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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에서 가장 큰 만족을 얻었을 때는 언제인가요?” |
언뜻 보면 너무나 평범한 이 질문을 통해 칙센미하이는 현대 심리학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주제가 된 몰입(flow)이라는 현상을 밝혀냈다.
몰입이란 어떤 활동에 깊이 빠져서 시간이나 공간, 타인의 존재나 심지어 자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잊는 심리 상태를 의미한다.
운동이건 독서이건 너무 몰입한 나머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칙센미하이는 명상가, 오토바이족, 체스 선수, 조각가, 공장 근로자, 발레리나, 암벽 등반가, 음악가 등 서로 다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보고한 경험이 매우 비슷함을 발견했다. 이는 신비주의자가 말하는 ‘무아지경’, 화가와 음악가가 말하는 ‘미적 황홀경’, 운동선수들이 말하는 ‘물아일체의 상태’와 같은 심리 상태였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활동을 하면서 몰입 상태를 경험하지만 그 순간의 경험을 묘사하는 방식은 놀라우리만큼 비슷했다.
칙센미하이가 발견한 몰입의 경험은 다음과 같은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 정신을 집중한다 ■ 뚜렷한 목적이 있다 |
몰입이 집중력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
집중력이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부담스럽고 힘들다는 느낌을 주지만, 몰입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빠져 들어가는 것으로 전혀 힘이 들지 않는 상태로 행복감을 준다.
몰입을 영어로는 flow(흐름)라고 하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이 사실은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되었다.
몰입을 자주 경험한다고 보고한 사람과 그렇지 않다고 보고한 사람들을 나누어 대뇌피질의 활성도를 측정했다. 빛이나 소리 같은 자극에 주의를 기울일 때, 얼마나 정신적 에너지를 어느 정도 소비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몰입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보고한 사람들은 자극에 집중할 때 피질의 활성도가 평소보다 증가했지만, 몰입을 자주 경험한다고 보고한 사람들은 반대였다. 오히려 평소보다 활성도가 더 떨어졌다. 즉, 주의 집중을 하는 순간에 정신적 노력이 오히려 덜 필요했던 것이다. 이 실험 결과는 몰입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자극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매 순간 무엇이 적절한 자극인지 결정하고 초점을 맞추는 것은 매우 귀중한 능력이다.
정신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다양한 자극들에 주의가 분산되어 주의 집중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와 반대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선택할 수 있는 주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필요한 자극에만 주의 집중을 하느냐, 아니면 너무 많은 자극에 주의를 기울여서 힘든 마음을 가지느냐는 초보자와 전문가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몰입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
칙센미하이는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 몰입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첫째는 명확한 목표와 규칙이다.
사람들은 장기나 바둑 같은 게임이나 테니스나 농구 같은 운동을 할 때 곧잘 빠져든다.
그리고 등산이나 음악연주, 뜨개질이나 외과의사가 하는 수술도 목표와 규칙이 명확하기 때문에 몰입하기 좋다. 목표와 규칙이 명확할 경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고 반응할 수 있다.
몰입이란 상태는 갈등과 고민이 없이 우리의 정신력이 하나로 모아지는 순간인데, 목표와 규칙이 애매하다면 무엇을 어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행동에 대한 빠른 피드백이다.
피드백이 빨리 와야 작업이 얼마나 순조롭게 이루어지는지를 알 수 있다.
장기나 체스는 말 하나를 움직일 때마다 유불리를 알 수 있고, 운동경기는 점수를 통해 승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등산가는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정상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으며, 음악가는 연주하는 매 순간마다 자신의 연주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알 수 있다.
뜨개질하는 사람은 한 땀 한 땀이 자기가 의도하는 무늬와 맞는지를 곧바로 알 수 있으며, 외과의사는 수술 칼이 동맥을 잘 피했는지 아니면 출혈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일상에서 몰입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러한 피드백이 없거나 너무 느리게 오기 때문이다.
셋째는 적절한 과제의 난이도이다.
아주 어렵거나 아주 쉽지 않아야 한다. 실력에 비해서 너무 어려운 일이라면 긴장과 불안을 경험할 것이고, 너무 쉽다면 따분함과 지루함을 경험할 것이다.
중학생이 구구단을 암기하거나 미적분 문제를 푸는 경우 몰입이 일어나기 힘들다. 구구단은 너무 쉽고, 미적분은 너무 어렵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도전해 볼만한 과제가 가장 좋다.
이상의 세 가지 조건이 중복되는 환경이 되면, 몰입이 발생한다.
몰입을 하게 되면 모든 정신력을 쏟아 붓기 때문에 잡념이나 불필요한 감정이 끼어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게 되며, 한 시간이 일 분인 것처럼 금방 흘러갔다고 느낀다.
외부 자극으로부터 경험하는 쾌락과 즐거움 역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긍정 경험이지만 이는 다분히 소비 중심이다. 시간과 돈을 써야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외부의 자극이 없으면 경험할 수 없고, 감각을 통해 경험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큰 자극을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몰입은 그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는 분명한 투자다. 당장에 큰 기쁨과 즐거움은 얻을 수 없더라도 미래를 위해 마음의 자산을 쌓는 투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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