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장복(天命長福) ① 양성보명(養性保命)-성품을 기르고 목숨을 잘 보전한다.(3)
말하지만, 모든 사람이 천명장복(天命長福-천명을 다해 오랫동안 복을 누린다)을 원하지만 쉽지 않다. 살다 보면 일상에서 혈기와 욕심, 잘못된 생활 습관 등에 의해 자신의 천명을 단축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홍만종은 가장 먼저 양성보명(養性保命-성품을 기르고 목숨을 잘 보전한다.)할 것을 강조하였다. 지난번에 홍만종이 말한 양성보명의 방법으로 첫째 면벽(面壁)과 좌한(坐閑)에 힘쓸 것, 둘째, 청성(淸性)에 힘쓸 것, 셋째, 절제절욕(節制節慾)할 것을 살펴 보았다. 이번에는 양성보명의 네 번째 방법으로 강조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홍만종은 안분지족하는 길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영역에서 실천할 것을 주문한다. 以不寒爲溫(이불한이온) 춥지 않을 만큼 따뜻하게 하고 以不飢爲飽(이불기위포) 시장치 않을 만큼 배를 채우네 以無辱爲榮(이무욕위영) 욕심 없는 것으로 영화를 삼고 以無禍爲福(이무화위복) 화가 없는 것으로 복을 삼아라 대부분은 지나치게 따뜻하게 하므로 몸을 늘어지게 하여 상하게 하고 지나치게 많이 먹어 탈을 만들고 지나치게 욕심을 많이 부려 부귀영화도 망치고 화를 크게 만들어 복을 망치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절제와 삶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잘 아는 한 소화기 내과 전문의와 위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위암과 그 치료에 관한 책을 몇 권 썼는데 대부분이 자신의 습관 다스리기와 관련되어 있다. 그분에 의하면 도저히 고칠 것 같지 않은 위암 말기 환자도 고치는 경우가 있고, 정말 초기라 쉽게 고칠 것 같은 위암 환자도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였다. 그분의 이야기를 분석해 보니 모든 것이 성정(性情)과 생활 습관에서 기인하였다. 말기 암 환자지만 고칠 수 있었던 사람은 자기관리가 분명하여 의사의 지시대로 생활하며 특히 규칙적인 식사와 생활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하였으며,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며 화가 날 수 있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며 화내는 일을 삼갔다고 했다. 그러나 초기지만 고치지 못하는 사람은 불규칙한 식사와 운동 부족, 때로는 폭식을 하였다. 그 원인으로는 잘못된 생활 습관과 스트레스였다는 것이다. 특히 모든 것의 원인은 스트레스였는데 그 스트레스로 인해 생활의 리듬이 깨어지고 정상적인 치료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스트레스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내려놓지 못하는 자신의 욕망과 인간관계 등에서 형성된 화를 참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욕망과 화로 인한 스트레스는 불규칙한 식사와 폭식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해 암을 이겨낸 사람은 안분지족하였으나 이겨내지 못한 사람은 안분지족하지 못했다. 안분지족이란 단순히 현재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고 절제하며 욕심을 줄이고 화를 참아내는 자세이다, 만족하고 참다 보니 일상에서 화가 닥치지 않으며, 평온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흔히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는 말은 스트레스는 모든 생체리듬을 경화시키고 생활 습관을 불규칙하게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이 스트레스의 원인은 욕망과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자신의 성정(性情) 때문이다. 따라서 열심히 일하지만 안분지족하며 즐기는 자세는 스트레스를 제거하고 생체리듬을 활성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어서 홍만종은 안분지족하기 위한 생활 자세로 다음 여섯 가지를 추가로 제시한다. 첫째,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잘 먹어라. 身閑不如心閑(신한불여심한) 몸 편함이 마음 편함만 못하고 藥補不如食補(약보불여식보) 약으로 보하는 것이 먹는 것으로 보하는 것만 못하다 위의 둘은 관계가 없는 듯하나 지극히 깊은 관계가 있다.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은 평정심을 잃은 것이다. 화나는 일이 생기거나 바라는 일이 잘되지 않거나 엉뚱하게 바쁜 일이 생기거나 하면 규칙적인 생활이 깨어진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매사가 뒤틀린다. 생활에서의 규모 있는 시간 관리가 되지 않고 특별히 바쁘지도 않은데 늘 쫓기기도 한다. 그러면 식사가 불규칙하고 수면 등 모든 생활의 질서가 깨어진다. 그러면 생체리듬도 깨어진다. 그러면 몸은 균형을 잃고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때 사람들은 보약을 찾는다. 그런데 몸에 좋다는 것을 아무리 먹어도 회복되지 않는다. 약은 약일 뿐이다. 약도 효과가 있으려면 마음에 평정심을 찾고 순하게 받아들여야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심보(心補) 즉 마음을 보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특히 바쁜 현대인들은 시간의 굴레에서 직장의 틀에서 늘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긍정적인 마음 자세이다. 바쁘게 살다 보니 생활의 균형이 깨어지고 식사 등 모든 것이 불규칙하다. 스트레스도 쌓인다. 그래서 체격은 좋으나 영양은 불균형을 초래하고 각종 질환에 허덕인다. 그래서 찾는 것이 건강 기능식품과 보약이다. 현대는 보약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눈만 뜨면 텔레비전과 신문 등 광고에 건강기능식품 등 보약 선전이다. 물론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먹어 결핍된 영양을 보충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치면 그 건강기능식품과 보약이 오히려 몸을 망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약으로 보하는 것보다 음식으로 보하는 것이 낫다는 것은 마음이 평정심을 가질 때 음식을 균형 있게 골고루 먹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그 어떤 보약보다 낫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근원에는 마음의 평정심이 있다. 둘째, 말을 적게 하고 적게 먹어라. 口中言小(구중언소) 입속에 말이 적으면 心頭事小(심두사소) 마음과 머리에 복잡한 일이 적어지고 肚中食小(두중식소) 배 속에 먹은 것이 적으면 夜間睡小(야간수소) 밤중에도 졸음이 적게 온다. 이 말은 모든 것을 기준보다 적게 하려고 노력하라는 의미인데 그게 정말 쉽지 않다. 홍만종은 말이 많으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많이 먹으면 몸이 힘들어하기 때문에 언소(言小)와 식소(食小)야말로 신선으로 가는 첩경이라 하였다. 대체로 말이 많은 사람은 어떤 유형이든 욕망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욕망이 물욕과 권세욕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자신을 들볶는다. 술에 취하면 말이 많은 사람은 역시 내면의 욕망이 술기운을 받아 용솟음치기 때문이다. 나도 술에 취하면 말이 많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지나고 반성해 보면 역시 욕망이 솟구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물욕과 권세욕은 지적 욕망이나 다른 욕망과 달리 혈기와 투기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니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마음과 머리가 복잡하다는 것은 그만큼 욕망이 많다는 것이다. 먹는 일도 욕망과 비례한다. 식욕은 건강한 삶의 척도이다. 그러나 그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 역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입맛에 맞는 음식이 있으면 한없이 먹는 것은 몸의 피로를 가중시킨다. 그 많은 음식을 소화하려면 몸은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마리의 양을 두고 실험을 하였다. 한 마리의 양에게는 그 양이 좋아하는 먹이를 먹는 대로 계속 주었다. 다른 한 마리의 양에게는 시간을 정해놓고 일정량을 주었다. 몇 년이 지났다. 먹고 싶은 대로 먹은 양은 털이 빠지고 늙어 버렸다. 그러나 매일 일정량만을 먹인 양은 털에 윤이 나고 늙지 않았다. 무엇을 말해 주는가? 먹고 싶은 대로 먹은 음식은 자신의 머리와 몸을 망친다. 그런 점에서 최근 텔레비전의 [벅방 프로그램]은 걱정이 된다. 많이 먹으면 누구나 저절로 졸음이 온다. 그러면 먹은 것이 채 위에서 안착도 하기 전에 누워 잔다. 그러면 위산이 역류하여 식도염을 일으킬 수 있다. 식도염이 심하면 식도암이 된다. 그뿐 아니다. 소화불량과 함께 운동 부족으로 비만을 가져오고 대사증후군이 발생한다. 많은 현대인이 외식 등을 통해 지나치게 많이 먹기 때문에 대사증후군에 시달리는지도 모른다. 셋째, 그칠 줄을 알아라 富貴不知止殺身(부귀부지지살신) 부귀를 그칠 줄을 모르면 자기 몸을 죽이고 飮食不知止損壽(음식부지지손수) 음식을 그칠 줄을 모르면 자기 목숨을 줄인다 두 번째와 같은 맥락이다. 부귀를 그칠 줄을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 더 많이 갖기 위해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면 처벌을 받는다. 옛날에는 부귀를 지나치게 누리려 하다가 탄핵을 받으면 재산을 몰수당하고 처형까지 당할 수 있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치게 부귀에 눈이 먼 사람은 온갖 편법을 쓰기 때문에 법적 처벌은 물론 주위의 원한을 산다. 그 원한 맺힌 사람들은 그를 그냥 두지 않는다. 늘 기회를 보면서 그를 처단하려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통령으로 만족하였다면 옥살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권세욕에 물욕까지 더했으니 불명예스러워졌다. 부귀를 그칠 줄 모르는 사람은 대체로 향락도 그칠 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귀를 그칠 줄 모르면 결국 자신을 죽이는 일이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음식을 그칠 줄 모르면 수명을 줄이게 되어 있다. 그런데 상당수의 부귀를 그칠 줄 모르는 사람은 음식을 그칠 줄 몰라 늘 맛나는 음식을 찾아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몸을 망치고 보약을 찾아 나선다. 넷째, 검소하고 탐욕을 버려라 福生於淸儉(복생어청검) 복은 맑고 검소한 곳에서 생겨나고 道生於安靜(도생어안정) 도는 편하고 고요한 곳에서 생겨나네 患生於多慾(환생어다욕) 근심은 욕심 많은 데서 생겨나고 禍生於多貪(화생어다탐) 화는 재물을 탐내는 곳에서 생겨나네 복(福)이 맑고 검소한 곳에서 생겨난다는 것은 결코 가난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근면 성실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소득을 구하되 부정되지 않으며 안분지족할 줄 안다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복이 권세와 재물에서 온다고 여긴다. 물론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재물이 있어야 생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서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은 늘 부족하다. 이웃이 고급 외제차를 타니 그보다 못한 국산 세단을 타는 것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쪽팔린다고 여기는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 이웃이 1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가는데 자신은 못 가기 때문에 삶이 우울하고 불만인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 두 식구가 사는데 이웃은 50평 아파트에 사는데 자신은 32평 아파트에 산다고 우울한 사람 역시 절대 행복할 수 없다. 재물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먹고 살 수 있으며 편히 잠잘 수 있으면 될 수 있다. 권세도 마찬가지이다. 동창 친구 누구는 벌써 어떤 자리에 올랐는데 ‘나는 왜 이꼴이냐’고 한탄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단지 그것이 자신의 성취동기를 일깨우는 데만 작용하면 족하다.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면 늘 부족할 수 있고 불행할 수 있다. 자기만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갖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는 욕망 과잉의 시대이며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먼(David Riesman 1909〜2002)이 말한 타인 지향형의〈고독한 군중 The Lonely Crowd〉이 넘치는 세상이다. 그래서 소득은 높고 좋은 집에서 사는데도 행복지수는 낮다.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세계적으로 하위수준이다. 그만큼 삶을 타인과 비교하며 타인 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낮은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의 출산율과도 연관이 된다. 국가 정책적으로도 이를 살펴야 하지만 개인의 삶의 가치관도 점검해 보아야 한다. 道生於安靜(도생어안정) 즉 ‘도는 편하고 고요한 곳에서 생겨난다’고 하는데 여기서 도(道)는 도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의 도리, 아름다움, 즐거움, 즉 행복이라 생각하면 된다. 행복은 결코 나이트클럽이나 시끄러운 관광지나 화려한 축배, 넘치는 밥상에서 생겨나지 않고 몸과 마음이 편안한 데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앞의 福生於淸儉(복생어청검)과 통한다. 그리고 늘 욕심은 근심을 부른다. 그래서 욕심은 늘 근심의 근원이다. 재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화(禍-재난, 허물)를 부른다. 재물에 대한 집착으로 화를 부른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이 말은 재물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가지는데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다섯째, 맑고 참된 곳에 자신을 의탁하라 風流得意之事(풍류득의지사) 풍류로 득의한 일이라도 一禍便生悲凉(일화편생비량) 한번 편히 지나고 나면 처량한 생각이 들고 淸眞寂寞之鄕(청진적막지향) 맑고 적막한 시골에서도 愈久轉增意味(유구전증의미) 오래 머무르면 의미가 있어지네 풍류(風流)는 화조풍월(花鳥風月)이란 말과 같이 속된 일을 떠나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음악을 즐기며 노는 것을 말한다. 꽃과 새와 바람과 달이 어우러졌으니 얼마나 좋으랴. 신선의 경지이고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의 ‘신선놀음’이다. 득의(得意)는 모든 일이 뜻대로 되어 참으로 만족스러운 상태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다. 모든 것은 흐른다. 상황이 바뀌기에 새로운 상황이 다가오면 맞지 않고 새로운 일이 생긴다. 영원히 붙잡아 놓을 수도 없다. 그러기에 風流得意之事(풍류득의지사)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고 허무해진다. 그러니 너무 그런 風流得意之事(풍류득의지사)를 쫓지 말라는 것이다. 비록 淸眞寂寞之鄕(청진적막지향)이라도 愈久轉增意味(유구전증의미)이다. 淸眞寂寞之鄕(청진적막지향)은 탐욕적인 세속에 때묻지 않은 맑고 고요하고 적막한 산중의 마을이다. 그런 곳은 사람의 왕래가 적고 호젓하지만 외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런 곳도 오래 머무르면 마음이 맑아지고 삶에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탐욕이나 풍류 등 세속적인 것보다는 맑고 고요하며 의미 있는 삶에 의지하라는 것이다. 안분지족하라는 의미이다. 여섯째, 취하지 말고 건강할 때 쉬어라 醉後狂言醒時悔(취후광언성시회) 취한 후에 미친 소리 하면 깨고 나서 후회하고 安不將息炳時悔(안불장식병시회) 편안(건강)할 때 쉬지 않으면 병이 나서 후회하네 술에 만취해 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안다. 술에 취했을 때는 온갖 말을 다하고 고집도 부리고 자기주장에 열을 올린다. 때로는 혈기를 참지 못해 울분을 터뜨리기도 하고 술이 화근에 되어 만용을 부리므로 큰 화를 만들기도 한다. 음주운전이 곧 그런 것이며 술로 인한 다툼도 그런 것 때문이다. 술은 처음에는 즐거움이지만 취하고 나면 마약이 되어 이성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그러니 깨고 나면 후회할 수밖에 없다. 깨고 나서 후회를 하지 않는 사람은 감정이 왜곡되었거나 성정(性情)이 사나워져 자기 극복과 성찰 능력이 무너진 사람이다. 그러니 취하지 말라는 뜻이다. 술을 마시되 취하고 나서 후회할 일을 미리 생각하여 절제하고 어느 정도에서 만족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이태백도 그랬듯이 처음에는 내가 술을 마시는데 취하고 나니 술이 나를 마시기 때문이다. 몸이 피로하고 어딘가 문제가 있는 듯하여 병원에 가면 의사는 무조건 좀 쉬라고 한다. 쉬는 것 즉 휴식도 보약 이상의 보약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건강할 때 휴식하지 않고 일하고, 휴식하지 않고 즐기고. 휴식하지 않고 먹고 마시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몸이 망가져서 극한에 이르면 후회한다. 그러니 안불장식(安不將息-건강할 때 쉬라)하라. 그렇지 않으면 병시회(炳時悔-병이 나고 나서 후회한다)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애주가는 병을 얻어야 술을 끊고 애연가는 병을 얻어야 담배를 끊는 경우가 많다. 이미 늦었다. 미리 어느 정도의 선에서 만족하고 절제할 줄 알라는 뜻이다. 삶을 돌이켜 보면 모든 화(禍), 병(炳), 불행은 부족한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넘치는 곳, 단순하고 고요한 곳에 아니라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 만족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 과욕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현대인의 삶에서 부족함에 만족하고 그칠 줄 아는 삶을 살기는 매우 어렵다. 재독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라고 그의 책에서 현대인들은 피로 사회에 살고 있다고 했다. 무한경쟁과 욕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옛날과 달리 현대는 그것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개인이 마음을 먹어도 어찌하기 힘든 문제가 많이 도사린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데이비드 리즈먼(David Riesman 1909〜2002)이 말하는 것처럼 〈고독한 군중 The Lonely Crowd〉이 되어 있는지 모른다. 오늘날 정신질환자가 넘쳐나고 명상과 마음 회복, 정신 상담 기관이 늘어나는 것도 [피로사회]에서 <고독한 군중>이 되어 있는 현대인들이 우울과 자기 상실을 회복하기 위한 절규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떤 명상과 정신 치료도 스스로 자기의 욕망과 화를 내려놓고 만족하지 않는 한 고칠 수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화가 닥치기 전에 자기를 다스리는 지혜이다. 그 지혜의 하나로 홍만종은 안분지족을 강조하였다. 이 말들은 [피로사회]에서 <고독한 군중>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이 깊이 새겨볼 말들이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되기를 희망한다. 건강하고 행복함이 어우러진 세상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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