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의 삶
김성문
산촌에 행복한 삶이 있다. 우리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수입이 적은 산촌이나 어촌, 농촌 생활을 벗어나 도시로 나간다. 그러나 고향에서 고수익을 창출하는 산촌이 있다. 1년에 반이 겨울인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의 산촌, 흘리를 소개하는 방송을 봤다.
강원도 인제에서 고성으로 가는 46번 국도를 따라 굽이굽이 달리다 보면, 태백산맥을 넘는 고개가 진부령이다. 자동차로 갈 수 있는 우리나라 최북단의 고개이다. 이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다. 진부령 정상에서 동쪽 흘리길로 약 4km 가면 흘리가 있다. 흘리는 산림이 울창하고 산이 높다 하여 흘리(屹里)라 불렀다. 이 마을은 금강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전쟁 전에는 북녘땅이었는데 전쟁 후 수복된 지역이다.
주민 중에는 바라만 볼 수 있는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도 있다. 물을 떠난 물고기는 물을 그리워한다. 고향의 그리움을 뒤로하고 실향민들은 이곳에 산을 개간해 밭으로 만들어 흘리에 정착했다. 흘리에서 목장을 하는 권영철 할아버지는 매일 일기를 썼다.
“흘리에 눈이 무릎까지 왔다.”
“이곳은 한 번 오면 여러 날 오는데, 약 2~3미터나 쌓인다.”
일기(日記)에는 온종일 또는 4일 연거푸 눈이 온 이야기도 있다. 흘리에 눈이 온 환경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주도나 강원도 고성과 강릉 산촌은 적설량이 많다. 겨울에는 교통이 끊기거나 불편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사는 대구는 눈 보기가 어렵다. 자연은 공평하지 못한 것 같다.
산촌인 흘리에 눈이 내리고 있다. 온 세상이 백설로 덮인다. 마을 주민 한 사람은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진부령의 아름다운 설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그는 취미로 찍은 설경을 동호회 카톡 대화방에도 올린다. 흘리 주위 높은 산들은 매일 봐도 다른 풍경이다.
흘리길에 쌓인 눈은 마을 사람들이 트랙터로 치운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눈 쌓인 모습이 일상처럼 느껴지고 불편함을 못 느끼고 있다. 나는 눈 내리는 광경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설렌다. 눈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함께 오기도 한다.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고 길을 잃게도 한다. 아버지 대부터 흘리에 생활한 주민 한 사람은 눈 오는 날은 길을 나섰다가는 눈에 홀린다고 한다. 눈 덮인 마을 주위는 사방이 길 같아서 헤매다가 길을 잃는다고 한다. 그래서 눈에 파묻혀 죽는 일도 있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마을에는 주민들이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고 마을 안길을 낸다. 계속 눈이 내리고 있다. 집마다 제설 장비가 있다. 한 주민은 창고에 있는 트랙터로 마을 진입로의 눈을 치운다. 마을 길이 열리는 듯하다가 이내 눈이 쌓인다. 눈에 먹을 것이 없는 산짐승은 낮에는 마을로 내려오기도 한다. 밤에는 무서워서 주민들이 집 밖에 못 나간다고 한다.
주민들은 겨울에 날씨 덕도 보고 있다. 영하의 기온은 천연의 냉장고이다. 광에는 고구마, 콩, 잡곡, 고사리, 옥수수, 감자, 감, 사과 등 겨우 내 먹을 양식을 수북이 쌓아 두고 지낸다. 불그스레한 단감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혀끝에 단맛이 감돈다. 겨울에 저장해 둔 고구마를 간식으로 먹던 농촌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아침이 되자 산 너머 동해에서 붉은 해가 힘차게 솟아 오른다. 눈을 치우는 트랙터 소리로 하루가 시작된다. 마을 길이 뚫리자 주민 한 사람이 달려와 비닐하우스로 간다. 하우스 속에는 고소득 작물인 피망이 자라고 있다. 흘리는 풍부한 물과 서늘한 기후와 바람이 병충해에 강한 피망 재배에 안성맞춤 지역이다.
이곳에서 피망을 대규모로 재배하는 농가는 연간 소득이 2~3억이나 된다고 한다. 눈 속의 보물이다. 소득이 많으니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피망 농사가 끝나는 10월 말이면 도시에 여가 주택이 있는 주민은 대부분 도시로 떠난다. 겨울에 이곳에서 아프면 병원에 가질 못하기에 병원이 있는 속초시에 집을 둔 주민이 많다. 그들은 도시에서 겨울을 나고 3월쯤 마을로 들어와서 농사를 짓는다.
그런데 도시 생활이 갑갑한 어른들은 겨울에도 흘리에서 생활한다. 흘리는 공기가 맑고 물과 먹을 것이 있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한다. 마을에는 눈이 허리까지 차오를 때도 있다. 그때는 큰 설피로 생활한다. 설피는 눈에 빠지지 않도록 신 바닥에 대는 둥글고 커다란 덧신으로 칡, 나일론 끈 따위로 얽어서 만들었다.
흘리에는 1980년 새로운 건물로 개장한 알프스 스키장이 있다. 스키장은 일제강점기부터 운영한 우리나라 최초 스키장이다. 흘리 스키장에서 전국동계체육대회도 열렸다. 흘리 주민 스키대회도 열렸다. 주민들은 모두가 스키를 선수처럼 잘 탄다. 대부분 스키 강사 자격증까지 소지하고 있다. 그래서 눈에 갇혀도 걱정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에서 가까운 스키장이 늘어나면서 2006년 알프스 스키장은 문을 닫은 후 흘리의 겨울은 적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흘리에서 겨울에 고수익을 올리는 주민이 있다. 그는 황태 덕장을 운영한다. 명태가 황태로 되기 위해서는 겨울에 찬 바람을 맞으며 얼었다 녹기를 반복해야 한다. 황태 덕장에 명태가 들어오는 날이다. 인근 주민들도 들어와서 돕는다. 황태 덕장에 명태가 걸리고 찬 바람과 흰 눈을 맞으며 잘 익어 간다. 명태 입 속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인다. 눈(雪)은 황태에 보약이다. 덕장에 목이 걸리는 명태 대열은 입을 크게 벌리고 하늘을 열심히 쳐다본다. 빨리 황태가 되고 싶은지 맨몸으로 질서 있게 똑바로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자연환경을 잘 활용하면서 사는 삶이 행복이다. 욕심내어서 악착같이 쫓아가다 보면 크게 다칠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만큼 거두어가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 산골 마을인 흘리에서 주어진 환경을 잘 활용한 주민들의 삶에서 행복을 맛본다.
첫댓글
무위자연(無爲自然)속에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는 삶
최대의 행복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 하는게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