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기본소득보다는 농민수당을 먼저..
요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한창 유행이다. 많은 정치인과 학자들이 다양한 주장을 하고 있다. 10여년 전 경제민주화 이야기를 해야 무엇인가 있어 보일 때와 비슷한 것 같다. 기본소득은 특별한 게 없으니 간단히 알아보면 된다. 기본소득의 원 개념은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일정금액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돈(소득)이다. 즉 전 국민에게 조건 없이 돈을 주자는 제도이다. 요즘은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변종이지만, 청년 기본소득, 노인 기본소득과 같이 수혜대상자를 제한하는 개념도 나타나고 있다.
기본소득은 아직 국가 단위로 시행한 경우는 없다. 스위스에서 2016. 6월 시행여부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76.9%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핀란드에서는 2017-2018년에 주민 20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하여 시범 실시하였으나, 본격 실시할 정도의 긍정적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소득은 두 가지 방향 또는 방식으로 주장된다. 하나는 기존의 복지를 없애고 기본소득만 지급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존 복지를 유지하면서 기본소득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전자는 복잡해진 복지제도를 단순화해 효율성을 높이자는 우파적 접근이고, 후자는 기본 복지를 보완해 불평등을 더 쉽게 완화하자는 좌파적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기본소득 주장자는 대부분 후자인 듯하다.
국민 1인당 월 30만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187조 원정도 소요된다. 현재 한국의 복지지출 규모와 비슷하다. 기본소득은 대상자가 많기 때문에 조금씩 지급해도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당연히 증세가 필요하고, 증세도 국토보유세 환경세 로봇세 데이터세 도입 등 다소 황당한 주장까지 있다.(꼭 필요한 소득세 증세 이야기는 안 나온다,) 그러나 증세를 한다 해도 기본소득 규모를 엄청 늘릴 수는 없다. 한 나라의 경제가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2019년 명목 총 국민소득은 1919조원이다. 이 돈은 다 쓸 수 없다. 기업의 생산설비와 도로 철도 항만 공항 등 나라의 기반시설 등이 낡아 없어지는 부분을 보충해 주어야 현재 수준의 생산능력은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감가상각 금액을 제외한 순 국민소득은 2019년 1550조원이다. 이 돈도 다 쓸 수는 없다. 한 나라가 국가 유지를 위해서는 국방 치안 교육 방역 등 최소의 기능은 수행하여야 한다. 이 비용이 얼마일까? 2020년 국가 예산이 512조원인 것을 생각할 때 300조원 정도는 국가의 최소 기능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볼 때 1200조원에서 1300조원 정도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다. 그러나 이 돈을 모두 국가가 걷어 국가가 정한대로로 나누어 주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용납될 것 같지가 않다. 더욱이 이렇게 국가가 국민경제의 소득을 모두 가져가면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이 몰락했듯이 한국 경제도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최소 50% 정도는 개인과 기업이 가져야 할 것이다. 결국 600조원 정도가 기본소득으로 쓸 수 있는 한국의 최대 재원이다. 이 돈을 국민 모두에 나누어 주면 월 100만 원정도이다.
국민들은 월 100만 원을 받고, 국방 치안 교육 등의 공무원을 제외한 모든 공공부문의 일자리와 함께 기존의 모든 복지혜택을 포기할까?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결국 기존의 정부 기능과 복지 수준을 유지하면서, 기본소득을 추가 지급하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 최대 지급가능한 기본소득은 월 30만 원정도이고, 현실적으로는 월 10만 원정도일 듯하다. 월 10 - 30만 원정도의 기본소득 제도가 시행되면 앞으로 재원 부족으로 다른 복지는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 복지가 부족한 국가이다. 국민소득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OECD 평균보다 크게 낮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정체되는데다 복지지출은 고령화 등으로 빠르게 늘고 있어 머지않아 제대로 된 복지제도를 구축해 보지도 못하고 복지지출 비중이 OECD 평균 수준에 이를 수 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한국은 지속적으로 성장능력이 떨어지고 재정지출은 늘어나는 경제구조에 빠져 있다는 점을 직시하여야 한다. 국가채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현 가능한 증세 또는 재정지출 조정을 통한 재정확보 계획의 수립과 함께 필요한 복지의 우선순위 결정이 시급하다.
불확실하고 실질적 효과도 낮은 기본소득에 국가의 정책 역량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 우선 필요한 복지의 하나는 농민수당이라고 생각한다. 조만간 농사지을 사람은 없어지고 많은 농촌 마을이 소멸될 것이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30%도 되지 않는다. 앞으로 기후 변화 등으로 식량위기가 올 수 있다. 식량자원 확보, 농촌소멸 방지 도시주택문제 완화 등을 위해 농민수당이 필요하다. 주변에 나이 드신 농민들에게 이제 쉬어야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죽어야 쉬는 거지”란 답이 돌아온다. 이 분들에게도 농민수당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