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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우리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났도다(시편 123:1~124:8)
* 본문요약
123편 :
시인은 극심한 시련의 현장에서
마치 종과 여종이 주인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보듯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그의 시련은 안일한 자와 교만한 자들의 멸시로 인한 것입니다.
그들의 심판 멸시가 시인의 삶을 점령해 버렸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124편 :
시인은 과거 이스라엘을 도우신 하나님을 추억하면서
“만일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지 않으셨더라면~”하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셨더라면
적들의 맹렬한 공격 앞에서 필시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남 같이 벗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외칩니다.
우리의 모든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서 나왔습니다.
찬 양 : 349장(새 214) 나 주의 도움 받고자
483장(새 539)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 본문해설 (표제 :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자의 기도(123:1~4)
1)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그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의 눈처럼, 그 주모의 손을 살피는 여종의 눈처럼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3) 여호와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4) 평안한(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심령(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 하늘에 계신 주여(1절) :
‘하늘의 보좌에 앉으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여 ’라는 뜻
- 기다리나이다(2절) :
‘~을 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실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리며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 심한 멸시가 넘치나이다(3절) :
‘심한 멸시를 충분하게 먹었다, 가득찼다’는 뜻으로,
우리말에 ‘욕을 많이 먹어 배부르다’는 뜻과 비슷합니다.
이것이 시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하게 바라는 이유입니다.
- 평안한자(안일한자, 4절) :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사는 자.
자신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 제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
- 교만한 자(4절) :
스스로 높다고 생각하고 사는 자.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자.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과 자기 고집대로 사는 자.
2. 만일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셨더라면(124:1~5)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때에 그들이 노여움이 우리를 향하여 맹렬하였을 때에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때에 물이 우리를 엄몰하며(덮치며) 시내가 우리를 삼켰을 것이로다.
5) 그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잠갔을(삼켰을, 휩쓸어 갔을) 것이라”할 것이로다.
- 맹렬하였을 때(3절) :
불같이 화를 낸다는 뜻. 마치 화염이 산 사람을 통째로 삼키는 것처럼
노여움과 진노를 당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3절) :
시인을 괴롭히는 대적을 사람을
산 채로 삼키는 바다의 괴물로 묘사한 것입니다.
- 물이 우리를 엄몰하며(4절) :
그 진노의 홍수가 물이 차고 넘치는 정도가 아니라
쓰나미나 급한 해일이 덮치는 것과 같은 정도라는 뜻입니다.
- 시내가 우리를 삼켰을 것이로다(4절) :
여기에서 말하는 시내는 잔잔히 흐르는 시내가 아니라
급하게 흐르는 골짜기의 격류(급류)를 뜻합니다.
3.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라(124:6~8)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찢기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 영혼이(목숨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와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 씹하지 않게 하신(6절) : 그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 묵상 point
•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요약)
1) 첫째 : 120편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 메섹과 게달의 장막과 같다며
삶의 고달픔을 노래했습니다.
2) 둘째 : 121편
그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향하여 눈을 돌립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나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주께 예배드리는 곳,
그곳을 바라보며 주님을 만날 기대감에 벌써부터 마음은 설렙니다.
3) 셋째 : 122편
드디어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도성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첫 발을 들여 놓는 순간의 감격을 잊지 못합니다.
역시 하나님의 복을 받는 도성은 다르다 싶습니다.
그가 예루살렘 성을 보고 기뻐하는 것은 그 도시의 화려함 때문이 아닙니다.
그곳에 주께 예배드릴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4) 넷째 노래 123편 : 그동안의 아픔과 설움을 고백하는 기도
드디어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도성 예루살렘에 도착한 순례객은
성전을 바라보면서 그동안의 삶의 아픔과 고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합니다.
마치 길을 잃었던 아이가 엄마를 보고 안겨서 그 설움에 우는 것처럼
순례객은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며
그동안 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한탄하며 주께 아룁니다.
그의 시련은 안일한 자와 교만한 자들의 멸시로 인한 것입니다.
그들의 심판 멸시가 시인의 삶을 점령해 버렸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마치 종과 여종이 주인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보는 것처럼
간절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그가 하는 말은 아픔과 절망의 언어이지만,
내 속을 마음껏 털어놓을 분 앞에 나온 자의 기쁨에 차서 하는 말입니다.
5) 다섯째 노래 124편 : 만일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셨더라면
순례객은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면서
만일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셨더라면 지금 이렇게 주님 앞에 서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만큼 그의 삶이 힘들고 고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셨더라면
적들의 맹렬한 공격 앞에서 필시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홍수의 거센 물결에 휩쓸리듯 그들이 그를 산 채로 삼켜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같이 벗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외칩니다.
1. 믿음은 ➠ 끝까지 기다릴 줄 아는 것
1) 심한 조소와 멸시 속에 고통받던 자의 고백(123:3)
시인은 평안한 자, 교만한 자들의 극심한 멸시로 인하여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의 심한 멸시로 인하여 시인은 마음을 모두 잃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주변에 나를 도울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내 편이 되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2) 그 아픔 속에서 나를 도우실 하나님을 발견함(123:1~2)
그러나 시인은 아직 그를 도울 자가 한 분 남아있음을 발견합니다.
바로 하늘의 보좌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지금 내가 심한 멸시로 마음을 모두 잃은 이 상황도
얼마든지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마치 종과 여종이 주인을 바라보듯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3) 주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림(123:1~2)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1절의 “눈을 들어 주를 향하나이다”(1절)
2절의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입니다.
두 절을 합하면 주께서 긍휼히 여겨주실 때까지
계속 기도하면서 기다리겠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응답해 주실 때까지 기도하기를 결코 쉬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 묵상 : ‘기다림’이란 믿음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끝까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을 잊고 살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잊지 않고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어려움 중에 있는 것을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대로 도우시기에
우리 생각에는 조금 더디 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으신 하나님께서
가장 정확한 시간에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그 때가 오기까지 기도하면서 기다리십시오.
2. 평안한 것, 교만한 것의 위험
1) 이 시인을 공격한 적대자는 ‘평안한 자’와 ‘교만한 자’입니다(123:3~4)
‘교만’은 자기를 최고로 여겨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거부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자라는 것을 그동안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평안한 자’를 교만한 자와 하나로 묶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성경은 아주 여러 곳에서 평강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는 평안한 자를 심판 받을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까?
➠ 문제는 평안하다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한 상태에 빠져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에서는 ‘안일한 자’로 번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평안의 복을 내려 주셨더니,
평안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영적인 게으름에 빠졌습니다.
무사안일에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 보기도 싫어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하나님께 봉사하고 섬기는 일체의 영적인 일에도
싫증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때로 시련과 고통과 같은 긴장된 삶을 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대로 시련과 고통으로 긴장된 삶을 주시는 이유는
무사안일에 빠져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면
우리가 구원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바라시는 것이
우리가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인데,
서 푼어치도 안 되는 세상의 복에 빠져서 무사안일한 자가 되면
하나님 보시기에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시련과 어려움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시련과 고통이 싫으시다면 평안한 때에라도
하나님 찾는 일을 중단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찾는 일에 싫증을 느끼면 하나님께서는 원치 않으시지만
부득이하게 당신에게 시련을 내리실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1) 만일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셨더라면 : 그동안의 고통의 시간을 회고함(124편)
이렇게 한바탕의 시련과 고통을 겪고 난 후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평안한 상태에 이른 124편의 시인은
그간의 일들을 되돌아봅니다.
그때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돕지 않으셨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그 시련 속에서
마치 일본의 동북부 지역의 지진 때 일어났던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고통의 물결에 휩쓸려버리고 말았을 것이라고 회고합니다.
2) 그러다가 시인은 과거 이스라엘을 도우신 하나님의 역사를 회고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사에 수많은 시련과 고통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그때 만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시지 않았더라면 애굽에 멸망하였을 것이고,
40년 광야 세월을 건강하게 보내지 못했을 것이고,
그다음 가나안족과의 싸움이나 블레셋이나 에돔, 암몬 등과의 싸움을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3) 우리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났도다(124:6~8)
그런데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않게 하셨습니다.
때로 이방의 큰 군대가 이스라엘을 마치 사냥꾼의 올무처럼 덮쳐왔지만
하나님께서 그 올무를 끊으셔서 새가 벗어나듯 이스라엘을 구하셨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은 물론 이스라엘 온 민족을 다 구하셨다고 노래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향하여 외칩니다.
“우리를 저들의 이에 씹히지 않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 묵상 :
하나님께 응답을 받거나 도우심을 받았다면
시인처럼 주신 은혜에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 기도제목
1. 주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줄 믿고
끝까지 기도하며 기다리게 하옵소서.
2. 오히려 시련이 있을 때보다
평안하여 문제가 없을 때가 더 위험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평안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3. 주께서 은혜를 주실 때마다
감사와 찬양으로 주신 은혜에 응답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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