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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르헤 셀라론<퍼 옴>
칠레 출신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호르헤 셀라론(Jorge Selaron)은 세계 50여 나라를 떠돌다 1983년 리우의 빈민촌에 정착하여 죽을 때까지 자아의 신화를 찾았는지 모른다. 1990년 그는 가난으로 전화도 끊어졌고, 집세도 내지 못하여 수차례 쫓겨날 처지였건만 갑자기 계단을 수리하고자 한다. 화가였기에 치솟았던 순간적인 충동으로 그는, 집은 바꾸지 못하고 집 앞 계단을 바꾸었는지 모른다. 그가 계단을 브라질 국기의 세 가지 색깔- 녹색, 노란색, 파란색 타일의 조각들로 덮기 시작하자 이웃들은 그 색깔의 선택을 조롱한다. 그 계단은 전체 사각형 바탕의 녹색, 그 안 마름모꼴 속의 노란색, 그 원형 속의 파란색의 타일 조각들로 덮인다. 그는 농업자원(녹색)과 광물자원(노란색)을 통하여 원형 안의 흰색 띠로 둘러싸인 표어처럼 '질서와 진보'를 이루는 하늘(파란색) 아래 살고 싶었을까? 이웃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는 되지 못한다고 비웃은 것일까?
▶ 셀라론 타일
그는 열정으로 계단에 타일 조각을 덮는 일을 계속한다. 이는 곧 그에게 일종의 심한 강박이 된다. 건축 현장에서 재료를 가져오기도 하고, 이웃들과 여행자들로부터 세라믹 조각이나 깨어진 거울 조각이나 돈으로 기부도 받고, 자신의 작품을 팔아가며 일을 계속한다. 그의 대표적 작품인 임신한 아프리카 여성의 초상도 이곳에 그린다. 계단의 전체 그림이나 무늬, 도안들은 파편과 깨어진 유리 조각으로 뒤섞인다. 부조화의 조화라고 표현할 만한 모습을 띠며 계단은 완성되어간다. 2013년 215개 계단은 빈민가의 낡고 허물어진 계단에서 2000여 개의 타일 조각들로 덮인, 리우의 빈민 지역을 새롭게 창조한 계단이 된다. 이것이 바로 리우의 명물 셀라론 계단(Escadaria Selaron)이다. 계단이 완성될 무렵, 그는 몸에 화상 자국을 남기고 계단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화가로서 대작이나 명작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빈민의 이웃으로서 리우의 문화를 재창조했다. 화가로서의 갑작스러운 충동으로 그는 영혼을 부르는 예술의 소리를 귀담아들었을 것이다. 그는 영혼의 숨결로 쓰레기 조각들에 생명을 불어넣고는 푸른 하늘로 날아갔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는 사랑하는 여인의 묘지를 새 생명이 부활하는 계단에 숨긴 채 떠난 것이다. 그는 예술혼이 묻어나는 셀라론 계단을 떠났고, 새로운 창조자들이 찾아온다. 세계적인 음악 그룹이나 영화제작자들이 그 계단으로 몰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셀라론 계단은 2016년 리우 올림픽 유치 영상의 제목처럼 '우리를 묶는 열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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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라론 계단에서
오늘도 셀라론 계단에는 관광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리우 카니발 기간을 맞이해 리우를 찾은 많은 관광객들은 계단마다에서 사진을 찍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우리 현지 가이드는 그 많은 인파를 헤치고 사진 찍기 좋은 장소에 자리 잡고 우리들의 기념사진을 찍어 준다.
▶ 셀라론 계단에서
▶ 셀라론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 셀라론 계단으로 가는 골목에 있는 세계 지도
▶ 셀라론 계단으로 가는 골목에 있는 벽화
기념사진 촬영을 마치고 호르헤 셀라론의 혼이 담긴 계단을 오르며 화가로서 그의 열정을 생각해 본다. 미켈란젤로의 대작 천지창조가 완성되기까지 4년이 걸렸는데 23년 동안 만든 작품치고는 규모가 크지는 않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천지창조 못지않게 아름답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셀라론은 화가로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빈민의 이웃으로서 리우의 빈민 지역을 새롭게 창조하기로 했다. 그렇게 셀라론 계단을 완성시키기 위해 기부도 받고 자신의 작품을 팔아가면서까지 애정을 쏟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마음이 지금의 셀라론 계단을 존재하게 만든 것이다. 화려함 속에 숨겨진 그의 따스한 마음은 아름답다는 수식어를 넘어서 감동이 느껴졌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어느 계단, 골목, 공원에도 예술과 상상이 깃들 수 있다. 이런 곳에 스토리텔링을 덧붙이는 건 또 어떨가?
▶ 팡 지 아수카르 주차장에서 본 팡 지 아스카르
셀라론 계단을 구경하고 빵산 전망대로 간다. 도중 이번 여행을 같이한 미국 시카고에서 온 두 분이 상파울루를 거쳐 미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기에 리우의 국내선 공항인 산투스 두몬트 공항 입구에 내려준다. 그리고는 버스는 해안도로를 따라 달려 팡 지 아수카르(Pao de Acucar) 케이블카 탑승장 아래 주차장에서 우릴 내려놓는다. 현지 가이드가 입장권을 사러 간 사이 주차장에서 바다와 팡 지 아수카르 산, 케이블카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한다. 바닷가에서 이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어떻게 찍더라도 한 편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장면을 남길 수 있을 정도로 환상적인 배경을 제공해 준다. 또한 코르코바도 언덕에서 바라보는 팡 지 아수카르, 그리고 팡 지 아수카르에서 바라보는 코르코바도 언덕은 각각 독특한 즐거움을 주는 절경이다. 달걀 모양을 한 이 기괴한 형상의 화강암과 수정으로 이루어진 언덕은 마치 바다의 위협으로부터 대륙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내륙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높이는 약 400m밖에 되지 않지만, 바다 쪽으로 돌출되어 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마치 바다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 예수 상에서 본 빵 산
포르투갈어로 Pao는 빵, Acucar는 설탕이란 뜻이니 번역하면 설탕 빵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슈거로프 산(Sugarloaf Mountain)이라고 하고 외국인 관광객들은 많이들 그렇게 부르지만 한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에서도 빵이라는 포르투갈어 단어가 친숙하기 때문인지 그냥 빵 산이라고도 많이 부른다.
▶ 곤돌라 탑승장
▶ 곤돌라를 타고 가면서 본 탑승장
▶ 우르카 언덕에 있는 전망대와 곤돌라 환승장
현지가이드가 입장권을 나누어 주면서 이 입장권은 텔레페리코라 불리는 곤돌라를 탈 때마다 필요하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시킨다. 현지 가이드를 따라 곤돌라 탑승장으로 가 곤돌라에 오른다. 두 번에 걸쳐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게 되는데 우선 탑승장에서 해발 215m의 우르카 언덕까지 올라간다. 우르카 언덕에서 다음 곤돌라를 타러 가는 길목에는 열대 우림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 다시 팡 지 아수카르 정상으로 가는 곤돌라를 탑승한다. 곤돌라를 타는 전체 거리는 약 1,400m라고 하는데 우르카 언덕에서 내렸다 타서 그런지 순식간에 팡 지 아수카르 산 정상에 도착한다.
▶ 팡 지 아수카르 전망대 휴게소
▶ 팡 지 아수카르 전망대에서
▶ 팡 지 아수카르 전망대에서 바라 본 코파카바나
▶ 팡 지 아수카르 전망대에서 바라 본 리우 중심가
▶ 팡 지 아수카르 전망대에서 바라 본 리우 항
▶ 팡 지 아수카르 전망대에서 바라 본 코르코바도 산
정상에는 전망대가 현대식으로 잘 되어 있는데 현지 가이드는 먼저 이곳에서 배경이 제일 좋은 곳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전망대를 돌며 리우를 감상하라고 한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전망대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오늘 날씨가 쾌청해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리우 항의 모습과 점점이 떠 있는 요트들, 저 멀리 코르코도바 산과 그 산 정상에 손톱만큼 작게 보이는 예수상, 코파카바나 해변과 이름 모를 작은 해변들 등 리우 전체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인다.
▶ 우르카 전망대에서 팡 지 아수카르를 배경으로
▶ 우르카 전망대에서 리우 시내를 배경으로
곤돌라를 타고 팡 지 아수카르에서 내려와 우르카 언덕 전망대에서 다시 리우의 모습을 눈에 담고 아래 탑승장으로 내려온다.
▶ 19만 명을 수용하는 리우의 마라카낭 경기장
버스를 타기 전 현지가이드가 이것으로 리우 시티투어를 마치고 이곳에서 더 머무를 일행들을 내려 주기 위해 호텔로 간 후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간다고 한다. 내가 당초 일정에 있는 마라카낭 경기장은 안 가느냐고 하니 시간이 안 된다고 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티투어 때에도 보카주니어스 축구장 옆을 지나면서도 못 봤는데 축구의 나라라는 브라질에 와 축구장도 한 번 못보고 가는 것이 아쉽다. 마라카낭 경기장(Estádio do Maracanã)은 세계에서 가장 큰 축구장으로 1950년 브라질에서 열렸던 제4회 월드컵을 위해 만들어진 메인 스타디움으로 경기가 없는 날에는 견학이 가능하고 실제 축구장 잔디도 밟아 볼 수 있다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데 정말 안타깝다.
이제 우리를 태운 버스는 리우 갈레항 국제공항으로 향한다. 한국을 떠나 온 지 27일 만에 남미여행을 마치고 귀국 길에 오르는 것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갈레항 국제공항에 도착해 우선 항공권 자동발급기에 여권을 인식시키고 항공권을 발급받는데 3장의 항공권이 나온다. 모두 아메리칸 에어라인(AA) 항공권으로 한 장은 리우에서 마이애미 항공권이고, 나머지 두 장은 마이애미에서 달라스, 달라스에서 인천공항 항공권이다.
오후 9시 반 AA를 타고 마이애미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는 일행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마이애미 공항에서 달라스로 환승을 위해 환승 게이트로 가기 전 보안검색대를 거쳐야 하는데 보안검색대로 들어가기 전 항공권 검사를 한다. 그런데 양산에서 온 동갑내기 부부의 항공권을 검사하던 검사관이 그 부부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한다. 무슨 문제가 있겠나 싶어 나머지 일행들은 번잡한 보안검색대 앞에서 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미국 공항의 입국심사와 보안검색 시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말 다시는 미국에 오지 않을 거란 마음이 들 정도로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우리가 한 시간 정도 기다려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환승 게이트 앞에서 그 부부를 기다리는데 달라스 행 비행기 탑승시간이 가까워지는데도 얼굴을 볼 수 없다. 인솔자가 그 부부를 찾아 어디론가 바삐 움직인다. 항공기 출발 시간이 다 되었으니 빨리 탑승하라는 공항 직원의 독촉을 받고 항공기에 탑승했는데도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혹시 그 부부의 캐리어에 누가 마약이나 총기를 집어넣은 건 아닌가 등 별별 걱정이 앞선다. 승무원의 일상적인 안내방송이 끝나고 비행기 문이 닫히기 전 동갑내기 부부가 핼쓱한 얼굴로 인솔자와 함께 비행기 안으로 들어온다. 간단한 영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부부가 지금까지 공항 보안검색 직원에게 시달린 것이다. 비행기가 마이애미 공항을 이륙하자 승무원에게 물을 가져다 달래 그 부부에게 주고 이야기를 들어 본다. 그 부부는 이유를 모른 채 여권과 항공권을 압수당한 상태로 공항 내 어느 사무실로 끌려가 한참을 기다려 가방은 물론 속옷을 제외한 모든 옷을 탈의하고 전신검색을 받았고 뭔가를 영어로 묻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다 되어 여권과 항공권을 주며 가라고 해 아는 영어를 다 동원해 게이트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으나 아는 척도 안하고 자기네들 일만 해 탑승 게이트를 찾아 헤매는데 마침 인솔자가 나타나 같이 왔다고 한다. 아무리 자기 나라 보안을 위해 만든 제도라고 하지만 자기 집에 온 손님을 대하는 미국 국토보안청 직원들의 태도는 관광객들의 공분을 사고도 남을 만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 SSSS 코드가 찍힌 항공권
알고 보니 그 부부의 탑승권에 'SSSS' 라는 코드가 찍혀 있었던 것이다. 'SSSS' 코드는 'Secondary Security Screening Selection' 의 약자로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 이후 입법된 미 국토보안청의 안전 비행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보통 체크인을 하면서 받은 탑승권의 오른쪽 하단에 나와 있다. 탑승권에 이 코드가 찍혀있는 승객은 2차 보안 검색을 받아야 한다는 일종의 표시로 즉 공항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도 또 한 번 엄격한 보안 검사를 받아야 하는 요주의 인물로 선정됐다는 뜻이지만 미국 탑승권 발권시 무작위로 탑승권에 이 코드가 찍히는데 그 확률은 1만 명 당 5명으로 즉 0.05%에 불과하다지만 문제는 아무런 문제없는 여행객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탑승권에 목적지와 탑승시간, 탑승 게이트 만 확인할 뿐 우리 일행 중 아무도 ‘SSSS’ 코드에 대해선 관심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SSSS' 코드의 대상자는 미국 연방 수사국인 FBI의 보복 테러행위 감시 목록에 올라 있는 경우 혹은 무작위로 미 국토보안청 컴퓨터에 의해 선정된다고 하지만 이러한 코드를 받게 된 여행객의 대부분이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들이라는 소문이 돌며 논란이 되기도 했으며 정확한 선정 기준이 없어 사생활 침해나 인종차별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