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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2015 월간문학3월호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가칠이 아저씨
아무것도 없었던 하늘 가득, 어둠이 별을 셀 수 없으리만치 살려놓았다. 별다른 질서를 보이지 않은 채 제멋대로 박혀 존재를 호소하는 듯한 별들 가운데 1등성인 견우와 직녀, 은하수가 흐르는 백조자리의 데네브를 연결하는 삼각형이 유독 선명했다.
나는 어떤 별이 될 수 있을까. 아득했다. 짐작도 할 수 없는 먼 거리에서 반짝이는 별만큼이나 고교졸업반인 나의 내일도 불확실하여 가슴이 답답했다. 이제 예비고사와 대학 본고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 목표로 하는 대학에 무난히 합격할 자신은 있었다. 그런데도 불안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멍에마냥 짓누르기만 하는 공부에서 해방되고,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대학생이 되겠지. 그 이후가 미지였다. 자유를 누린 이후. 뭐가 되고 어떻게 살 것인가. 오로지 땅만 파서 공부를 시키는 부모님의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켜줄 것인지. 그게 두려웠다.
어느 순간 유성이 어둠을 사르는가 싶더니 사라졌다. 무덤가 풀숲에서 나던 벌레소리가 잠잠해지고 낮의 더위를 머금은 찐득찐득한 바람이 살랑거려 얼굴을 간지럽혔다.
“야, 벌써 배고프다!”
농고에 다니는 이정이가 상체를 일으키며 고요를 깼다. 그러자 공고생 동수가 맞장구를 치고 상고생 인종이도 서둘렀다.
“원두막에 짜구양반이 있든 까칠이가 지키든 벌써 곯아떨어졌을 겨, 그만 가보자.”
“그럴까 그럼, 열한시는 넘었겄제 잉?”
나도 사정없이 물어뜯는 모기의 공격을 참아내기 힘들었다. 사실 짜구양반네 과수원을 털자고 할 때는 선뜻 내키지가 않아 찜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왕 하기로 한 거 빨리 해치우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도 알록달록한 무늬는 피할 길 없는 교련복 차림. 그러나 조금만 멀어지면 전투복답게 위장은 끝내줬다. 우리가 합의한 복장이었다. 교련복이 처음으로 연습이 아닌 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야 너희들 이것 발라라.”
이정이가 뭔가를 꺼냈다.
“그게 뭔디?”
우린 이정이에게 바짝 다가앉았다.
“이 새끼들 교련 헛배웠고만잉. 위장이란 것도 모르냐? 어둠 속에서도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안 허냐. 이 형님이 오늘의 작전을 위해서 부뚜막에서 퍼왔다.”
그것은 재였다. 나무나 볏짚이 타고 남은 재.
“하이고, 이것을 바르라고?”
“들키는 날엔 작살나니께 아무소리 말고 발라 새끼야.”
이정이는 인종이의 같잖아 하는 말을 묵살하며 손에 재를 발라 얼굴에 비볐다.
“공부도 못한 것이 이런 것은 어떻게 알았다냐 잉?”
“우멍이가 공부나 못허지 모르는 게 있간디?”
우멍이는 이정이의 별명. 똥구멍으로 호박씨를 깔 정도로 엉큼하다는. 나도 재를 손바닥에 비벼 얼굴에 문질렀다. 모두가 쳐다보며 웃는 얼굴에선 이빨만 하얗게 빛났다.
“가자!”
모두가 일어섰다. 그런데 내가 보니 모두 빈손이었다. 과일서리를 가면서 어디에 담아오려고? 하다못해 망태기나 자루, 보자기라도 있어야 했다.
“야들아, 어디다 담아서 가져오게?”
내 말에 모두가 아차 싶었는가,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봤다.
“모두 윗도리 벗어. 안 챙겨왔으니 여기에라도 싸서 가져와야지 별 수 있어?”
내일 여자애들과 웃들 너머 상사바위 밑 냇가로 천렵을 가 놀자는, 그래서 과일을 서리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이정이가 이번에도 앞장을 섰다. 교련복 윗도리를 벗으니 나와 동수가 하얀 러닝셔츠를 입었고 이정이와 인종인 맨살. 흰색은 서리할 땐 금기여서 셔츠를 벗어 바지주머니에 우겨넣고 우린 다시 윗몸의 맨살에 재를 바른 다음 여기저기 빼곡히 무덤이 널려 있는 공동묘지를 내려갔다. 산 끝자락 완만한 비탈에 마을에서 유일한 짜구양반네 복숭아밭과 수박, 참외밭이 있었다. 복숭아 서른 개, 참외 열다섯 개, 수박 네 덩이가 목표였기에 각자의 몫은 뻔했다. 당연히 아주 잘 익을 걸로만.
돈이 되는 것이라면 귀신같이 냄새를 잘 맡는다는 짜구양반이 하필이면 공동묘지 밑에 과수원을 만든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 예전부터 떠돌았다. 송장 썩은 물이 거름이 되어 과일에 그만이라는. 그만이라는 말에는 달고, 크고, 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의 치부술을 시샘한 누가 배가 아파 지어낸 말이든 어쨌든, 짜구양반네 과일이 다른 마을 것보다 크고 달다는 건 모두가 인정해야했다.
그런 그가 마을사람들에게 별로 존경을 받지 못하고 경원시 당하는 데는 근동에서 제일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뭣 하나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 없는 이들보다 더 악착을 떨기로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시골이라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 과일구경을 하기가 쉽지 않은 처지라 몇 개씩 나눠줄 만도 하건만 바로 옆집에 사는 이정이마저 고개를 내두를 정도이고 맛을 보려면 곡식을 주고 바꾸거나 장날 시장에서 좌판을 벌이는 짜구댁에게 사야만 했다. 따라서 원래 별호인 자고실양반이라 부르는 이는 극소수고 밥을 너무 많이 먹어 옆구리가 툭 불거져 걸음마저 뒤뚱대는 개새끼에게나 합당한 ‘짜구났다’는, 그 짜구로 부르는 이가 태반이었다. 이정이가 과수원을 서리하자고 한 데에는 그런 억하심정도 작용했을 터. 하지만 짜구양반이 특별히 이웃에게 못되게 구는 일도 없었다. 남은 하나뿐인데 각시가 셋이라는 것과 전답이 많다는 것과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을 먼저 해 이재에 밝다는 데에 따른 시기나 질투가 발동하여 준 것 없이 미워진 존재일 뿐. 과일만 해도 백여 호나 되는 집에 누군 주고 누군 안 줄 수도 없는 입장 아닌가.
복숭아밭에 이르렀다. 불도 켜지 않은 원두막에선 어떤 낌새도 없었다. 우리가 아는 한 원두막을 지키는 이는 짜구양반이거나 까칠이 내외. 그들도 누가 과일을 훔쳐 가리라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서로 믿고 지내는 시골의 풍토에서 지금까지 그런 문제로 말썽이 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머저리라고도 불리는 까칠인 조금 모자라는 인물이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힘이 장사여서 일밖에 모르는데 오랫동안 짜구양반네 머슴을 살다가 서른 중반이 넘어서야 말을 못하는 여자와 살림을 차리며 분가했다. 그러나 그의 몫이 되었다는 논 서마지기 외에는 별다른 농사가 없어 짜구양반네 일을 여전히 거드는 형편이다. 가칠이라는 본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억세게 발음하는 까칠이와 머저리라는 말을 듣는 데는 제 몫을 챙기지 못하고 이용만 당하리라는 비아냥거림이 묻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다행히 부모를 닮지 않고 아주 똘방졌다. 우린 본능적으로 원두막과 최대한 거리를 두고 엉금엉금 다가섰다. 벌써부터 단내가 물씬 풍겨왔다.
우린 스며들 듯 각자 복숭아나무에 매달렸다. 아무리 어두워도 복숭아는 익은 내를 숨기지 못했다. 나도 나무 하나에 달라붙어 종이봉지를 벗기고 어림짐작한 빛깔과 손의 감촉으로 익었음직한 복숭아를 따 단추를 채워 자루처럼 오므린 교련복에 담기 시작했다. 일곱 개, 여덟 개. 재빠르게 자기들 몫의 복숭아를 땄는지 인종이와 이정이가 벌써 참외밭으로 다가가는 게 보였다. 나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동수에게 소리 죽여 우리도 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짐작으로도 참외의 노란 빛깔은 밭가장자리보다 안쪽이 많았다. 복숭아서리는 일도 아니었다. 나무가 우리를 숨겨줬기 때문. 그러나 참외와 수박은 그것들의 특성상 일어서서 따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무리 어둡다 할지라도 희부연 한 하늘과의 경계로 인해 원두막에 있는 사람이 자지 않는 한 금방 알아챌 염려가 있으므로. 우리의 서리는 짜구양반이나 까칠이가 잠을 자지 않고 원두막에서 두 눈 벌겋게 뜨고 지키고 있다는 전제 아래 이루어져야 했다. 이정이와 인종인 낮은 포복으로 들킬 염려가 적은 밭 가장자리를 훑어가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갔다간 익은 걸 하나도 따지 못하리라. 나와 동수는 복숭아밭과 참외밭 경계를 훑었다. 자루를 끌고 다닐 수 없어 기어서 두 개를 따 갖다놓고 다시 기어 가 두 개를 땄다. 어둠에 익은 눈에 이정이와 인종인 수박까지 딴 듯했다. 서둘러야 했다.
복숭아와 참외만으로도 자루는 꽉 찬 느낌이었다. 우린 경계인 고추밭을 따라 허리를 숙이고 빠르게 이동하여 수박밭 앞에 엎드려 기기 시작했다. 뱃가죽이 수박 잎과 줄기에 쓸리고 팔꿈치가 돌멩이에 긁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 익은 걸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무조건 큰 걸 골라 따고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사실 수박이 익은 걸 확인할 만한 안목이나 경험이 우리에게 있을 리 없었다. 어찌됐든 과수원을 털기로 한 우리의 작전은 목적을 완벽히 달성한 채 무사히 끝난 듯싶었다.
교련복자루와 수박을 한 팔로 안아 들고 우린 처음에 모였던 무덤가에 섰다. 그곳에 모이기로 미리 약속이 돼 있었던 것이다. 서리한 과일을 들고 마을로 곧장 내려갈 수는 없었으니. 이정이와 인종인 느긋하게 앉아 참외를 씹다가 나와 동수가 나타나자 이를 하얗게 드러내며 물었다.
“안 들켰제?”
“야 병신아, 들켰으면 이리 왔겄냐?”
동수가 아니꼽다는 투로 말하곤 털썩 주저앉았다. 도둑질은 분명한지라 그동안 배포가 있는 척하긴 했지만 긴장했던지 나도 맥이 탁 풀렸다. 서리하기 전까지만 해도 복숭아 몇 개쯤은 충분히 먹을 듯싶더니만 그런 욕구도 사라지고 말았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서 냇가로 가자. 먹을 만큼 먹고 나머진 어디다 숨겨야할 거 아냐.”
이정이가 여전히 참외를 씹으며 우물거렸다. 맞는 말이었다. 현장에서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멀리 벗어나는 게 수였다. 우린 각자 노획물을 챙겨들고 냇가로 가기 위해 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막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앞서던 인종이가 자지러지고 그 자지러짐에 우리도 덩달아 자지러졌다가 자지러짐의 실체를 보곤 머리끝이 솟구치면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귀신? 모든 게 순간적으로 정지했다. 소리도, 빛도, 사고도, 바람도, 움직이고자 하는 의지도.
시커먼 그림자. 귀신이 아닌 이상 누가 그 시간에 공동묘지에 나타나겠는가. 이제까지 앉아 있었고 주변을 살폈고 작은 소리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그래서 우리만 있다고 확신했는데, 어디서 솟아났느냐 말이다. 두 개의 봉분 너머, 비교적 높다란 봉분 위의 입상. 그것은 벌초할 때 가지와 목이 잘린 철쭉도, 바늘잎이 빽빽한 노간주나무도 아니고, 머리 형태까지 분명한, 본 사람은 없어도 우리 곁에 언제나 나타날 수도 있다는 공포의 대상, 귀신이었다. 공동묘지는 우리가 아무리 아닌 척하지만 낮이라 할지라도 꺼림칙한 곳이다. 우리들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귀신이 아무런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거기 그냥 그대로 있었다. 우리를 쳐다보는 건 확실했지만 아무런 동작도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도 우린 도망갈 엄두를 못 내고 주저앉은 채 ‘날 잡아 잡수세요’라는 자세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명확하지 않은 발음과 함께 귀신의 손이 움직였다.
“그냥 가!”
귀신에 홀린 게 이런 건가? 잡아먹지도 않고 어떤 해코지도 없이 그냥 가란다. 그제야 최면이 풀렸는지 우리들의 정신이 가까스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다리는 후들거렸다. 십구 년을 살아오면서 그렇게 놀란 적이 있었을까.
“아 시팔, 까칠이잖아!”
인종이가 괜히 겁먹었다는 듯 탄식했다. 까칠이. 늙으나 젊으나, 여자나 남자나, 아이나 어른이나, 마을 사람 모두에게 머저리 취급을 당하는 까칠이라니? 그 한마디가 우릴 살렸다. 얼마나 안심할 수 있는 인물인가. 무섬증이 싹 가셔버리고 후들거리던 다리에 다시 힘이 생겨났다.
“까칠이라도 빨리 내빼자. 저 머저리가 짜구양반한테 알리기라도 하면 우리만 작살나는 게 아녀.”
이정이의 ‘우리만’이라는 말 뒤에는 부모님이 있었다. 우리는 벼락같이 산등성이를 올랐다가 북쪽으로 내려가 사당모퉁이에 있는 신작로를 가로질러 웃들로 들어섰다. 산을 내려올 때는 그동안 작전을 수행하느라 딱 닫고 있던 입들을 쉴 새 없이 놀렸다. 무시해도 좋을 까칠이 덕분이었다. 먹을 맘이 사라졌던 복숭아나 참외를 씹으며.
“시벌놈의 까칠이 때문에 간 떨어질 뻔했네.”
“그러게 말이다. 근디 무슨 심보로 우릴 그냥 가라고 했지?”
“그게 수수께끼다. 짜구한테 걸렸어봐라. 국물도 없었을 것이여.”
“난 참말로 귀신이 나타난 줄 알았당께. 십 년 감수한 겨.”
“짜구한테 들켰으면 내일 동네가 시끌시끌했을 겨.”
“동네만 시끌시끌하면 괜찮게? 손해를 보상하라고 우리 엄마 아버지가 무슨 봉변을 당할 것이여. 지서에 신고나 안 헐란가 모르겄다.”
“언제부터 우리를 봤을란가?”
“그거야 어찌 알것냐잉.”
“그나저나 수박은 잘 익었을란가?”
“쪼개봐야 맛을 알지. 복숭아나 참외는 완전히 맛 들었등만.”
송장이 썩어 거름이 되었든 땅의 기운이 과일 맛을 돋게 했든 하나 씹어본 짜구양반네 복숭아 맛은 역시 일품이었다.
“까칠이가 곱게 보내줘 놓고 이르지는 않겠지?”
이정이가 은근히 걱정이 된 모양.
“모르지. 그 병신 속을 어찌 알겄냐. 그냥 가라는 그 소갈머리가 신통하긴 하다.”
“우리도 놀라긴 했지만 까칠이도 사실은 우리가 겁나게 무서웠을 겨. 장정이 넷이잖아. 그렁게 곱게 보내줬지.”
“지랄허고 자빠졌네. 까칠이 한 주먹감도 안 되는 것이.”
인종이의 허풍에 이정이가 면박을 줬다. 밤이 깊어갔다. 우리가 가는 논둑길을 따라 도랑물이 흐른다. 양쪽으로는 모두 논이었다. 길 끝에 제방이 있고 그 너머가 제법 수량이 많은 올챙이보가 있으며 둑 건너편에 있는 상사바위 밑으로 우리가 천렵을 갈 예정이었다. 상사바위는 하나의 거대한 바위가 하늘로 솟구쳐 산을 이루었는데 애달픈 상사(相思)의 전설이 서린 곳이다.
“어디까지 갈라고? 그만 여기 밑에 숨겨두자.”
길이 도랑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동수가 멈추며 말했다. 좁은 도랑 양쪽에 돌을 쌓아 넓적한 돌을 상판으로 걸쳐 만든 다리였다. 상사바위 밑까진 아직도 한참 더 가야만 했다. 도랑 양쪽 언덕에는 풀이 무성하고 누가 굳이 고개를 숙여 다리 밑을 내려다보지 않으면 들킬 염려는 없었다. 도랑물은 발목이나 적실까, 많이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다리 밑엔 방죽처럼 물이 방방하게 고여 있었다. 모두가 찬성했다.
우린 다리 위에 수박과 참외와 복숭아를 펼쳐 놓고 도랑물에 땀과 재로 엉망인 몸과 얼굴을 씻은 다음 퍼질러 앉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수박은 네 덩이 중 하나를 돌에 내리쳐 쪼갰다. 소문대로 복숭아는 알이 굵고 참외도 컸다. 복숭아 두 개에 참외 하나를 먹자 배가 빵빵해져 수박은 건성이었다.
목까지 차오를 정도로 맘껏 먹은 우리는 트림을 해대면서 껍질 등 흔적을 없애고는 흐르는 물에 과일만 놓아두면 떠내려가 남 좋은 일만 시킬 게 빤하여 교련복 소매를 모두 묶어 과일을 싸 다리 밑 물속에 넣고 돌을 눌러 놓았다. 다음날 천렵을 가면서 꺼내갈 요량으로. 과일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여자들이 우리들과 짝을 맞춰 온다 하더라도 충분히 먹고도 남을 양이었다. 우린 동네를 향해 출발했다.
“가시나들 누구누구 온다고 하드냐?”
인종이가 이정이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몰라 짜식아.”
그렇게 물은 인종이나 시침을 떼는 이정이나, 나나 동수도 누가 올 것인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우리들 동정의 가슴속에는 각기 좋아하는 여자들이 하나씩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한 여자가 여럿 겹치는 게 문제지만.
시골의 아침은 새벽부터 시작된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시원한 새벽에 일을 한 양이 한나절 일에 못지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아버지가 논두렁을 깎아 소에게 먹일 꼴 한 짐을 베다 놓았어도, 어머니가 밭에 나가 몇 고랑의 김을 매고 왔어도 허구한 날 ‘나 몰라라’ 잠에 빠져있었다. 밤늦게까지 쏘다니느라 바빴기 때문. 그런 아들을 아버지 어머닌 속이야 어쩔지 몰라도 모르는 척하셨다. 그런데 그 곤한 잠결에도 마을의 마이크에서 들려오는 놀라운 소식에 정신이 번쩍 들었으니.
“알려 드리겄습니다. 며칠 전 큰 비로 인해 또랑이 많이 막혀 오늘 올챙이보 보매기를 하기로 했으니 거기에 관계되는 주민여러분들은 아침을 드신 다음 한분도 빠짐없이 연장을 들고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하필이면 오늘 올챙이보 보매기라니? 우리 집도 해당이 된다. 웃들 논 서른 마지기 중에 열일곱 마지기가 올챙이보에서 흘러나오는 도랑물로 농사를 짓고 나머진 올챙이보보다 위에 있는 어픈이보 물을 쓴다. 다른 농사일은 거들지 못해도 보매기 같은 부역에는 바쁜 아버지보다 내가 참여하는 게 묵계처럼 돼있었다. 군에 가있는 형도 그랬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내가 그 묵계를 물려받은 것이다. 중학교 때까진 일꾼으로 쳐주질 않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 가고부턴 내가 가도 누구 하나 시비하지 않았다. 집에 없다면 모를까 아버지도 내가 갈 것이라 믿고 계실 것이니.
보매기는 봄에 못자리를 할 때 처음 한다. 지난 가을부터 겨울을 거치는 동안 보(洑)나 도랑에 쌓인 퇴적물을 걷어내고 허물어진 곳을 보수하며 쓰레기들을 치우는 것이다. 모내기가 끝나고 비가 많은 여름철에는 수시로 할 수밖에 없다. 비가 둑을 허물고 퇴적물과 쓰레기를 쌓이게 하고 그것들이 물의 흐름을 방해하기 마련이라.
이 일을 어쩐다냐! 여자 친구들과의 천렵은? 그런데다 사람들이 웃들과 올챙이보에 모여들어 도랑을 치우게 되면 숨겨둔 과일은? 정말로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모처럼 여자애들과 놀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보다 서리한 과일을 어찌할 것인가가 더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상머리에서 아버진 보매기 얘길 꺼냈다.
“올챙이보 보매기 한다더라?”
내가 알고 있냐는 얘기였다.
“제가 갈게요.”
그뿐이었다. 아버진 당신이 다른 일을 봐도 괜찮겠느냐는 말이었고 나는 당연히 내가 가리라는. 설령 내가 다른 일이 있어도 못 나간다는 말을 하진 못하리라. 아버진 내 말을 듣고 이내 논 몇 군데에 도열병 조짐이 있어 농약을 쳐야겠다는 말을 했고 어머닌 고추밭에 쇠비름이 거창하게 퍼졌다는 말을 했다. 나는 빠르게 숟갈을 놀렸다. 마음이 바빠진 것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친구들을 만나 대책을 세워야할 일이었다.
“오빠는 뭐 했간디 교련복에 흙이 그리 많이 묻어 있어? 윗도리는 어디 가고.”
숟갈을 내려놓고 막 일어서려던 참에 느닷없이 중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이 물고 늘어졌다. 어젯밤에 수박밭을 기었으니 오죽하랴. 잠들기 전에 벗어 우물가 함지박에 담가뒀었다.
“내가 빨 텅게 신경 쓰지 마!”
“벌써 신경 썼으니까 그러제.”
내가 불퉁스럽게 내뱉자 동생도 지지 않고 짜증을 부렸다. 그러든 말든 대꾸할 겨를도 없이 밀짚모자를 쓰고 헛간에 세워둔 삽을 찾아 마당을 나서려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는 김에 소도 매지 그러냐.”
나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외양간으로 가 소고삐를 쥐었다. 소를 강변에 내다 매는 것은 방학 중에는 내 몫이었다.
“진지 잡수시는 중이였구만이라우.”
이정이었다. 그도 역시 삽을 들고 마당을 걸어오며 본채 마루에 인사를 함과 동시에 빠르게 내게로 와 속삭였다. 똥줄이 타긴 탔던 모양.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왜 오늘 보매기를 헌다고 난리냔 말이여. 빨리 가서 다리 밑엣것을 다른 데다 숨기자. 사람들 벌써 올라가더라. 보매기 끝나고 오후에 놀면 되잖여.”
“애들은?”
“그 새끼들은 보매기하곤 상관 없잖냐.”
이발관을 하는 동수네와 아버지가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인종이네는 농사를 짓지 않는다.
“보매기하곤 상관이 없어도 과일은 상관이 있잖여?”
“그래서 자고 있는 것 깨웠응게 밥 처먹고 오긴 올 거여.”
나는 고삐로 소의 엉덩이를 때렸다. 할 수만 있다면 소의 등짝에 과일을 싣고 강변 적당한 곳에 숨겨둘 작정이었다. 골목을 지나 신작로에 나왔을 땐 올챙이보의 물을 쓰는 이들 몇이 웃들로 향하고 있었다.
“야 이정아, 만약 사람들이 다리 주변에 있으면 못 꺼내는 거 아녀?”
“과일이 문제가 아니랑게?”
“그럼 뭐가 문젠디?”
“짜식아, 교련복이 문제란 말이여. 교련복에 우리 명찰이 달려 있잖여. 수박이나 참외만 넣어뒀다면 걱정도 안 허겄다.”
아차! 나는 교련복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런 이정이를 두고 그 누가 똥통학교 다닌다고 놀릴 수 있겠는가.
“분명히 도랑 치우면서 발견될 것인디 그걸 우리가 훔쳐다가 거기에 숨겨뒀소, 하고 광고하는 꼴이잖아. 짜구가 가만 있겠냐? 난리굿을 피울 것인디?”
그렇게 되면 정말 큰일이었다. 밤마다 어디를 쏘다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뭐라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아버지가 나이가 비슷한 짜구양반한테 봉변을 당하고 난감해 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아들놈 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시킨 거여, 설마 임자가 도둑질하라고 시킨 건 아니겄지?’
나로 인해 그런 일이 벌어져선 안 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아버지와 짜구양반 사이가 원수가 되어선 절대로 안 되는 일이 내 안에 있었다.
“이랴!”
나는 소의 엉덩이를 고삐로 갈겼다. 바쁘게 동네를 벗어났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 쳐다보니 아뿔사, 께름칙할 수밖에 없는 짜구양반이 자전거를 타고 뒤쫓아 오고 있었다. 우린 한쪽으로 비켜 서 인사했다.
“진지 잡수셨어라우?”
어른을 보면 으레 하는 인사였지만 나는 더욱 공손했다. 나는 그가 마냥 어려웠다. 그러자 그가 자전거를 잠시 세우더니 입을 헤벌렸다.
“너그들이 가냐? 허 그것 참, 일을 헐만 한 사람을 보내야제 야들이 뭘 허겄다고, 너그들 농땡이 부리면 안 디야!”
일꾼으로서 우리가 별로 달갑지 않다는 투였는데도 나는 내가 남자로서 그의 눈에 차지 않는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니. 그러나 우리는 아무 소리도 못했다. 그가 저만치 갔을 때 난 이정이에게 물었다.
“보주가 누구라냐?”
“저그 안 가냐.”
이정이가 턱으로 가리킨 곳은 짜구양반이 가는 쪽이었다.
“하필 또!”
보주라면 보를 관리하는 사람을 뜻한다. 보와 도랑의 상태를 보고는 보매기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여 날을 잡아 알리고, 불가피하게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궐이라 해서 돈을 걷어 먹거리를 대고, 가을엔 마지기 수에 따라 벼나 쌀을 걷어 보를 수리할 기금을 마련하고. 그 보주는 논 주인들이 돌아가면서 맡게 돼있었다. 사당모퉁이를 돌아 웃들로 들어서 보니 벌써 군데군데 도랑에 사람들이 들어가 일을 하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논에 물을 대는 물꼬가 있는 곳을 먼저 치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보로 올라가 물길을 트고.
우리는 제발 다리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꼴바작을 얹은 지게가 이미 서 있었다. 누가 다리 부근을 치우고 있다는 암시였다. 저 멀리 논두렁길 끄트머리엔 더 이상 자전거를 탈 수 없었는지 짜구양반이 걸어서 끌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소는 자주 가는 길이었던지라 고삐를 휘두르지 않아도 제가 갈 곳을 정확히 알았다. 우리의 타는 가슴만 아니라면 들판의 풍경은 생명의 색깔인 푸름으로 넘쳐나 평화롭기만 했다.
“이정아, 주찬아!”
다리 있는 곳에 다 왔을 때 동수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를 몰고 오는 인종이 소리가 들렸다.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됐다. 서리를 같이 했으니 들켜도 같이 들키고 혼나도 같이 혼나자는 심보였으리라. 허겁지겁 오는 걸 보니 놈들도 일의 심각성을 깨달은 게 분명했다.
하필이면 지게의 임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까칠이었다. 어젯밤만큼은 아니지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필이면, 이 말을 오늘 몇 번이나 더 하게 될지…. 그의 서마지기 논이 저 아래 붙어있는 짜구양반네 논을 통해서 물을 대는 모양이었다. 그 물꼬가 그 부근에 있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우리보다 서너 살 많은 고기잡이의 명수인 기찬이와 성규네 할아버지가 다리 이쪽저쪽에서 도랑 양 옆으로 난 풀을 깎고 있었고 꼬마까지 있었다. 새카맣게 탔으나 눈이 초롱초롱한 대여섯 살 먹은 까칠이 아들. 그 지경이니 아무도 모르게 과일을 꺼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그렇다고 교련복 때문에 모른 척할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었다. 우린 머뭇거렸다. 까칠이가 우릴 힐끔 쳐다보고는 어젯밤 일은 까맣게 잊은 듯 누런 이를 드러내고, 언덕에 앉아 놀던 꼬마가 우릴 보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아이고 어르신, 보매기 나오셨는기라우?”
눈치 빠른 인종이가 머리를 빡빡 깎고 대신 수염을 기른 성규 할아버지를 향해 바람을 잡기 시작했다. 우리도 인사를 했다. 나는 강변에 소를 맬 일이 시급했다. 가로질러 가면 금방 가지만 좁은 논두렁을 지나가다 허물어뜨리기라도 하면 그것도 일이라 멀리 돌아가야 했다. 내 맘은 그때 과일을 꺼내다 들키면 들키는 거고 다행히 친구들이 무슨 수를 내 들키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입장이었다. 좀 비겁하지만 차라리 거기 없는 게 속이 편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꼬마가 다가와 내게 소고삐를 달랜다. 우리를 보고 반가운 게 아니었다. 소를 좋아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아이였다. 누가 소를 몰고 동네를 지나가기라도 하면 쪼르르 달려가 소고삐를 뺏곤 한다는. 이상하게도 꼬마가 무슨 희망처럼 보였다.
“너 이름이 뭐야?”
“용용이.”
하필이면 용용이란다. 우리들의 타는 가슴을 약 올리기라도 하듯이.
“용용 죽겠지 할 때 그 용용? 이 소 몰고 가고 싶어?”
아이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아직까진 까칠이에게 빚이 있다. 서리를 눈 감아 준 빚. 짜구양반이 우릴 보고도 아무소리 안한 걸 보면 빚진 게 확실했다.
“가칠이 아저씨, 용용이가 저하고 소 매러 갔다 와도 돼요?”
된소리 ‘까’가 아닌 ‘가’를 신경 써 부른 가칠이 아저씨. 그 얼마나 정겨운 호칭인가. 늙으나 젊으나, 여자나 남자나, 어른이나 아이나 무시하고 깔봐 부르는 한결같은 까칠이 대신 존경의 염이 담긴 가칠이 아저씨, 거기에 그를 높이고 나를 낮춘 ‘저’가 들어가 있었으니. 확실한 아부였다. 그가 감격했는가, 표정도 말투도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었다.
“그려어. 언능 갔다와아. 용용이 너 고등학생 성아 말 잘 들어야 혀어.”
아이에겐 당부까지. 아이는 신이 났는지 고삐를 쥔 손을 흔들었다. 소는 이내 풍경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나는 친구들에게 눈을 찔끔거렸다.
“여기서 하고 있어라잉. 나는 용용이랑 소 강변에 매고 올 것인게로.”
친구들은 그렇게 가면 어떡하느냐는 표정을 해보였다. 그렇다고 벼든 풀이든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뜯어먹는 소를 데리고 있을 순 없다는 걸 놈들도 잘 알았다. 하늘엔 뭉게구름 몇 덩이 푸짐하게 떠있고 논의 벼들은 소소한 바람에도 잔물결을 이루며 출렁였다. 용용이가 소를 모는 게 아니라 소가 용용이를 잘도 끌고 갔다.
냇가를 흐르는 물은 도랑에 비해 맑고 풍부했다. 큰비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강변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떠내려 온 나무 등걸과 플라스틱 통과 비닐과 흐름의 방향으로 쓰러져 모래 속에 파묻힌 풀들. 느닷없이 보매기를 하게 된 이유였다. 나는 적당한 장소에 말뚝을 박고 소를 매었다.
“이제 가자, 용용아.”
자연스럽게 우리는 손을 잡고 오던 길을 되돌아왔다. 귀엽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용용인 더욱 정감이 가는 아이였다. 아이의 고무신에 물이 들어갔는지 미끄러지며 자꾸 벗겨졌다. 나는 멈춰 앉아 등을 내밀었다.
“업혀라, 용용아.”
아이는 순순히 업혔다. 가벼웠다. 저 멀리 상사바위에서 짝을 찾는지도 모를 뻐꾸기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아래에서 여자애들과 놀기로 한 일은 아직 유효하다. 정연이도 올까? 내가 좋아하는 정연이. 그런데 말도 못하고 상사바위만큼이나 속으로만 끙끙 앓는 나의 동정. 아련했다.
“용용아, 이 형아가 노래 가르쳐줄까?”
아이는 말이 없으나 등짝의 움직임으로 봐서 수줍어하는 것 같았다.
“따라해.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산에서 우네.”
올챙이보 부근에는 짜구양반 자전거가 둑에 보이고 흰옷을 입은 사람들 몇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는 처음엔 입만 달싹이는 듯했으나 몇 번을 부르자 곧잘 따라했다. 다리 근처에 왔을 때 우리의 노랫소리를 들었는지 까칠이가 제일 먼저 쳐다보곤 함박웃음을 지었다가 내가 아이를 업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아이에게 어서 내리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내가 아이를 내려놓자 아이는 도랑에 있는 제 아빠 품으로 달려갔다.
“아이고, 주찬이학생 고마워서 어쩌까잉.”
까칠인 짠한 표정을 지으며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했다.
“빨리 와, 주찬아.”
인종이가 나를 불렀다. 다리의 상황이 의외였다. 그토록 우려했던 교련복이 다리 속에 있지 않고 보란 듯 도랑 옆 가시덤불 위에 펼쳐져 있지 않은가. 동수와 인종인 어디서 났는지 함지박으로 다리 밑의 물을 퍼내고 있었고.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다리의 앞과 뒤 도랑은 풀과 흙으로 둑을 쌓아 물이 다리 밑으로 흐르지 못하고 옆 물꼬로 흘러들고 있었다. 일명 ‘도랑 치고 가재 잡는’ 둠벙 막고 푸기였다. 이정이는 아무 걱정도 없다는 듯 저 아래 자기네 물꼬 주변을 치우고 있었고 기찬이나 성규네 할아버지도 각기 자기 물꼬 주변에서 열심이었다.
“야 어떻게 된 겨?”
“인종이와 동수는 흠뻑 젖어있었다.
“보다시피 들켜부렀어.”
“근디 아무렇지도 않네?”
“아무렇지도 않게 들켜버렸다는 야그여.”
“과일은?”
“저그.”
인종이가 가리킨 건 까칠이의 지게였다. 빈 지게였던 꼴바작 위에는 꼴이 덮여 있었다. 꼴 속에 과일이 숨겨있다는 거였으니. 어떻게 이런 사단이 났을까. 그런데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한 건 뭐고?
“자세히 말 좀 해봐라잉.”
내가 떠나고 친구들이 어떻게 하든 과일을 꺼내려 기회를 엿보던 참에 기찬이가 하필 다리 밑을 막고 푸면 고기가 엄청날 것이라고 하더란다. 나도 돌다리 밑에 고기가 많이 산다는 것쯤은 안다. 항상 어두운 데다 숨을 구멍이 많을뿐더러 도랑보다는 깊어 물이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을 다 퍼내면 고기는 그냥 줍기만 하면 되고. 가물 때 자주 하는 방법이다. 그러자 까칠이가 달려들더니 내려오는 물길을 막고 다리 밑을 살펴보더라고. 물론 고기가 얼마나 있나 무심코 봤을 것이지만 친구들은 자포자기일 수밖에. 아니나 다를까, 까칠이가 잠시 놀라는가 싶더니 피식피식 웃으며 갑자기 어디선가 함지박을 가져와 주더라고. 그러면서 자기들은 도랑 치우는 일을 계속 할 테니 인종이와 동수더러 물을 퍼내라 하고는 나중에 슬며시 와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과일을 지게에 옮겨 싣고 벤 풀까지 얹어 감쪽같게 해놓더니 태연스럽게 교련복을 주더란다. 들키면 자기 목도 달아난다는 시늉을 해보이며. 야단법석을 떨기는커녕 보매기가 끝나고 사람들이 안 볼 때 가져가라니. 전말을 얘기하던 인종이와 동수의 입에서도 어느새 ‘까칠이’란 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가칠이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우리의 걱정거리를 단숨에 해결해준 가칠이 아저니. 그런 까칠이가 어떻게 머저리란 말인가.
우린 까칠이에게 또 빚을 졌다. 그렇지만 걱정거리가 없어진 우리는 신이 났다. 풀을 베는 낫질이나 도랑의 흙을 파내는 삽질이나 물 퍼내기가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다. 나는 우리 논이 있는 물꼬를 왔다 갔다 하고 인종이는 자청하여 자전거로 동네 한 바퀴를 돌겠다고 했으니 오후에 만나게 될 정연이, 춘선이, 영숙이, 난영이, 그네들의 얼굴을 그리며 입으로는 낫질하는 사람을 왜 부르느냐고, 삽질하는 나를 도대체 왜 부르느냐고, 이제 막 유행하는 송창식의 노래 ‘왜 불러’를 멋대로 부르며 땀을 뻘뻘 흘렸다. 우리들이 풍기는 단내에는 암암리 심중에 새겨넣어둔 그네들의 내음도 섞였으리. 자기 구역을 끝낸 이정이가 내 일을 순순히 도운 것도 천렵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게 한 까칠이에게 진 빚 덕분이리라.
아침밥이 다 소화되어 배가 고파질 무렵 풀로 무성했던 언덕이 이발이라도 한 것처럼 말끔해지고 도랑 바닥을 메웠던 흙도 퍼내어 부실한 언덕에 채워졌다. 저 아래로부터 작업을 하던 이들이 혹시라도 빠지고 어설픈 데는 없나 살피며 차츰차츰 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오매! 고기가 바글바글혀.”
물을 다 퍼내가는 인종이와 동수가 탄성을 질렀다. 다리 밑은 역시 고기의 소굴이었다. 그걸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주변을 동그랗게 에워쌌다. 피라미는 물론이고 씨알이 굵은 붕어며 팔뚝만 한 메기와 빠가사리가 구물구물했다. 어느새 짜구양반까지 와있었다. 보매기는 이제 막판이었다.
“거기 고기 다 잡은 다음에 모두들 보로 올라가서 물길 트고 있어. 막걸리 받아 올텅게로.”
그렇게 말한 짜구양반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로 향했다. 까칠이가 다리 속으로 기어들어가 고기를 몰아오고 우리들은 그걸 잡아 함지박에 담았다. 용용이도 신이 났다.
모두 다 잡고 보니 작지 않은 함지박 하나 가득이었다. 막았던 둑을 허물어 원래 상태로 돌려놓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로 향했다. 과일이 든 지게는 까칠이가 지고 용용이는 임의로워졌는지 내 손을 붙들고 따라왔다. 고기가 든 함지박은 물을 퍼내느라 욕을 본 인종이와 동수가 함께 들었다.
사람들이 보에 모여들어 그때까지 물이 흐르지 못하게 임시로 막아두었던 둑을 트자 깨끗하게 치워진 도랑으로 봇물이 쏟아져 들어갔다. 그 광경이야말로 보매기의 하이라이트, 땀 흘린 보람이었다. 이제 논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보로 들어가 더러워지고 땀에 찌든 몸을 씻었다.
우리도 물속으로 들어갔다. 올챙이보 깊은 곳은 내 키보다 깊었다. 강을 가로질러 바위를 켜켜이 쌓아 일정한 수량을 유지케 하여 웃들 논들의 수원지가 되는 올챙이보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논에 물을 대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물고기도 많이 살고 아이들의 수영장이 되기도 하고 젊은이들의 은밀한 낭만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난 아까 가칠이 아저씨가 다리 밑을 쳐다봤을 때 식겁했어야.”
인종이었다.
“우리가 사람을 잘못 봤던 겨. 속이 엄청 깊은 사람이랑게.”
내 말에 이정이나 동수도 이구동성이었다. 우리는 어젯밤부터 있었던 일을 되새기며 히히덕거렸다.
“야 너그들 아지매 오니께 옷들 빨리 입어!”
누군가가 소릴 질렀다. 거의 모두가 목욕을 끝내고 둑으로 올라가 담배를 피우며 막걸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와 친구들만이 옷을 홀딱 벗은 채 물속에 남아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아지매?
우린 부리나케 옷을 입었다. 강둑이 웅성거렸다. 고개를 돌렸을 때 천만 뜻밖에도 정연이가 자기 엄마와 함께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나타난 게 아닌가. 연적이 될 수도 있는 놈들이 환호했다. 정연인 짜구양반의 딸인 것이다. 짜구댁이 아닌 둘째부인으로부터 낳은. 내가 짜구양반만 보면 어려운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우리가 강둑으로 올라가자 정연이 엄마는 국수를 담고 정연인 그 그릇에 국물을 뜨고 있었다. 들판에서 정연이를 보다니! 그러나 아는 척할 수도 없었다. 양 갈래로 단정하게 땋은 머리와 이마에 맺힌 땀방울만 보고도 내 숨이 막혀왔다. 이정이와 인종이와 동수는 서로 먼저 정연이에게 국수 그릇을 받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바쁜데 나는 가슴이 벌렁거려 그러지도 못했다.
“마침 맞게 왔네잉.”
짜구양반이 자전거 뒤에 술통을 싣고 와서 막 내리려는 찰나, 앞바퀴가 돌멩이에 걸렸던가, 짜구양반의 중심이동이 틀어지면서 자전거가 넘어지고 그가 옆으로 펄쩍 뛰었다. 하필이면, 까칠이 지게가 있는 곳이었다. 뛰면서 발이 작대기를 건드리고 지게는 힘없이 앞으로 엎어졌다. 나는 경악하여 슬로우비디오처럼 정확히 보았다. 꼴바작에 있던 과일들이 강둑 위에 그대로 쏟아지는 장면을. 모든 이의 눈이 거기에 쏠렸다.
전혀 상상도 못했을 과일의 등장에 짜구양반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입이 딱 벌어졌다. 제일 놀란 건 나나 친구들, 그리고 까칠이었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본 정연이도 놀란 눈치였다.
“아이고, 내 정신머리 좀 봐!”
지게 주인인 까칠이었다. 그가 헐레벌떡 나서며 짜구양반에게 다가갔다.
“안 다치셨어라우?”
짜구양반은 할 말을 잃어버린 모양.
“어제 정연이 아버님이 과일 따서 오늘 보매기꾼들 주라했는디 여태까정 잊어버리고 있었네 잉.”
짜구양반이 가장 사랑한다는 딸, 정연이를 들먹이며 전혀 엉뚱한 거짓말을 하는 까칠이. 정연이를 말할 땐 여러 사람을 쳐다보더니 잊어버렸다고 할 때는 짜구양반을 봤다. 그의 기막힌 임기응변! 그를 누가 미련한 곰탱이라 부르는가. 가슴을 졸이며 그 광경을 보던 우리는 그에게 세 번째로 빚을 졌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어떻게 보면 까칠이를 오해할 수 있는 충분한 상황임에도 짜구양반의 대꾸가 더 걸작이었다.
“이런, 이런, 국수 먹기 전에 돌렸어야제. 배들이 얼마나 고플 겨.”
억지로 꾸민 허세가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죄송허구만이라우.”
까칠인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때 죄송하다는 말을 다른 이들은 과일을 제 때 돌리지 않아 그렇다는 뜻으로 알아들었을 것이나 내 귀에는 허락 없이 과일을 딴 것을 용서하시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가 나를 쳐다봤다.
“주찬이학생, 뭐 혀, 어서 어른들 나눠 드려.”
우리는 잽싸게 움직였다. 국수와 수박과 참외와 복숭아와 막걸리로 푸짐한 잔치가 보매기가 끝난 뒤 강둑에서 벌어졌다. 정연이와 그 엄마는 그릇이 비워지는 동안 올챙이보 가장자리를 돌며 다슬기를 잡았다. 짜구양반과 까칠이 관계는 마을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수군거리든 말든 오래도록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들은 서로를 배려하는데 인색하지 않았으니.
우리들의 천렵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잡은 고기는 잘 손질하여 정연이 엄마 빈 광주리와 가칠이 아저씨의 꼴바작에 똑같이 나누어 얹어 놨다.
난생처음으로 나는 그날 술을 마셨다. 그리고 취했다. 가칠이 아저씨에 취하고 짜구양반에 취하고 정연이에게 취했다. 지독한 취기였다. 그 향은 나름대로 독특했다. 취함에서 깨어나서는 용기를 내어 정연이에게 편지를 썼고 여동생을 통해 보냈다. ‘하필이면’이 반복된 그날의 진상을 알리고 어렸을 때부터 너는 내 가슴속에서 별이 되어 있었노라고, 나도 너에게 그런 별이 되고 싶다고. (99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