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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살아오며 평범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때때로 마음에 스치는 감정들이 있다. 서운함, 아쉬움, 그리고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어떤 감정들. 이 글에는 그중에서도 주로 섭섭했던 순간들이 담기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아내는 단점만 가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 장점들이 있었기에, 내가 선택했고, 지금까지 함께 살아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 남는 감정들을 꺼내어 적어보려는 건, 내가 나를 이해하고, 우리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따지고 들기보단,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부족함도, 넘침도, 그저 함께 사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결혼이란 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사랑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 속에서, 그래도 ‘함께’라는 말을 놓지 않는 것이라고
2024-05-31(금) 생활비 인상과 부부관계
이날 아내는 나에게 "지금 생활비로는 풍족하게 살 수 없어. 좀 더 올려줘." 나는 내 속마음을 아내에게 표현하면 싸울걸 알기에 대답하지 못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내가 원해서 큰평수 아파트에 내집마련을했고 그 대출 원리금 갚고, 생활비 주고, 아이들 저축 넣고, 내 보험비 내고, 평일 하루 3끼를 밖에서 먹고, 출퇴근 교통비까지 사용하면 남는 게 없었다.
과거 부터 아내에게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 만큼은 집에 있어달라는 내 당부를 무시하고 아이들을 집에 놔두고 빨간펜으로 출근했고 자신이 번 돈으로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과도하게 사면서 지금에와서는 내가 생활비를 부족하게 주었기 때문에 더 올려달라고...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싸움이 될까 봐 꾹 눌러 참았다.
그날 저녁, 아내는 "누구네 집 남편은 관계할 때마다 10만 원씩 준대."라고 했다. 가정의 부부관계가, 돈을 매개로 한 거래처럼 느껴지는 말.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아내를 보며 혹시나 빨간펜 실적 올리려고 나 말고 다른 남자에게도 그러려는 건 아닐까? 불신과 의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들었다.
생활비를 더 달라고 요구하며, 동시에 이런 말까지 꺼내는 아내. 나는 점점, ‘부부’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돈이 감정을 대신하고, 신뢰가 의심으로 뒤바뀌는 그런 관계는 분명 우리가 원했던 모습은 아니었을 텐데... 이후 아내에게 참았던 말을 했다. 월급받아서 대출원리금, 생활비, 아이들 저축, 보험비 등 고정지출에 대해 알려주었고 그로인해 생활비를 더 줄수가 없고 할부로 그만 좀 사라고 말했다.
2024-06-02(일) 생활비 인상
이날, 아내는 또다시 생활비 인상을 요구했다. 이번에는 “대출은 갚지 말고 생활비를 올려줘.” 그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지금껏 빨간펜과 애터미에서 할부로 과도하게 결제한건 생각하지도 않은 채, 생활비를 적게 줘서 부족하다며 나를 탓했다.
답답한 마음에 아내에게 “대출 안 갚으면 이 집 경매로 넘어가.”라고 말했고 아내는 그걸 몰랐는지 그날 이후 더이상 생활비를 대출과 연결하지 않았다. 그동안 아내는 아이들을 집에 혼자 두고 빨간펜 일하러 나갔었고 실적을 쌓기위해 과도하게 상품들을 가입했었다. 지금은 대출까지 갚지 말고 생활비를 더 달라는 모습은 앞으로도 빨간펜과 애터미에서 더 결제할거란 생각이 들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누구 때문에 대출을 받아 넓은 아파트로 이사왔는데 이제와서 대출을 갚지 말하고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또한 원리금을 갚지 않으면 집이 경매로 넘머가는걸 몰라서 나에게 묻었던걸까?
그 무렵,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 같았으면 괜한 걱정을 어머니께 드릴까봐 우리가족 안의 일은 내 선에서 감췄겠지만, 아내가 어머니께 빨간펜 이야기를 편파적으로 전달하고 내가 생활비를 적게 줘서 생활이 어렵다고 호소하면서 시어머니에게 돈 빌려달라고 연락 할 수 있다는걸 알기에, 차라리 내가 먼저 상황을 설명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결국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며느리가 빨간펜 다니면서 책을 과하게 구매해서 혹시 돈 빌려달라고 전화하면 절대 빌려주지 마세요. 그냥 하소연만 들어주세요." 이렇게 말을 전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내 감정보다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고 동시에, 우리 가정이 점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현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 혼자 애쓰는 이 무게가 점점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06-03(월) 아내가 행복할때
아내에게 카톡으로 물었다. “당신이 행복할 때는 언제야?” 잠시 후 아내의 답장이 도착했다. “애들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해, 자기가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해, 가족 다 같이 식사할 때, 가족끼리 놀러 갈 때, 내가 돈 벌어서 아이들 가르칠 때.” 문장을 천천히 되새겨봤다. 겉으로는 가족을 위하는 듯한 말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생각을 달랐보였다.
“애들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해" 는 아이들이 원하는 스마트폰과 패드를 사주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인해 아이들이 게임중독이 되었고
"자기가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해" 는 아내가 특별히 행복하게 해준게 없는데 형식적인 말로 들렸고
"가족 다 같이 식사할 때"는 과거 저녁 식사 시간의 일을 잊을채 퇴근 하자마자 집에와서 아이들 돌보라는 뜻으로 들렸고
"가족끼리 놀러 갈 때" 는 이집에 이사오기 전엔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항상 아이들과 같이 다녔었다. 하지만 아내가 아이들에게 스마트폰과 패드를 사주면서 첫째와 셋째는 같이 외출을 하지 않게되었다.
"내가 돈 벌어서 아이들 가르칠 때"는 빨간펜 실적을 올리려고 건강기능식품과 전집 그리고 아이들이 패드로 학습할 수 있게 한 것들 그로인해 학습보다는 거의 하루종일 게임과 유튜브만 보는 아이들로 변해있었다.
나는 아내의 기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같은 대화를 하고 있어도,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로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간극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2024-06-03(월) 내 몸에 손 대는것도 싫다
그날 밤, 아내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단호하고 차가운 말 한마디였다. “내 몸에 손 대는 것도 싫다.” 그 말에 담긴 거절은 단순한 피로 때문이 아니었다. 말끝은 단호했고, 눈빛은 닫혀 있었으며, 그 안에는 명확한 거부와 함께 깊은 단절감이 묻어 있었다. 그 말은 단지 손길을 뿌리친 것이 아니었다. "네 존재가 불쾌하다." "네 손길이 더럽게 느껴진다." "너라는 남편 자체가 내 옆에 오는 것조차 싫다." 그런 메시지로 들려왔고, 나는 말없이 등을 돌렸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자기가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해"라고 말했던 사람이 지금은 손끝 하나 닿는 것도 참을 수 없는 존재로 나를 밀어냈다. 그 변화는 갑작스럽기보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도 모르게 진행되어 온 균열의 끝자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청하기위해 눈을 감고 있었다. 내 안의 감정은 멈추지 않고 요동쳤다. 거절당했다는 상실감과 수치심, 같은 공간에 살고 있어도 느껴지는 외로움, 그리고 더는 가치 없는 인간처럼 느껴지는 공허함. 만약 약물로 내 성기를 없앨 수 있다면, 이 고통도 사라질까? 그런 생각까지 스쳤다. 사랑을 원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거절당하는 것이 아프기 때문에 그래서 ‘욕망이 없다면 덜 상처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를 지워내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2024-06-05(수) 부부관계 요청
자존심을 내려놓고 다시금 아내에게 부부관계를 요청했다. 그 순간 돌아온 말은 단호하고 차가웠다. “혼자서 해결하면 되지, 언제까지 이걸 해야 해.” 그리고 이어진 말, “누구네 집은 막내 낳고 안 한다더라.”라며 짜증을 냈다.
그 말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함도, 함께 살아가는 부부로서의 이해도 없었다. 내가 남편으로서 필요한 존재일까? 아니면 단지 생활비를 벌어오는 기계에 불과한걸까? 마치 나 자신이 본능에만 충실한 짐승처럼 느껴졌다. 아내에게 부부관계는 ‘피로한 의무’로 바뀌어 있었다.
나만의 생각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확인하고자 아내를 터치했다. 아내는 간지럽다며 짜증을 내더니 “바로 넣어. 피곤하니까 빨~리 끝내. 5분 안에.” 그 말 이후, 아내는 감정을 닫고 수동적으로 누웠다.
아내는 최소한의 시간, 수동적인 참여, 최소한의 접촉으로 끝내려 했고 그 이상은 부담, 피로, 짜증으로 돌아왔다. 터치는 제한되고, 표현은 금지되고, 시간은 억눌리고, 쾌락조차 거부당했다. 그 모든 순간 속에서 나는 남편이 아닌,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존재 자체가 거절당하는 감정. 부부관계를 원했다는 이유만으로 추해지고, 무시당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기분.
그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아직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아니,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이건 단순한 거절이 아니었다. 존재에 대한 부정이었다. 내가 남편이라는 존재로 여전히 의미가 있는가, 그 근본적인 질문 앞에, 나는 너무나 작아져있었다.
2024-06-10(월) 아내에게 보낸 글
아내와의 관계로 인해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새벽 4시경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다.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운 채로 회사일 마치고, 저녁10시경, 아내에게 결혼 생활 중 아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심을 담은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고 퇴근했다.
당신과 결혼 생활하면서 당신이 원하는 것들을 들어줬을때 당신에게 느꼈던 감점들이야 당신은 내가 내 방식대로만 한다고 불평불만이지만 내 나름 당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해줬어 하지만 당신은 원하는 대로 해준 것들을 만족하지 않고 계속 다른걸 요구해 왔었고 현재도 요구하고 있지 이런 일들을 알아달라는 건 아니야 단지 나는 당신이 믿는 전지전능하고 인자한 하나님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
결혼 전 당신이 일하는 콜센터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해 보였어 그 모습이 안타까워 당신이 아이들을 좋아하길래 결혼 후 보육교사 자격증을 추천했었고 당신은 수강을 했었지 첫째 임신해서 보육교사 자격증을 연기 했지만 나중에 당신이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해서 내가 육아휴직을하면서 자격증 취득하기까지 당신을 도와줬었어
나는 아이 가질 생각이 없었지만 당신이 아이 4명을 강력하게 원했어 그래서 내 생각을 접고 당신 의지대로 첫째를 낳았지 당신이 첫째 돌보는 모습을 보며 아이를 좋아하는 것과 키우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닫았어 더 이상 출산을 원하지 않았지만 둘째가 임신했을 때 혼자 자랄 첫째가 걱정되고 나중에 우리 죽고 혼자된 첫째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에 미래가 힘들더라도 둘째까지는 최선을 다해 키워보자고 생각했었지
나는 당신에게 애들 만 3살까지 부모가 돌보길 원했지만 당신은 애 두 명을 키울 능력이 안된다는 걸 다시금 느꼈지 당신이 짜증 내며 키울게 뻔했기에 당신과 애들에게는 어린이집 다니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해서 어린이집을 보냈어
당신은 둘째 출산 이후 복직한다고 해서 나는 출퇴근 길에 두 군대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키고 퇴근하면서 하원했었지 내가 늦으면 마지막 남은 우리 애들 때문에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늦게 퇴근하니 회사에서 저녁을 급하게 먹고 달려가다 보니 배가 아프고 그 아픈 배를 움 껴잡고 또 달렸던 게 기억나 그리고 당시 부모 품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길 때 아이들 눈빛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 부모와 영영 헤어지듯 눈빛, 외롭고 슬프고 버림받았다는 그런 슬픔 눈빛으로 내가 안 보일 때까지 창문에서 손 흔드는 모습을 보았어 꼭 빨리 다시 돌아오라는 듯이 처음에는 첫째만 그런 눈빛이 보이다가 나중에는 둘째도 그런 눈빛을 보이더라 그 모습이 마음이 아파 뒤도 안 돌아보고 손만 흔들 적도 있고, 가끔은 출근하지 말고 애들하고 놀이터에 놀고 싶기도 했지 그래서 그런지 어린이집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우리 애들을 하원할 때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달려 나왔어
그 후 셋째 임신했을 때 나뿐만 아니라 양가에서도 출산을 반대했었지 내가 셋째를 반대한 이유는 그동안 당신이 애들을 잘 보았다면 걱정하지도 않았을 거야 첫째 때는 서툴러서 그랬겠지란 희망을 가졌지만 둘째 때부터 애가 두 명이나 되니 짜증을 내면서 애들을 키웠어 애들 키우는 게 힘들다 보니 어린이집에 맡기고 당신은 그 시간에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보냈지 아이들과 함께있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과 휴일에는 아프고 힘들고 짜증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거나 도망가려고 했었지 그동안 그런 모습들을 보았는데 양가뿐만 아니라 나 또한 찬성하기란 어려웠지
셋째에 출산 전에 우리 가족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당신은 내 이야기는 보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낳기를 원했지 당신이 그토록 원하니 앞으로 다가올 우리 가족의 미래가 힘들고 괴롭다는 걸 알지만 그냥 묵인했어
신혼 초에 당신이 담배 냄새가 싫다고 해 끊기는 어려워 전자담배로 피우다가 셋째가 태어나는 날 다시 일반 담배로 피우게 됐지 다가올 미래가 힘들고 괴롭다는 걸 알고 있는 대도 막지 못한다는 무력감으로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게 되었지
당신은 셋째 출산 전에 복직을 원했어 그동안 나는 애들 크면 당신이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했지만 당신은 꼭 복직을 하고 싶어했었지 그동안 당신은 일하고 싶어하고 돈에 욕심도 있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당시는 허락을 했지만 다가올 고생길을 생각하니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몇 년 만 더 버텨보자고 다짐했었지 당신은 애들을 좋아해서 3명이나 낳았지만 직접 키우지는 않고 시설에 맡기는 당신이 지금도 무책임하게 느껴져. 결과적으로 내 욕심이지만 당신이 아이들을 만 3살까지 직접 키우고 아이들이 스스로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즈음에 다니고 싶으면 직장 다니라고 했지만 역시나 당신은 당신 의지대로 였지.
어느 날 저녁, 대략 2년 동안 아이들 등 하원으로 내 삶이 없고 사는 게 정신적으로 힘들어 창고방에서 혼자 맥주을 마시는 적이 있었지 등하원을 계속하고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도 당신은 그동안 왜 이야기를 안 했냐며 말 안 하면 모르다며 내 탓으로 돌리더군 그나마 그날은 당신과 살면서 내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날 이해해 줬던 날이었어. 당신이 날 이해해 준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이후 당신은 수영과 필라테스 줌바댄스 지인들과 만날 때 내 욕을 하고 다니는 것도 알게 됐어 그렇게라도 해야 당신 스트레스가 풀리는 걸 알기에 이해하고 되도록 모르는 척했어.
가끔 주말에 가족들과 집에 있일 때 짜증 내면서 어디 간다는 말없이 나가서 2~3시간씩 술 마시고 들어왔을 때 아무 말 없이 이해하려 노력했었고 저녁에 수영 강사와 통화도 하고, 오후에 나가서 수영 강사와 밤까지 술 마실 때 그걸 뭐라고 했더니 당신은 나에게 의처증 있냐는 이야기를 했었지 그땐 정말 내가 당신 말처럼 의처증이 있는 건가 아니면 이상해지고 있는 건가라고 다시금 생각해보게됐지
결혼 후 거의 대부분 주말마다 방 청소, 화장실 청소, 이불털는 일은 내 일상이었지 어느 날인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 집에 모래들이 지글거렸어 퇴근하고 힘든 몸을 이끌고 청소기 돌릴 때 당신은 나에게 결벽증이 있냐고 말했었지 이후 곰곰이 생각해 봤어 내가 결벽증인 건가 그래서 느낀 게 결벽증이 맞는 거 같아 지금도 지저분한 거 보면 참기 힘들거든 그 이후부터 방 청소, 화장실 청소는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고 있어
당신은 아이들을 맡기고 하는 일들이 많아서 오후에 수영을 못 가는 적이 있었지. 그래서 새벽에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어. 내가 아이들이 불안해한다고 애들 어린이집에 가는 시간에 가라고 말해도 당신은 내 말을 무시하고 거의 1년 이상 새벽 수영을 다녔어. 당신이 새벽 수영을 가는 날 새벽에 애들이 잠에서 일어나 엄마가 없어서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불안한 모습을 볼때 애들에게 "걱정하지 마 엄마는 꼭 올 거야" 하면서 달래줬었지. 당신은 잔인하게도 아이들을 집에 나두고 새벽수영가는 걸 싫어하는 나에게 자랑인냥 새벽수영 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여러번 찍어 보냈지.
도테라에 빠졌을때 여러번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말했지만 내말은 무시했었지. 죽은사람도 살린다는 마사지사에게 마사지 받을때도 중간 중간 숨기거나 거짓말할때도 아로마테라피 공부한다고 다닐때도 당신을 인정하고 이해할려고 노력했었어. 당시 당신은 "내가 왜 그랫는지 모르겠어" 라고 말할때 잘못을 인정하는구나 그래서 앞으로는 개선이 되겠구나란 희망이 품었었지. 그래서 도테라 접는다고 할때 밀린 대금을 내 카드로 결제해 줬었지.
어느 날인가 인지세 받는 작가가 된다고 인터넷 활동을 하며 화상채팅과 오프라인 모임을 했었지 유럽여행 가고 싶다고도 하고,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싶다, 자격증 공부를 하고 싶다, 시댁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거동이 불편하신 시아버지가 집에서 쉬시니 애들 좀 봐 달라, 나에게는 셋째 출산휴가 내거나 육아기 단축근무 신청해서 집에서 애 봐라, 시어머니에게 나랑 이혼하고 싶다고 말할 때도 있었고, 작사 작곡 창장 동요제 참가하고 싶다고 말할 때도 있었지. 당신의 이런 요구사항들은 자식이 없을 때거나 어느 정도 자랐을 때 가능한 일들이라는 걸 알기에 현실적으로 할 수가 없다고 말했었지. 당신은 누구네는 시댁이나 친정에서 애들 봐준다더라 하며 현실을 무시한 말만 반복했었지 당신의 이런 이야기 듣을 때마다 난 많이 힘들었어.
금쪽같은내새끼 촬영 할때 당신 사연으로 출연하는 거니 당연히 내가 타겟이 될걸을 알았지만 당신이 원하니 눈 꼭 감도 촬영했었어 당신이 원하는대로 애들도 안 때리고 생활비를 카드에서 현금으로 받을 수 있게 됐지
내집마련하기 전, 차 없는 나를 탓하고 그걸 내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에게 대신 좀 설득해달라는 이야기를 듣을 때 현실을 모르는 당신이 하염없이 원망스러웠었지
그러던 어느 날은 당신이 "차는 집 사고 사는 걸로 계획할게"라고 한 이후부터 집은 언제 사냐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나와 애들에게 집이 좁다며 신세 한탕 하며 이사 날이 정해지지 전까지 우리 언제 이사가냐며 계속 재촉했었지 셋째 출산 후부터 매일 잠자기 전에 핸드폰으로 부동산 시세 확인했었는데 말이야
당신과 아이들이 교회 다닌다고 할 때 아이들에게 종교를 심어 주는 것에 대해 나에게 의견도 묻지도 않은 당신이 서운했어. 아이들 일들까지도 내 의견은 묵살됐지. 그래서 교회다니는 걸 추천도 반대도 안 했어 왜냐면 당신과 애들이 같이 다니니까 그래서 가끔씩은 못 이기는 척 교회 앞까지 데려다줬었지 그 시간에 나는 방 청소, 화장실 청소, 이불털기를 했었고 이사 온 이후 당신 혼자 새벽 기도 갈 때 개인적으로 싫었지만 당신이 좋아하고 애들도 어느 정도 컸으니 이제 갈 때도 됐지 하며 이해했지.
하지만 화요일마다 전도특공대에 가겠다, 주일에 성가대에 나가겠다며 말할 때 지금까지 당신에게 여러 번 말했던 애들 있는 시간만큼은 애들과 함께 해달라는 이야기가 무색해 질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무기력해지더라 특히나 한참 잠을 많이 자야 할 나이인 애들에게 새벽 기도를 같이 간다는 게 지금도 이해가 안돼
내집마련하기 전 당신이 필요하다는 피아노, 식탁, 소파, 애들 책상, 당신의 컴퓨터 책상과 의자까지 이사하면서 해줬어 단지 안방에 침대만 안 했을 뿐이야 당신은 지금까지 해준 건 생각 안 하고 높은 침대가 없는 걸로 불만이었지
작년에는 첫째와 둘째를 친정에 맡기고 셋째를 나한테 맡기고 성가대 갈려고 할 때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지만 당신이 기필코 가버렸지 이후부터 나도 더 이상 못 참고 애들 있는 주말에 당신처럼 내가 하고 싶은 거 한다고 하며 나가게 됐지 그 이후에 당신은 나에게 내가 없으니까 너무 좋다고 말하고, 나하고 있으면 불행해진다고 말하고, 정말 사라졌으면 좋겠어라고 나에게 말했었지 그래서 지금도 주말에 당신이 보이면 나가는 이유야 내가 없어야 안 보여야 당신이 행복할 거니까 지금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지는 걸 알고 있어 애들한테는 많이 미안하지만...
내 생각이지만 우리 애들이 사회에 나갈 때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사회에서 가장 필요 사람이라고 생각해 지식은 인터넷 검색이나 AI가 해줄 거니까 그래서 지식보다 인성을 우선으로 키우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식 간에 즐겁게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며 유대감을 키우고 서로의 믿음을 키워 나가는 게 지식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해. 내가 보기에 당신은 많은 지식들을 받아들일 자세가 안 되어 있는 애들에게 이것저것 보라고 강요하고 있어. 성격이 형성되지 않은 3살 이전에는 강요가 통하지만 이후부터는 성격이 형성되어서 쉽게 못 받아들이지 그래서 그 거부감이 당신에게 짜증으로 표출되는 걸로 보여
지식을 쌓는 교육은 빚으로 시키는 게 아닌 부모의 경제적 능력껏 시키는 거라 생각해. 당신에게 직장사정을 이야기 한적이 있었지 현재 회사가 어려워서 직원들 축소했고 내 밑에 있는 직원도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고 이런 상황에서 퇴사안된게 다행이지 그걸 알면서도 차 사달라, 생활비 올려달라 라는 말이 나오니? 그리고 당신은 얼마 전에 대출을 나중에 갚고 더 풍족하게 살고 싶다며 생활비를 올려달라고 했지 이런 말을 듣을 때 내 기분은 어떻겠니?
내집마련 후 대출금을 우선적으로 갚기 위해 이것저것 생각해 봤어 내가 능력이 없어서 부업도 못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됐지 그래서 저녁 한 끼는 편의점에서 해결하고 출퇴근은 자전거 타고 다니는 걸로 결정했어. 결혼하기 전에 집 살 때까지 해왔던 것처럼 말이야.
이런 이야기들를 하면 당신한테 좋은 소리 못 듣을 걸 알고있어 그리고 당신이 화나면 너도 당해봐라 생각하면서 시댁과 친정에 내가 쓴 이글들을 말하겠지 그걸 알게되면 시댁과 친정은 걱정하시겠지 특히나 걱정 많은 시댁 노인네들에게 걱정거리 주는게 뻔하니 당신에게 말 안 했던 거야
당신이 얼마 전 생활비 전액을 온전히 받고 싶다고 해서 하는 말이야 내가 구매하는 게 당신보다 더 싸게 구매하니깐 내가 구매해왔고 당신도 그 부분 인정해서 "오빠가 싸게 좋은거 사니깐 오빠가 구매해"라고 했었어 누워서 조명 끄는 거 설치해달라고 해서 결제해서 설치하고 집에 필요한 물건들 구매하기 전 당신한테 미리 이야기하고 승인받거나 구매 후에 당신에게 보여주면서 마음에 드냐고 의견을 물어봤었어. 마음에 안들면 반품했었고 그래봤자 내가 결제한것들은 몇천원 몇만원 짜리들이야 그래왔는데 이제 와서 생활비 온전하게 받고 싶다는 말은 모순이잖아 그동안 회사에서 쉬는 시간에 정보 검색하면서 공부하고 제품 가성비 좋은거 검색하는 노력들은 무시해버리는거지 그리고 앞으로 가끔 애들 군거질 거리 사줄일이 있는데 그건 어찌해야함?
당신이 돈 번다고 그 돈이 전부 당신 마음대로 쓰는 돈이 아니야 나 또한 마찬가지고 소비할 때 서로에게 협의를 하고 소비를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 하지만 당신은 수백만 원 하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할부로 구매하면서 나에게 전혀 이야기도 없었고 빨간펜 다니면서 당신은 무급으로 다닌다고 거짓말했고 급여 이상을 소비했어 그래서 그 할부금 갚기 위해 더욱더 빨간펜에 매진하게 되고 아이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해 앞으로도 더욱 그러고 같고
전에게 말했지만 당신과 관계할 때 그나마 가장 행복했어 하지만 관계 중에 "빨리 끝네"라고 말하며 하품하고, 트림하고, 가끔씩은 방귀 뀌고, 씻지않아서 똥 냄새를 맡아가며 했었지 어떤 날은 사정하고 있을 때 힘드니까 빨리 빼라고 닦달할 때도 있었지.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당신이 미운 거보다도 더 내 자신이 무시 당하면서까지 왜 이걸 원하는지 나 자신이 더욱 미워져 그리고 약물로 거세할까도 생각해 봤어.
당신이 오르가즘을 느껴본 적이 없다며 다른 남자와 하고와도 되냐고 물었던 적이 종종있었어 내가 당신을 만족 시키지 못한 안타까움 마음에 당신 생일에 자위 기구를 선물했었지. 당신은 원하는 걸 안 주고 이런 걸 선물했다며 날 미워했지만... 올해 초부터 새벽에 공황발작이 빈번히 일어나고 발작이 멈추고나서 밖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맥주를 마시면서 달래지 다음날 당신은 왔다갔다 시끄럽다며 불평을 늘어놓았고... 당신은 나에게 "(공황발작은) 본인 일으키는거지 좀 편하게 생각해 그러니까 공황발작 일어나지" 라고 내 탓으로만 취부했지. 그 발작은 당신과의 갈등 때문에 만들어진거야.
올해 초에 당신이 헤모힘을 먹어서 성욕이 올랐다며서 당신이 원해서 밤에도 새벽에도 관계를 가질 때가 있었지 그리고 그 당시 매번 관계 할때마다 넷째 생기면 낳을 거라는 말했고 그때 당신이 성욕이 오르는 날이 앞으로 많을 거라 생각해 정관수술했지만 그 후부터 귀찮다면서 부부관계는 많이 줄어들었지 당신 말처럼 스스로 해결해야 해?
누구 말만 따라 내가 이런 장문의 글을 쓰는 건 "참할 짓 없는 짓"으로 볼 수도 있어 그런 소리를 듣더라도 할 이야기는 해야 나중에 후회를 안 하고 당신에게 "이야기 안 하면 몰라"라는 말을 듣을 거라 예상돼서 이 글을 쓰는 거야 그리고 예전에도 이런 글 적어서 보내봤지만 돌아오는 건 실망뿐이었지 그건 내 기대가 과도한 탓이겠지만 그동안 당신이 원했던 것들 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계획하고, 나중에 할 일들은 기록해왔어 할 수 있는 일들은 해왔고 나중에 할 것들은 나중에 할 예정으로 준비하고 있었지
물론 당신에게 많이 부족했겠지만 내가 왜 그렇게 했냐면 내가 결정한 사람이고 나와 평생 같이 살 사람이니까 그 말에 귀 기울인 거지 당신은 당신 주변의 지인들이 말이 평생같이 살 사람 말보다 비중을 높이 보고 있어 내 이야기는 듣지않고 그렇다면 나는 당신과 함께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 아니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함께 살수는 있을까?
다음날 아내의 답장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