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출근
시간은 매일 한강 기슭에 있는 산책로를 걸으며 약국으로 향하는 동안이 나에겐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라 할수 있습니다. 집은 광진구 구의3동 강변역 근처 프라임 아파트입니다. 강남구 삼성동에서 이곳으로 이사온 것이 벌써 20여년이 되어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EBS 2TV에서 진행하는 영어 회화 프로를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보고 있을 때에는 알아듣지만 돌아서면 그냥 잊어버리기 십상입니다. 녹슬은 기계는 닦으면 그 때 뿐으로 또 다시 덜컹거리는 것과 일맥상통 하는가 봅니다. 세월이 가면 마음은 그대로인 것 같으나 모든 조직과 세포는 퇴보하고 망가지는 것이 당연한 순리입니다. 지금 내 나이에 영어 일본어 회화를 배워서 무엇하랴마는 "공부는 죽을 때까지 평생 하는거야," 살아계실 때 내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슴을 울립니다. 그리고 평일에는 매일 아침 여덟시 전에 6층 현관문을 나섭니다. 언제나 처럼 별일이 없는 한 계단을 밟으며 내려옵니다. 몸에 배여있는 하나의 습관이기도 합니다. 강동구 천호동 구사거리 천호시장 입구에 있는 청원약국으로 출근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아침식사는 나홀로 준비해서 먹어야합니다. 아내가 아침 일곱시에는 외손주들을 챙겨주기 위하여 딸네 집으로 갑니다. 우리집에서 딸네 집까지는 걸어서 약 15분 정도 거리인 광장동 현대홈타운 입니다. 아침 일곱시 사십여분이면 어김 없이 사위와 딸이 출근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일곱살인 외손자는 프라임 유치원에 다니고 누나인 외손녀는 양진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엄마 아빠가 출근하면 그 이후로는 외할머니가 손주 녀석들을 보살핍니다. 학교 등교 시간과 유치원 통학 버스에 맞추어 늦지 않토록 챙겨야합니다. 해서 아침은 혼자만의 식사를 합니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을 취향대로 냄비에 지지고 볶고 끓여서 맛있게 먹습니다. 밥은 아내가 전기 밥솥에 준비해 놓지만 때에 따라서는 찬밥도 있습니다. 이 나이에 나 홀로 먹는 밥(홀밥)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느낄겁니다. 한술을 먹더라도 갖가지 반찬들을 냄비에 넣고 나만의 메뉴를 장만합니다. 냄비에는 산나물 무침, 김치, 멸치조림, 돼지고기 장조림,생선조림, 오리알, 두부 된장찌개, 그리고 강황가루와 생수를 적당히 붓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전용 메뉴인 섞어찌개입니다. 아침에 전기밥솥에 갓 해놓은 밥이 있으면 밥공기에 담아서 찌개를 곁들여 먹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지난 찬밥이 있을 경우에는 스텐 냄비에 밥을 넣어 누룽지로 만듭니다. 거기에다 생수를 넉넉하게 넣어 푹 끓여 줍니다. 이북 사투리로 말하자면 솥올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반찬을 섞어서 넣어 만든 섞어찌개와 솥올치를 먹는 그 맛도 나에게는 일품요리인 셈입니다. 사위나 딸이 월차로 쉬는 날과 토요일에는 아내와 함께 동반 조찬을 하는 날 입니다. 모처럼의 동반 식사는 여러가지 따로 따로 반찬으로 식탁에서 제대로의 시간을 갖습니다. 홀밥으로 식사를 할 때는 거실 소파 탁자에서 TV와 함께 하곤 합니다. 밥 따로 각 반찬들도 따로 따로 먹을 때와 섞어찌개 밥을 먹을 때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가끔 혼자만의 생각을 하면서 덧없는 웃음만이 대답으로 돌아옵니다. 음식물이 위장 속에 들어가면 소화액에 합류가 되어 마찬가지로의 효능을 나타낼 것입니다. 이런 위안 아닌 핑게로 섞어찌개가 나만의 고유 메뉴가 되었는 것도 제법 되었나 봅니다. 아파트를 나와 손주가 다니는 유치원 앞을 지나서 바로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합니다. 돌계단을 몇개 밟으며 올림픽 대교 방향으로 올라 섭니다. 앞에는 88올림픽을 기념하는 횃불 조각품이 대교 중간에 높이 솟아 있습니다. 대교 밑의 강변북로에는 출근을 위한 차량들이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려는 용트림을 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옆으로는 강변역과 나의 보금자리인 현대프라임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강 건너 잠실에는 롯데 월드타워가 위용을 뽐내고 있습니다. 2009년에 기공하였으며 2016년 말에 준공할 예정입니다. 현재는 한반도에서는 제일 높은 123층의 빌딩이기도합니다. 높이만으로는 광진구에 있는 아차산 보다 두배 정도의 고층 건물입니다. 건축 허가 과정에서도 인근 주민들의 상당한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교통 체증을 유발시킬 수 있으며 인근 공항의 비행기 이착륙의 안전성 문제도 제기 됩니다. 하지만 서울공항(성남)의 활주로를 변경까지 하면서 대기업에게 특혜를 준다는 비판에는 마이동풍으로 불통이었습니다. 이런 작태는 이 나라 정치 풍토에서는 집권자의 전횡이 다반사로 당연시 되기도 합니다. 이와같은 부조리가 언제나 사라지려는지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서둘러 한강 물가로 발길을 옮깁니다. 아침 햇살에 일렁이는 물결이 은빛으로 반사됩니다. 햇살과 물결과 내 그림자와 나의 시선이 일직선으로 마주치면 눈이 부시도록 빛납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은 평온해지며 넉넉한 기분이 가슴을 채워주곤 합니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어미 물오리가 새끼들을 데리고 유영(遊泳)을 즐기곤 합니다. 자맥질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에미 뒤를 좇는 모습이 우리 인간들의 생활 단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원앙새들도 짝을 이루어 사랑을 만끽하는 모습도 물결을 흔들어 놓습니다. 하얀 백로도 잿빛의 왜가리도 강기슭을 맴돕니다. 지금은 그 많던 물오리 청둥오리 군락과 원앙새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습니다. 가끔씩 한 두마리의 왜가리만이 물결 위를 스치며 날아가고 있습니다. 올림픽 대교에서 천호대교 까지의 강기슭에는 10m 이상의 수양버들이 하늘 하늘 유연성을 뽐내고 있습니다. 몇십년 이상 된 아름드리의 고목들이 휘휘 늘어진 가지들로 휘감겨 있습니다. 거의 모든 버드나무들은 한강물 쪽으로 약 10도 정도 기울어져 있습니다. 아마도 신선한 공기와 바람 그리고 촉촉한 물기와 영양분을 제공하는 한강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전거 도로 옆에는 이팝나무가 하얀꽃을 활짝 피우고 있습니다. 돌담에는 담쟁이덩굴이 담벼락을 채우고 빨간 장미덩굴이 환한 미소로 인사를 합니다. 까치를 비롯하여 온갖 새들의 지저김이 청각을 즐겁게 합니다. 천호대교와 광진교 사이 다리 밑에는 운동기구들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교량 밑이라 웬만한 비바람에도 안전하게 체력 단련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아침에 들릴 때마다 나와 같은 노객들 뿐 아니라 중년 여성과 자전거 동호인들도 거쳐서 갑니다.
평행봉, 철봉, 트위스트기구, 오버헤드운동기, 역기들어 올리기, 공중걷기, 벤치프레스역기, 자전거타기,위몸일으키기,하체강화기등 제법 많은 운동기구가 시민들을 기다립니다. 언제나 철봉 매달리기부터 시작하여 이십여분 정도의 스트레칭을 합니다. 뻣뻣해진 노객의 관절 마디 마디에서 뚜드둑 소리가 황혼녘에 와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한껏 시원해지고 부드러워진 팔다리를 흔들며 가벼운 발걸음은 광진교로 올라섭니다. 여기서 부터는 서울둘레길을 시작하는 제1코스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광진교는 팔당댐에서 시작하여 팔당대교, 강동대교, 구리암사대교 그 다음 네번째 교량이기도 합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준공하였으나 노후되어 1994년도에 철거하는 운명을 맞습니다. 2003년도에 와서야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 합니다. 대교의 상류에는 자전거 전용로와 전망대가 있으며 강물 위 교량 바로 밑에는 문화 예술 공간을 설치했습니다. 바닥에는 투명한 유리를 깔아 놓아 흐르는 강물도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광진교 8번가 이 곳에서는 유명한 드라마 IRIS도 로케한 현장이기도 합니다. 하류 방향에는 보행로가 있으며 양옆 곳곳에 화단이 설치되어 꽃나무와 유실수도 심어있습니다. 연산홍 철쭉 진달래 매화 무궁화 싸리나무 화살나무 빨간 단풍나무 사철나무 산수유등 심지어 할미꽃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보라빛의 붓꽃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앉으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건반 뮤직벤치도 놓여 있습니다. 생명의 구급전화와 화장실 음수대 그리고 쓰레기 수집통도 갗추어 있습니다. 1km 남짓하는 다리 중간 두곳에는 보행자를 위한 신호등이 설치된 횡단보도가 있습니다. 심지어 S자 모양의 철제 의자 밑에는 녹색 카펫도 깔아 놓았습니다. 이와 같은 다리를 걷노라면 한강물을 바라보며 공원 숲길을 걷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상류에는 암사대교와 강동대교가 손에 잡힐듯 보이며 굽이쳐 흐르는 한강 물줄기가 시원스럽습니다. 하류로는 올림픽대교와 롯데타워 멀리는 대모산 관악산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북단에는 광진구 체육센터 워커힐 아차산이 남단으로는 검단산 남한산성 예봉산이 멀리에서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타 다리들은 단지 교통 수단을 위함 뿐이 대부분입니다. 광진교의 차도는 왕복 2차선으로 속도도 시속 40km로 제한하여 걷고 싶은 곳으로 시민들의 아늑한 휴식처로 자리 매김하고 있습니다. 한강은 서울 시민들의 젖줄이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름답운 강줄기입니다. 그리고 반만년 역사를 가진 한민족의 꿈과 애환이 서린 역사의 증인이기도 합니다. 이런 한강변을 산책하면서 운동도 곁들이며 걸을 수 있음에 나는 행복한 녀석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름다운 경관들을 즐기며 오늘도 광진교를 걸어서 건너 갑니다. 천호시장 입구에 있는 나의 약국에 도착 시간은 아홉시가 다 됩니다. 하루 일과 중에 나의 모든 걸음수와 거리, 소비 칼로리가 스마트폰에 기록됩니다. 오늘 아침에 걸은 걸음수는 6,685이며 5.04km, 226kcal를 나타내고 있으며 VitaminD 흡수도 곁들입니다. 자동차의 매연이 숨통을 조이지도 않습니다. 서로 바삐 가려는 경적 소리로 짜증이 쌓이지도 않습니다. 서울 시민들이 매일 겪고 있는 출근 전쟁과 같은 홍역을 치르지도 않습니다. 나에게 언제까지나 이와같이 행복한 출근길이 이어질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가슴에 약사로서의 명찰을 내려 놓는 그날 그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약사라는 직업이 내가 살아가는 수단이며 행복의 원천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면 내일은 올 것입니다. 내일이 가면 또 내일이 오려는지 내년까지가 끝이 될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더 많은 세월이, 더 행복한 출근 시간이, 나에게 주어지기를 기원하며, 오늘도 나는 약국 샷다를 힘차게 올립니다.
2016년 5월 13일 약국에서 무 무 최 정 남
장미 덩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