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탕탕’. 1974년 8월 15일 남산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장에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경축사를 읽어 내려가던 중 관객석 뒤쪽에서 검은색 양복에 안경 쓴 괴청년이 불쑥
일어났다.
그는 무대 쪽 복도로 5m가량 뛰어나가더니 무대를 향해 오른손을 들고 권총을 쐈다.
현장에 있던 육영수 여사가 재일동포 문세광의 총알에 맞고 유명을 달리한 순간이었다.
문세광은 단독범행이라고 고집했지만 정부 당국은 사건 발생 불과 이틀 만에 “북괴의 지령을 받은 재일교포 문세광에 의한
암살 시도 사건”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조총련 지시 부분은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해 한`일 간에 외교적 마찰이 벌어지기도 했다.
1,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문세광은 범행 125일 만인 1974년 오늘,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최종판결을 선고받았다.
이어 사흘 만인 12월 20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 집행이 이루어졌다.
2005년 사건을 둘러싼 3천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외교문서가 공개되면서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을 둘러싼 의문이 새롭게
제기되었다.
사건 현장에서 발사된 총탄이 모두 몇 발이냐부터 시작된 논란은 핵심 관련자 대부분이 사망한 현재까지도 의혹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