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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창-디지털 전장 환경과 리더십
현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클라우제비츠도 인정했던 전장의 불확실성을 상당 수준 낮춰줬다. 가장 큰 변화가 (공통작전 상황도COP), 화상회의, 자료의 공유가 가능해진 것 등이다. 과거 전장지휘 시 고려해야 했던 정보유통과 의사소통에 필요한 시·공간적 요소는 그 우선순위에서 많이 밀린 느낌이다.
디지털 전장에서의 지휘관은 전장 어느 곳에서든 자기 부대에 대한 지휘통제가 가능해졌다. 과거 자기 참모들로만 한정됐던 수평적 지휘관 참모활동이 수직적 제대까지 확대됐으며, 상황의 경중을 평가하기가 용이해 지휘관들이 보다 결정적인 것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또 지휘소 활동은 종전 계획 실시 단계에만 편중됐던 현상에서 벗어나 드디어 평가과정을 포함하게 됐으니 이것이 바로 효과중심작전을 가능케 해 준 것이다. 효과중심작전이란 결국 실시간 나타나는 결과를 보며 최초 계획한 대로 작전이 진행되고 있는가를 평가해 지휘관이 의도한 대로 끊임없이 계획과 실시 단계를 수정·보완시켜 나가는 것으로서 과거 아날로그 환경에서도 시도를 했지만 평가 결과에 대한 신뢰가 떨어짐으로써 전장지휘에 제대로 적용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간부들의 의식이 변화하는 것이다. 첫째, C4I에 관해서는 현재의 하드웨어 능력을 이해하고 그 수준 범위 내에서만 운용해야 한다. COP 작성 시 지나치게 많은 색상과 그래픽을 요구함으로써 정보 소통량이 초과돼 시스템의 성능을 저하시킨다든지, 먼 훗날 가능해질 인공지능적 시스템 수준을 요구하며 불평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생각해야 한다.
둘째, 지금까지 사용하던 결심보조 도구들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지휘관과 참모가 와식상황판 주변에 모여 토의하는 형태의 지휘관 참모활동이 과연 아직도 필요한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이는 지휘관이 가장 우수하고 많이 알고 있다는 가정 하에 비롯된 것인데 디지털 환경에서는 지휘관 개인의 능력보다 제대 간, 기능 간 교류되는 정보가 훨씬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이기 때문에 그 수평·수직적 통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모에게 자기 일을 하도록 보장해 줘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제대별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고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시대에 가능해진 전장 가시화는 자칫 상급지휘관의 지나친 간섭을 유발해 예하 지휘관의 지휘통제를 제한할 수 있음을 명심하고 반드시 각 제대 지휘관은 자신과 자기 제대의 역할에 보다 집중하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아날로그적 생각과 행동을 깨는 것은 분명 위로부터 시작돼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리더십의 발휘, 그것은 전적으로 변화를 자기 것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새로운 전장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우리 고급 간부들의 노력을 기대해 본다. <권태오 소장·육군51사단장> [ 2008년 10월 20일 ]
C4I 발달, 전장의 디지털화는 과거 우리가 전장 상황 파악을 위해 말단으로부터 제대별 순서를 밟아 보고함으로써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상의 제약과 현장에 가 보지 않으면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공간적 제한, 부정확한 표현으로 인해 자칫 발생할 수 있었던 잘못된 상황인식의 가능성이라는 문제점을 극복하게 해 주었다.
리더의 건전한 결심은 정확한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상황인식에 영향을 주는 시간·공간적 요소들은 자체적으로 스스로의 오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신중한 리더는 때로 그 정도를 헤아리다가 오히려 의사결정의 시기를 놓쳐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 자체가 생명 같이 다뤄질 수밖에 없었던 종전의 전장 환경에서는 제한된 상황인식 속에서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리더의 직관력과 판단력 등 개인적 자질이나 특성이 전장의 승패를 좌우하는 요소로 평가되기도 했다. 물론 디지털 환경으로 발전된 현재에도 리더의 우수한 자질은 전장의 대세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예전의 전장보다는 리더의 직관능력이나 의지, 경험적 요소에 대한 의존도가 감소하고 있으며, 다음의 몇 가지 요소가 더욱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고 있다. 우선 현대전의 리더는 디지털 전장의 기초인 C4I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그 지식은 C4I를 단순히 운용하는 수준을 넘어서 개발소요를 제기하고 때로는 리드까지 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둘째, 디지털환경에서는 상황인식에 대한 견해 차이나 전달과정에서의 에러 발생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어떻게 최상의 결론을 도출하느냐가 매우 중요시된다. 따라서 리더는 보다 신속히 객관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의사결정 기법에 익숙해져야 한다. 즉, 다양한 제대의 리더들과 디지털 매체를 통해 원활히 의사소통할 수 있고 동일 사안에 대해 각기 달리 평가하는 그들의 다양한 견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력을 갖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객관적이며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에 바탕을 둔 부하들의 건의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개인의 직관과 경험을 우선시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숨은 의견을 끄집어 낼 수 있는 토론 테크닉이나 장황했던 논의를 결정적인 몇 마디로 요약해 낼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할 것이다.
서양인들은 전통적으로 “왜?” “그래서, 또 왜?” 라는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지는 토론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익숙해져 있는 반면, 우리는 선생님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내고 푸는 방법을 알려주며 나아가 그 해법을 따르게 하는 방식에 길들여져 있다. 이에 따라 우리들은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을 적극 개진하며 객관적인 의견의 일치를 이끌어 내는 토론보다는 혼자만의 사유를 좋아하고 주관적인 의견을 보다 중시해 온 면이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디지털 전장 환경은 이제 우리 군의 리더들이 더 이상 과거의 의사결정 틀에 머물도록 허락하지 않고 있다. 신기술은 분명 리더들이 훨씬 객관적이고 믿을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이 새로운 환경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전장에서의 주도권을 확보, 유지하기 위해 우리들은 신속히 이 변화를 수용하고 적응해야 하는 강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권태오 육군준장·연합사 작전처장> [ 2007년 05월 07일 ] 군의 새내기 간부들에게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는 패기 만만한 젊은이였던 새내기 간부로서 꿈과 희망에 부풀었던 30년 전 내 임관 시절이 생각난다.
아마 지금 각각의 교육과정과 기간은 다르지만 첫 임지로 향하는 신임 간부 여러분 모두도 이렇게 마음 설레고 흥분돼 있을 것이다. 어떤 부대로 배치될까? 전방일까, 후방일까. 내가 만나게 될 부하는 어떤 이들일까? 내가 배운 이 지식만으로 과연 임무를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내 상관은 또 어떤 분일까. 그동안 친하게 지낸 ○○는 어디로 배치될까 등등. 모든 것이 기대되면서 긴장도 되고 한편 두렵기도 할 것이다.
지난 수년간 여러분은 충분히 자신의 기량을 키우고 군 간부로서 필요한 소양을 쌓는데 전념해 왔다. 그야말로 국민들이 만들어 준 칼을 마음껏 사용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쌓는데 전념해 온 것이다. 그 칼은 날카롭지만 때론 엄청 무뎌지기도 하고 짧은 것 같지만 대단히 길어서 긴 창과 맞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그런 칼이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칼을 사용하는 검객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의 기량은 멈춤 없이 계속 발전해야 한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갈고닦아야 한다. 우리는 가끔 군이 특수한 집단이면서도 자기 분야의 전문성 면에 있어서는 일반인의 그것과 비교할 때 많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소총 유효사거리가 460미터인데 하필이면 왜 460미터냐? 외우기 쉽게 400 또는 500미터라고 하면 될 텐데라고 근본을 따져 물으면 잘 모르는 간부가 대단히 많다.
이렇듯 우리 같이 오래된 군인들은 운용에는 능하나 이론과 근본에는 많이 취약했었다. 이제 새내기 여러분들이 이끌어갈 군은 더 이상 그런 약한 면을 용납지 않을 것이다. 완전히 전문화·세분화된 조직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자만이 성장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특히 전쟁사에 관심을 많이 가져라.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안목을 갖기 위함이다. 또 어학 수준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라. 소질이 있다면 제2외국어도 한두 개쯤은 더 하는 게 좋다. 글로벌 환경에 익숙해지기 위한 기틀이다. 그리고 매사 각오를 단단히 해라. 왜냐하면 여러분의 임지는 여러분이 꿈꿔 오던 곳과는 대단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도전이 필요할 것이다. 단지 간부라는 이유 하나로 초인적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같은 또래의 병사들보다 더 잘 뛰어야 하고 더 잘 쏴야 하고 더 잘 차야 할 것이다. 또 며칠씩 잠을 자지 않고도 항상 또렷한 자세와 눈망울로 임무에 임할 것을 요구받을지 모른다. 심지어는 스스로 간부라는 멍에를 벗어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로 힘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와 영광은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쁨에 여러분은 전율케 될 것이다. 매진하라. 젊음과 충정을 갖고. 그리고 아쉽고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국민 모두가 뜨거운 관심으로 너를 보고 있음을 결코 잊지 마라. <권태오 육군준장·한미연합사 작전처장 2007.03.14 >
나이 20세에 징집돼 베트남에 파병됐고 특수 장거리 정찰대에서 1년간 근무했으며 이후 뛰어난 전투 공로로 대통령령으로 병사에서 바로 중위로 임관된 사람이다. 그 당시의 베트남전 이야기가 바로 미국의 대표적 베스트 셀러였던 ‘We were soldiers once…and young’의 배경이 됐으며 이후 현역으로 소령까지 근무하다 전역해 주 방위군이 됐으며 연방 수사국에 들어가 미국 서부지역 환경 및 생태계 담당 수사책임자로 근무하면서 틈틈이 군생활을 계속해 대령까지 됐다.
그는 지난해 60세가 돼 만기 전역했고 이제는 수영장 딸린 집에 살면서 사냥도 하고 때론 수십 일씩 떠나 여러 친구 집을 방문하기도 하면서 소일하고 있다. 또 수시로 각종 훈련과 연습 때 관찰관으로 초빙돼 많은 나라를 순회하며 관찰자 임무를 수행하는데 우리 한국에도 연합연습과 관련해 자주 온다.
그는 이제 연금 수혜자가 됐는데 연방수사국에서, 군에서, 상이 군인으로, 또 연방 사회보장제도에 의해 그에게 지급되는 연금은 일반 월급쟁이 수준 이상으로 든든하다고 한다. 거기에 수시로 관찰관 임무를 하면서 받는 수당도 있으니 가히 풍요로운 노후가 보장된 듯하다.
가끔 그와 같이 근무할 때 미군과 한국군의 전역 후 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 한국군과 미군들의 큰 차이점은 미군은 전역 후 미래에 대해 그다지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취업을 원하든 개인 사업을 원하든 아니면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하든 군과 국가에서 충분히 보상해 주는 제도가 그들에게는 있다.
누구나 국가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어찌 한국 군인만 유별나냐고 우리 군인의 길을 폄훼할 분도 있겠지만 우리 한국의 군에 있어서만은 그들의 길이 분명 일반 사회인들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직종은 철없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또 아래 계급부터 순서대로 밟고 올라가야 한다. 일단 시작하면 쉽게 직종을 바꿀 수도 없다.
하다가 중지하고 다른 일 하다가 다시 들어올 수도 없다. 더 근무하고 싶어도 진급에 선발되지 않거나 일정 연령이 되면 젊은 나이에도 그만둬야 한다. 그래서 일반사회로 들어가려 하면 너무나 동 떨어진 분야였기에 딱히 환영하는 곳도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런 시기가 당사자의 가정으로서는 가장 소비가 큰 시기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으로서 다른 나라가 벤치마킹하는 제도도 많고 군도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간과되고 있던 여러 가지가 있긴 하지만 군 간부들의 사기 복지에 있어서는 단연 전역 후 미래에 대한 대책이 최우선일 것이다. 젊은 나이에 전역해야 하는 후배들을 더 이상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지 않아도 되도록 좋은 제도가 빨리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태오 준장·한미연합사 작전처장> 2007.03.07
그러니 자연히 당시의 군인은 신의도 없고 돈 때문에 몸을 파니 창녀와 같다고 평가받은 것이다. 이런 중에 황제가 되어 자기 나라는 자기 손으로 지켜야 한다고 징병제로 시민군을 구성한 나폴레옹의 군대는 당시 그 얼마나 믿을 만하고 탄탄한 전력이었겠는가? 결국 나폴레옹이 잘 싸워 유럽을 평정한 것이 아니라 그 제도가 출중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후 전 세계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징병제를 택해 국방의 기틀을 세웠고 우리나라도 현재까지 그 제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용병제 때는 돈의 액수에 따라 개별적 전투력에 차이가 났고 때로는 승패도 결정됐겠지만 징병제는 군이 자국민으로 구성되고 유지되므로 기본적으로 책임감의 강도가 다른 제도보다 훨씬 높다. 또 동일 제도의 국가라면 그 국민의 관심 정도에 따라 전투력에 차이가 나기도 한다.
즉 국민적 관심이 정신전력의 기초가 돼 자국 군인들이 죽음에 임해서도 꺾이지 않는 기개와 충성심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우리 군은 지금 자기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국민이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에 오늘도 죽음을 무릅쓰고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다짐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지원병제를 택하고 있지만 국가가 필요로 할 땐 언제든지 자기를 희생할 수 있다는 강한 국민적 모럴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에 어설픈 징병제 군대 이상의 전력을 발휘한다. 결국 자기 국가와 국민들의 무한한 존경과 애정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음을 믿기 때문에 실종될 수도, 포로가 될 수도, 또는 타국의 어느 산골짜기에서 수습되지 않은 시신으로 남게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면서도 연봉 수백만 달러의 촉망받는 운동 선수도 과감히 군 입대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이라크전에 투입됐다가 한쪽 다리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한 미국 주방위군 병사를 맞이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공항에서 집까지 그의 전 이동로에 마치 과거 우리나라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귀국할 때 연도에서 시민들이 환영해 주던 모습을 연상케 할 정도로 어린아이부터 나이 먹은 할머니까지 많은 시민이 나와 성조기를 흔들며 그를 맞아 주고 있었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유치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군복 입고 서울 4대문 안을 출입하지 말라고 통제한 이후 우리는 군복 입고 시내를 다니는 장병들을 거의 보질 못하고 있다. 어쩌다 눈에 띄는 이들은 웃옷 자락 빼서 불량하게 보이는 예비군복 아저씨들뿐이다.
더욱 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이제 잘 다려 입은 군복 차림으로 자랑스럽게 예쁜 아가씨와 데이트하고 있는 젊은 간부, 병사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국민들의 시선이 그립다. 나의 군대에는 이것이 너무 아쉽다. <권태오 육군준장 한미연합사 작전처장 2007.02.16
나의 군대 이야기
물론 잘 때는 형이 떼어 가져갈세라 누운 머리맡 옆 벽에 붙여두고 눈만 뜨면 바로 입에 넣어 다시 씹곤 했다. 또 가끔은 어른들이 베트남 가면 돈 벌어 온다고 하던 말을 들으며 나도 빨리 커서 그 나라에 가서 돈 벌어야지. 그래서 맛있는 것 많이 사 갖고 와야지 하고 비록 어린 마음이었지만 나름대로는 제법 수준 있는(?) 목표를 세우곤 했었다.
이후 성장하며 변화는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는 군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결국 장교의 길을 택해 군문에 발을 들여 놓게 됐다. 그러나 내가 사관학교에 들어 갈 무렵에는 베트남에서 우리 군이 철수하는 시기였고 입교한 그 이듬해는 그나마 전쟁도 완전히 끝나 버리고 말았다. 내가 그렇게 들어섰던 군인의 길도 이제 30년이 넘어섰다. 돌이켜 보면 그 역정 중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많은 감동의 순간이 있었고 그 기억들은 내가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큰 힘으로 작용해 지친 심신을 추스르게 하곤 한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중요한 기동 훈련 후 복귀 행군 중에 너무 많은 비가 퍼부어 도저히 중간 숙영을 할 수 없었고 군장 속에 넣어둔 속옷마저 완전히 젖어 버린 상태여서 우리는 그대로 계속 행군하기로 결정, 장대 같은 빗속을 걸었다. 다음 날 새벽, 주둔지로 들어설 무렵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은 완전히 갰고 밝은 해가 내리 쪼이고 있었다. 전체 부대원 중 낙오자도 한명 없었다. 대오는 질서정연했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군가가 들려왔고 그 소리는 이내 전 장병의 제창으로 확대됐다. 모두가 해냈다는 성취감, 자신감을 한껏 느끼고 있었다.
저 멀리 대열이 들어서는 부대 입구에는 밤새 잠 못 이루고 걱정하던 상급 지휘관, 참모들과 부대 간부 가족들이 나와 먼저 도착한 첨병에게 꽃을 건네주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고 나는 그때보다 우리의 세상 천지가 더 맑고 밝은 적을 본 적이 없다. 이 경험은 ‘도전을 극복한 값진 환희’로 내 기억 속에 강하게 각인됐고 그날 이후 언제나 내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했다.
전우들 역시 나름대로 잊지 못할 군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첫 휴가 나오면 며칠 밤을 새우며 군에 아직 안 간 친구들에게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여자 친구들로부터 군대 가서 축구한 이야기가 가장 듣기 싫은 이야기란 핀잔을 받으면서까지….
바라옵건대 여러분의 군대 이야기도 제발 좋은 추억이 많은 이야기였으면 한다. 어두운 것을 확대하거나 경험하지 않고 지어낸 ‘뻥’에 의해 더 이상 군이 두렵고 꺼려지는 곳으로 비하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30년 넘게 몸담아 온 내가 아는 우리 군 병영은 몰상식한 이들이 말했던 ‘어둠의 자식들’이 모였던 곳이 절대 아니며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도전의 기회를 주고 극복의 기쁨을 맛보게 해 미래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키워준, 진정 가치 있는 조직이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권태오 육군준장·한미연합사 작전처장 2007.02.01 > 내가 근무하는 곳
물론 이곳의 일부는 한국군 야전과는 다른 환경 때문에 혜택을 보는 면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현실은 일반적인 인식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업무는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쓰지만 알다시피 미국인은 영어 외에 다른 나라 말, 특히 한국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모두 통·번역을 해야 한다. 연합사에서 잘 사용하는 농담이 있다.
‘세상에서 3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트라이 링구얼이라고 하고 두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바이 링구얼이라고 하는데 한 나라 말밖에 못 하는 사람은 미국사람이다’라는 유머다. 이렇듯 이곳 대부분의 미국 사람은 한국말을 못 한다. 이들에게는 다른 나라 말을 배울 특별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미군들은 가끔 2개 국어를 동시에 사용해야 하는 한국군들에게 미안한 마음에서 이 유머를 자주 사용한다. 이곳의 한국군은 기본적으로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다.
다음은 문화적 문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사회·문화의 전반이 미국과 유사한 환경이고 스스로도 미국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곳에 와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다. 용산 기지 내부에서는 엄격하게 미국과 미군의 법률, 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처음 근무하는 한국군은 영내에서 차량 운행하면서 과속이나 일단정지 무시 등으로 인해 헌병으로부터 자주 교통위반 딱지를 받는다. 약간은 달리 알고 있었던 문화적 인식 차이가 재미있는 해프닝을 만들기도 하고 기분 나쁜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여하튼 이곳에서 근무하는 우리 한국군은 여러 면에서 애로사항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에 가서 직접 그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미국에 관해 더 많이 배운다는 장점도 있다.
미국에 대해 조금 안다는 사람은 3단계로 변화하는 것 같다. 1단계는 막연한 동경의 단계다. 우선은 자기보다 모든 것이 나아 보이니 다 꿈같아 보이고 막연한 동경에 사로잡히게 되며 그래서 영어도 목표도 없이 무작정 열심히 배우려 하게 된다. 2단계는 미움의 단계다. 어느 정도 알고 나니 호기심도 없어지고 그냥 그저 그런데 그간 너무 공을 기울인 것이 후회스러워 그냥 미워한다.
3단계는 이해의 단계다. 결국 미국도 미국인도 우리도 다 똑같음을 알고 나서는 이해의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이는 단계로 분류한 것이지만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세 종류의 인식 같기도 하다. 미군, 미국인도 똑같은 사람이니 그들도 아마 한국에 대해 이런 인식을 똑같이 갖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 연합사는 이런 여러 단계 중 어디 하나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 섞여 있으면서도 동일한 목표를 위해 조화를 이루며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곳이다. 그것도 국적이 다른 사람들끼리. 자신이 어떤 단계이든 어떤 부류의 인식을 갖고 있든지 간에 임무 앞에서는 항상 인내를 갖고 이해와 협조, 희생을 앞서 생각하며 최상의 전비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그런 곳이다. <권태오 육군준장·한미연합사 작전처장 2007.01.16 > 새해 병영
집사람은 “어머. 여보, 이번 겨울도 주말만 되면 눈이 오려나 봐. 아저씨들 오늘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눈 치워야겠네. 정말 성질나겠다. 그치?” 하고 걱정을 한다. 예전에 내가 전방 근무할 때 주말마다 내리던 눈 때문에 신랑에게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던 시절이 생각나는가 보다. 요즈음은 아마 군에 가서 운전병 노릇 하는 아들 놈 걱정 때문에 여러모로 더욱 마음이 쓰일 것이다.
일찌감치 딸 아이를 부추겨 부지런히 집을 나섰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남산 바로 아래에 있어 눈 내린 산길을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산책하기가 쉽다. 곳곳의 소나무 가지 위에 듬뿍 쌓여 못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혹시 가지라도 부러뜨리면 어쩌나 걱정스러운데 용케도 잘 버티고 있다. 눈 사이로 이미 많은 사람이 밟고 올라간 길을 따라 남산에 올랐다.
군데군데 멈춰 서서 딸애가 찍어 주는 카메라 앞에서 한껏 폼을 잡으며 모처럼 여유 있는 아침을 보낸다.
우리 처에는 6명의 병사가 있다. 나는 내 아들 또래의 이 청년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고 있다. 이들은 모두가 제각기 열심히 공부했고 사회생활도 하던 소위 한가락 하는 친구들이다.
지난해 7월 북한이 느닷없이 새벽에 미사일을 쏘아 올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해 대단히 바빴던 시간에 우리는 여러 가지 새로운 분야를 접하면서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 이 병사들에게 주제를 하나씩 선정해 나름대로 연구를 한 뒤 간부들 앞에서 발표하라고 했다. 이른바 병사들에게 간부들을 대상으로 간부교육하라고 한 것이다.
나는 이 친구들이 준비해 간부교육을 한 그날 우리 군의 수준이 세계 제일인 이유를 확실히 깨달았고 이러한 젊은이들과 같이 근무한다는 데 상당한 자부심을 갖게 됐다.
아직도 식사를 같이 할 때나 차 한잔을 함께 마실 때면 계면쩍어 하면서 수줍어하는 아기 모습이 남아 있지만 역시 이들은 나름대로의 역할을 다하는 훌륭한 청년들이며 우리 세대에게 밝은 미래의 희망을 주는 꽃돼지들이다.
부디 새해에는 이런 아들들에게 군생활 자체가 더 이상 무섭고 두렵지 않고 명실공히 자신의 일생에서 유소년기를 벗어나 청년기로 들어서고, 그래서 한 사람의 진정한 성인으로 대우받고 또 그 역할을 시작하는 분기점이며 공동생활의 틀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그래서 충분히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멋진 곳으로 인식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병영생활 자체에서도 자신이 하는 일에 미련과 고집을 갖고 최선을 다하며 인정과 칭찬, 배려와 양보가 앞서고 그래서 모든 국민들이 희망과 신뢰를 갖고 무한한 사랑을 주는 그런 곳으로 한껏 발돋움하기를 기원한다. <권태오 육군 준장·한미연합사 작전처장 2007.01.03 > “보석 많았으나 담을 그릇 작아”
나 자신이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할 때 여러 차례 낙방의 쓴잔을 마셔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진급 대상자들 각 개인이 얼마나 현 직책에서 최선을 다하며, 또 그 가족들은 지금 이 순간 지성을 다해 자기 배우자, 나아가 자기 가정에 진급 선발의 영광과 은총이 있기를 빌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아마 선발위원회에서 위원들 각자가 갖고 있는 이런 심정과 냉정할 수밖에 없었던 심의 결과에 대한 회한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라는 뜻에서 이렇게 소감문이라도 남겨 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지난 2주는 공석검증위원과 선발위원회 ‘을’ 3번 위원으로서 너무나 힘들고 잔인한 기간이었고 한편으로는 큰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대상자들의 자력 분석시 그들의 군 생활 역정을 유추해 가면서 때론 그들과 함께 밤새 보고서와 작전계획도 만들어 보고, 저 멀리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같은 열사의 땅을 달려도 보았으며, 수년간 햇빛 하나 없는 지하벙커에서 생활하던 시절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과연 이 시기에 어떤 이유로 수많은 부대 중에서 선봉부대까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듬해 평정을 ‘C’를 받았는지? 또 줄곧 평정은 ‘A’를 받았으나 어째서 우수부대 표창장 한 장 없는 것인지? 머리 좋고 영리하다는 정책형 장교가 군사교육은 ‘B’밖에 못 받고 있는지? 외국 군사교육을 받은 최고의 엘리트가 왜 근무평가는 좋지 않았는지? 등 골똘히 각 대상자들이 겪어 온 시공간을 넘나들었다.
어떤 이는 계속 야전에서만 그것도 심신의 고통이 뒤따를 만큼 업무량이 많은 주무 부서에서만 근무하면서 평정도 ‘A’와 ‘C’를 들락날락하며 지내 왔고, 어떤 이는 계속 도회지 주변에서 비교적 업무가 수월한 곳에서만 근무하면서, 안정된 가정생활을 보장받으며 특정업무 한 가지만 하면서 평정도 ‘A/1’을 받으며 성장해 온 경우가 있었다.
장점만을 본다면 후자는 전문성이 있다는 말로, 전자는 산전수전 다 겪고 묵묵히 자기 일에 전념해 온 장교라는 말로 평가할 수 있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전자가 오히려 동정적이었던 것은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듯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가끔씩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되는 상황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가끔은 공석 한 자리를 놓고 몇 시간씩 토론하면서 어려운 심의를 진행해 나갔다. 우수 자원이 많았으므로 비록 이들 중에 비선자가 생기는 아픔은 감수해야겠지만 결코 선발돼서는 안 될 품성 저열자나 대민 악성사고 관련자, 상습 음주운전자 등은 선발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데 중론이 모아졌다. 그리고 그 원칙은 고수됐다.
반면, 참고된 단순 음주운전 적발자나 불가피하게 지휘 또는 참모 책임에 의해 징계받은 자들은 충분히 그 입장에서 검토됐다.간혹 엄청나게 재수 좋은 친구들도 있었다. 다른 경쟁자가 모두 결정적인 결함이 있거나 일견 절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자력관리를 소홀히 한 경우, 혼자서 그 공석에 무혈 입성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기준선은 엄격히 적용됐다.
비록 공석 판단을 거쳐 이미 확정된 자리였고 논의 없이 결정할 수 있었어도 도저히 그 한 명뿐인 대상자의 자력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만일 그를 진출시킬 경우 무수한 우수 비선자들에게 큰 비난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됐을 경우, 우리는 이 공석을 재심의해 다른 대상자로 조정했다. 심의에 참가하며 많은 가르침을 받았지만 이 기회에 후배 장교들과 공유해야 할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즉 ‘자신을 그르치게 만드는 가장 큰 적은 자만’이라는 것이다. 소령 때까지는 경력과 교육 성적이 좋아 중령도 일찍 진급했는데 자만에 빠져 사생활이 문란해지고 부하와 주변 동료를 업신여기다가 지탄을 받고 결국은 이것이 비선의 요인이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자질과 능력은 뛰어나지만 결국 자신을 관리하지 못한 잘못이 진출에 장애가 됨을 명심하고 스스로를 잘 다스려 나가는 자기 성찰의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선발된 자들 역시 절대 겸손해야 한다. 선발되지 못한 다른 동료보다 인간적·능력적으로 모든 면에서 자신이 앞서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만일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은 바로 그 순간부터 자만의 늪에 빠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또 비선됐다고 자책하거나 비굴해지지 말아야 한다. 다만, 인생을 살면서 닥칠 수 있는 여러 번의 시련 중 하나이겠거니 생각해야 한다. 어려움이 있고 나서 더욱 단단해지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인생, 군생활은 마라톤이다. 빨리 넘고 나면 그 다음 고개는 매우 힘들어진다. 추운 지방에서 자란 나무일수록 나이테가 촘촘하고 단단해 그 쓰임새가 더욱 중시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이제 이 심의를 종결하면서 “우리 출신은 왜 적게 됐느냐?” “왜 우리 부대는 이렇게 적게 나왔느냐?” “○○○는 반드시 될 줄 알았는데 왜 안됐느냐?”라는 수많은 질문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성실한 자세로 답할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이 말을 덧붙일 것이다. “담아야 할 보석은 많았으나 담을 그릇이 적었노라. 아쉬움이 있었으나 그나마도 담을 수 있었음에 만족하노라.” 수많은 비선자 여러분들! 제한된 공석으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답을 낼 수는 결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위원 모두는 최선을 다해 모두가 공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음을 자부합니다.
끝으로 여러분들이 걸어 온 국가와 민족을 위한 그간의 신성한 봉사와 헌신의 여정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만일 자신에게 시련이 닥쳤다면 그 역경을 헤치는 지혜가 있기를, 한편으로 기쁨이 주어졌다면 그것에 방종하지 않는 겸손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준장 권태오 연합사 작전처장 2006.10.1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