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화 교수님’과 ‘천주교 성모송’
박채동 (2014.08.19. 00:39)
칼빈 선생님께서는 {기독교 강요}에서 ‘교황 제도’, ‘미사’, ‘7 성사’ 같은 예를 들어 ‘가증스런 우상숭배 종교로서 천주교’의 ‘이단성’, ‘사악함’을 말씀하셨다. 그 예 하나가 ‘{기독교 강요 제4권} [제2장: 거짓 교회와 참 교회의 비교] <제3항: 거짓 교회의 모습-말씀을 청종치 않고 인간적인 계승만을 주장함>, <제10항: 로마 교회는 교회가 아님>’이다. 또 하나가 ‘{기독교 강요 제4권} [제18장: 교황제의 미사-그리스도의 성찬을 더럽힐 뿐 아니라 말살하는 모독 행위임]’이다. 또 하나는 ‘[기독교 강요 제4권} [제19장: ···(제목 생략)··· ] <제8항: 견진례는 세례를 욕되게 하는 마귀의 교리임>’이다.
그런데 ‘유태화 <하나님의 하나의 교회, 우리의 여러 교회들>’에서 “우리의 여러 교회들”에는 ‘천주교’도 포함된다. 그러면 “로마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고 말한 칼빈은 ‘천주교에 대해 자세히 아시는 유태화 교수님’과 다르게 ‘천주교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섣부른 앎으로 천주교에 대해 거짓증거를 했던 삯꾼’이란 말인가?
<하나님의 하나의 교회, 우리의 여러 교회들>에서 내 반론 댓글에 대한 ‘유태화 교수님 제자 김성준 님’ 반론 댓글들이 있었다. 물론, 나는 김성준 님 토론에 응하는 댓글들을 달았다. 그런데 유태화 교수님께서는 김성준 님 토론에 응한 내 댓글들 몇 개를 삭제하셨다. 그래서 유태화 교수님께서 삭제하지 않고 남겨 두신, 김성준 님 토론에 응한 내 나머지 댓글들은 의미를 상실했음으로 “제 댓글들을 삭제하셨군요. 그렇다면 김성준 님 댓글들도 삭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댓글을 쓴 뒤 내가 삭제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김성준 님 반론 댓글들은 그대로 있다. 이 점에서 나는 ‘성경의 진리로서 이른바 “만인제사장론”’을 앞세워 ‘중세 천주교 사제주의 절대 교황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언론 출판의 자유’라는 열매를 맺은 종교개혁자들, ‘그분들 후예인 개혁 신학자’로서 유태화 교수님 양심, ‘학자로서 양심’을 ‘염려’할 수밖에 없다. 또한 ‘유태화 교수님은, 소자라도 그 소자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아닌, 주장하려고 하는 자세를 지니신 분이 아닌가?’라는 생각과 ‘자신의 주장에 동의하는 분들을 통한 기쁨만을 누리시려는 분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ㅡ나는 전문대 영어과를 졸업한 뒤 광주대학교 영어과에 편입해 졸업했다. 영어 실력은 없었지만, 작품 주제를 파악하는 능력이나 교수님들 문학론에서 논리허점을 곧바로 발견하는 능력은 뛰어났다. 그런데 광주대학교 영어과에는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하신 여자 교수님 두 분이 계셨다. 그분들께서는 ‘배움이 짧은 소자(제자)라도 제자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지닌 분들이셨다. 한 분은 천주교 신자로 서울대 영문학과 수석 졸업자이셨다. 또 한 분은 학우들이 ‘천재’로 여긴 불신자이셨다. 이분께서는 3학년 1학기 내 ‘영문학 비평 보고서’를 보신 뒤 일부러 나를 찾아와 두 손을 배에 모으고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이는 배꼽인사를 하셨다. 그리고 천주교 신자 교수님께서는 졸업 환송식 때 ‘시험 답안으로 적은 내 문학론’을 인용해 환송사를 하셨다.ㅡ
<하나님의 하나의 교회, 우리의 여러 교회들>에 적힌 “홀연히 하늘로부터 내려온(?) 순복음교회”를 읽자마자 나는 바울 사도께서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신 “다른 복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천주교 역시 기독교와 같이 성 삼위일체 하나님과 유일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까닭으로 ‘천주교 역시 기독교와 하나의 교회다.’는 논리를 펴신 유태화 교수님께서 순복음교회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단’으로 생각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런데 [갈라디아서]에서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신 “다른 복음”은 ‘기독교에 유대교를 더한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할례 같은 구약 의식을 더해야 한다는 복음’이다. ‘믿음에 행함(율법주의)을 더한 복음’이다. 이 점에서 유태화 교수님께서 <하나님의 하나의 교회, 우리의 여러 교회들>에서 나에게 남기신 댓글을 인용한다.
《 ···(전략)··· 심각하게 제기하지도 않은 마리아 이야기를 가지고 자기 이야기를 열심히 하면 결례지요. 제가 말한 공 예배는 주일예배 혹은 미사를 의미합니다. ···(중략)··· 이제는 자신의 타임라인에 가서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표현하세요~ 그게 필요한 지점인 듯합니다~ 》
내 첫 반론 댓글에 “무슨 우상숭배를 한다는 건가요?”라고 하셨던 유태화 교수님······. 유태화 교수님 주장대로 ‘천주교 공 예배(미사)에서는 우상숭배 요소가 없다.’고 하자. 그러면 이 주장을 ‘주일예배 같은 공 예배에서만큼은 우상숭배가 없으면 되고 공 예배가 아닌 다른 예배에서는 맘껏 우상숭배해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까? 혹은 ‘공예배가 열리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 전 마리아상 앞에서 가슴에 십자가를 그으며 “내 안식처ㅡ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나사로를 생각할 때 이 표현은 가능할 수도 있겠다.ㅡ이시자 내 생명이신 성모 마리아 님,”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행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까? 즉, ‘우상숭배가 없는 공公 예배에 우상숭배가 있는 사私 예배를 더해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까?
지난 주일, 유태화 교수님께서 <원조 마리아와 짝퉁 마리아>에서 이른바 “성모송”을 언급하셨다. 다음은 천주교 ‘성모송’ 하나다. {가톨릭 기도서} 36쪽이다.
모후이시며 사랑이 넘친 어머니,
우리의 생명, 기쁨, 희망이시여,
당신 우러러 하와의 그 자손들이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나이다.
슬픔의 골짜기에서,
우리의 보호자 성모님,
불쌍한 저희를
인자로운 눈으로 굽어보소서.
귀양살이 끝날 때에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님 뵙게 하소서.
너그러우시고, 자애로우시며
오!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 님,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해 빌어주시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Ps 1: “우리의 생명”에서 “생명”은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 아닌 “당신은 내 생명, 내 전부”라는 ‘유행가 가사’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