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 도반: 두더지, 나무, 향원, 언연, 자허, 구정
실상사는 매주 수요일 수행집중의 날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한달에 한번 있는 단식날이네요.
밥 못 얻어먹는 날이라고 도법스님이 웃으시네요.
극락전으로 가는 길 민들레, 냉이, 제비 나즈막히 꽃을 피우며 우리를 반겨주네요.
질문
- 붓다에 염원을 두자는 생각이 들어왔어요. 그뜻이 뭘까요?
: 붓다가 시키는대로 사는거지. 붓다는 너의 근원은 너다.
법등명 자등명. 믿고 의지할 곳은 너 자신이고 법이다.
석가모니는 우리는 본래 부처다.
본래 부처다는 생각으로 사는 삶은 무거운 중생의 삶이 열반, 해탈, 신비를 찾는데 그런 필요가 없다.
죄있는 중생의 삶에서 죄의식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상황이다.
이미 소 탄것을 알고 있다.
부처 탄생기에 '천상천하유아독존,일체개고아당안지' 라고 말을 했다는 것은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갖춘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금강경 첫구절에 나오는 이야기도 우리의 일상과 같다. 밥먹고 씻고, 식의주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부처는 소 탄것을 알고 일상을 살고, 중생은 소 탄것을 모르고 일상을 산다.
- 세월호에 대해 우리는 어떤 몸짓이 필요할까요?
: 부처님은 제2의 화살을 맞지 않게 해야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현실은 제2의 화살을 맞게하고 있다.
외아들을 잃고 비탄에 빠진 어머니에게 겨자씨를 얻어오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겨자씨를 구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는 변화될 것이다. 누구나 죽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정하게 될 것이다.
세월호에 관련된 유족들과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두번째 화살을 맞지 않게 모색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실상사는 1000일 기도를 진행했다. 담론의 장이 필요하다. 풀고 넘어서려는 모습이 없다.
창과 방패의 싸움을 되풀이하고 있다.
진실규명, 책임자처벌에서 미흡한 부분은 해나가는게 필요하겠지.
근데 그것이 이루어졌다고 해결된 것일까?
자유롭게 솔직히 이야기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911 테러가 왜 발생했을까?라고 질문했다면, 근원적, 상식적 질문을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은 테러가 범세계화가 된 상황이다.
현재는 복수의 정치상황이다.
그럼 어떤 안목으로 다뤄야 할까?
국민들의 실상을 모르고(질문하지 않고) 있다.
그 당시 누구나 '미안해. 우리 탓이야.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세상을 다르게 만들께'라고
이야기하고 자기 약속을 했다고 봐요.
근데 지금 그 약속에 대해 어떻게 하고 있나요?
비극적 아픔을 겪었지만, 희망을 만들어내야 답이 나온다고 봅니다.
세월호 희망의 순례길을 만들자고 제안도 했는데, 우리가 실력(힘)이 없다.
저마다의 삶이 있을 것인데, 관성화된 힘에(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관점, 창과방패의 싸움등)
머물러 있다.
혼자는 약하다 모여야 한다. 화쟁의 관점으로 이야기 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계속 이야기해보는 것이 불씨를 짚이는 일이라고 본다.
가까운 사람들이 중요하다. 당사자와 함께 하지만 편들어주지 않는 방식도 필요하다.
도서관이니까 작더라고 담론판을 만들어보세요.
각자 돌아가며 들어온 생각과 질문을 하고 스님과의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점심을 먹으며 오늘 자리의 소회를 나누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