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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도행전 18장 강해설교(2016. 3. 9/10 새벽)
오늘 사도행전 18장에서 바울은 드디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도착합니다. 고린도는 교회의 기본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안디옥교회를 시작으로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교회를 세웠지만 구체적인 공동체의 지침이나 강령을 마련하지 못했었습니다. 물론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역이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늘 핍박이 함께 했고,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교회를 차분히 세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성령님께서는 고린도에 앞서 행하시며 준비하고 계획하신 것들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렇기에 바울에게 있어서 고린도지역은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회였습니다.
고린도 역시 아덴에 못지 않는 우상숭배의 도시였습니다. 이 고린도는 북쪽으로 중부 그리이스와 남쪽으로 펠로폰네수스를 연결시키는 고원 위에 위치한 도시로 동쪽에도 서쪽에도 항구가 있는 전략 상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양편에 항구를 끼고 있어 무역과 상업이 발달되 많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있었던 이 고린도 지역은 B.C.8세기에 크게 번성하여 B.C.6-7세기경에는 대도시로서 그 위용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B.C.146년 고린도는 로마의 장군 무미우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노예로 팔려갑니다. 그리고 B.C.46년 로마 황제 시이저는 이 도시를 재건하여 B.C. 44년 로마의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B.C. 27년에는 로마의 아가야 행정 구역의 수도가 되게 하였습니다. 대개 거주하는 고린도인들은 헬라인, 이탈리아 출신의 자유민, 로마군의 퇴역 장군, 상인, 정부 관리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무역과 상업이 발달되어 경제적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고, 또 관료 출신이나 귀족 출신들이 부를 누리면서 살았던 관계로 비교적 윤택하였습니다. 그러나 풍요로움이 있는 곳에 사치와 향락이 어김없이 발달하듯 윤리적, 도덕적으로 많이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B.C. 5세기 초 고린도 사람들의 문란한 생활 때문에 '고린도 사람이 되다'는 뜻의 헬라어 '고린디아제스다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성적으로 부도덕한 도시였습니다. 또한 아덴과 같이 많은 이방 신전들이 있는 우상 숭배가 심한 도시였습니다.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른 바울은 위와 같은 사실들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고린도 지역을 들어오면서 아덴처럼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지 못할까봐 염려하는 마음이 있었고, 주저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고 함께 하시겠다고 용기를 주셨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 역시도 우상숭배의 중심지 아덴에서의 경험을(17:16-34) 잘 분석하여 타락의 중심지 고린도에서 새로운 선교 전략을 세웠을 것으로 분별합니다.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보면 때가 되었고, 경험을 통한 연단의 과정을 거쳐 준비도 되었던 사역지가 바로 고린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준비와 연단의 과정은 아름다운 동역자들과 성령의 역사의 연합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되고 초대교회의 가장 모범적인 교회인 고린도교회를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목회를 처음 시작하면 얼마나 서두르는지 모릅니다. 물론 열정이 있고, 소망이 있고 담대함이 있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목회는 믿음과 기다림이 먼저입니다. 처음에 목회를 하면 성도들 하나하나가 너무도 약하고 어리숙합니다. 무엇 하나 바로 하는 것이 없습니다. 믿을 만한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언제 돌아설지 모르고, 언제 배신할지 모릅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대단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성도들이 빨리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결단하면 좋겠는데 믿음이 얼마나 더디 자라는지 모릅니다. 좀 제대로 심으면 열매도 많고 축복도 누릴 것인데 십일조 생활이고, 예배와 기도 생활을 물론이고 심지어 주일성수도 왜 그렇게 위태하고 힘든 신앙생활을 하는지 이해하기도 힘이 듭니다. 바울 역시도 그렇게 율법이, 선진들의 전해주는 믿음의 교훈들이 신앙의 전부인줄 알았는데 예수님을 다메섹에서 만나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울 역시도 마음이 급했을 것입니다. 앞장에서 아덴에서도 우상숭배로 격분했다고 한 것처럼 때로는 그 답답함에 소리도 질렀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구세주이시고,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이시고, 그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친히 속죄의 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더욱이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권세를 이기셨음을 확실히 깨닫고 선교사로 세움을 받아 사명감마저 강한 바울에게 있어서 산과 바다, 광야와 아골 골짝도 빈들도 두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쉽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먼저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광야에서 3년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3년 만에 돌아온 바울은 즉시 사도들과 합류하여 예루살렘에서 힘 있게 사역을 시작하려 했지만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소에 머물면서 주님의 부르심을 대략 7년 여 정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고도 바나바가 안디옥으로 바울을 초청하면서 성령이 충만한 바울에게서는 곳곳에서 능력이 나타나고,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데도 바울이 원하는 결과는 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곳곳에서 핍박을 당하고 쫓겨나야 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고 능력이 있는 전도자요, 설교자인 바울도 별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왜 주님은 애써 선택하시고 부르신 이후에 즉시 써주시지 않는 것일까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고귀한 민족입니다. 왜 즉시 가나안으로 인도하시지 않고 40년간이나 광야에서 머물게 하셨나요? 이 이유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직분자이건 사명자이건 하나님이 섬김을 받으시려고 우리를 선택하여 부르셔서 부름을 받은 이상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 바로 광야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일을 맡기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믿음도 증명해 내지 못한 미숙한 아이에게 하나님은 생명을 맡기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8장 2-3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낮추어지기 전에는 쓰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지 시험해 보시고 증명이 될 때에야 쓰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약하고 무력하게 하여 낮추셔서 우리 능력이 아닌 오직 아버지의 능력으로만 행하게 하고, 손해든 이익이든 아버지께만 영광을 돌리도록 만드신 후에 쓰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배고프게 하셔서 돈이나 음식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후에 쓰신다는 것입니다.
이 음식에 대한 말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아니 영양이 있는 식품인 음식이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지 백지 위에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을 유지하게 한다는 말이냐고 반문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이 음식이며, 물이며, 시간이며, 환경이며, 수단이며, 능력이며, 소망이며, 목적이 됩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은 비로소 가나안 땅 즉 약속이 있는 땅에 들여서 경작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목회자에게는 위와 같은 믿음이 증명되어야 목회지가 주어지고, 선교사에게는 선교지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또 일반 성도들도 똑 같습니다. 이런 성숙한 신앙, 증명된 신앙, 하나님의 낮추심과 시험을 통과한 신앙인이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건설할 책임이 주어지고, 현장에 투입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감히 바울이 이 고린도에서 사역할 때가 바로 여러 가지로 성숙된 안목과 신앙의 때가 하나님이 크게 쓰시기 시작한 때라고 분별합니다. 고린도를 기점으로 바울은 이제 시련과 연단이 과정을 졸업하고 하나님이 전적으로 사용하시는 깊은 단계의 사역들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쓰기 시작하고, 눈을 들어 전 세계를 바라보면서 순교를 마다하지 않는 전적인 선교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바울은 고린도지역에서 일 년 반을 머물면서 고린도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또한 틈틈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글을 써 데살로니가전서를 이 고린도에서 집필하게 됩니다. 특별히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한 애착이 특별했습니다. 바울은 후에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라는 두 편의 서신을 통해 고린도교회를 온전한 교회로 세우기 위해 많은 애정을 쏟는 것을 보아도 그가 고린도를 많이 사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고린도 선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성공적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어떤 사람도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는 10절의 말씀처럼 바울이 이 고린도지역에 머물면서 1년 반을 담대히 복음을 전함에도 노골적인 핍박은 없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바울은 전도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의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영접한 것처럼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성공적인 고린도 사역에 있어서 여러 가지 보이지 않는 성령님의 전적인 도우심 때문이었겠지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이유도 있습니다. 먼저 실라와 디모데, 그리고 아굴라와 브리스 길라가 동역을 하였고, 디도 유스도 및 그리스보와 같은 헌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신실한 동역자 아굴라와 브리스 길라 부부는 후에 에베소까지 함께 하였으며(8절), 바울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도 내놓을 만큼 주님과 바울을 사랑하였던(롬16:34) 신실한 동역자였으며, 유대인 교회이든 이방인 교회이든 가리지 않고 헌신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협력자였습니다. 아덴에서 고린도로 내려오면서 바울이 실라는 빌립보로 보내고(살전3:1-2), 디모데는 데살로니가로 보내서 빌립보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를 살펴보고 바로 세우도록 보내고 홀로 고린도로 들어왔었기에 서로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외로운 바울은 곧 성령님의 주선으로 독수리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아굴라 부부를 만납니다. 그리고 함께 회당의 주변에서 같은 직업인 천막을 짖는 일을 하면서 안식일에는 회당에 나가 전도를 하고 있을 때, 실라와 디모데가 기꺼이 바울이 있는 고린도로 찾아와 함께 한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는 어느 정도의 독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민주적인 방법은 교회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주장하시고 올바른 복음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 그대로 성도들에게 온전히 증거 된다면 질서와 헌신과 희생은 반드시 뒤 따라 옵니다. 독재도 민주주의도 교회에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교회가 올바른 교회입니다. 말씀이 바로 서야 교회가 화목하여 동역하게 되고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 밝은빛교회야 말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말씀에 바로 서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에게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아덴 등 계속해서 핍박을 받고 쫓겨 다녔던 것이 이곳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염려가 있었고, 우상숭배가 심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고린도에 갈급함이 없는 것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으며, 또 고린도 지역의 특성이 아덴과 비슷하고, 마음 밭이 별로 좋지 않아 복음을 전해도 잘 먹혀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상실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어 하는 바울에게 주님은 9-10절에,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계속 복음을 전하라고 격려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이 함께 계시니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참된 위안을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 사명자에게 얼마나 많은 경우에 위한을 주시는지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위안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모릅니다. 다만 힘이 들어도, 염려가 되어도, 불안함이 있어도 함께 하시는 주님만 믿고 묵묵히 주의 길을 갈 때 참된 주님의 위로가 주어지는 줄 믿습니다.
주님의 위로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갈리오 총독의 재판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위로는 바울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늘 부딪히던 회당이 아닌 디도 유스도의 집에 거주하면서 조용히 그 집안에서 복음을 전하자 대적하는 유대인들이 노골적으로 바울을 핍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나 6개월이 되고 1년이 되면서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듣고 믿어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1년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대적하는 유대인들은 기어이 일제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붙잡아 끌고 총독에게 갔습니다. 고린도가 아가야의 수도이니 아가야를 총괄하는 로마총독이 당연히 머물었고, 총독의 이름은 갈리오였습니다. 이 총독 갈리오가 바울을 모함하여 고발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는 상황을 충분히 파악했습니다. 바울이 그에 대해 변증을 하려고 하는 순간 그가 나서서 유대인들에게 바울이 형사적으로 책임을 물어야만 할 일이 있다면 너희 뜻대로 재판을 하겠지만 바울이 너희들이 전하는 언어와 다른 언어, 즉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일이나, 또 예수를 다른 이름인 구세주로 명칭하는 일이나, 너희의 종교적인 율법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정치적이거나 형사적인 문제가 아니니 너희 스스로 판단할 것이라고 하면서 바울을 석방합니다. 죄없는 예수님을 죄없는 것을 알면서도(요19:4), 재판에 넘겼던 빌라도와 전혀 다른 행동을 취합니다. 빌라도야 말로 이 갈리오처럼 행동하여야 했습니다. 아무리 영향력이 있는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고발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고발한 것을 뻔히 알고(마27:26), 무죄한 줄 알면서 재판을 진행한 것은 명백한 범죄입니다. 또 재판을 진행한 것도 명백한 범죄인데 재판을 통해 무죄한 예수님을 영향력이 있는 유대인들에게 떠밀려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판결한 것은 극형을 받아 마땅한 비양심적이고, 살인을 방조하는 극악무도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빌라도와는 전혀 다른 재판의 모습으로 자신이 석방되었을 때 누구도 너를 해할 수 없으리라는 주님의 그 말씀대로 자신을 지키심을 알고 큰 힘을 얻고 더욱 담대해졌습니다.
18:18-22절은 바울 일행은 고린도교회가 일 년 반 동안 든든히 세워졌다고 판단하고 형제들과 작별을 하고 고린도를 떠납니다. 뱃길로 수리아로 떠나가게 되는데 여전히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가 함께 합니다. 그런데 아굴라와 브리스 길라가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로 이름이 바뀌어 불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내인 브리스 길라가 더 영향력이 있거나 믿음이 좋았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어쨌든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자신이 일찍이 서원하였던 대로 머리를 깎습니다. 바울이 선교사역에 어떤 목적을 두고 나실인 서원을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로인해 바울은 고린도에서 전도한 뵈뵈 집사가 있는 이 겐그레아에서 서원대로 머리를 자르고 그 머리를 제단에 올린 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던 것으로 분별됩니다. 이어 바울은 에베소에 들어가서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는 등 유익한 시간을 보내지만 예루살렘을 향합니다. 에베소의 여러 사람이 바울이 좀 더 머물기를 청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다시 들리게 될 것이라며 한사코 사양하고 예루살렘 길을 서두릅니다. 이어 가이사랴에 도착하여 잠시 교회 안부를 묻을 후에 안디옥으로 향하여 2차 전도여행을 끝냅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막바지에 그렇게 서두른 것에 대해 신학자들은 그가 예루살렘으로 서둘러 가기를 소망했다고 전합니다. 실제로 일부 사본에는 바울이 나실인으로 서원을 하고 머리를 깎은 후 그 서원을 마무리 하려고 예루살렘으로 속히 올라가기를 원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합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아무리 바쁘더라고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18:23절은 이제 바울의 3차 선교여행의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안디옥에 잠시 여장을 푼 바울은 서둘러서 3차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2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말씀과 기도와 휴식으로 재충전을 하던 바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3차 선교여행의 출발입니다. 제가 이제 바울의 사역이 깊이가 있어졌다는 말씀처럼 바울에게 있어서 헛된 시간이 필요할 리가 없습니다. 이미 바울은 주님과 깊이 교제하면서 은혜를 충만히 누리고 있었으며 어디에서라도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고 생명을 다할 결단이 서 있었기에 바울은 굳이 재충전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 한 시간이라도 먼저 사명길에 나서서 조금이라도 더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명감에 일찍 나섰을 수도 있겠습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전에 세운 교회들을 심방하고 권면하는 특성이 있고, 이전에 마게도냐로 가라고 하시면서 아시아 선교를 막으셨던 성령님께서 이제는 아시아 전도를 허락하셔서 유럽이나, 아시아를 막론하고 모든 곳이 사역지가 되었던 지경이 넓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이 3차 선교여행 동안 성령과 깊이 교제하면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로마서와 같은 귀한 말씀들을 서신서를 통해 기록한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히는 특징이 있는 사역길이었습니다. 더불어 당시 복음의 발원지요,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던 예루살렘 교회들이 흉년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에 헌금을 모금하여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귀한 사역도 감당합니다.(고후8장) 특히 당시 마게도냐 지방의 성도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분에 넘치는 헌금으로 아름다운 사랑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동역과 선교의 헌금은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사랑의 헌금도 가르치고 드리도록 권면하여 성도들에게 축복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아볼로의 사역에 관한 내용을 18:24-28절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떠나 갈라디아와 부루기아를 거쳐 에베소에 이릅니다. 에베소에 대한 말씀은 다음 장인 19장에서 드리도록 하고 오늘은 그 바울의 사역 중에 에베소에서 있었던 아볼로에 대한 일들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깊은 철학과 풍부한 지성을 바탕으로 성장한 아볼로는 철학과 성경에 뛰어난 지식이 있었으며, 웅변술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알면서도 온전한 믿음에 이르지 못했고, 예수님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가슴으로 뜨겁게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말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는 생명이 없으므로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안다고 그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행동으로 순종해야만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 참된 신앙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은 아볼로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아볼로를 귀하게 써주신 것입니다. 아볼로처럼 우리도 머리로만 알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가슴으로 은혜를 누려야 할 줄 믿습니다.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왜 하나님께서 나를 써주시지 않느냐고 하소연도 많이 하고, 원망의 기도도 많이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말씀에 바로 서고 쓰임 받을 만한 은혜가 있는 사람은 여전히 귀하게 쓰임을 받는 줄 믿습니다. 쓰임 받지 못한 것은 내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써주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겠다고 부르셔 놓고는 왜 안 쓰시겠습니까? 내가 은혜가 없고, 내가 믿음이 없고, 내가, 순종이 없고, 내가 생명의 말씀을 소유하지 못했고, 내가 누군가를 책임질 능력이 없고, 하나님이 무슨 일을 맡길 만한 자질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써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얄팍한 인간의 머리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조금 있다고 내가 장로입네, 목사입네 하고 목에 힘준다고 하나님께서 써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광야의 40년을 들어 낮추시고, 시험하신 후에야 비로소 가나안 입성을 허락하시고 경작지, 즉 목회지를 허락하셨던 것처럼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서 쓰임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내가 말씀에 바로 서고, 쓰임 받을 만한 은혜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와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를 반드시 하나님의 귀한 사역에 귀하게 써주실 줄 믿습니다. 다 쓰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밝은빛교회 유 지명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