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형(先兄)의 휘(諱)는 龍자 會자 이시다.
1935년 (을해) 음 10월 29일에 출생하여, 2020년 11월 8일 밤 10시 경에 별세하시니
향년이 86세이셨다. 우리 부모님의 7남 1녀 중에 장남(長男)으로 태어 나, 관기초등
학교와 청산중학교를 거쳐 청주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하셨다. 가세가 기울어
대학 진학을 단념하시고 아버님의 농사 일을 열심히 도우셨다.
그 후에 논산훈련소에 육군으로 입대하여 만기 제대를 하면서, 비록 군문에 매인 몸
이면서도 늘 집안 형편에 신경쓰며, 맏아드님으로 늘 보탬이 될 일을 생각하며 살아
오셨다. 제대 후에는 본격적으로 농사 일을 도왔고, 집안 어른과 연탄 공장 경영에도
관여하였으나 큰 재미를 못보고 하던 일을 정리하고는 계속해서 농사 일에 힘을 썼다.
그러던 중에, 한 때 상경(上京)하여 서울에서 돈을 벌어 가세의 곤궁함을 해결해 보려
하였으나 이 역시 여의치 못하여 다시 귀향하셨다. 1964년에 관기리(官基里)에서 건너
마을인 사여리(士余里)로 이사하여, 선산(先山)을 개간해 엽연초 재배를 가업으로 삼아
아버님과 함께 많은 노고를 겪으셔야 했다. 엽연초 재배라는 것이 당시에 벼농사 보다도
훨씬 잔손질이 많이 가는 농사 일이라, 한 여름에 잎을 채취하여 건조실에서 한달 내내
건조 작업을 해야만 해서, 무더위에 그 노고가 보통이 아니었다.
당시에 아버님께서 대략 2천평 정도 엽연초 농사를 하셨는데, 온 가족이 나서서 일에
매달려야 했는데, 그 중에도 선형(先兄)의 고초가 가장 심하였다. 이렇게 엽연초 농사에
매진하던 중에, 슬하에 자녀들이 늘어 나 4남매가 되고 보니 가업으로 자녀들을 제대로
양육하기 곤란하다고 판단하셨다. 당시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다행이 서울에 있는 국정
교과서주식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어, 1967년 12월에 상경하여 직장 생활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솔가(率家)하여 슬하의 어린 4남매와 내외 분이 서울 봉천동에 자리를 잡고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점차 안정을 이루고 4 남매들을
공부시켜 성취를 시키셨다. 당시에 급여가 그리 넉넉하지는 못하였지만 내조하시는 내
형수님께서 알뜰하고 검소하게 살림을 하시며, 일가(一家)를 든든이 이루어 가게 되었다.
평생 직장으로 재직하던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하게 됨에 따라 몇 년을 앞당겨 조기 퇴직을
하셨는 데, 이 때 형수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신 점도 고려가 되었다. 그 후에 형수께서 몇년
투병하시다가, 안타깝게도 1994년 11월 하순에 별세하셔서 형님은 60세에 혼자가 되셨다.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해 11월 초에 장남 자화(滋和) 일가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는데, 얼마되지 않아 같은 달 하순에 형수께서 별세하신 것이다.
선형의 심사가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셨을지는 가히 상상할 수가 없다.
그 후로는 차남 자길(滋吉) 내외와 함께 지내다가 생을 마치시니, 그 가슴에 쌓인 아픔이
얼마나 크셨겠는가.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만년(晩年)에 영등포구 양평동에 사시는 동안,
인근의 영은장로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셨고, 마포구 성산동으로 이사하신 뒤로는
차남 내외와 함께 인근 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별세하셨다. 한 평생 고단하고
외롭게 지내셨는데, 이제 그 무거운 삶의 짐을 다 내려놓으시고 천국에서 안식하고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형수께서는 밀양 박씨로 보은군 탄부면 매화리에서 생장(生長)하시어 1959년에 내 형님과
혼인하셨다. 그 후 두 분 슬하에는 딸 자현(滋泫), 경자(庚子), 아들 자화(滋和), 자길(滋吉)
4남매를 두셨다. 장녀 자현은 김씨 문중에 출가하여 슬하에 딸 민주와 아들 민규를 두었고,
차녀 경자는 평산 신씨 가문으로 출가하여 딸 정화를 두었다. 장남 자화는 충주 지씨와 혼인
하여 슬하에 장남 본경과 장녀 태희를 두었고, 차남 자길은 해주 오씨와 혼인해 슬하에 장남
본진과 장녀 미연을 두었다.
한 평생 장남으로 적지않은 부담을 안고 살아오신 선형의 삶을 추모하며, 이제 그 자녀손이
어디에서 살던지 부끄럽지 않은 후손들로 굳건하게 살아가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2023년 1월 3일에 우제 (愚弟) 능회 (綾會)가 애도하며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