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에 대한 일차적 정의는 헬라어로 ‘카리스’(charis), 즉 ‘값없이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값없는 사랑이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창조와 유지와 통치의 은혜”를 의미한다(시 145:15-16; 전 3:11; 마 5:45). 그리고 이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혜는 그의 “선택과 언약의 은혜로 집약”되며(출 19:5-6; 레 26:12), 이것은 다시 “하나님의 종말론적 행위”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으로 나타난다(엡 1:7). 그 점에서 은혜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 즉 섭리, 주권, 선택, 예정,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등을 포함하는 폭넓은 신학 주제다.
복음서에 나타난 은혜는 예수의 사명과 연결되어 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신앙은 바로 이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다. 특별히 바울에게 이 은혜는 “옛 시대와 새 시대를 구분”하는 개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것은 보편적인 것이어서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다. 또한 이 은혜는 은사(charisma) 안에서 나타나며,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에 따라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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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이다. 은혜는 본질적으로 인간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은혜의 선도권 혹은 주도권(initiative)은 하나님께 있다. 은혜는 어떤 조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것이요, 인간의 행위나 공로를 전제하지 않는다(롬 11:6).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값없다”는 말을 오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값이 없다는 것은 값을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귀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떤 목회자들은 “하나님은 공짜가 없는 분”이라는 말로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거나 협박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오해하거나 의도적으로 곡해한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는 역설적인 성격을 가진다. 왜냐하면 인간이 그것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오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인간이 거부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뜻을 무시하시지 않는다. 끝으로 은혜는 인간의 어떤 기관이나 조직체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언제나 성령을 통해서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37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