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한위(韓委) 이북(以北) 접촉 좌초 1949년 연합신문에서
유엔 한위(韓委)는 이북 접촉 하려고 회담하여 제3차나 계속하였으나 다 좌초가 되었다고 한위 씰 의장은 작야(昨夜)에 대북방송 하였다. 지난 5월 말부터 동 위원단 제1분위에서 제3차 접촉을 위하여 모종방해를 계획 중에 있었는데 모든 경험과 함께 한위내 불변 접촉희망 직접 이북동포에게 전하기 위하여 유엔 한위 의장 씽(인디아 대표)은 작(作) 29일 하오 9시부터 누(累) 20분간 서울 중앙방송을 통하여 북한에 고함이라는 제목 하에 방송하였다.
즉 지난 1월 서한 이래로 유엔 한위는 총회로부터 책부(責付)된 남북통일철군감시 대리정부 발전의 3대 소원 실시를 위한 양국분위(兩國分位)를 설치하고 통일문제를 제일분위로 하여금 관리케 하던 것이다. 이리하여 동분위는는 제일차로 북한접촉을 위한 알선은 유엔본부를 통하여 소련정부에 의뢰하였던 것이다.
소련의 불협조로 수포로 돌아갔던 것이오 동분위는 제2차로 직접 신방도(新方道)를 취하여 지난 3월 19일 향항(香港)을 통하여 김일성(金日成)에게 북한왕방(北韓往訪)를 청하는 서한을 전달하였으나 아무 회답이 없음으로 결실을 보지 못하였고 북한접촉에 있어서 2차나 실패를 거둠 한(韓) 동위원을 제3차 최후적으로 북한접촉을 영관함에 있어서 내용을 엄밀에 부(付)하고 항간에서는 여러 가지 억측이 침포(侵布) 되고 있는 때 혹 동(同)할 바에 의하면 동위원단이 근 30차나 개인협의에 있어 양김 씨로부터 남북지도자 회담에 관한 제안을 청취함에 비추어 남한 모모정당을 통하여 이북과 연락을 도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도 아무런 무소식을 주지 못한 것은 거의 확실하다.
제3차 접촉회담은 그 가을 남한 모모 정당 측에서도 거부함으로 성립될 수 없다고 씽 의장은 그 전말을 방송하였다. 유엔은 우리 한국을 발층(發層) 좋은 나라로 만들어 주려고 지난 1월에 래한하여 먼저 북한 접촉을 여러 번 계획하였으나 야심이 만만한 소련의 비협조로 성립되지 못하였고 우리 국군이 입북 토벌하고자 하여도 허락지 않고 아무쪼록 평화해결을 회담하고 오늘까지 기다렸다. 각 정당 단체는 속히 해결을 청하여 모순된 단체와 서북인(西北人) 단체도 유엔의 지도를 원하고 그 외 노동단체가 다 동정하는 중이다. 유엔 자체도 어이할 수 없고 필경 본부의 지시를 기다리는 중이다. 남은 문제는 무엇이 될까. 한위회담 31호는 소군철수 감시에 편의를 제촉하라고 본부를 통하여 소파(蘇派)에 서한을 발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