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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아닙니까? / 2026년 7월 19일 주일 예배
본문 / 시편 115:1-8
세상에 신은 둘 뿐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타락한 사람, 자기 자신입니다. 홀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주관하시며 구원과 심판을 행하시는 전지전능한 유일하신 진짜 하나님과 그 하나님께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유일한 피조물을 지음을 받았으나 마귀의 미혹을 받고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타락한 가짜 하나님이 된 인간입니다.
세상에 신이 얼마나 많은데 신이 둘 뿐입니까? 세상에 스스로 있는 신이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수 만 가지의 모든 잡신은 모두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타락한 인간이 만들어낸 가짜 신들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 흉내를 내기 위해 신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창조의 능력을 흉내내는 그 정점이 AI가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형상을 입은 존재를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인간이 신을 만들고 그 신 앞에 나아가 정성스럽게 제물을 드리고 제사를 드립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타락한 자신의 교만한 육적 자아를 숭배하기 위한 것입니다. 전적으로! 비나이나 비나이다 돈 많이 벌어 부자되고 건강하게 하시고 좋은 대학과 직장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성공하고 대박나게 해주세요. 돼지 머리 콧 구멍에 돈을 넣고 절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앞으로는 우상도 종교도 필요가 없어질 겁니다. 이제는 사람이 그 우상의 자리에 직접 서는 것입니다.
우상은 오롯이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종교는 철저한 자아숭배의 수단인 겁니다. 모든 종교는 자신을 하나님과 같이 만들려는 즉 하나님 흉내를 내기 위해 타락한 인간이 만든 자아숭배의 산물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었으니 자신이 영광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모든 사람에게 신은 단 둘 뿐입니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입니다. 과연 지금 나의 신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나입니까? 나를 만드시고 나를 세상에 보내시고 나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관하시는 나의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마귀의 미혹을 받아 내가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타락한 자기 자신입니까? 과연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내 마음과 영과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지금 내가 삶으로 내놓는 대답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속일 수는 있지만 어떻게 하나님을 속이겠습니까 자신을 속이겠습니까? 너희는 스스로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속이고 자신에게 속는 사람은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자신이 내놓는 삶을 속이겠습니까? 내 삶이 과연 누가 하나님인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교회 안에는 겉으로는 주여 주여 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지만 마음으로는 우상을 숭배하는 즉 자기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청함을 받았다고 다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은 구원을 믿음에 이르게 하는 택함을 입은 자들은 적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십니다.
애굽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광야에서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까? 안식을 약속으로 받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이루지는 못하였습니다. 제가 자주하는 말입니다. 인생은 믿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믿음을 배우지 못한 겁니다. 시험을 본 것도 아니고 자격을 따진 것도 아니고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갈 수 있는 학교에 학비까지 면제받고 입학하였지만 배우는 것은 원치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학교는 배우기 위해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까? 퇴학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에게 믿음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잘 가르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광야에서 믿음을 배운 사람들은 적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순결한 믿음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약속을 그대로 믿고 받드는 순종을 말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고난과 시험을 만날 때마다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며 하나님을 의심하고 시험하였습니다. 시험에 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시험에 들 수밖에 없었을까요? 광야에서, 교회생활을 통해, 나의 인생으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고난과 환난을 통해 연단을 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불가능하고 소망이 없는 죄인인 나를 오직 은혜로 구원해주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섬기는 믿음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만을 받드는 순종입니다. 즉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하나님이 되시는 믿음입니다. 하나님만을 나의 하나님으로 받드는 그 순전한 믿음을 어떻게 배우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이라고 타락한 나의 교만하고 미련한 육적 자아가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믿음으로 나도 주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자신이 죽는 과정에서, 가짜 하나님이 죽는 과정에서 고난과 환난과 시험이 사용되는 겁니다. 고통이 사용되는 겁니다. 고통으로 정결하게 되는 연단을 통과해야 하는 겁니다. 불 같은 시험입니다. 그런데 그 불질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험과 고난과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일까요? 주님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시험을 통과하지 못합니까?
결국 자신의 하나님 됨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가짜 하나님 됨을 십자가에 결코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해진 자신의 타락한 육적 자아를 섬기는 그 자아숭배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겁니다. 죽으면 죽었지 나의 하나님 됨을 결코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자신의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용서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죽어도 용서 못한다는 겁니다. 나의 자존심을 그 육체의 정욕과 세상의 탐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어도 나는 이 쾌락과 욕망을 끊지 못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실제로는 그 마음과 영과 몸의 주인은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교회로 부름을 받은 수많은 성도들이 자기 죄를 대속해주신 그 십자가에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입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며 그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로 지고 주님을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걸려 실족하는 겁니다.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를 받고 교회로 나온 성도들 안에서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바울은 증언합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빌립보서 3:18.
이사야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 이사야 8:14-15.
애굽에서 종살이로 탄식하던 이스라엘 벡성들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애굽을 탈출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안식의 땅으로 가기 위해 광야로 나온 것입니다. 그 구원의 은혜를 기뻐하며 찬송하던 자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자신들이 애굽에서 섬기던 금송아지 우상으로 조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를 에굽에서 구원한 우리(나)를 위한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타락한 가짜 하나님 즉 자기 자신을 위하고 섬기는 우상숭배의 도구로 바꾼 겁니다. 다른 하나님으로 말입니다.
놀라운 은혜는 값없이 거저 받아 애굽에서 구원을 받고 안식의 땅을 약속받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광야로 나왔지만 자신이 하나님으로 있는, 하나님이 되기 원하는 그 교만과 타락은 그대로 였던 것입니다. 그대로 있기를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타락을 광야에서 반드시 연단을 하셔야 했던 겁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다 천국에 가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들이 천국에 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국에 갈 수도 없지만 설령 천국에 가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천국에 합당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속의 은혜를 받았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의 하나님 됨을 섬기기 원하는 그 교만함과 자아숭배를 파쇄해야만 하는 겁니다. 그래야만 하나님만을 섬기고 의지하는 약속의 땅으로, 거룩한 땅에 합당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믿음과 연단을 위해 동원되는 것이 고난과 환난과 시험인 겁니다. 그것이 아직 십분의 일이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밤나무와 상수리가 나무가 베임을 당하는 겁니다. 나무가 밑둥까지 베임을 당하며 뭐가 남습니까? 그루터기만 남습니다. 성도는 고난와 연단을 통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믿음만 남는 것입니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은 하나님 같이 되겠다고 타락한 교만한 나의 육적 자아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이 아니다! 네 자신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네가 나까지 이용하여 네 자신을 하나님 같이 만들려고 하느냐? 나 여호와만이 너의 하나님이다! 바울이 증언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오직 믿음으로 사는 자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 은혜로 부르신 자들을 고난으로 연단하는 목적인 것입니다. 내가 죽고 오직 내 안에 주님만이 주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를 온전히 믿는 자로 거듭나는 겁니다. 자신의 자아를 숭배하는 자에서, 자신의 하나님 됨을 섬기는 자에서 나를 만드시고 나를 세상에 보내신 나의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만을,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만을 섬기는 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천국에 합당한 믿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그 믿음을 배우고 있습니까? 지혜로운 사람만이 그 믿음을 배웁니다.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만이 믿음을 배웁니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하나님 됨을 십자가에 못을 박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마저도 자신의 하나님 됨을 즉 자신의 자아를 숭배하는 우상으로 조작합니다. 자신을 숭배하기 위해 자신이 만든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섬기는 것입니다. 입으로 주여 주여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덮어놓고 주님의 뜻은 외면하는 겁니다
이제 교회와 성도들 안에서 우상은 더 교묘해졌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버젓이 서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부끄러운 것이 당당해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간음이 자랑이 된 겁니다.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지만 미혹에 주의하기는커녕 미혹을 분별하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과 귀머리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선포합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사탄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자신의 하나님 됨을 숭배하는 타락한 인간은 육체의 정욕과 탐심으로 자신의 타락한 자아를 숭배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미혹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자존심과 감정과 욕망과 탐심을 즉 자기 자신을 위해 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받드는 것입니다. 자아숭배는 타락한 인간에게 삶의 목적이며 방향이 되었습니다. 삶의 의미가 가치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하고 철저한 것입니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올무와 덫인 겁니다.
그것을 끊어주신게 주님의 나를 대신하여 지고 죽으신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사냥꾼의 올무에 걸린 짐승이 발버둥을 치지만 뭄부림을 칠수록 올무는 더 단단히 조여 옵니다. 결국 고통스럽게 죽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으로 섬기라는 마귀가 놓은 자아숭배라는 죄의 올무에 단단히 걸린 것입니다. 사람들은 덫에 걸린 줄로 모릅니다. 한 평생 자신을 위해 당연한 듯이 살다 죽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부름을 받은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올무를 주님이 십자가에서 끊어 주셨지만 다시는 자신을 위해 살지 말라고 하셨지만 잠시 기뻐하다가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지 못한 고로 , 죄와 세상을 이기지 못하는 고로 또 다시 올무에 걸리고 마는 것입니다.
자아숭배의 올무 그 우상의 덫을 끊어내는 유일한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증언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어떻게 있을 수 있습니까? 오직 믿음으로만 거하는 것이 아닙니까? 내 죄를 대속해주신 내가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타락한 그 죄를 대속해주신 교만한 육적 자아를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지신 그 십자가에 나도 주님과 함께 믿음으로 날마다 죽는 자아 죽음의 믿음으로만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다시 사는 그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으로만 우리는 하나님만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합당한 자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기회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광야 교회와 자신의 인생에서 고난과 환난을 만나지만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는 고로 믿음을 배우지 못하고 시험에 들고 맙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과 영혼의 중심과 삶의 주인의 자리에 모시지 못하고 자신이 여전히 주인의 자리에 앉아 있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목적과 방향과 삶의 의미와 가치가 주님께로 정해졌습니까? 이제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고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날마다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합니까?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십자가를 붙들고 주님의 뜻을 받들고 있습니까? 어떻게든 주님의 뜻을 받들려고 십자가를 의지하십니까? 이제 내 안에 사는 이가 그리스도입니까?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내 몸에서 존귀하게 되기를 원합니까?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무슨 소망이 있을까요?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주님을 떠나 그 말씀을 떠나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사랑하고 하나님과 재물을 두 주인으로 함께 섬깁니다. 자아숭배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인 됨과 하나님 됨에서 그 타락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까지 이용하여 자신의 하나님 됨을 자연스럽게 숭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두 주인으로 함께 섬기는 것을 큰 축복과 좋은 믿음으로 둔갑을 시킨 것입니다.
이 시대의 우상은 성도들의 마음과 영 안으로 깊이 들어간 것입니다. 교묘하게 다른 복음과 다른 믿음으로 말입니다. 저처럼 하나님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을 섬기려던 사람이 있었을까요? 저는 제 자신도 속였습니다. 나의 열심과 정성과 의로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시시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보다 그 어떤 것도 더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을 향한 나의 열심과 정성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너를 위한 것이라고 하신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틀리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한다고 한 것이 사실은 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겁니다. 내 자신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저는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열심과 정성에 대하여 하나님께 보상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나의 행위에 대해 갚아주실 것이다. 반드시 나를 높여 주실 것이다!
여러분이 저를 하나님을 대하듯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 취급을 하는데 하나님 처럼 받듭니다. 비싼 밥도 대접하고 옷도 사주고 용돈도 두둑히 주고 고급 승용차까지 선물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이 제가 엄청난 돈이 있기 때문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저에게서 더 큰 선물을 받기 위함이라면 말입니다. 저를 사랑하는 것입니까?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저의 열심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나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의 자아가 영광을 받기 위해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한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타락한 내가 주인의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겁니다. 내가 만든 다른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바울도 그런 것이 아닙니까?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로마서 10:2-4.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대속의 그 은혜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타락한 자아숭배입니다. 그런데 그 대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에도 나는 주님과 함께 그 십자가에 나의 주인 됨을 추구하는 교만한 자아가 죽기를 원치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나의 종교적인 열심과 율법적인 행위로 믿음을 포장하고 그것으로 나의 주인 됨을 숭배하고자한 것입니다.
애굽에서 은혜로 구원을 받고 안식의 땅을 약속받고 광야로 나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 자아숭배로 즉 우상숭배로 망하고 만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놀라운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자들이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의 힘과 영광인 재물로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타락한 자신의 자아를 숭배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입니까? 하나님도 섬기는 자입니까? 하나님과 교회와 복음을 이용하여 자신을 섬기는 자입니까? 주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두 주인으로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입니까? 나 자신입니까? 과연 나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이며 진리를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영젹인 귀머거리가 된 것입니다. 우상숭배에 빠진 자들은 생명이 없는 죽은 우상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죽은 믿음이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상숭배로 죽은 자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이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입니다. 사울은 주님을 만났을 때 눈이 멀었습니다. 그는 사실 영적인 소경이었습니다. 그는 눈이 먼 그 고통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가슴을 치고 울며 회개하였습니다. 눈을 덮고 있던 비늘 같은 어둠이 벗겨졌습니다. 비로소 영과 진리의 세계를 보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십자가만을 의지하고 선포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고통과 고난으로 믿음을 배우고 있습니까? 인생으로 믿음을 배우고 있습니까?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영원히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인지 나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천하를 얻고 네 목숨을 잃으면 무엇하겠느냐? 나와 복음을 위해 네 목숨을 잃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을 섬기는 그 십자가의 좁은 길로만 가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자아숭배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그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며 구원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