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14. 공현후 마지막주일. 주교좌성당. 유낙준모세주교.
“나의 하느님, 살려달라 외치는 내 소리를 들으시고 병들었던 이 몸을 고쳐주셨습니다(시편30:2).”
“이 몸은 당신께 부르짖었고 당신께 자비를 구하였습니다(시편30:8).”
상처가 아물어 온전하게 되려면 예수님을 갈망하라
내가 가진 병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서 배제되고 홀대당하고 버려진 비참한 삶이 있습니다. 이 병으로부터 깨끗이 낫게 해 주시길 예수님께 울부짖으며 간절히 요청합니다. 우리가 가진 병이 예수님의 터치로 낫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아멘.
버킷 리스트 burket list라는 말이 있습니다. ‘죽기 전에 할 목록’이란 뜻으로 교수형시에 발을 받친 ‘바케스(물통)를 찬다’는 말에서 연유된 것입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목록을 적어 보셨나요? 프랑스에서 스페인의 북쪽을 걷는 길이 산티아고 800kms을 자신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라는 친구의 말을 들었습니다. 바쁜 일과를 내려놓고 천천히 걸으면서 자신의 내면을 보려는게 목적이고, 하루에 25kms를 걷지만 그 원칙에 메이지 않고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대로 걸으면서 걷다 만나는 이들과 여유롭게 간단한 말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묵을 방이 있는 집을 물어보고, 발에 잡힌 물집을 다루는 방법도 물어보면서 걷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빠르게 걷기보다는 천천히 걷는 것이 생명과 믿음의 공간을 더 많이 만들게 됩니다. 그렇게 걷다가 소나기도 맞아보고 어둔 밤에도 걷고 좋은 방에서 쉬기도 하고 이른 저녁 식사후에 와인도 하는 여유를 그려봅니다. 1987년에는 2750명, 2016년에는 1300명 그리고 2020년에는 지구촌의 팬데믹으로 산티아고의 여정의 순례길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먼 거리를 오래 걸어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순례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순례의 정의는 여정입니다. 기대를 가지고 오랜 걷는 것으로 거룩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하느님과의 깊은 관계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깊이 하는 깊은 감각을 발전시키려는 것이 순례여정의 목표입니다. 인생의 목표와 순례의 목표가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에서 힘있는 사람의 순례이야기를 듣습니다. 나아만장군은 시리아인(아라미아인)으로 경험많은 군인으로 시리아에서 존경을 받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병환자입니다. 나아만장군은 유대장군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아만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나병환자는 공동체에서 버림받고 하느님께서 저주받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유대인 관습이 있습니다. 나아만의 부인은 유대인 하녀로부터 엘리사가 나병을 치유할 것이라고 들어 남편에게 이 말을 전합니다. 나아만은 이 말을 시리아왕에게 전합니다. 시리아 왕의 허락하에 이스라엘로 나병의 치유를 기대하면서 순례길에 오릅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 궁정에 갔는데 엘리사는 집에 있고 궁정에는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사의 집에 도착했는데도 집밖으로 와서 환대하지도 않고 예의바르게 맞아주지도 않았습니다. 엘리사 예언자가 나아만에게 가지 않고 직접 말하지도 않고 메시지만 전달한 것입니다. 7번 요르단강에서 씻으라고. 기대를 갖고 온 나아만은 모욕을 받았다고 여겼습니다. 화가 났고 엘리사의 무지에 대해 돌아가서 자신의 나라의 강에서 씻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복스럽게도 부하들이 용기를 내어 다르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아만은 이런 부하들의 참고될 말을 듣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높은 말에서 내려와 요르단강으로 들어가 7번 씻어 깨끗해졌습니다. 나아만은 자신이 기대한 길에서 받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왕궁에서 치유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사 예언자로부터 환대받지 않았습니다. 마술을 부리는 손놀림도 아니었습니다. 단순하게 하느님과 같은 리듬을 타시는 하느님과 조화롭게 사시는 엘리사의 말씀을 지시로 들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하느님의 지시가 우리에게 닿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순례입니다.
오늘 마르코복음서에서 나병환자는 힘없는 사람이야기입니다. 유대인이 나병에 걸려 가족과는 떨어져 안전한 도시 밖의 경계선 지역에서 사는 비참한 인생입니다. 군 사령관도 아니고 이름도 없는 이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올 수 없는 처지인데도 예수님께 말을 건냅니다. 나병에 걸렸기에 사람들은 그로부터 전염될까봐 멀리하고 움추려들었을 것입니다. 나병걸린 이 환자가 예수님께 오는 그 과정이 하나의 순례여정인 것입니다. 분명한 목적으로 병이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러한 기대를 갖고 위험을 무릎쓰고 온 것입니다. 성밖으로 끌려나가 돌을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을 무릎쓰고 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만 만나면 나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온전하게 되고 치유 받아 변화된 자신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예수님과 연관시킨 것입니다. “If you want to, you can make me clean 예수님이 원하신다면 저를 깨끗이 고쳐주실 수 있습니다(마르코1:40).” “내일 생명이 어떻게 될는지 알지 못하고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인생이기에(야고4:14), “만일 주께서 허락하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 보겠다 If the Lord is willing, we will live and do this.” 고 해야 합니다(야고4:15).” 야고보서의 말씀대로 한다면 이 나병환자는 매우 강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뜻대로 산 사람이 아니고 늘 하느님의 뜻을 중심에 두고 산 사람입니다. 배제되고 버림받았던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치유받는다는 것입니다. 세금쟁이들, 성노동자들, 매국노, 혁명가가 예수님을 만나면 그리고 힘있는 사람, 힘없는 사람 모두가 예수님을 만나면 치유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연민을 가지고 손을 대시고 이들을 터치하시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깨끗해져서 나병환자를 거절했던 그 공동체에서 다시 살게 해 주신 예수님이십니다.
2월 17일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이로부터 6주간을 사순절기로 순례여정으로 지킵니다. 코로나-19의 바이러스로 여행을 할 수 없고 혼란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자 집중할 순례를 할 것입니다. 6주간 우리는 우리의 일과 주의산만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삶을 ‘다시 재 보는 Recalibrate’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예수님으로부터 터치를 받아 온전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가는 길을 가장 명료하게 하는 사순절기이기를 빕니다. 성가정기도를 식구들과 함께 올려 정규적으로 기도하고 성경읽고 촛불켜고 차마시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여 거룩한 가정이 되는 여정의 순례에 참여하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때로는 높은 말에서 내려와 복음의 강물에 젖어야 합니다. 또한 무릎을 꿇는 시간과 자리를 가져 예수님의 연민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그간 하느님께 예배를 올리지 못한 마음을 이번 사순절기간에 성가정이 성당에서 가정예배가 올려지기를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아멘.
사순절기간에
1. 경건을 배우는 시간이길- 겟세마니기도에서 우리를 돌보시는 기도를 올리자.
2. 주님의 고난을 배우는 시간- 사제의 어려움에 연민을 느끼는 성도
3. 십자가를 지는 것을 배우는 시간- 희생으로 섬기는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