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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 白頭大幹 ]
* 위 치 : 충북 단양
* 산행일시 : 2022년 11월 06일
* 교통편 : 안내산악회
* 회차 : 대간 63-18
* 산행코스 : 저수령[0.9km/20min]-촛대봉[0.4km/8min]-시루봉(인증)[0.9km/15min]-싸리재[2.6km/53min]흙목[1.2km/29min]-뱀재[1.4km/25min]-솔봉(인증)[1.7km/27min]-묘적령[2.4km/50min]-묘적봉[1.1km/28min]~도솔봉(인증)[1.7km/1h36min]~삼형제봉[1.4km/1h2min]-죽령[4.2km/1h27min]~죽령탐방지원센터(국립공원 스탬프투어 인증)~죽령휴게소주차장(약 20.2km/10시간)
* 산행시간 : 02:32~11:00 (산행 8시간 28분/휴식시간1:19분)
* 산행속도 : 2.85 km/h
* 산행거리 : 20.4km
* 날씨 : 흐림
* 기온 : 2~10℃
* 약수터 정보 : -
* 조망점 : 정상
* GPX 트랙 : 별도 첨부
* 산행 난이도 : 고도차: 보통 , 거리:보통
* 주요 볼거리 : 능선길. 정상 조망.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쪽으로 흐르다가 태백산 부근에서 서쪽으로 기울어 남쪽 내륙의 지리산에 이르러
우리나라 땅의 근골을 이루는 거대한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이나라 골격의 틀 중에서 장대하고 당당한 산줄기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길게 연결된 장대한 산줄기로 그 길이는 약 1,400km이나 남한에서 종주할 수 있는 거리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향로봉까지 약 684km이다.
백두대간은 지금껏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걷는 것이 제일이다.
여름에는 그래도 일찍 이출이 시작되기 때문에 적은 거리를 새벽 시간에 걸었는데.
요즘은 일출이 거의 7시에 시작되다 보니 많게는 4시간을 아무것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걸어야 하는 아쉬운 걸음이다.
전체 한번 다 걷고 난 다음에 다시 사진으로 담지 못한 곳은 가봐야겠다.
이전에는 저수령에서 서쪽으로 이번에는 저수령에서 동쪽으로 가는 코스이다.
일전에 비탐을 졸업하여 이번에는 편하게 산행을 할 수 있었다.
항상 궁금했던 소백산 시작 지점까지 걷는 코스이다.
저수령에 3시가 조금 못된 시각에 도착을 했다.
이전에는 따뜻한 가을이었는데.
이곳에 2시 30분경 도착을 했는데 정말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곳도 그렇고 강원도 쪽으로 향하는 능선에는 많은 바람이 분다.
아무래도 강원도에서 넘어오는 바람이 백두대간을 넘으면서 바람이 거세진 듯하다.
기온은 영상 2도 정도 되는데 초속 6m가 넘는 바람에 손도 서러웠다.
다행하게 겨울등산 준비를 하고 온 상황이라서 옷을 입고서 밖에는 면 재킷을 입고 산행을 준비했다.
다운재킷과 바람막이도 가져왔는데 아직 그렇게 춥지는 않은 것 같다.
긴 장갑을 끼고서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된다.
오르막인데 낙엽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미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육산이라서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저수령] 저수재 850m
죽령만큼 교통량은 많지 않지만 경북 예천군의 위치에서는 수도권이나 중부 내륙으로 접근하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대간의 북쪽 사면을 목초지로 개간하여 소를 기르는 소백산목장이 언저리에 있다. 고갯마루에는 휴게소와 주유소가 있지만 이용자는 많지 않다. 예천 쪽 1Km 지점에 아담한 용두리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고려 태조 11년(928년) 12월, 고려국의 남쪽 성인 고창군(현재의 안동)을 후백제의 견훤이 포위하자 왕건은 유금필을 대장으로 삼고 저수봉으로부터 나아가 크게 이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저수재가 개척된 지는 오래된 것 같다. 우리말로 ‘돼지머리고개’처럼 생긴 곳이다.
이곳은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를 경계로한 도계(道界)지점으로 경북과 충북을 넘나드는 이 고개이름은 옛부터 저수령(低首嶺)이라고 불리워 왔다. 지금의 도로를 개설하기 이전에는 험난한 산속의 오솔길로 경사가 급하며 지나다니는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뜻으로 불렸다고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수령에서 은풍곡(殷豊谷)까지 피난길로 많이 이용되어 왔는데 이 고개를 넘는 외적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도로는 지방도 927호로 1994년도에 개설 완료하여 충북과 서울 강원지방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관광 및 산업도로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남쪽(예천방향) 1.6Km 아래 지점에는 멀리 학가산이 바라보이는 아늑한 산자락에 경상북도와 예천군에서 괘적한 휴계공원을 조성하여 이곳을 지나는 많은 길손들의 쉼터로 제공되고 있다.
저수령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이곳 촛대봉이다.
산행 시작한 지 30분 거리는 약 0.8km 정도 소요된 곳에 위치한 촛대봉이다.
저수령이 870m 이곳이 1080m 약 200m의 고도를 오르는 경사지이다.
[촛대봉(촉대봉)]
소백산 마지막 봉우리. 저수령 건너편의 옥녀봉과 마주 서 있다. 서쪽 사면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편으로 목장용 초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다. 이곳부터 대간은 방향을 틀어 서진하면서 내륙의 중앙부를 동서로 관통한다. 세워놓은 촛대와 같이 높게 솟아 있다. ‘촉대’는 촛대의 한자어다.
촛대봉에서부터 약 700m 저수령에서는 약 1.5km 지점에 있는 투구봉이다.
이곳까지 약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촛대봉에서 투구봉은 높이가 같기 때문에 능선을 걷는 수준이다.
시루봉이다.
높이 1110m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예천군 상리면의 경계에 위치한 봉우리이고.
산의 모양이 떡을 치는 수와 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까지 약 5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시루봉] 1080m
소백산의 산괴가 월악으로 이어지기 전에 두 개의 봉우리로 마감된다. 시루봉과 촉대봉이다. 산의 성질은 벌써 월악을 닮아 바위로 빚어졌다. 저수령에서 출발해 간단하게 등반하고 유황온천으로 향하는 잉ㄹ반 산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떡쌀을 찌는 시루와 같이 생겨서 붙은 이름인데, 밑에서 무엇이 받쳐주는지 뭉뚝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다.
싸리재이다.
다음 이정표 흙목정상까지 약 1KM 정도가 남았고.
온 길 배재는 1KM 정도 된다.
흙목정상이다.
이곳의 이정표는 흙목재라 쓰여 있다.
전체적으로 육산으로 작은 오르막이 약 10여 개소 있는 곳인데.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은 산행이었다.
그렇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월동장비를 잘 착용하여 걸어야 하는 조금은 추운 산행이었다.
아무래도 몸이 아직 겨울을 준비하지 못해서 더 추운 것이라 생각 든다.
[흙목]
흙목 근처 예천군 상리면 두성리에 흙목마을이 있다. 토항(土項)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명풍수 ‘박성’이라는 사람이 산천에 제사 지낼 때 향을 피운 곳이라고 하여 吐香이라고 적기도 한다. 吐香이 土項ㆍ흙목이라 와전되었다고 한다.
흙목재에서 약 2KM를 걸어온 지점이다.
솔봉까지는 약 1KM 정도가 남아 있다.
[뱀재]
솔봉에서 남쪽 1Km 지점에 있는 공터다. 대강면 남조리와 상리면 초항리의 중간에 위치한다. 예전에는 양쪽을 넘나드는 고갯길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오솔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뱀처럼 길다고 하여 뱀재로 부른다. 우리말이다.
솔봉이다.
이곳 정상 표지판은 아무래도 산 사람이 만들어 놓은 듯한다.
백두대간 33구간 2번째라 쓰여 있다.
고도는 1021M로 이전 투구봉. 촛대봉과 동일하다.
[솔봉]
도솔봉 구간의 한가운데에 해당한다. 첩첩산중이기는 하지만 조망이 매우 좋다. 동쪽으로 예천군 고항리의 시골마을 풍경이 발끝에 놓이고, 서쪽으로는 단양유황온천이 있는 남조리 일대의 농경지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솔봉은 ‘소나무봉’이다. 고항리의 ‘송전마을’도 소나무가 많은 산촌이다.
묘적령이다.
드디어 저 멀리서 날이 밝아오는 것 같다.
이곳부터는 조금씩 산이 가팔라진다.
소백산 산 자락이지만 꼭 월악산을 닮아가는 것 같다.
오늘의 일출은 6시 55분 날이 깨끗하기는 하지만 안개등이 많이 있어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묘적령]
묘적봉 남쪽 사거리의 안부로 대간은 이곳에서 경북 예천군과 단양군의 지경으로 들어선다.
묘적령에는 죽령까지 약 8.6KM 지점은 경사가 험하여 시간이 7시간 이상 소요된다 쓰여 있다.
이곳에서 탈진이 된 사람도 있다고 각별하게 주의하여 산행을 하라고 쓰여 있다.
이런 표지판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이곳까지 약 4시간이 조금 못 된 것 같다.
벌써 저 멀리 날이 밝아온다.
지금 시각은 6시 30분경 되었다.
아직도 일출 시간이 25분 정도 남았다.
묘적령에서 출발해서 높고 넓은 바위에 올라서 조망을 바라본다.
저기 저 능선을 새벽에 걸은 것 같다.
저곳은 아마도 경북 영주시 풍기읍쯤 되는 듯하다.
안개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출이 되는 곳에 높게 안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저기 저 높고 뾰족한 곳이 묘적봉이다.
저곳까지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일출을 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저 근처에서 일출을 보기로 하고 다시 묘적봉을 향하여 출발을 했다.
조금씩 올라가면서 시간이 얼추 다 되어 동쪽을 쳐다봐도 아직은 조금 이른 것 같다.
일출이 시작되려면 하늘이 빨갛게 물들면서 일출이 시작되는데 아직 그런 전초 증상도 없다.
묘적봉을 5m 앞두고 갑자기 해가 불쑥 떠 오른다.
아무 증상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해이다.
이미 해는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넓은 바위를 찾아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오늘도 드디어 일출을 봤다.
난 이런 새벽을 열어주는 아침 햇살이 너무 좋은 것 같다.
조용한 새벽을 가르는 일출 드디어 오늘 하루를 밝혀 주는 것 같다.
묘적봉에서 일출도 보고 바람이 거세어 어디 아침을 먹을 수 없어 다시 내려가서 아침을 간단하게 먹었다.
묘적봉 1148m이다.
저기 저 먼 곳이 도솔봉이다.
오늘 코스 중 제일 힘든 곳이 도솔봉을 오르는 코스이다.
그렇지만 실제 올라보니 도솔봉은 어렵지 않았고 그 뒤의 삼형제봉이 더 힘들지 않았나 생각 든다.
[묘적봉]
칼바위능선과 1185봉을 지나서 만나는 경승지다. 봉우리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먼저 만나는 것이 정상이다. 정상은 바위와 흙과 나무가 잘 조화를 이루면서 오똑하게 올라앉았다. ‘묘(妙)하게 쌓여진(積) 봉우리’이니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든 어느 방향으로 바라보든 경관이 빼어나다.
도솔봉으로 가는 능선이다.
보니 아직도 정말 먼 것 같다.
가다 보니 도솔봉에 운해가 드리운다.
아..!
그러면 안 되는데 이제 겨우 조망이 되는데 운해가 드리우면 풍경은...!
지금껏 돌아온 능선이다.
작게 오르락내리락 작은 봉우리들의 연속이다.
도솔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난 날이 밝아서 이곳저곳 사진으로 담느라 여념이 없는데 일행들은 벌써 도솔봉 쪽으로 거의 다 올랐다.
그래도 해가 뜨고 나니 조금은 기온이 오르는 것 같다.
구름은 가득하지만 능선이 참 멋지게 펼쳐진다.
도솔봉이다.
도솔봉에 오르면 정상석이 2개소에 있는데.
이고은 도솔봉 정상 바로 아래에 헬기장이 있는데 도솔봉이라 표지석이 있다.
도솔봉 정상이다.
1314m이니까 다른 곳보다 약 200m가 높은 곳이다.
오늘 이곳에서 백두대간 마무리하시는 메로나님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같이한 산우님들과 함께 사진을 담았다.
[도솔봉] 兜率峰 1314m
도솔봉은 형제봉과 더불어 가장 한적한 육산으로 꼽히고 있다. “여지도서”에 (두솔산:兜率山)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도솔천에서 따 온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도솔산에는 도솔산성이 있었는데, 대동여지도에 따르면 ‘등강성’이라 했다. 6.25 당시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 도솔천 [兜率天, Tusita]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欲界) 6천(六天) 중의 제4천.
통속적인 어원 해석으로는 ‘만족시키다’의 의미로 설명하여 지족(知足) ·묘족(妙足) ·희족(喜足), 또는 희락(喜樂) 등으로 번역한다.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이라고 하며, 석가도 현세에 태어나기 이전에 이 도솔천에 머물며 수행했다고 한다. 현재는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여기에서 설법하며 남섬부주(南贍部洲)에 하생(下生)하여 성불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도솔천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로서, 정토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소백산 국립공원에 속하는 도솔봉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형제봉과 더불어 가장 한적한 육산으로 꼽히고 있다. 도솔봉은 소백산의 축소판이라 불릴만큼 한 키나 되는 철쭉과 진달래가 화원을 이루며 각종 고산식물이 많다. 또한 숲길 가득 수목이 울창하고 계곡마다 꽃피는 초본류가 무성하여 발길 닿는 곳마다 풍치가 그만이다. 정상 도솔봉을 주축으로 삼형제봉과 묘적봉을 거느리고 우뚝 솟아 있으며, 능선에는 바위지대와 억새등이 있다. 정상 암봉에 서면 중령에서 장엄하게 뻗어 오른 소백산의 장릉을 끝까지 바라볼 수 있어 황홀하고, 남쪽으로는 활같이 구부러지면서 황정산으로 이어내린 백두대간이 아련하기만 하고, 단양팔경으로 유명한 산야가 펼쳐져 보인다.
더 가야 하는 삼형제봉 쪽의 모습이다.
멀리 속리산 쪽 모습이다.
제2 연화봉 쪽의 모습인데 참 멀리도 보인다.
이곳에서 3형제봉을 가려면 북쪽으로 더 가야만 하는데 벌써 동쪽으로 연화봉이 보인다.
맞나 방향 감각이 잘 모르겠다.
죽령에서 연화봉을 해서 올라야 한다면 우측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는 전방에 보여야 하는데...!
지도에서 찾아보니 방향이 맞기는 맞다.
멀리 도솔봉 쪽 모습이다.
정작 3형제봉은 탐방로가 아니라고 막아 놓았다.
그래서 그냥 죽령으로 향했다.
죽령은 도솔봉에서 북쪽으로 해서 3형제봉에 도착을 했는데.
3형제봉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꺾어서 죽령으로 향했다.
[삼형제봉]
우리나라에서는 ‘형제봉’이라는 산 이름이 유난히 많다. 대부분 엇비슷한 높이의 봉우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거나 나란히 늘어서 있는 형상을 산 이름으로 지은 것이다. 봉우리가 두개면 ‘형제봉’, 세 개면 ‘삼형제봉’, 일곱 개면 ‘칠형제봉’으로 부르는 식이다. 이곳의 ‘삼형제봉’도 예외는 아니다. 부분적으로 암릉을 형성한다.
삼형제봉에서 죽령까지는 약 3.3km 정도 된다.
평범한 육산이고 경사도 그리 심하지 않은 하산길이다.
이렇게 하여 죽령에 도착을 했다.
좌측으로 가면 소백산을 오르는 등산로 입구가 있는데.
이곳은 죽령주막이 있는 영주시 쪽의 경계지점이다.
죽령주막이다.
이곳에서 주문해놓은 점심을 함께 하였다.
[죽령] 689m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경계의 소백산맥에 있는 고개.
높이 689m.도솔봉(兜率峰:1,314m)·연화봉(蓮花峰:1,394m)·국망봉(國望峰:1,421m) 등 높이 1,400m 내외의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는 험한 지세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조령과 더불어 영풍-단양 간의 주요교통로였다.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했다 한다. 서쪽 사면은 충주호로 흘러드는 죽령천의 상류 하곡과 연결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아달라이사금 5년에 이 고개를 사람이 통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전한다. 비교적 높고 험한 고개이므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걸어다녀야 했던 시절에는 이 고개에 도둑떼가 들끓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도둑떼에게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도둑소굴로 숨어들어 망을 보다가 사람들에게 신호로 "다자구야"라고 외쳐서 도둑떼를 사로잡는 데 공을 세워 이곳 주민들은 매년 대강면 용부원리의 산신당에 모여 다자구 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중앙선이 이 고개를 통과하기 위해 '또아리굴'이라 불리는 루프식 터널을 건설했다. 죽령에서 단양까지의 서쪽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높은 곳까지 개간되었고 동쪽 사면인 경상북도 풍기 쪽으로는 산림이 우거져 있다. 부근에 죽령 봉수와 보국사, 희방사·죽죽사가 있다.
아흔아홉 구비의 험하고 힘든 고개로 유명한 죽령은 옛날부터 오르막 30리, 내리막 30리라 했다. 소백산맥이 영남과 호서를 갈라놓는 길목에 해당하며, 추풍령, 문경 새재와 더불어 삼국시대 이래 군사적인 요충지로 영남권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3대 관문의 하나로 각광받아 왔다. 삼국사기에 ‘아달라왕 5년 3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 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에 竹竹(* 642년 대야성에서 백제의 윤충에게 죽은 죽죽과는 동명이인)이 죽령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殉死)했고, 고갯마루에는 죽죽을 제사하는 사당(祠堂)이 있다’ 했다. 그래서 죽령이라 한다. 일명 대재. 삼국시대 이래로 봄·가을에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죽령사(竹嶺祠)라는 산신사당이 있었다. 대강면 용부원리 죽령역에서 풍기읍 희방사역으로 빠지는 중앙선 철도가 길이 4,500m의 똬리굴(죽령터널)을 통하여 죽령 산허리를 통과한다. 또 중앙고속도로 단양~풍기 구간이 죽령터널을 통과하여 나 있다.
죽령은 한동안 고구려의 국경으로 신라와 대치, 삼국의 군사가 엎치락 뒤치락 불꽃 튀는 접전장이었다.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한 것은 장수왕 말년 신라 진흥왕 12년, 왕이 거칠부 등 여덟 장수를 명하여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략, 죽령 이북 열 고을을 탈취했으며, 그뒤 영양왕 1년 고구려 명장 온달장군이 왕께 자청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라고 한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서도 죽령이 막중한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를 지날 무렵에는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우왕 8년(1382년)과 9년에 각각 왜구가 죽령을 넘어왔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다.
저곳이 3형제 봉인 듯하고 좌측 뒤로 도솔봉이 아닌가 한다.
오늘은 이것으로 백두대간 36구간 중 정확하게 절반인 18곳이 끝났다.
GPS 트랙
본 산행의 GPS 트랙
설명이 포함된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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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일찍 산행을 마치셨군요.
네..!
거의 대부분 산행 거리가 20km 정도 되다보니 끝나는 시간이 조금 빠른 것 같더라구요.
요즘은 일출도 늦어서 볼것도 별로 없어 조금은 아쉽더라구요.
절반 이상 진행 해야만 일출이 시작되니..!
나중에 못 본곳 한번씩 다시 가던지 해야 할 듯 하네요.
사진으로 담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토요 무박인데 일찍 끝나니 나름 괜찮은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