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회인 원당교회는 나에게 중요한 깨우침을 준 곳이다. 지금은 ‘사랑방’이란 말조차 사라졌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시골 마을에는 사랑방이 흔했다. 본래 사랑방은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사람을 고용할 때 그들의 숙식을 위해 마당 한 쪽에 마련한 조그마한 가옥이었다. 대개 안마당과 바깥마당 중간에 위치한다.
사랑방은 언제나 문이 개방되어 있어서 마을 농사꾼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그 곳은 일꾼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했고, 상담소가 되기도 했다. 그곳에 모여 사람들은 이야기꽃을 피운다. 집안의 어려운 문제도, 기쁜 일도 이곳에서 모두 털어놓곤 한다. 때로는 소설을 읽어주고, 서로 소감을 나눈다. 내기장기를 두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화투를 치며 막걸리 파티가 벌어지기도 한다. 또한 이곳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농악기구들(꽹과리, 날라리, 소고, 북, 장구, 징 등)을 보관하는 창고역할도 했다. 이 악기들은 설이나 추석 등 경사스러운 날에 꺼내어 사용된다.
먼 길을 가는 나그네가 잘 곳이 마땅치 않을 때 찾는 곳도 사랑방이다. 대개 길가는 나그네가 사랑방을 찾으면, 거절당하지 않고 하룻밤을 유하고 다음날 아침까지 대접받는 곳이 사랑방이었다. 사랑방은 마을 공동생활의 중요한 자리였다.
이처럼 유용한 곳이 사랑방이지만, 나에게는 좀 색다른 기억이 있다. 나는 사랑방을 잘못 이용해서 큰 화를 입은 사람을 알고 있다. 원당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하던 임00 집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주일에 교회대신 사랑방에 나간 일이 있었다. 임집사가 주일에 사랑방에 나간 일은 누가 보아도 놀랄 일이었다. 임집사는 그동안 열심히 교회에 출석했고, 재무집사로 봉사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불신자 동민(洞民)들도 의외로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겉으로는 임집사를 반갑게 맞이했다. 임집사는 그들의 환대에 사랑방을 더 자주 출입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교회에 가는 일을 소홀히 하고 사랑방을 찾는 일이 빈번해 졌다.
임집사가 점점 교회를 멀리하고 사랑방에 빠지게 된 것은 교회 안에서 다른 집사와 감정적인 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갈등이 심해질수록 임집사의 사랑방 출입은 더 잦아졌다. 결국 그들의 불화는 파경으로 치달아, 임집사는 마침내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교회에서는 수차 심방하여 권면했지만, 끝내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임집사는 교회의 권유가 주님의 권유임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임집사가 교회를 떠나자마자 그의 부인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가진 재산을 하나둘 팔아 약을 써댔지만, 백약(百藥)이 무효했다. 그로 인해 가세는 점점 기울어갔다. 20마지기(4천평)되는 농장까지 팔았다. 임집사는 부끄러워서 그 지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고 말았다. 나중에 들은 소문에 의하면, 임집사는 자신이 교회에서 불화하고 주일에 사랑방 출입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며, 크게 회개한 뒤 다시 교회에 나가고 있다고 한다.
사랑방이 임집사에게는 약(藥)이 아니라 독(毒)이 된 셈이다. 나는 그때 임집사를 통해서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배웠다. 우리 주변에는 교회를 대신해주는 사랑방과 같은 곳이 많다. 그 달콤한 재미에 빠져 교회를 떠나면, 하나님은 분명히 징계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다. 또한 교회의 머리가 되신 주님께서 다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