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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 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장원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최은빈
알
종아리에 배긴 알이 부화하려는 걸까요
아버지는 밤새 움찔이는 알을 주므르며
억눌린 신음으로 잠을 설쳤어요
밀봉된 상자를 트럭에 실고
단단히 트렁크를 잠가요
닭털 같은 보푸라기 일은 택배기사 조끼
새벽 해가 뜨기도 전에 아버지의
첫 출하는 시작되지요
택배들은 부화일이 하루라도
늦으면 안되는 것들이라
밟는 액셀에 꿈틀이는 종아리의 알
상자 하나 옆구리에 끼고
계단을 빠르게 오르내릴 때면
알은 더욱 묵직해져요
땀방울이 알의 껍데기를 타고 흘러도
아버지는 달리기를 멈출 수 없지요
저 알 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웅크려 있나요
아버지가 매일 밤 삼켜내던 울음인가요?
취할 때면 늘 울부짖던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이름인가요?
덜 자란 키나 좀 들어 있으면 좋겠다
뭉친 어깨를 주므르며 아버지는 중얼거려요
오늘 아침 배달한 택배는 이미 부화했다던데
아버지의 알은 얼마나 더 무거워져야 하나요
오늘도 알이 욱씬거리지만
부화일은 좀체 다가오지 않네요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 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차상
서울삼성고등학교 3학년 박주은
모서리를 가진 알
수많은 알들이 스쳐 지나가는 구로공단역 삼 번 출구
둥지를 찾아 발길을 바삐하는 인파 속에서
홀로 구르지 못한 채 멈추어 있는
모서리를 가진 알 하나
손에 든 신문 속 구인구직 란에는
빨간 밑줄이 상처처럼 번져 가고 있다
어느 누구 하나 품어주는 깃털이 없어
각진 어깨를 애써 말아가며 구르려 했던 날들
자꾸만 속을 비워내는 이력서와
매달리지 못한 넥타이가 떠오른다
단단한 벽 쪽으로 몸을 던져
모서리를 깎아내고, 모두 같은 모습이 되어야만
온전한 둥지를 가질 수 있을까
높아지는 건물 사이에서
굳게 다문 알의 내벽을 마주한 지금
잠들어 있던 주몽의 화살을 꺼내자
생채기를 품었던 모서리에서부터
조금씩, 옅은 금이 가고 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 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차상
동아여자고등학교 3학년 주은수
알
소중한 알이 있었다.
누군가 깨버릴까 무섭고, 없어질까 두려워
아무도 볼 수 없게 숨겨버렸다.
알은 자신을 숨긴 걸 알았는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커지지 않는 알의 모습에
나는 흥미를 잃고 알을 잊어버렸다.
나는 다른 알을 찾기 시작했다.
사진 작가, 애니메이터, PD 등의
많은 알들이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알 없는 삶은 무의미했다.
목표를 잊어버린 사람 중에서
어느 누구 의미있는 삶을 살겠는가.
한 동안 알 없는 삶은 계속되었다.
책장을 뒤졌다.
소중해서 숨겨버렸던 알을 찾고 싶어서였다.
겨우 찾아낸 알에는
소중한 꿈이 있었다.
너무 소중해서 들키고 싶지 않던 꿈.
나는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내는 꿈을
잊지 않기 위해 숨기는 것을 끝냈다.
그 뒤로 꿈은 점점 자라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 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차하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고은강
아버지의 폐경
며칠 째 유리공장 마당에 폐닭이
골골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빈센트병원 하늘정원에 나와
겨우 휠체어를 밀었습니다
하루에 몇 개씩 알을 낳던 닭처럼
한 때 수 없이 알전구를 불어냈을 아버지
닭은 파르르 떨리는 볏으로 알을 낳았고
아버지는 파이프 끝에 동그란 유리알이 맺히기를
계속 숨을 불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낳은 알들은 모두 빛이 났습니다
막 태어나면 피가 묻은 달걀처럼
붉고 영롱하게 빛나지만
식으면 투명하고 끝엔
온 집안이 환해졌습니다
언젠가 제게도 빛이 난다던 아버지는
그토록 숨을 길어오던 목 깊숙한 곳에 알을 품었습니다
한 번도 낳아본 적 없다는 검은 알,
이제는 숨을 불기는 고사하고 쉬기에도
벅차답니다
그토록 숨결을 불어넣던 아버지
어쩌면 자식처럼 아끼던 전구들은
아버지의 수명이 파이프를 타고 태어난 것일까
키워준 것도 모자라 수업료 납입 기간이면
쌈닭처럼 아버지를 쪼았던 내가 죄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식을 빛내고서 그 뒤에서
어둠을 지고 있는 것은 부모의 몫이라고 했습니다
검은 알이 부화하는 날에는 그곳을
도려내야 한답니다
이제는 작은 구멍으로 겨우 숨을 쉬어야겠지요
아버지의 숨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밤이었습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 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차하
대연고등학교 3학년 김명준
인쇄소의 산란
아버지의 인쇄소에 앉아 있을 때 나는
실온에서 썩어버린 알 같다는 생각!
알처럼 숨죽이고 있는 나의 머리와 생각 그리고
꿈을 떠올려본다
나는 5평의 작은아버지의 인쇄소에서 잠깐 외출
하러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자그마한 다어장 두꺼운 교과서의 활자를 갈무리
한다
계란판 같은 원고지 위에 갈무리 된 활자는 정렬
된다
그 사이에도 아버지가 눌러놓고 간 인쇄기에선 수
많은 활자가 쏟아져 나오고
재벼열 되고 다시 갓 낳은 알 같은 활자를 산란
한다
인쇄기에서 쏟아져 나온 활자는 살아나오지 못하는
무정란으로만 남는다
이루지 못하거나 잉크처럼 흘려보낸 꿈처럼
아버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면
주인 오는 소리를 들은 인쇄소가 힘차게 울어대고
나는 인쇄된 알처럼 무심히 아버지를 맞이한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 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차하
고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김혜원
알을 열다
고시원은 꼭 계란 한 판 같다
각각의 호수를 가지고
줄 맞춰 잠에 드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의 물탱크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어린 알이다
나의 교복셔츠와
옆방 아주머니의 스웨터에서
같은 냄새가 난다
밥주걱을 공유해도
사람들은 각자의 바찬으로 배를 채운다
나는 자라나고 있지만
키가 크지 않았다
건강하지 못한 나의 고시원
침대에 누워 있으면 천장이 얼굴 앞으로 뚝 떨어질 것 같다
못질을 할 수 없는 벽
그 안에서 단단한 껍질의 소리가 들린다
고시원을 떠날 때 사람들은
자라났던 만큼 상자를 채웠다
방이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기를 반복한다
얼굴을 침대에 묻어버린 나는
또다시 고시원의 아침을 맞는데
천장에서부터 금이 가는 것이 보인다
창 너머로 지저귐이 들리면 나는
새가 날갯짓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고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자
바깥이 햇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 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차하
정신여자고등학교 2학년 황재연
헬리콥터 장난감
따가운 빗방울 쏟아지는 밤
제주시 구좌읍 일주동로 3116
철거 직전의 기와 지붕을 타고 내려온 빗방울들이
쪽마루 위에 까만 흔적을 남기며 스며들었다
대청에 앉은 할머니는
노란 머리끈으로 허연 머리칼을 질끈 감고
고장 난 헬리콥터 장난감을 두 손 가득 쥐었다
빗물이 징검다리처럼 고인 마당 한 가운데,
떨어진 플라스틱 날개에
시린 달빛이 번졌다
할머니는 어던 말을 하고 싶었을까
할머니의 말들은 먼지가 되어
공중에 힘없이 나부꼈다
디딤돌 위
치매 요양 센터라고 적힌 허연 봉투는
빗물에 조금씩 젖어갔다
할머니의 입술 틈새로
무거운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할머니의 손 안
녹슨 헬리콥터 장난감 위로
할머니의 고된 세월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분합문 사이로 낡은 자명종이
하루의 끝을 알렸다
빛바랜 기억들이 새겨진 헬리콥터 장난감
윙윙대는 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싸늘하게 젖어들어갔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 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차하
광주경신여자고등학교 3학년 김다영
부화를 꿈꾸는 알
조갯살을 뱉어낸 껍데기처럼
어머니의 몸은 굳어갔다
생의 결절마다 검버섯은 피어올랐고
짜디짠 주름이 이마에 걸렸다
굽은 허리에 쌇인 바다냄새가
병실 가득 배어 있다
어머니는 말을 잊어버렸고
미덕처럼 해풍이 불어왔다
주머니 망에 고인 여러 가지 해산물이
어머니의 유일한 방문객,
창문 앞에 핀 꽃이 피고 질 동안
어머니는 저물어만 갔다
고무처럼 질긴 운명을 타고 났다던 할머니는
나무처럼 딱딱해진 어머니의 몸을 닦는다
여기저기 터져나간 살들이
수피처럼 뜯겨져 나간다
파도가 치고 해초가 흔들린다
어머니의 손가락 끝에서
비밀처럼 알을 품고 있는 어미 새
링거줄을 타고 수액이 떨어질 때면
가지나무의 숨결을 느끼는지 꿈틀거린다
동맥 사이 좁은 틈을 비집고
주삿바늘이 들어간다
알이 부화해 다시 지저귀기를 바라는 할머니
그 좁은 주삿바늘 속에 몸을 던진다
때로는 눈물을 대신해 흐르는 것이 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 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장려
창원명지여고 3학년 홍채연
날개
무료하게 사람들이 흘러다니는 거리의 꽃집
단단한 공기 속을 뚫고 나오는 꽃 한송이
깨진 껍질을 안고 오후의 그늘을 마주한다
화분속 꽃봉오리들이 부화하길 기다리는 시간
물머금은 색색의 말들을 어루만지는 엄마의 눈동자
그녀는 화려한 날개를 퍼덕일 꽃의 비행을 상상한다
부화하지 못하고 굴곡진 생을 글렀다는 엄마의 알
까슬거리는 껍질 속에 웅크린 채 굳어갔다는 날개
검은 봉지로 치장한 꽃을 떠나보내는 거친 손길
손님의 고운 손끝에서 떨어진 구겨진 지폐 몇장
눈동자에 진 그늘이 각진 창가를 올려다본다
하늘을 뚫는 새의 몸짓에 젖어가는 그늘에 알이 생긴다
움츠러든 알의 잔상에 더욱 깊어지던 주름
엄마는 습관적으로 중얼거렸다
알을 깨고 나와 너의 날개를 펼쳐야 한다 굳은 날개를
닮아가지마라
엄마는 이미 거친 세상을 뚫으려고 열심히 날개를 퍼덕
이고 있어요
잠든 엄마의 머리맡에서 속삭이던 나의 작은 날갯짓
낮은 천장을 뚫으려던 날개를 기억한다
포근한 달빛의 품속에서 스르륵 풀리는 날개
알을 뚫고 나온 흔적들을 알고 있는지
웅크린 채 알을 만드는 날개를 어루만져본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 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장려
유봉여자고등학교 3학년 이선영
알코올램프는 알을 좋아한다
알코올램프는 알을 조하아한다
일단 한번 심지에 불을 붙여봐
비커에 담긴 물이 끓을 때
알코올램프의 동공에서 은하수가 쏟아질 때
물은 수증기가 되어
비커의 눈금 궤도를 따라 자전을 해
연쇄살인마가 애용하는 식칼은 필요 없어
알코올램프의 입김은 프로포폴, 전용 마취제니깐
사실 알코올램프는 과학실험실에서 주술사이거든
포르말린 시약에 담긴 알들을 봐
노랗게 뭉쳐진 눈코입이 벌써 흐리멍텅해졌어
오늘 주술사는 태양을 끓이고 있는 걸까?
주술사는 뇌수가 없는 노른자를 끓이며
죽음을 멈춰 놓는 걸까?
그런데 포르말린 냄새가 지독하게 밴
알은 이미 따분해졌어
구미호의 발톱으로 파낸 동물들의 신선한 눈알을
주술사는 원하거든
그래서 과학실험실 앞에 있는 화단은 몸을 떨지
개구리와 풀벌레들이
자기 눈알이 홍채와 동공으로 해부되는 시간을 예감하
기 때문이야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 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장려
광주장덕고등학교 3학년 공혜지
계란 한알
집에 가는 길 눈발 사이로 희미한 엄마
깃털처럼 어깨에 앉은 눈 보고
목소리 높이자
닭의 볏만큼 붉게 언 엄마 얼굴
온기를 잃어 파르르 떨렸다
내가 뱉은 돌석인 말을
엄마는 모래주머니같은 가슴으로
꾹 꾹 눌러 소화시켰다
뒤돌아 눈길 밟는 나에게
슬쩍 쥐여주는 계란 한알
막 낳은것처럼 따뜻한 계란을
엄마는 식을새라 호호 입김 불어가며
주머니속에 꼬옥 품고 있었겠다
시린 바람에 목울대가 깨질 듯 아파
가로등 빛에 젖은 엄마 뒷모습
왈카 껴안았다
나른 감싼 부드러운 껍데기
나는 어린 부리로 엄마의 심장을 쪼아왔을까
작게 오그라든 엄마 손을
내내 잡고싶은 밤
깨진 달의 조각들이 쌓이고
손에 쥐여진 계란은
아직도 따뜻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 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장려
대구여자고등학교 3학년 변민주
합격토스트
식빵처럼 포근한 이불에
잠들고 싶은 열한시
부슬비 사이로 버터의 온기가 전해와요]
막차가 오기까지 5분
내가 가장 가벼워질 시간이에요
중불에 알맞게 익은 식빵 위로
오늘의 도서관과 달리 아삭함이
느껴지는 양상추를 올리고
누구보다 예븐 분홍을 가진
햄을 올리면
아줌마가 제일 경쾌해지기 시작해요
톡 톡, 젓가락이 탭댄스를 추며 만들어낸
가장 부드러운 계란은
합격토스트의 심장
쌍여 있는 계란판이 모두 비워지면
아줌마는 그때서야 셔텨를 내려요
오늘의 마지막 손님, 나는
받아든 토스트를 한 입 크게 베어물고
따분한 거피 대신 특제과일주스를
한모금 마셔요
계란 속에서 가끔씩 터지는
옥수수콘이 오늘의 나를 위로하면
쳐진 어깨가 살짝 올라가고
가벼워진 발결음으로 버스에 올라요
아줌마는 가장 신선한 계란을
준비해 내일도 토스트를 구우실 거에요.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 17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장려
군산고등학교 3학년 김선홍
알
나도 모르게 뱉은 재채기가 미안했다
햇살 대신 내리쬐는 천장의 백열을
어머니의 부풀은 눈이 한 알을 향하고 있다
며칠 전 어머니는 알을 낳으셨다
남들의 이른 시선이 부끄러운지
붉게 달아오른 내 동생
사방이 훤한 알 속 아이 앞에 손바닥을 대 보았더니
정수리만 빼꼼 튀어나왔다
모든 것이 통제된 하얀 의복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매일 돌아오지 않는 말을 건네는 것 뿐
그래도 어머니의 한마디 한마디가
동생에게 못다한 생명을 불어 넣고 있을지 모른다
부화를 꿈꾸며 몸을 뒤척인걸까
서로 깍지 낀 어머니의 두 손을
분주한 알 속 힘겹게 고개 돌린 아이가
비스듬이 향하고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