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9일(월)~(26일째... Ferreiros~ Palas de Rei: 34.7km
순례자숙소: X de Galicia Alb. De Palas, 공용 알베르게 6유로)
오늘로 스물엿새 째...
프랑스 '생장'을 출발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던 그 감동이 엊그제 같건만 이제 남은거리 80여km...
그간의 걸어온 발품들이 송송 내눈가에 맺혀진다.
뭔가 아쉬운 마음인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척 홀가분한 기분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지나온 길을 누군가는 걸어오고 누군가 앞서간 길을 내가 뒤 따라 걸어가고
그래서 결코 외롭지 않은 그길의 동선이기도 하다.
'Ferreiros' 마을 알베르게(숙소)를 나와 작은 언덕을 내려오니 처마를 맞댄 작은 성당과
낡은 집 몇채가 길가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언제 다시 이길에 올수 있으려나...
어릴적 어머니와 동네 삼촌들을 따라 새벽녁에 마을에서 벗어난 중산간 오름 아래 초지로 초가지붕을 덮을
새(띠)를 베러 몇번 따라 간적이 있다.
어스름 길을 걷노라면 졸린눈과 지루함에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리곤 했었다.
바람많은 제주의 초가지붕은 결이 좋은 새(띠)로 먼저 지붕을 덮은다음 나머지 새(띠)로 줄을 촘촘히 엮어
가로 세로 일정간격으로 꼭꼭 동여메야 하는데 그날이면 온 동네 삼촌들이 모여들이
품앗이 일로 서로 도와가며 새지붕을 곱게 단장하던 신명나는 일들이 떠오른다.
이 아침의 먼동이 그 시절의 아련한 고향의 향수를 그려내는 듯 하다.
아침 공기가 좀 차갑긴 해도 얼굴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가 좋다.
조금씩 갈리시아 지방 산길을 벗어나는 듯 싶으나 여전히 소똥냄새가 코끝을 진동한다.
누가 그려 놓았을까!
하트(사랑)...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던가!
수많은 카미노들이 어우러져 동행하는 그 마음들
난 이길에서 어떤 사랑을 담아내고 어떤 사랑을 내려놓고 있을까...
아스팔트를 가로질러 길은 우측으로 접어든다.
길가에 세워진 표지석이 반갑게 다가온다.
이젠 익숙한 벗이 되였다.
떨어진 낙엽을 즈려밟는 소리... 아침햇살이 곱게도 비친다.
동행의 벗들이 있어 아름다운 길...
만나고 헤여지고... 그러기를 수도 없이 헤아린다.
그러다 보면 우정의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서로의 격려와 응원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오늘도 '부엔 카미노!'
한시간여를 걸어 왔을까...
길옆으로 펼쳐지는 이국의 목가적 풍경이 한점 그림인 듯 아름답다.
민들레 홀씨되여...
초록 풀잎따라 아침 이슬이 송송 맺혀있다.
어느 가수의 감미로운 노래소리가 내 귓전에 들려오는 듯 하다.
성근 나무토막으로 빚어낸 화분받침이 멋스럽다.
그 꽃의 모양이 화려하지 않은 들 어떠하랴...
그리 정리되지 않은 헛간의 모양새가 더 멋스럽게 다가온다.
힘 겨루기^^
'Good 아이디어' 사진 포즈라며 '아야'가 치켜 세워주는 바람에 한참을 웃었다.
'안녕하세요' 한국 인사말을 전하니 금새 따라한다.
캐나다에서 온 '아야'와 미국 청년 '오더'...
이 커플 역시 참 잘 어울린다.
아름다운 길을 함께 걸으며 아름다운 사랑과 우정을 나눌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련가!
길이 이어진다.
앞서가는 저들의 발걸음이 고운날이 되기를 바라며...
소롯한 'Rozas' 마을 풍경이 정겨웁다.
'Rozas' 마을을 빠져나와 아스팔트 길로 들어서니 안개 자욱하다.
고요하다.
적막의 길이기도 하다.
'Mercadoiro' 마을을 스쳐 지나간다.
담벼락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
그 정성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Vilacha' 마을 초입에 노란 꽃무리가 활짝 피여있다.
시선을 낮추어 포커스를 맞추고 셧터를 누른다.
마음에 쏙 드는 풍경이다.
낮은 돌담 아래로 안개 드리운 산길의 운치가 몽환적이다.
앞서가는 카미노 벗들이 있어 마음 든든하다.
좋은 날이다.
부부(夫婦)... 영원한 인생의 반려자... 푸근하다... 내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부엔 카미노!
세시간여 10km를 걸어오니 'Portomarin' 마을로 들어서는 긴 다리가 보인다.
어찌나 다리가 높은지 걸어오는 내내 아찔하다.
이곳은 스페인 사람들의 휴양지라고 하는데 안개에 가리워 도시 전경을 담아낼 수 가 없어 아쉽다.
늦은 가을 색감짙은 누런 낙엽 한올이 길가에 떨어져 있다.
무수한 사람들의 발에 밟히면 어찌할꼬...
어느 누군가의 고운 책갈피속에 넣어져 있으면 좋으련만...
성벽 계단을 올라 다시 성문에 들어서니 'Portomarin' 마을 전경이 눈앞에 들어온다.
배가 출출하여 그곳 바(Bar)에 들러 고소한 빵과 생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인다.
정오가 다 되여간다.
오늘도 걸어야할 길이 만만치가 않다.
잠간의 휴식을 끝내고...
마침 그곳에 동네 장이 들어서는 날이다.
가게안... 하몽과 순대를 걸어놓은 부부의 표정이 다정한 오누이를 닮아있다.
부부란 그맇게 알콩달콩 도란도란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문득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이제 고향 제주로 돌아간 다음엔...
작심 몇일이나 될까^^... 이 마음 고스란히 변치 않기를 다짐하며...
카미노 나그네 가는길에 순백의 꽃잎이 여문 방울들을 알알이 머금고 있다.
곱기도 하다.
톡하고 동그르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모양새가 예쁘다.
오늘은 걷다가 한국인 여자 카미노를 만났는데 몇일전 어느 바(Bar)에서 본 적이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곳 스페인 '마드리드'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며 그런데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여행도 많이 다녔고 희말라야 고봉도 올랐단다.
자기는 글 재주가 없어 다녀온 여행 후기를 잘 쓰지는 못하지만 아마 '한비야'씨 보다는
더 많은 여행 체험을 했을거라 말한다.
그냥 자기 자랑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닌 듯 하다.
드러내지 않는 고수는 따로 있는 법이니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길옆 쉼터에 쉬고있는 카미노 친구가 권하는 차 한잔이 따스하다.
마음으로 전하는 차 한잔이니 그 맛이 더 진했으리라...
그길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한 두번은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던 사이인지라 카메라 포커스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프랑스에 온 빨간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는 서울에서 근무한적도 있단다.
그래서인지 간단한 한국 인사말은 알아듣기도 한다.
'리투아니아'에서 온 '에글레'는 키도 크고 서글서글한 미인의 표상이다.
간단한 한국 인사말을 가르켜 주었더니 그후론 만나기만 하면 '안녕하세요'를 연발한다.
카미노 여정의 끝자락 날, 유럽의 땅끝바다 '피니스테라'에서 그 일행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서로 울컥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추억의 회상은 그렇게 아름다운가 보다.
그 모두가 그립다...
아련하다.
서로를 닮은 이 커플 역시 다정한 모습이 잘 어울린다.
국명과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마을 바(Bar) 앞에서... 우정의 맥주 한잔을 서로 나누었다.
스스럼 없이 대해주는 그들이 좋다.
마음 편안하다.
많이 걸어온 것 같다.
오후 2시쯤을 훨씬 넘긴 것 같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찌 그 마음인들...
'Eirexe' 마을에서 한국인 대학생들을 만났다.
인솔 교수님에게 물어봤더니 산티아고 체험 과정이 있어 모집하여 이곳에 왔단다.
'호연지기'... 싱그런 청춘의 심볼이 아니던가!
그렇게 무릇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올레쉼터 뱃지를 한 학생에게 대표로 건넸더니 '신라면' 한개를 답례로 건네준다.
아마도 오늘 저녁은 얼큰한 라면맛으로...
벌써 군침이 돈다^^.
서산으로 해가 기울어가고... 긴 그림자 드리웠다.
한참을 걷노라니 멀리서 절뚝거리며 걷는 카미노 친구가 보인다.
가까이 가서 어떤 일이냐고 물었더니 왼쪽 발목을 가르키며 고통스러워 한다.
참 안타깝다.
전에 3일째 걷던날 '주비리' 외곽에서 만났던 그 청년이 생각난다.
'No 산티아고' 라며 말하던 애처로운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때 작은 동산을 오르며 무릅이 아프다는 캐나다 '캐서린'은 어떻게 되였을까...
사뭇 궁금하다.
이 친구에게 아무것 하나 해줄 수 없는 내 자신이 괜시리 미안하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을 눈으로 전할 수 밖에...
저 길 휘돌아서면...
어제 7.8km를 더 걸은 탓에 'Eirexe' 마을에 묵을까 하다가 별로 기분이 내키지 않아
다시 8km를 더 걸어 도착한 'Palas de Rei' 마을은 거리도 깨끗하고 잘 정돈되여 있다.
공용 알베르게도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이제 남은거리 50여km...
어제는 지독한 향수병이 밀려 왔었는데 오늘은 컨디션이 괜찮다.
집에서 둘째딸 토끼에게서 문자가 왔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즐거운 사진과 함께...
베시시 웃는 모습이 너무 보고싶다.
날이 어스름 저물었다.
아직도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는 카미노 후기담이 한창들이다.
지금쯤 한국은 새벽 다섯시...
내일을 기약하며...
침낭속이 포근하다.
이 밤의 꿈길은 어떤 풍경으로 다가올까...
♤..♤
첫댓글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