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산 참사, 우린 모두 공범이다
화왕산은 아름답고 역사와 전설이 깃든 산이다.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에도 등장하고, 임진왜란 땐 곽재우 장군이 산성을 쌓아 1000여명의 병사들을 지킨 애국혼을 지녔으며, 산정엔 3개의 연못, 즉 삼지연이 있어 이곳에서 창녕조씨가 성을 얻었다는 득성의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봄이면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가을이면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그런 화왕산이 참사의 산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바로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 억새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억새는 한 번씩 태워줘야 더 탐스럽게 큰다는 속설을 믿은 것이고, 태우다 보니 불구경만한 볼거리가 없으니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덩달아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니 자연 거대한 축제가 된 것이다. 3년마다 불을 질렀는데 그때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별일 없음에 안도하고 또 3년 후를 기약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참사 또한 차츰 잊혀져 간다. 사망자들의 장례식을 치렀고 군 청사에 걸렸던 조의 현수막도 내려졌다. 보상심의위원회가 발족되었고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번에도 역시 언론은 발빠른 취재를 통해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해 내었다. 일이 벌어지고 보니 ‘화왕산 억새태우기’는 숱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마른 억새에 불을 붙이면 기압이 어떻고, 산불에는 방어선이 필요 없으며, 정상 6만5000평에 서식하는 숱한 짐승들의 생태계 파괴, 산 정상에서 터뜨리는 불꽃놀이는 산짐승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등등 들어보니 문제의 백화점이었다.
여기서 언론에 대한 회의가 든다. 열흘이 넘는 기간 동안 모든 미디어들은 화왕산 참사를 말하고, 그 위험과 관계자들의 부주의를 말했지만 그전엔 이런 식의 보도는 거의 없었다. 어김없이 이때가 되면 방송국에선 억새태우기의 장관에 대해, 볼만한 불구경 축제로 뉴스 시간을 장식했다. 그 많은 블로그나 카페를 클릭해 봐도 생태계를 걱정하거나 화재의 위험을 경고하지 않았다. 대보름을 빛내는 흥겨운 축제로만 소개했으니 우리는 모두 공범이 아닌가. 참사를 전하고 관계공무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우는 언론은 왜 반성하지 않는가.
고백하건대 필자 역시 이 불구경을 즐긴 사람이다. 공교롭게도 그날 현장에 있었고, 그전에도 두 번이나 구경을 갔었다. 왠지 큰 죄를 지은 느낌이다. 공무원들의 처벌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고충과 입장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하다. 배바위쪽에서 안전요원으로 배치된 여직원 한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직접 체험한 필자가 보기엔 해마다 조금씩 개선되어 간다고 느끼고 있었다. 관룡사 쪽 임도를 이용하는 이들을 위해 차의 진입을 막고 셔틀버스를 이용하게 했다.
안내자들은 친절하고 열의를 다하고 있었다. 예년에는 길이 좁고 미끄러워 정상 성문 진입이 힘들었는데 올해는 나무계단을 넓게 설치하고 주변에 가로등을 켜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끊임없이 안전수칙을 따라달라는 방송을 했지만 스스로 안전을 지키려는 자세를 갖지 못한 이들도 있었기에 이 모두를 공무원 탓만 할 수는 없다.
매스컴에서는 안전요원이 턱없이 적었다고 했지만 군세가 약한 창녕군 입장에서는 더 많은 인원을 배치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뭐니뭐니 해도 1985년부터 20년간 이 행사를 진행해 왔지만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고, 상위기관에서 위험에 대한 경고나 사전조사를 한 적도 없었다. 실제 돌풍이 없을 때의 불은 다소곳했고 크게 위험해 보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혹시 했던 기대는 엄청난 참화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내고 말았다. 창녕군수는 곧바로 억새태우기 행사를 그만둔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비단 화왕산만의 문제인가. 보름날 달집태우기 행사는 전래된 민속놀이지만 한동안 정부에서 금한 적이 있었다. 바로 화재의 위험 때문이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자치단체들은 전국적으로 불을 질러댄다.
아니 요즘엔 인근 마을마다 경쟁적으로 같은 행사를 한다. 은근히 우리가 더 큰 달집을 만들어야 한다는 경쟁심도 생긴다. 단체장은 힘들이지 않고 멋진 퍼포먼스의 주인공이 되니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표를 계산하는 그들에겐 매력 있는 행사지만 역시 화재의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마을마다 똑같고 위험한 불축제는 이제 좀 자제할 때가 되었다. 화왕산의 교훈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시 인
- 기사작성: 2009-02-24
첫댓글 네 저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올해는 서초구 양재천 달집태우기 행사에 갔었는데 불을 보는것은 장관이나 맘 한구석은 위험에 대한 불안한 맘 -----다시말해 긴장속에 구경하는게 사실이지요,
잘 계시죠? 이래 저래 하는 일 없이 바쁘네요. 좋은 소식 있으면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