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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驛馬) 바람 잘 날 없는 시간이 물결친다 떠도는 유빙을 안고 흐르는 구름을 이고 / 김종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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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의 눈동자 돌을 깎는 물살에도 변함없이 살을 에는 바람에도 한결같이 마음에 쌓인 우주의 발자취 / 김종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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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冬安居) 희로애락 지구 깊은 속에 파묻고 소금꽃 뒤집어쓴 당신의 면벽수행 / 김종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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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무(獨舞) 바람의 팬터마임이 보이나요 햇볕의 세레나데가 들리나요 지평선에서 수평선까지 그 무대인! / 김종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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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순간 더 이상 다가설 수 없고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쓸쓸한 이중창(二重唱) / 김종태 |
그 겨울의 섬, 홋카이도 / 김종태
1. 유빙이 떠도는 아바시리 해안
카메라와 트라이포드를 들고 홋카이도로 향했다. 내가 제일 먼저 들린 곳은 오호츠크해와 접한 아바시리 지역이었다. 해변에는 소금기를 머금은 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해안선을 떠도는 유빙은 천년의 유적(遺跡)인가! 얼음의 몸과 물의 몸, 그 어디쯤을 헤매면서 자신의 근원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듯한 얼음에 아침햇살이 비칠 무렵, 나는 허공을 떠도는 중음신(中陰身)의 얼굴을 보았다. 생과 사,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채, 생과 사, 그 어디로도 자유롭게 떠도는 영혼의 처연한 눈빛이 수평선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2. 비에이 가는 길에서 만난 북방 여우
홋카이도에는 여우가 많이 살고 있다. 사람을 피하지 않는 홋카이도의 북방 여우는 하얀 눈 속에서 붉고 귀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사람이 탄 차를 따라다니기도 하는 북방 여우는 이미 야생의 숨결을 잊은 듯해 보였고 사람들이 주는 음식을 서슴없이 잘도 받아먹었다. 집짐승의 습성을 이미 다 배워버린 모습 앞에서 씁쓸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더라도 북방 여우는 북국(北國)의 원시적 자태와 가장 잘 어울리는 홋카이도의 명물이었다.
3. 겨우내 눈이 녹지 않는 삿포로
삿포로의 도로와 건물들은 눈에 덮인 채 잘 정돈되어 있었다. 삿포로라는 이름은 아이누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밤은 삿포로에서 보냈다. 그 밤도 몹시 추웠고 간판의 불빛들이 희미하게 깜빡거리던 원도심에는 싸락눈이 멈추지 않았다. 그날 일행은 화로에 양갈비를 구우며 마지막 잔을 나누었다. 이글거리는 숯불의 그림자 너머로 그 옛날 아이누어를 쓰던 에스키모의 목소리가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삿포로의 봄을 기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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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태 / 경북 김천 출생.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떠나온 것들의 밤길, 오각의 방, 일본어시집 복화술사가 있음. 현재 호서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