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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원미동 사람들> - 양귀자 연작소설집, 초판 1987년, 살림.
나는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초판이 1987년에 발간되었으니 아마 그 때쯤이 아니었을까? 그 때 양귀자가 참 재능 있는 작가라는 생각했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처음 부분이 서울에서 부천 원미동으로 이사 가는 장면이라는 것과 ‘한계령’을 부르던 친구를 끝내 만나지 않고 돌아서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이 책이 1987년에 발간되었고 이 단편들이 쓰여진 때가 주로 1986년이었으니 이 책의 배경은 주로 1980년대 초반이야기이다. 1994년 되서야 우리나라의 GNI(국민총소득)가 1만 달러가 되었으니 1980년대 초반 저 때는 5천달러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굶어 죽는 절대적 빈곤 상황에서는 벋어났다고 하지만 당시에도 우리나라와 우리의 삶은 여전히 가난하고 처절했는데, 아버지가 일찍 죽고 어머니와 큰 오빠가 살림을 맡아온 1955년생인 저자의 1960대와 1970년대는 오죽했을까?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역시 참 잘 쓴 소설이라는 느낌을 다시 받았다. 얼마 전에 읽은 김영하 소설들이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맛이라면 이 책은 매우 담백하고 음식재료들의 제각각의 특징적인 맛까지 잘 살린 소설들이라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가 나와 거의 같은 세대였고 그 당시의 온갖 풍파를 보고 겪은 세대라서 공감이 잘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시대는 일부러 이야기를 꾸미지 않아도 대부분 사람들의 삶이 그 자체로 소설이 될 수 있는 시대였다. 가수 은자의 삶이 그러하듯이!
“박은자에서 미나 박이 되기까지 그 애는 수없이 넘어지고 또 넘어진 모양이었다. 누군들 그러하지 않겠는가. 부천으로 옮겨와 살게 되면서 나는 그런 윤기 없는 목소리들을 많이 듣고 있었다. 딱히 부천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부천 사람이어서 그랬을 것이었다. 창가에 붙어 앉아 귀를 모으고 있으면 지금이라도 넘어지고 상처 입은 원미동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또 넘어지는 실패의 되풀이 속에서도 그들은 정상을 향해 열심히 고개를 넘고 있었다.” (한계령) 306쪽
얼마 전에 어떤 국회의원이 이부망천 (이혼하면 부천으로 가고 망하면 인천으로 간다) 이야기를 했다가 당에서 쫓겨났는데 1980년대 초반에도 이미 이렇게 원미동은 상처 입은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와서 살던 동네였다. (그래도 공인이 그런 말을 공연히 하면 안 된다)
저자가 살아본 원미동은 멀리서 보면 아름다웠지만 들어가 보면 희망과 절망, 갈등과 이해로 얼룩져 있는 보통사람들의 삶이 압축적으로 담겨져 있는 동네였다. 이보다 더 절망적이고 소외된 동네도 있을 테고, 이보다 더 우아하고 부유한 동네도 있을 테지만, 원미동에는 개발의 바람 속에서 떠다니고 흔들리는 어중간한 삶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들 모두가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강남부동산의 박씨, 형제슈퍼의 김반장, 행복사진관의 엄씨, 원미지물포의 주씨 등이 그들이다. 물론 ‘마지막 땅’의 강만성 노인 같이 세상의 흐름에 저항하는 분들도 간혹 있었고! 어찌 보면 꾀죄죄하고 궁상맞은 인간들인데 그 때는 특별한 사람들 소수를 빼면 대부분이 그러려니 하고 그렇게 살았다고 보면 된다.
지금 ‘부천시’의 공식명칭 전(前)에는 ‘소사읍’이었다. 나는 어쩌다 소사중학교를 2학년 한해를 다녔다. 그 해가 1971년이었다. 경인국도가 왕복2차선이었고 경인선 기차가 정차하는 소사역은 1층짜리 소박한 개인 주택 정도의 건물이었다. 경인국도에서 경인고속도로 까지는 대부분이 논밭이었고 봄에 복숭아꽃이 만개하면 눈이 부셨던 그런 동네였다. 그 때는 ‘마지막 땅’에 나오는 이런 시골마을 이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사람이 우굴거리니 수월하겠지만 강노인 젊어서는 인분 구하기 위해 집집마다 똥통들을 얼마나 귀하게 다뤘던가. 첫새벽부터 개똥 차지를 위해 망테기 찾아 메고 동네골목길을 훑어가는 일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대변의 기미가 있으면 기어이 집으로 달려가서 볼일을 봤다. 김장배추를 갈기 전에는 모아둔 똥을 고루고루 뿌려놓고, 여름 햇살에 그것 곰삭는 냄새가 구수해서 저절로 신바람이 났었는데 그때는 똥 냄새가 싫다고 방정을 해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78쪽
그랬다! 내 고향 김포 시골도 내가 기억하는 1960대에는 오줌과 똥과 쓰레기들(그 때의 쓰레기들은 모두 다 썩었다)이 양질의 거름이 되어 논밭에 뿌려지고 다시 수확이 되는 100% 리사이클링 되는 쓰레기 제로(0)시대였다. 많은 쓰레기가 문제가 되는 요즈음 나는 그 시절을 이상향으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세상은 변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80년대에 소사는 부천(富川)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서울과 인천 사이에 자리 잡은 기회의 땅이 되었고 주택이 엄청 들어서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원미동으로 몰려들고 있었는데 그 중에 외판원도 있었다.
“그것은 간단했다. 관리 사원 모집, 월수 삼십만원 이상 보장, 직접 내사 요망 따위의 문구가 붙으면 틀림없었다. 거기다가 절대 내근 보장, 이란 단서가 붙어 있다면 그건 확실히 세일즐맨 모집이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신문광고의 구인란에 속지 않을 수는 있었다. 그는 절대 외판사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불씨) 43쪽
그럼에도 그는 어쩔 수 없이 외판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는 외판원이 많았다. 이 소설은 이렇게 좀 더 품위 있게 살고 싶은 욕망과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 가혹한 현실 사이의 간격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 간격은 절망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참 슬프다. 절망이 어찌 그만의 독점물일까?
용변을 처치하는 것이 매우 곤란한 지하방 생활을 하는 막노동꾼도 있었다.
“지금부터 가야 할 곳 역시 또 하나의 동굴이란 사실까지는 미처 깨닫지 못한 채 그는 발길을 재촉했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날씨였다. 목덜미는 이미 끈끈하게 젖어 있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옷에 밴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풍겨왔다. 지하생활자들만의 냄새였다.”(지하 생활자) 287쪽
근래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도 반지하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나오고 그들의 특징이 이 지하생활자들의 냄새로 대변되는데, 아마도 그 시나리오의 작가가 이 책을 읽지 않았을까? 나는 그 영화를 보며 그 냄새라는 존재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이 책에도 나오는 것을 보면 그 냄새의 실체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나 같은 부르주아는 체험하지 못한!
그 어느 국회의원의 말대로 이혼한 윤희도 부천으로 이사 왔다.
“중매쟁이에게 된통 속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숱한 거짓말과 낭비벽, 게다가 도박의 습성까지는 아무리 해도 절망적이었다는 윤희의 이혼 사유를 그녀는 고스란히 수긍했다 지극히 현실적이며 매사를 신중하게 계산해서 처리하는 윤희의 성격을 잘 알고 있음이었다.”(방울새)
내가 아는 어느 여자 분도 결혼한 지 10일 만에 속아서 결혼했다는 것을 알았고, 6개월만에 이혼하고 그 때 임신했던 딸을 데리고 혼자 살다가 25년만에 재혼했는데 그 딸이 새 아빠를 잘 안 받아 들이는 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떠한 척박한 환경에서도 남녀간의 사랑은 싹트기 마련이다. (내가 이 소설집에서 최고로 꼽는 소설이 이 ‘찻집여자’다.) 불륜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찻집여자와 사진관 엄씨의 사랑의 마음은 더 간절했다.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사랑이고, 그래서 이별을 해야만 하는 장면을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운지! 그 당시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몹시도 번잡스런 부천역 북쪽 광장의 스산하고 추운 겨울날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이별의 장면들은 어찌 그리도 애처로운지! 추운 세상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저 찻집여자는 또 얼마나 힘들게 버둥대면서 살아가야 할까? 모든 소설은 픽션이라지만 저보다도 더 처절한 ‘여자의 일생’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두 사람 사이에 남은 아련한 미련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애절하게 묘사해 내고 있다.
“두 사람은 묵묵히 밥을 비볐다. 밥숟갈을 뜨기 전에 그는 다 먹은 뒤를 생각했다. 그것은 아마 여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다만 한두 시간이라도 늦출 수 있을 만한 적당한 일이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심정... 어디로 갈까. 그는 사방을 휘둘러본다. 이대로 돌아가 버리면 여자한테 변변한 위로 한마디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릴텐데...” (찻집여자) 213쪽.
위에서 말했지만 이 소설의 배경은 주로 1985년이었는데 그 당시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 때는 전두환이 광주민주화운동을 헬리콥터와 특전사의 총과 군화발로 짓밟고 대통령이 된 후였고 그래서 대학가에서는 최류탄과 전경의 몽둥이 속에서도 ‘전두환 퇴진!’을 목청껏 외치고 있었던 민심이 흉흉하던 때였다. 왜 이런 시대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이 안 될까? ‘방울새’의 주인공 여자의 감옥 간 남편은 아마도 저런 정치적 상황과 연관이 있을 테지만 더 자세히는 나오지 않는다.
얼마 전에 봉준호 감독의 외할아버지가 1930년대에 ‘천변풍경’을 쓴 박태원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 독서모임에서 ‘천변풍경’을 읽었는데 1930년대 청계천 주변에서 살아가던 서민들의 잡다한 삶에 대한 풍경이 잘 그려진 세태소설임에도 거기서도 당연히 있었을 법한 일본놈들의 횡포와 수탈하는 모습은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두 소설 모두 그 당시를 되도록 자기의 주관이나 역사의식이나 정치적인 색깔을 담지 않고 담백하게 그려내는 세태소설이라지만, 그리고 굳이 어떤 것이 모범적이고 정의로운 삶인가에 대한 교훈적인 메시지 전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지만,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런 정치적 상황을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두 소설에 나오는 그 서민들의 처지가 모두 저런 정치적인 상황과 구조적 모순들과 이래저래 다 연관이 있을텐데... 그래서 이런 세태소설이 좀 가벼운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장점일 수도 있다.
이 책은 1980년대 초 개인의 욕망들이 마구 엉클어져 나뒹구는 혼돈의 시절에 서울 바깥의 원미동에는 그 척박한 땅에 힘껏 뿌리내리고자 나름 열심히 애를 쓰는 인간의 군상들이 있었다는 얘기인데, 25년 정도가 지난 지금은 물론 살림살이는 많이 나아졌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절망하면서도 희망을 간직하고픈 사람들이 이 땅 여기저기서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과거의 이야기면서도 현재형이다.
그 때나 25년 정도가 지난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경제는 항상 힘겨웠고 경제위기론은 상존했다. 그럼에도 경제는 타의 모범이 될 정도로 발전하여 왔지만, 특히 서민들이나 자영업자는 그 때나 지금이나 너무 많고 힘들다. 아주 똑 같다. 너무나 똑 같다.
“ “왜들 이렇게 장삿길로만 빠지는지 몰라.”
우리정육점 여자의 우문이었다.
“먹고살기가 힘드니까 그렇지요.”
새댁이 즉각 현명한 답을 내놓았다.” (일용할 양식) 255쪽
이 소설들은 양귀자 나이 30살쯤에 쓰여졌다. 작고하신 소설가 박완서님은 해방전후와 한국전쟁을 겪은 40세 정도 되어서 등단하여 50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양귀자는 30세에 세상의 풍파를 이미 다 겪어 본 사람처럼 이런 소설을 썼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이 같은 소설을 쓰는 작가의 역량은 철저한 현장 조사를 포함한 각고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타고난 문학적 소질이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1960~70년대의 그 가난하고 험난한 시절에 다들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저자는 ‘한계령’의 은자를 통해서 자신의 유년의 암울했던 시절을 자전적으로 회상하고 있다. 엄청난 삶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큰오빠의 불행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면서.
“마치 흑백사진의 선명한 명암대비처럼 유난히 삶과 죽음의 교차가 심했던 유년의 한때를 글자 하나하나로 낚아 올려내던 그 때의 작업만큼 탐닉했던 글쓰기는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육친의 철저한 보호 속에 갇혀 있다가 굶주림과 탐욕과 애증이 엇갈리는 세계로의 나아감, 자아의 뾰족한 새 잎이 만나게 되는 혼돈의 세상을 엮어나가던 그 사이사이 나는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히곤 했었다.” 292
누구나 이런 시절을 보내겠지만 저자는 더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 그 때를 기록했고 나중에 “소설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가 자기가 쓴 소설을 읽으면서 위안을 받”으면서 그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참 재미있을 것 같다. 과거는 흘러갔고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으니. ‘그 땐 그랬지!’ 하면서.
* 이 소설에 나오는 명칭은 대체로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것이겠지만 ‘김포슈퍼’가 나오기에 내 고향 김포와 무슨 연관이 있나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없었다. 충청도에서 온 사람이 그 슈퍼의 주인이었다. 뭔가 작가의 헛발질을 본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