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들에게도 병원치료비를 받지 않는 부탄
[부탄여행②]푼춀링 병원에서 무상으로 치료를 받다
▲ 키라를 입은 부탄 여인들이 합장을 하고 기도를 하고 있다.
▲ 칼반디 곰파에서 내려다 본 부탄 국경 도시 푼춀링
푼춀링은 인도와 부탄을 연결하는 관문으로 부탄의 경제, 상업 중심지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아열대성 기후로 섭씨 40도를 넘을 경우도 있으며, 연간 강우량은 4000mm가 넘는다. 푼춀링은 해발 고도 290m로 평균고도 2000m가 넘는 부탄에서 가장 낮은 지역에 해당된다.
내가 방문했던 시기는 봄에 해당하는 5월로 녹음이 우거지고 이름도 모르는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부탄에서 첫 여장을 푼 우리는 푼춀링 시내 산책에 나섰다. 호텔에서 조금 걸어가니 곧 시냇물이 흐르는 둑길로 접어들었다. 물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려왔다.
▲ 푼춀링 도심을 흐르는 개울. 타르쵸와 룽다가 휘날리고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냇물 주변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다.
개울에는 형형색색의 타르쵸가 걸려 있고, 붉은 색을 띠는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어쩐지 낯설지가 않는 풍경이다. 개천을 따라 걷다 보니 마치 지리산의 어느 골짜기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 부탄 전통복장 고Goh와 키라Kira를 입고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은 오래전 우리나라 두루마기와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게 보인다.
공원처럼 생긴 곳에 정자가 있고, 정자 안에는 커다란 마니차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정자에 앉아 쉬거나 마니차를 돌리며 주문을 외기도 한다. 나도 마니차를 돌리며 "옴 마니 반 메훔"하고 나지막이 주문을 외어보았다. 단조로운 주문이지만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 함께 간 아내와 청정남님, 그리고 바다님도 마니차를 돌렸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마니차는 마치 돌고 도는 인생살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 푼춀링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마니차
고와 키라를 입은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마니차를 돌리며 지나갔다. 평화스러운 풍경이다. 다소곳이 합장을 하며 기도를 올리는 두 여인이 모습이 성스럽게만 보인다. 뭐랄까? 어떻게 보면 부탄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과 어쩐지 닮은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모습, 풍경이 그렇게만 느껴진다. 같은 몽골계 혈통이 아닐까?
건물들은 낮고 거리는 깨끗하다. 상가가 밀집된 지역을 지나니 시내 한 복판에 룽다가 휘날리는 공원이 나온다.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서 환담을 하고 있다. 공원 안쪽에는 사원이 하나 있다. 티베트 식 사원 앞에는 노랑 개 한 마리가 팔자 좋게 잠을 자고 있다.
▲ 푼춀링 중심가에 위치한 사원의 정원에서
사람들이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중앙에 파드마삼바바 불상이 모셔져 있다. 부탄에서 보게 된 첫 불상이다. 사람들은 파드마삼바바 앞에서 합장을 하며 공손히 절을 한다. 부탄 인들이 파드마삼바바를 얼마나 중요한 인물로 추앙하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모습이다.
다르질링, 시킴에서부터 파드마삼바바의 흔적을 찾아왔던 나는 티베트의 전설적인 스승 구루 린포체 앞에서 합장을 하고 잠시 묵념을 했다. 종교를 초월해서 위대한 스승 앞에 경의 표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티베트 사원.
사원 안에는 파드마삼바바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사원 내부를 한 바퀴 돌고 돌아 나오다가 아내가 계단을 헛디뎌 그만 발목을 접질리고 말았다. 아차, 하는 순간이다. 아내가 주저앉아 발목을 주무르고 있는 데 주변에 있는 부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들어 아내를 거들어 준다. 그들은 남에게 참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모두가 무언가를 도와주려는 자세이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 보아야 할 것 같다.
쉐리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하는데 그의 전화번호를 적어둔 수첩을 호텔에 두고 왔다. 잠시 고심을 하고 있는데 어떤 아가씨 한분이 다가와 묻는다.
"선생님, 어떤 호텔에 머물고 계지시오?"
"푼춀링 팔러 호텔인데요?"
" 아, 그럼 제가 선생님의 가이드를 알고 있어요. 그에게 전화를 해드리지요."
▲ 사원 앞에 팔자 좋게 잠을 자고 있는 개.
처음 보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깍 듯이 부르며 그 아가씨는 쉐리에게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나에게 연결해 주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나는 쉐리에게 현황을 설명하고 아무래도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가보아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오겠다고 했다. 나는 그 아가씨에게 감사를 표하며 목례를 보냈다.
"아가씨 너무 감사합니다. 저어, 전화요금을 드릴게요."
"천만에요. 그 보다도 아내분이 괜찮았으면 좋겠네요."
"이거 너무 고맙습니다."
그녀는 영어도 곧 잘 했다. 부탄은 학교에서 영어로 교육을 한다. 그래서 젊은 층들은 모두 영어를 잘 구사한다. 내가 본 부탄 사람들의 첫 인상은 매우 친절하고 긍정적적이다. 그들이 왜 행복지수가 높은 지를 가늠하게 하는 한 장면이다.
부탄의 행복지수를 측정 지표에는 심리적인 웰빙이라는 분야에 '삶의 만족도'와 '긍정적인 감정'이 들어 있다. 그래서 일까? 사람들의 첫인상은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며, 생각도 긍정적이다.
▲ 푼춀링 병원
쉐리가 운전사와 함께 자동차를 몰고 도착을 해서 우리는 푼춀링 병원으로 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뵈는데 아무래도 삔 발목을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푼춀링 병원은 도심 위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다.
푼춀링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병원은 조용했다. 간호사가 아내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오후 7시 경 늦은 시간이라 엑스레이를 담당하는 의사가 퇴근을 해서 그에게 연락을 취했으니 곧 올 거라고 했다. 비록 시설은 낙후 되었지만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 모두가 매우 친절했다.
곧 도착한 엑스레이 담당 의사가 엑스레이를 촬영하여 불빛에 자세히 비추어 보더니 뼈에는 큰 이상은 없는 것 같고 인대가 좀 늘어 난 것 같다며 처방을 내려 주었다.
"처음에는 좀 불편할 겁니다. 다리를 가급적 많이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칫 잘못하며 다시 삘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젊은 여자 의사는 매우 상냥스럽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큰 이상이 없다니 천만 다행이다. 나는 처방전을 들고 돈을 어디다 내느냐고 물었더니 간호사가 말했다.
"병원비는 전액 무료입니다. 그냥 가셔도 됩니다."
"무료라니요, 엑스레이도 찍었는데요?"
"괜찮습니다. 저희 부탄에서는 관광객에게도 무료로 치료를 해 드립니다."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 푼춀링 병원 마크
여행자에게도 병원비를 무료로 제공하다니! 많은 나라를 여행해 보았지만 처음 겪어보는 체험이다. 국민들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여행자들에게까지 병원비를 받지 않을 줄은 몰랐었다. 부탄의 무상의료비 지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어떻게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줄 수 있을까? 병원에서 호텔로 가는 길에 궁금증을 풀기 위해 가이드 쉐리에게 물었다.
"쉐리, 당신네 나라는 국민소득이 겨우 2000달러 수준인데 어떻게 병원비를 무료로 할 수 있지요? 더구나 여행자까지도 돈을 받지 않다니…"
"아, 의료비는 우리나라의 국민들을 위한 아주 중요한 정책이지요. 비록 병원 시설은 열악하지만 여행자를 포함하여 부탄 내에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있지요. 여러분이 내는 여행비 중 65달러는 무상 교육과 무상의료를 위해 쓰이고 있답니다."
"아하, 그렇군요. 참으로 좋은 제도이네요."
우리는 입국을 하기 전에 미리 여행비용으로 하루에 1인당 200달러를 선불 했다. 다른 사람들과 한 팀을 이루어 10명을 채워서 비용이 저렴해 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탄 여행비용은 3인 이상 단체여행일 경우, 시즌인 3~5월, 9~11월은 250달러, 비수기인 1~2월, 6, 7, 8, 12월은 200달러를 받는다.
쉐리는 우리가 지불한 200달러 중 65달러는 정부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여행자의 3성급 호텔 숙박료, 식사, 교통비, 가이드 비용, 입장료 등 여행비 일체가 포함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가난한 나라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제도는 좋은 것 같다. 히말라야 산간 오지에서 병원 혜택을 받기란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부탄에는 병원이 206개(2006년 기준)나 전국에 산재해 있어 있어 국민들에게 의료혜택을 골고루 돌아가게 하고 있다고 한다.
▲환자나 환자 가족들은 쾌유를 기원하면서 마니차를 돌린다.
병원 정문에는 커다란 마니차가 설치되어 있다. 아내가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마니차를 돌리며 푼춀링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마니차를 돌리는 것은 마음의 정서를 위해 아주 좋은 것 같다. 그냥 무료하게 앉아 있는 것보다는 돌고 도는 마니차를 돌리다 보면 화난 마음도 쉽게 풀릴 것 같고,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둠이 깔리며 전등이 하나 둘 켜지고 있는 푼춀링은 고요했다. 호사다마랄까? 지금까지 그 험한 길을 오면서도 아무런 일이 없었는데 잠시 긴장을 푼 사이에 아내가 발을 삔 것이다. 여행은 즐기되 방심은 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