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코스 : 몰운고개 - >계정1리 마을회관
오늘도 29코스, 30코스를 한꺼번에 걷는다. 특히 29코스는 12, 6km임에도 예상 소요시간이 6시간 24분이고, 걷기 난이도가 어려움으로 경기 둘레길 홈페이지에서 기록하고 있어 다소 두려움이 앞섰지만, 지난번 코스처럼 들머리의 진입에 어려움이 있어 마음을 단단히 잡고 또다시 도전키로 하였다.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양동역에서 하차한 후 택시를 타고 몰운고개길에 이르렀다. 햇볕이 쨍쨍 내리쬔다. 봄이나 가을에 걸으면 더 쉽게 갈 수가 있는 길을 6월에 걸으려니 더위는 피할 수 없다. 어쩌면 매사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어렵게 하기만 할까?
스스로 웃음을 지으며 계정리를 향하여 걸어간다. 다빈 쿱스 건물에 이르러 좌, 우의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진입하니 출입을 통제하는 바리케이드가 길을 막는다. 우리는 국유림 출입신고를 하였기에 당당하게 임도에 들어섰다.
금왕산 숲길이 시작되었다. 경기 둘레길 홈페이지에서는 29코스를 이렇게 설명하여 놓았다. “금왕산 북쪽 자락에서 동쪽 자락으로 길게 이어지는 임도 노선이다. 고도 300~400m 사이를 누비게 된다.
이 노선도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같이 즐기는 길이다. 노면도 걷기 좋은 상태다. 발부리에 채는 돌도 없고, 포슬포슬한 흙길이거나 풀이 살짝 자란 걷기 좋은 길이다.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기에 그만이다.
길섶에 곱게 핀 야생화들이 눈에 들어오면 걸음은 저절로 늦어진다. 바쁠 것도 없지만 이 길을 끝내기가 싫다. 저쪽 길 끝에 전봇대가 보인다.”고 하였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가기 좋은 길에서 동행한 김헌영 총무는 엠피 3를 들릴 듯 말 듯 켜놓고 걸어간다.
임도상에는 도토머리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2km가 조금 넘는 거리에 솟아있는 도토머리봉은 명칭부터 다정하고 친근한 정이 들어 임도를 걸으면서 올라가 볼 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둘레길에는 포함되지 않고 있어 그 이름의 유래를 읽으며 오르지 못하는 서운함을 달랜다.
“도토 머리봉은 해발 614m로 양동면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도투머리봉의 도토머리는 멧돼지를 뜻하는 ‘도토’와 머리의 합성어이며 저두산으로 부르는 것은(돼지 猪, 머리 頭, 뫼 山)우리말을 한자로 바꾸어 쓴 이름이다.”
설화로는 양동면 금왕리에서 활쏘기로 유명한 장수가 살았는데 삼각산으로 사냥을 나섰다가 정상에서 보니 도토머리봉에 멧돼지가 보여 활을 쏘았지만 맷돼지가 그대로 내달려 사냥에 실패하였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사냥꾼은 도토머리봉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자신이 쏜 화살을 머리에 맞고 죽은 멧돼지를 발견하고 이곳을 도토머리봉으로 이름하였다“고 기록하여 놓았다.
굽이쳐 돌아가는 임도의 푸릇푸릇한 풀 내음이 가득한 산속에 몸을 맡기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진행할 때 6월의 땡볕 더위도 청량한 바람으로 가슴에 와닿으며 좋아하는 노래 ‘청산에 살으리라’란 가곡이 가슴에서 터져 나온다.
청산에 살리라 : 김연준 작사.김연준 작곡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이 봄도 산 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임도는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계속되어 출발하기 직전의 두려움과 우려는 어느새 사라지고 돌고 돌아가는 산속에 파묻혀 나도 모르게 산사람이 되었는지 흥이 절로 난다.
6월의 태양도 울창한 숲 앞에 무더위로 사람을 괴롭히지 못하는 숲속의 향연은 산과 사람과 하나가 되어 홍진의 찌든 때를 씻어주며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임도에서 노래에 지치면 사색에 잠기며 정신을 살찌운다.
임도를 걷는 묘미가 여기에 있다. 도시 생활 속에서 고뇌와 자신의 취미를 맑은 정신으로 되새겨 볼 수 있는 여유도 있어 오늘 아침 전철과 기차를 타고 오면서 읽었던 시 한 편을 다시금 음미하며 고전의 세계예 빠진다.
兔爰
有兔爰爰 : 토끼는 여유있거늘
雉離于羅 : 꿩은 그물에 걸렸네
我生之初 : 내가 태어났을 적엔
尙無爲 : 그래도 별일없었는데
我生之後 : 내가자란 뒤에는
逢此百罹 : 온갖 걱정 닥쳐왔네
尙寐無吪 : 잠들어 꼼짝하지 말았으면
그물을 친 것은 본래 토끼를 잡으려는 것이었는데 이제 토끼는 교활하여 빠져나가고 꿩은 꼿꼿하여 도리어 그물에 걸렸다. 소인은 혼란을 초래하고도 교묘한 꾀로 화를 면하고 군자는 허물이 없으면서도 충직함으로써 화를 당함을 비유하였고
내가 태어난 초기에는 천하가 그래도 별일이 없었는데 내가 자란 뒤에는 어려움이 많은 세상을 만났다고 타락한 사회를 고발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게 되었으니 차라리 잠들어 움직이지 아니하고 죽기만을 바랄 뿐이다’고 외쳤으니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산이 깊어지면서 머리는 한층 더 맑아지어 산에 정이 듬뿍 담길 때 아쉽게도 발걸음은 종착지인 계정리로 향하고 있었기에 하산의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마냥 좋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花無十日紅을 떠올리며 서운한 마음을 가람 이병기 선생의 시조 한 수를 읊조리며 29코스의 종착지인 계정리 마을회관에 이르렀다.
이제 산에 드니 산에 정이 드는구나!
오르고 내리는 길 괴로움 다 모르고
저절로 산이 되어 비도 마저 가노라 (이병기. 박연폭포에서)
이제 우려했던 29코스가 오히려 흥겹게 끝이 나고 때마침 점심시간이 되었다. 6월의 땡볕을 온몸에 안고 달려왔기에 시원한 냉면, 콩국수, 막국수가 생각났지만 한적한 산골 마을에는 송어 횟집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소 비싼 송어회로 점심을 먹고 30코스를 걸어간다. 30코스는 7.6km로 2시간 30분이 예상된다. 현재 시각 12시 45분, 양동역에서 청량리로 출발하는 15시 42분 열차에 탑승하여야 했기에 점심을 먹는 시간을 휴식시간으로 여기고 곧바로 30코스를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