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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주역 제30회>
제30: 비상시를 사는 나그네 인생 :
뇌화풍雷火豐(55) 화산려火山旅(56)
♣ 개요 ; 인생은 나그네 길
◆ 뇌화풍雷火豐과 화산려火山旅
나라나 기업이나 단체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우주 내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수많은 별이 태어나고 자라서 성장하다가 흩어진다. 우주 자체도 137억년 전에 빅뱅으로 태어나 확장되고 있지만 언젠가 소멸할 것이라 한다. 무엇이나 커지다 보면 사느냐 죽느냐 위기를 맞게 된다. 국가나 기업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계속 발전할 수 없고 계속 성장할 수도 없다. 왜 그럴까. 발전과 성장에 따라 내적 모순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 아닐까. 내적 모순으로 말미암아 발전과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면 비상시국이 되는데 이런 비상시를 말하자는 것이 뇌화풍이다.
위에서는 벼락이 떨어지고 아래에서는 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뇌화풍雷火豐이라 한다. 사람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위기의 비상시국이다. 조선 시대 이율곡 선생은 나라의 위기를 느끼고 선조에게 시무육조라는 글을 올렸다. 율곡은 당시 병조판서였다. 요새로 말하면 국방장관으로서 군사를 기르고 모든 국경의 방비를 견고하게 할 책임이 있어서 왜군의 침입에 대한 방책을 건의했으나 선조는 평화로운 시절에 무슨 국방비를 쓰느냐고 하면서 못하게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임진왜란이 터져 그야말로 나라는 위기에 빠졌다. 말하자면 위에서는 벼락이 떨어지고 땅에서는 불이 치솟는 큰 재난을 당한 것이다.
생존이냐 멸망이냐,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해야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위기가 닥쳐 왔을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지도자의 출현이다. 우레같은 힘과 불같은 지혜를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면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그런 뛰어난 지도자가 나오면 고난과 위기를 역전시켜 새로운 풍요의 시대를 열어갈 수도 있다. 왜군이 침략해 와서 국가의 존망이라는 위기에 빠졌을 때 누구보다 뛰어난 이순신 장군이 나타나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뜻하지 않는 위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갑자기 천재지변이나 재난을 당할 수 있다. 그럴 때면 수많은 이재민과 난민이 발생한다. 이재민과 난민이 되어 겪는 고통이야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뇌화풍이 위험한 상황에 관한 것이라면 화산려는 재난을 당하여 난민처럼 떠도는 백성들의 고통을 말한다.
어찌 보면 세상은 언제나 비상시국이고 인생은 누구나 나그네다. 험난한 세상에 태어나 온갖 풍파를 겪으며 살아가는 고난의 여정이 인생길이다. 어떤 사람도 이런 고난의 여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왕자로 태어난 석가모니가 깨달은 것도 이것이다. 왕자로 태어나도 고난의 여정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인간에게 왜 이런 고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인간은 이런 고난을 겪으며 철이 들고 철이 들어야 생사를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고난의 의미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 원문 해석
◆ 뇌화풍雷火豐은 위에서 벼락이 떨어지고 땅에서 불길이 치솟는 위기 상황이다. 치럼 풍豐은 위험한 때이지만 결국 형통하게 된다. 왕이 나타나 바로잡기 때문이다. 그러니 근심하지 말라. 마땅히 해가 중천에 오를 것이다.
뇌화풍雷火豐 풍豊 형亨 왕격지王假之 물우勿憂 의일중宜日中
괘를 판단해 말한다. 풍豊은 풍성하고 크다는 것이다. 밝은 철인이 나타나 움직이니 풍성하게 된다. 철인 왕이 나타나면 높고 위대한 나라가 된다. 근심하지 말라, 마땅히 해가 중천에서 빛난다. 해 같은 의인이 나타나서 천하에 빛을 비춘다는 말이다.
단왈彖曰 풍대야豊大也 명이동明以動 고풍故豊 왕격지王假之 상대야尙大也
물우勿憂 의일중宜日中 의조천하야宜照天下也
해가 복판에 들면 이내 기울어지고 달이 차면 곧 이지러진다. 천지의 차고 빔은 때와 더불어 변하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 그렇지 않겠는가, 귀신이 그렇지 않겠는가.
일중즉측日中則昃 월영즉식月盈則食 천지영허天地盈虛 여시소식與時消息 이황어인호而况於人乎 황어귀신호况於鬼神乎
괘상을 보며 하는 말이다. 우레와 번개가 함께 이르는 것을 풍이라 한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옥사를 판결하고 형벌을 바로잡는다.
상왈象曰 뇌전개지雷電皆至 풍豊 군자이君子以 절옥치형折獄致刑
♣ 내용 풀이
뇌화풍은 위험한 시국이다. 위험한 때일수록 지혜롭고 용감한 지도자나 왕이 나오면 난국을 헤쳐갈 수 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다. 태풍이 불면 위험하지만 우수한 뱃사공은 태풍을 이용하여 천 리 길을 하루에 갈 수도 있다. 바람이 없이 노를 저어서 천 리를 가려면 한 달이 걸리는데 태풍을 만나서 이용하면 천 리 길도 하루에 갈 수가 있다. 그러니까 위험한 것도 잘 활용만 하면 더 큰 유익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뛰어난 지략을 가진 이순신 장군이 나와서 국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 의인은 의일중宜日中이다. 하늘이 낸 의인이요 하늘의 뜻과 일치된 사람이다.
이렇듯 아무리 위기라 해도 용감하고 지혜로운 지도자가 나타나면 아주 풍성하고 위대한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가? 명철한 지혜와 뛰어난 실력이면 어떤 위기라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지도자만 나오면 나라의 문화는 자꾸 높아지고 국력은 커지게 된다. 용감하고 지혜로운 지도자가 나오면 시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지도자를 기다리는 메시아 신앙이 어디나 늘 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침략과 강점으로 백성들이 신음할 때 정도령이 나타나 우리나라를 구원할 것이라는 민간신앙이 있었다. 정도령은 어떤 사람일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고 진실하다는 것이다. 정직하고 진실한 정도의 지도자라는 말이요 그렇기 때문에 정도령이다. 정도령이 나오면 모든 백성도 그런 지도자를 따라서 정직하고 진실해진다. 그래서 정의롭고 빛나는 세상이 열리게 될 것이다.
뇌화풍, 위에서는 벼락이 떨어지고 땅에서는 불길이 솟아오르는 그런 재난 상황 속에서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남을까. 임진왜란으로 수백만의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10여만 명은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고 한다. 또 경작지가 3분의 1로 줄어들어 식량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순신 장군과 백성들이 필사즉생이라는 각오로 함께 싸우고 또 곳곳에서 의병들이 활약하여 마침내 7년여 전쟁도 끝나게 되었다. 조선 백성들이 왜군과 끝까지 싸워서 물리치게 된 것이다. 이렇듯 험난한 시절도 끝까지 견디고 버티다 보면 살길이 열리게 된다. 무엇이나 때를 따라 상황은 변하기 때문이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찾아오고 겨울이 깊으면 이내 봄이 찾아온다. 그러니 때를 참고 인내하며 기다림이 비상시국에 요구되는 또 하나의 덕목이다. 때가 오면 정도령이 나타나고 새로운 역사의 봄을 맞게 될 것이다.
하늘과 땅의 도道는 채워지면 다시 비워지는 법이다.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는 때가 있다. 이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이다. 하늘땅의 법도가 그러한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법도가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하늘의 달처럼 때가 되면 차게 되고 때가 되면 기우는 법이다. 이처럼 시절이 변하고 시절에 따라 차고 기우는 것이 자연의 법이요 세상의 이치인데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말하여 우리는 어떻게 때에 맞춰 알맞게 사는 중용을 지킬 수 있을까? 가을이면 가을에 맞게 겨울이면 겨울에 맞게 봄이면 봄에 맞게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일중日中이라 한다.
어떻게 일중日中이 될 수 있을까? 하늘의 구름과 바람의 방향을 보며 일기를 분별하듯이 시대의 징조를 보고 시대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역사와 시절이 주는 의미를 계속 탐구하고 연구하고 사색하고 성찰하며 자기 자신을 닦아서 발전해야 할 것이다. 능변여상能變如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과 세상 눈치 보는 일에 힘쓰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며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천지와 세상과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 구하며 때를 따라서 때에 맞춰 발전하는 시중時中을 위해서 노력해 가다 보면 마침내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성신聖神과 더불어 시중時中이 된 사람이 성인이 아니겠는가.
능변여상能變如常
능동적으로 변화를 가져야 항상 그러할 수가 있다. 변화에는 능동적 변화와 수동적 변화가 있다고 하였다. 계란이 어미닭 품에서 병아리로 부화되는 것을 능동적 변화라 하면 부엌의 프라이팬에서 깨어져 계란요리로 되는 것은 수동적 변화이다. 계란이 생명을 얻으면 병아리가 된다. 계란이 어미닭을 만나서 병아리가 되면 항상성을 유지하면서 계속 발전한다. 그런데 그렇게 어미닭을 만나지 못하고 요리사를 만나서 깨어지면 죽임을 당하여 먹히고 만다. 그러니까 인생도 여상如常이라는 생명의 세계로 올라가려면 진리의 성령을 만나서 능변能變이 되어야 한다. 능변能變을 달리 말하여 시간성時間性이라 한다. 능동적 변화를 갖게 되면 시간이 멈춰지게 된다. 빛의 속도로 달리게 되면 시간이 멈춰지듯이 능동적인 변화로 시간을 초월하게 된다. 이런 시간성을 가질 때 그것을 또한 시중時中이라 한다. 그래서 시중이 되었다는 말은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생명이 되었다는 뜻이다.
♣ 원문해석
◆ 화산려火山旅. 산 위에 해가 솟아올라 지나가는 것을 화산려라 한다. 여旅는 나그네가 길을 떠남이다. 여행객은 짐이 작을수록 형통한다. 나그네는 바름을 지켜야 행복하다.
화산려火山旅, 여소형旅小亨 여정길旅貞吉
괘를 판단해본다. 여행할 때는 짐을 줄이고 마음을 줄여서 겸손해야 형통하게 된다. 밖에 나갈 때는 겸손하고 유연한 마음으로 정신을 차리고 중용을 얻어서 왕의 법을 따르며 순종해야 한다. 그리고 머무를 때는 밝음에 붙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그네는 겸손할수록 형통하고 항상 바름을 지켜야 행복한 것이다. 나그네로 사는 시절의 의미가 위대하구나.
단왈彖曰 여소형旅小亨 유득중호외柔得中乎外 이순호강而順乎剛 지이려호명止而麗乎明 시이소형是以小亨 여정길야旅貞吉也 여지시의旅之時義 대의재大矣哉
괘상을 풀어본다. 산 위에 해가 높이 떠서 지나가는 것이 화산려火山旅의 모습이다. 이를 본받아 군자는 형벌의 의미를 밝게 밝히고 그 활용을 신중하게 해서 감옥에 오래 머물지 않도록 송사를 지체하지 말라.
상왈象曰 산상유화山上有火 여旅 군자이君子以 명신용형明愼用刑 이불유옥而不留獄
♣ 내용 풀이
비상시의 군자는 우레같은 힘과 번개같은 지혜를 가져야 한다. 난국에서 군자는 밝은 지혜로 판단을 똑바로 하고 바르고 신속하게 결단해야 한다. 송사를 판단할 때도 명철함과 지혜로 밝고 빠르게 판결하여 합당한 형벌로써 법질서를 이루어야 법계法界가 될 것이다. 판검사가 누구의 뇌물을 받아먹고 올바름에서 벗어나 한쪽에 치우치면 법이 제대로 설 수가 없다. 사법 입법 행정이 다 마찬가지다. 각 부처의 관리들이 정의롭게 바로 되어야 나라가 일어서는 것이므로 어느 한 부서만 부실해도 나라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식물이 성장하려면 각 영양소가 골고루 있어야지 어느 한 성분만 부족해도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식물의 성장에 결정적인 것은 넘치는 성분이 아니라 가장 부족한 요소에 좌우된다는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이 있는데 나라나 기업의 조직도 마찬가지다. 나라의 위기는 전체가 부실해서 나타나기보다는 어느 한 부서의 작은 부패와 부실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세력들도 늘 그런 약한 고리를 찾아 공격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라의 지도자는 늘 그렇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서 보완하도록 해야지 잘 되는 것만 찾아 스스로 도취하여 자뻑이 되는 순간 위기는 발생한다.
화산려火山旅, 위는 밝은 불이요 아래는 움직이지 않는 산이 려旅괘이다. 밝은 불은 태양이다. 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늘을 여행한다. 그래서 괘의 이름이 여행한다는 여旅, 또는 나그네 여旅라 한다. 태양의 여행은 결국 변화하는 일이요 시간의 흐름을 말한다. 변화를 달리 말하면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변화가 없다면 시간도 없는 것이다. 우주 안에서 모든 만물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봉변을 당한다. 봉변이라는 피동적 변화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주체적으로 변화하는 능변이 되어야 한다. 능변이란 시간을 만나서 시간이 되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시간을 만나는 방법은 빛이 되는 것이라 한다. 빛처럼 달리면 시간이 멈추게 되고 시간을 붙잡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旅괘의 핵심은 시간이다. 사람들 가운데는 시간을 피하는 사람도 있고, 시간과 싸우는 사람도 있고 시간이 되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란 결국 생사요 죽음의 문제다. 죽음을 피하려는 사람이 있고 죽음과 싸우는 사람도 있고 죽음을 넘어선 사람도 있다. 죽음을 이기고 생사를 넘어서는 길을 주야지도晝夜之道라고 한다. 주야지도란 무엇인가? 낮에는 깨어있고 밤에는 쉬는 것이다. 낮에는 깨어서 해처럼 빛나고 밤에는 쉬면서 달처럼 달리는 것이다. 낮에 깨고 밤에 쉬는 그것도 못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질문하는 제자에게 양명은 말한다. 낮에는 먹을 것을 찾아서 꿈틀거리다가 먹고 나선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어찌 깨어있다 하겠는가? 주야에 통하는 방법으로 공자는 궁리窮理 진성盡性 지명知命이라는 말을 했다. 시간을 만나는 것을 궁리, 시간을 붙잡는 것을 진성, 그래서 시간이 되면 지명이라 할 것이다. 궁리窮理하고 진성盡性하여 지명知命이 되자는 것이 인생이다. 철을 만나서 철이 들고 철인이 되자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아이들이 사랑스럽거든 여행을 시키라는 말이 있다. 여행을 보내라는 말은 결국 고생시키라는 말이다. 사람은 고생을 겪으며 철이 든다. 집을 떠나면 날마다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변화를 겪는 것은 자극 곧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다양한 자극과 스트레스 속에서 우리 몸이 단련되고 마음이 깨어나고 정신이 새롭게 열리게 된다. 석가모니는 29세에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고, 공자는 50대에 나라를 떠나 천하를 주유周遊하며 나그네로서 온갖 고생과 풍파를 겪으며 살았다. 50대 중년에 집을 떠난 나그네로서 14년 동안이나 받아주는 나라가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던 공자의 삶은 얼마나 고달팠을까. 그런 고생을 겪었기에 말년에 논어라는 밝은 지혜의 말씀으로 세상을 비추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볼 때 화산려 괘는 공자의 삶과 밀접한 내용이다. 화산, 산에서 불이 나오는 것,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활화산이요 대장간의 용광로라는 말이다. 순금이 나오려면 금광석이 용광로에 들어가 뜨거운 불로 고생을 거쳐야 한다. 장자는 이런 비유의 의미를 참만고參萬古 일성순一成純이라 하였다. 순수한 금덩어리, 정금이 되어 나오려면 뜨거운 불길의 용광로에 들어가서 불순물이 다 빠져나가야 한다. 순수한 인격이 되려면 온갖 고난을 겪으며 사사로운 욕망과 감정이 다 빠져나가야 한다. 사사로운 욕망과 감정이라는 불순물이 빠지려면 뜨거운 용광로 같은 고생을 겪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고생을 통해야 철이 들고 철이 들어야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고생을 싫어하면 철이 들 수가 없다. 넉넉한 집안에서 호의호식하며 안락하게 사는 삶에서 무슨 지혜가 나오고 인격이 나오겠는가. 이렇게 볼 때 화산여火山旅 괘는 한 마디로 고난의 인생길이요 고난이 없이는 의미 있는 인생도 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고된 고난의 여정을 가는 지친 영혼들에게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은 나그네 살이라는 것을 누구나 공감한다. 당나라 시인으로 유명한 사람이 두보(712-770)와 이백(701-762)이 있는데 그들도 나그네 인생을 노래했다. 이백을 이태백이라 하기도 하는데 그는 만물을 여행객이라 하여 하늘과 땅을 만물이 잠시 머물다 쉬어가는 여관이라 했다. 천지자天地者는 만물지역여萬物之逆旅라. 그리고 두보는 전란을 피해서 떠도는 나그네로서 일생을 살았는데 낯선 타향에서 겪는 외로운 나그네의 설움을 강둑에 서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명기문장저名豈文章著 관응노병휴官應老病休
표표하소사飄飄何所似 천지일사구天地一沙鷗
이름은 문장으로 벌써 높아졌지만
늙고 병들어 벼슬에서 이미 물러난 몸
나그네로 떠도는 이 신세를 무엇에 비할꼬?
광막한 우주에서 모래처럼 작은 하나의 갈매기로다.
인생은 나그네라고 하는데 나그네가 길을 떠날 때 자기라고 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자기라고 하는 것이 있으면 남에게 걸리게 되고 자기에게도 걸리게 된다. 그래서 자기라는 것이 없어야 한다. 쉽게 말해서 겸손해야 한다. 겸손하면 여정의 인생살이가 쉬우나 교만하면 세상살이가 어렵다. 뒤집어 말하면 여행을 하면서 나그네로서 풍파를 겪어야 겸손해지고 자기를 비우게 된다. 자기를 비우고 겸손해지는 길이 나그네로 사는 것이다. 왜냐면 여행할 때는 겸손하고 진실해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도 마찬가지다. 소小와 정貞이다. 자기라는 것이 자꾸 작아지고 작아져서 우주에서 없어질 만큼 겸손하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정직과 진실이 있어야 한다. 머나먼 인생길을 나그네로서 무사히 마치려면 무아의 겸손과 대아의 진실을 겸비하자는 말이다. 공자의 제자는 겸손과 진실이라 하지 않고 넓고 어진 마음(홍弘)과 정의롭고 굳센 기운(의毅)이라 하였지만 서로 통하는 말이다.
우리가 외국으로 여행을 떠날 때도 겸손하고 정신을 차려 그 나라의 문화와 법을 따르고 존중해야 대접받지 제 멋대로 행동하다간 큰일이다. 그리고 어디에 가든지 가서 머물게 되면 그곳을 잘 아는 안내인을 만나서 배우고 그 사람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유학생이라면 우선 좋은 교수를 만나서 지도를 잘 받들어야 한다. 어디서나 겸손한 사람은 환영을 받지만 교만하면 배척을 받기 일쑤다.
인생은 나그네다. 달리 말하여 이 세상은 우리의 영원한 터전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태백의 말처럼 하늘과 땅도 잠시 머물다 가는 객사일 뿐이지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 없다. 하늘과 땅으로 이뤄진 것이 또 우리 몸이요 마음이다. 우리 몸과 마음도 잠시 머물다 떠나는 객사같은 것이지 안식처가 아니다. 달리 말하면 천지나 우리의 심신은 나그네에게 감옥이나 마찬가지라는 깨달음을 주자는 것이 화산려 괘의 뜻이다. 옛날 형벌로 귀양을 보내면 어떤 객사에서 머물러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자유롭게 떠날 수 있으면 객사요 떠날 수 없으면 감옥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심신에 붙잡혀 있다면 우리는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심신이라는 감옥을 달리 말하면 생사라는 감옥에 붙잡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괘상에서 말하길 '군자는 형벌을 해처럼 밝게 하여 감옥에 오래 머물지 않도록 하라'고 한다. 나그네 인생임을 깨달은 사람은 시간이라는 생사의 감옥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형벌의 뜻을 밝히 알고 생사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머무름과 집착이 곧 혈벌이요 감옥이다. 나그네 여정은 시간의 형벌과 공간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몸의 공간과 마음의 시간에 갇힌 것이 인생이다. 군자는 산 위에 밝은 태양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인생이 옥살이라는 것을 깨닫고 생사의 감옥을 벗어나 태양처럼 힘차게 자유의 여정을 떠나는 사람이다. 생사를 벗어나서 자유를 얻는 길, 그것을 말하자는 것이 화산려라는 말이다.
▲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