습니다. 길수도 어머님 아들로 세상에 보내 주신 분께 늘 감사드리고 있답니다.
12시가 다 되어서 우선 집사님의 글 앞부분에 대한 길수의 입장이나 질문을 적어 보았습니다.
제가 집사님의 글을 잘 못 이해한 부분이 있는 지 다음 번 답신에 바로 잡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성경말씀(특히 로마서의 말씀)에 대한 입장차이가 아무리 크더라도 집사님과 길수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내용을 주고받는 서신과 답신이 계속 오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신다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교회에서는 출교를 당하고, 한 때 이단이라는 곳에 몸담은 적이 있던 길수를 보러 오신 것만 해도 하늘이 보통 인연으로 묶어놓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길수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늦으면 어머님이 몹시 걱정하시기에 오늘은 이만 줄이렵니다.
을미년 춘분절에 순창에서 김길수 올림
--------- 원본 메일 ---------
제목: 안녕하세요 000 입니다.
김길수 형제님, 00 형제로부터 전달 받은 이메일 잘 보았습니다.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의 글로 제 마음도 따뜻해 집니다. 그 곳 도서관 근처에 만발한 개나리가 제 눈 앞에 환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 형제님 어머님과 함께 저를 대접해주시고 기도해 주신 그날을 저는 아마 영원히 기억할 것 입니다. 어머님에게 꼭 저의 안부를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님의 눈물의 기도는 그 어떤 기도보다도 강하고 아름답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함께 주신 글에서 길수 형제님의 아픈 마음을 저도 공감 합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믿는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지 못하는 현실을 너무나 많이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우리에게는 그 모든 것이 과정일수가 있으니 또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문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을 모르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죠. 저는 길수 형제님이 말한 양심도 무시한 채 행동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 동감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이용하여 남을 판단하면서 정작 자기가 하나님이 된 것도 모르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아니 교회의 지도자들이라는 사실에 더욱 안타까운 것이죠.
그러나 저희가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마음이 어떤 것인지도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하기 전에 우리도 우리 스스로 양심과 믿음 안에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특히 형제님의 글에서 말하는 그 양심이 저도 참 중요하고 신중하게 고찰할 사안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특히 바울의 서신서를 통해서 우리도 우리의 양심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잘못하면 우리도 우리 스스로 우리의 양심이 어떤 기준이 된다고 잘못 생각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형제님과 함께 성경에서 말하는 우리의 양심에 대해 그리고 양심의 역할에 대해 같이 고찰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 했습니다. 별첨의 제 글은 정식 논문이 아니라서 인용된 부분에 대해 자세히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부분이 제가 아는 믿을만한 학자나 목사님들의 논문이나 설교 말씀가운데 인용하였음을 말씀 드립니다. 물론 당연히 그 모든 내용이 성경에 기반한 것만 인용한 것입니다. 아무래도 형제님과 제가 로마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바울이 서신서에서 자신의 양심에 대해 많은 부분에 언급하고 있으므로 우선 로마서를 중심으로 한 양심과 율법에 대해 공부하면 합니다. 별첨의 글을 보시고 형제님의 생각과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또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룰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 하나님의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 - 원죄와 율법 - 여인의 후손 – 동정녀에게서 낳으신 예수님 -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감사합니다. 000 형제드림
양심과 율법
000 집사
Introduction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간의 양심은 무엇이며 그리고 율법과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복음의 적절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양심과 율법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게 될 때 복음의 적절성을 오도 할 수 있으며 인간의 양심에 대해 잘못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신약의 바울 서신서들을 통해 양심과 율법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함으로 우리는 어떻게 복음으로 나아 갈 수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믿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올바를 알게 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율법은 믿음이 오기까지 우리의 행실을 통제하므로 몽학선생의 역할을 한다(갈 3:21, 24). 양심 역시 인간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의 행동에 절제를 가할 수 있다(롬 2:15). 물론 양자는 칭의의 사건을 일으키지도 않고, 그리스도 사건 이후에는 상대화 될 뿐이다. 그러나 양자는 복음으로 향하는 첫걸음을 내딛게 하는, 결코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기능 역시 수행한다.” 무궤의 질문 양심과 마태복음 5장의 팔복을 받는 조건인 청결한 마음(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을 닮은 마음)과의 관계에 대하여 길수는 마음(카르디아)과 영(프뉴마)과 양심(순에이데이시스)이 본질상 같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집사님께서는 이 삼자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계시는지요?
Understanding Conscience and Law(양심과 율법 이해) 인간의 양심은 율법과 함께 인간이 죄인 됨을 알게 하는 증인이 된다. 그렇다고 양심이 율법과 동일한 위치에 있다 할 수는 없다.
(길수의 이해: 양심이 돌비십계명의 실체 곧 양심은 마음에 쓰여진 십계명이요, 돌비 십계명은 육체의 행위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로마서 7장의 율법십계명(의 본질)은 신령하다는 말씀 참조
또한 양심의 긍정적인 역할로 인해 양심의 본질적인 면이 바뀌어서도 안 된다. 양심은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본성이지만 우리의 양심도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들어오면서 손상 되었음을 인정해야 하며 기준이 없는 양심은 어떻게 작용 할 지 모르게 된다. (길수의 입장 1>양심(인간과 천사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영)은 하나님의 영으로 낳으신 영적 존재이기에 아담의 죄나 부모의 죄로 인해 오염되지 않는다. 요한복음 3장 영으로 난 것은 영이요~, 바울 서신의 사람의 영,
2>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원죄(하마르티아 롬5:12, 사단의 영이 자기 양심을 육체의 종으로 삼을 때 육체의 주인 노릇을 하는 罪의 종이 되어 십계명을 어기는 살인죄 간음죄(파라바시스,)를 범하는 죄인이 된다. 로마서 7장 참조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에 대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언급한 에스겔서 내용 참조
3> 양심을 평가하는 다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양심자체가 진리와 거짓, 하나님과 악마를 판단하는 기준(尺度) 자체이다. 모든 독재자들이나 사이비 교주들 종교지도자들이 맨 먼저 하는 작업이 양심을 침묵시키는 세뇌작업이다.)
나침반도 우리에게 길을 잃지 않게 방향을 가르쳐 주지만 자석에 가까이 위치해 있으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정확한 지도 없이 사용하면, 나침반은 거의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의 양심도 우리 마음의 이기적인 욕망에 부당하게 영향을 받으면, 우리에게 잘못된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길수의 질문: 利己적인 욕망이란 몸(己)의 소욕 곧 육체의 소욕(갈라디아서)이라 이해해도 되는 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에 거하는 죄(악마)가 불러 일으키는 욕망들(殺心, 盜心, 淫心, 貪心, 欺心 자아숭배 우상숭배, 천사숭배, 無情, 不孝)과의 매 순간의 싸움에서 양심의 힘으로(우릴 양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범죄의 욕망을 다스리는 삶을 살고 있다는 길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양심이 하나님 말씀의 확실한 인도 없이 사용될 경우, 우리는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에서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지 못할 수 있다. (길수의 질문: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도 귀신 , 천사, 사단의 말도 있는데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십계명에 대한 해석도 모세나 선지자들과 예수님(하나님)의 해석이 다른데 성경해석이 바른지 그른지를 (참 하나님의 말씀인지 사단이 인용한 광야의 시험에서 사용한 말인지를 각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면 목사나 교주나 교리가 기준이 되어야만 하는지요?) 사실, 우리의 양심이 올바로 작용하려면 우리는 여호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바울은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함께 증언”한다고 말하고 있다. (롬 9:1) (선후가 바뀌었다는 게 길수의 생각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인지 사단의 영인지, 진리의 하나님 보혜사의 영인지 귀신의 영인지를 먼저 양심(마음에 쓰여진 십계명)이 판단하고 영접한 후에야 우리의 양심이 주도적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으며 증거한다는 것이 길수의 이해입니다.)
우리의 양심을 올바로 세우도록 노력할 때 우리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그 믿음으로만 가능함을 알게 된다. (믿음에 대해서 길수는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선물(피조물)이 아니라 사람의 영(양심=마음)의 작용이라 이해하고 있음- 로마서 3장의 하나님의 믿음, 계시록의 예수의 믿음이란 표현 참조)
양심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23:1 이하 말씀에서 바울이 말한 내용에서도 알 수 있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바울이 가로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믜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바울이 가로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여기서 문제는 우리의 양심이 아담의 범죄로 인해 '화인맞은 양심'(딤전4:2), '악한 양심'(히10:22), '더러운 양심'(고전8:7)으로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복음을 이해하는데 아마 이 부분이 집사님과 길수의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차이라 생각합니다. 길수는 인간이나 천사의 양심은 하나님이나 사단악마도 강제할 수 없는 神性(영=마음)의 영역이요, 오직 자기 자신만이 깨끗하게 하거나 더럽힐 수 있는 하나님의 영으로 낳은 영이라 보혜사 하나님께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죄나 의의 본질, 자유의지와 책임에 명확한 이해, 생명과나 선악과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되지요.
길수의 질문입니다. 집사님은 하나님께서 과연 악(罪)을 창조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을 자신의 종으로 삼으려 할 정도로 지능과 권세와 아름다움을 겸비한 성경의 또 다른 주인공인 사단악마의 존재에 기원에 대해 하나님께 배우신 바를 말씀해 주십시오. )
그러나 우리의 본래의 양심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주어졌으니 바로 예수님을 통한 회복이다.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를 죄에서 씻어주시고 회복시키신 주님 안에 있는 자 만이 참된 양심의 소유자라 할 것이다. 성령의 인도 하심 안에 양심은 제대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본 주제의 기준이 인간의 도덕적인 수준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길수의 입장 1)타고난 자기 양심을 더럽혀 십계명 중 하나라도 범한 자들(양심이 병든 자들)이 다시 하나님이 낳아 주신 본래의 건강한 상태로 회복할 수 있는 길이 행위율법으로는(모세나 선지자의 의로는) 불가능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고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율법(몽학선생 모세수준의 의)은 죄의 종이 된 이들을 죄(사단)의 손에서 구해 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부모는 병이 들지 않았지만(건강한 양심을 가졌지만) 자신이 의사가 아닌 한 (하나님의 양심을 가진 장성한 수준에 이른 자가 아니라면) 병든 자식을 고치지 못하고 의사(예수님의 양심)에게 데리고 가야 고칠 수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2)양심이 건강하지만 아직 어린아이 수준에 있는 자 중에 가장 큰 자들인 율법과 선지자들(동양의 성인들)도 하나님의 양심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로지 한 길 예수님의 피 이외의 다른 길은 없다.(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하나님의 죽음에 연합하는 길 밖에는 없다.) 참조: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사람 고치는 의사)가 되게 하리라 천하 인간에 예수 이외에 구원(죄 사함과 하나님 보좌에 앉을 天子가 되는 것)의 이름을 주시지 않았다.
3)천사 같은 어린아이들은 그 몸이 아무리 병든 채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 양심(童心)은 모두 다 건강한 하나님의 자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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