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휴가를 가지만 다녀와선 기억에 남는 낭만적 추억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왜일까? 여름 휴가지는 거의 바닷가를 택했고, 사람들로 넘쳐나는 바닷가는 당연히 고생스럽고 외려 더위에 지치게 했다.
그래서 이번엔 내륙을 택해 특정한 장소를 목표로 정하지 않고 느긋하게 발길 닿는대로 돌아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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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전에 영동 고속도로에 올랐지만 별로 막히지 않는다. 네비에 고한읍의 예약 호텔을 설정 후 영월에 진입할 때, "청령포"로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단종의 유배지인 이곳에 오래 전부터 와 보고 싶었는데 이참에 들러 봐야 한다.
주차장에 주차 후 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서자 청령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유람선에서 얼마의 사람들이 내리고 주변에 텐트가 여러개 펼쳐져 있다. 이미 세월을 거슬러 세인들의 눈요기 장소로 변한 이곳에서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일세에 풍파를 일으킨 단종의 유배지이지만 세인들은 그저 다녀간 기념 장소로만 기억할 것이다.
오늘의 숙박 장소인 고한이 아닌 정선 군청을 네비에 입력했다. 정선 땅에 왔으면 정선의 대장 도시를 들러야 하니까 ... 가는 길이 첩첩산중이다. 산 뒤에 산이 있고 그 뒤로는 더 높은 산들이 계속 나타난다. 첩첩산중을 돌고돌아 정선읍에 도착. 옛날엔 이곳에서 대처(大處)로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니 정선 아리랑같은 한맺힌 노래가 나타났겠지. 정선읍은 산골짜기의 손바닥만한 평지에 작은 도시를 이뤘다. 애잔하다.
정선 5일장을 찾았다. 7. 12일 장이다. 정선에 왔으면 '곤드레 나물밥'을 먹어야 한다. 시장 한곳의 식당에서 곤드레 정식과 모듬전을 시켰다. 곤드레 밥이 된밥이라 거시기 했다. 식후 참송이와 깐더덕을 사고 찐빵도 샀다. 이곳에도 외지인들로 제법 북적인다.
시내의 아라리촌에 들렀다. 껍데기 집만 있는 곳. 껍데기보담 이벤트를 해야 사람들이 온다는 걸 모르는걸까? 무인 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마시며 한바퀴를 둘러보고, 이제 내륙의 속살을 보기위해 서둘러 떠났다. 한적한 시골길을 택하기 위해 화암동굴이 있는 도로를 택했다.
"놀랍다"
10여 년 전에 왔을 땐 초라하고 어수선하던 시골이 깔끔한 모습으로 완전 환골탈태 했다. 집들도 전원형 주택으로 변신했다. 도로도 흠 잡을 데가 없을만큼 정비를 해 놓았다.
화암동굴 주차장을 둘러본 후, 다시 여정에 올라 목적지인 고한읍에 도착. 놀랍다. 이런 산골에 온통 호텔 천지다. 호텔 관계자에 물어보니 강원랜드(2km 거리)와 스키장 때문이란다. 그래서 강원랜드에 가 봤다. 산속에 거대한 호텔이 자리하고 카지노가 있다. 주변에 적어도 미니 라스베가스가 있을거란 예상과 달리 너무 호젓하다.
지금은 휴가 중임을 잊으면 안된다. 마눌
과 고기집에서 모듬 2인분을 시켰다. 소주도 한병시켜 2잔씩 마시고 주변을 산책했다. 그런데 ... 이곳은 관광지다. 그럼에도 도시의 흔한 버거집과 김밥집 그리고 식육점이 주를 이뤘다. 적어도 고한의 특색을 살린 음식점 한개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여정 길에 들른 뜨내기의 지친 육신에 작은 선물이라도 될게 아닌가! (사거리에 곤드레 정식집이 있지만 그것으로 부족해 보인다)
뭐 내륙의 작은 읍에서 첫날을 보내지만 이 또한 내 인생에 작은 보너스다. 마눌과 15년 만에 처음으로 한 침대에 자리했다. 서로 각자 방을 쓰다보니 함께 있으면 불편하다. 오늘 밤은 어떨지 ...^^ (2024. 08.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