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언론 2023년 10월호
시창(詩窓)
만고불후(萬古不朽)의 좌우명 송강 정 철 ‘훈민가’
읊을수록 심금 울리는 소월의 시 ‘초혼’
‘대한언론’이 매호마다 자존심을 걸고 소개하는 ‘詩窓’에 흠뻑 빠져들 때마다 학창시절 국어 선생님이 열변을 토했던 주옥같은 시들을 떠 올리곤 한다. 어느 한 가지 시를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시 몇 수 정도는 암송했던 때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혼’ 은 항상 단골 메뉴였다.
0 김소월의 ‘초혼’
초혼(招魂)은 시어(詩語) 마다마다에 슬픔이 묻어난다. 1904년 소월이 세살 때 아버지가 일본인들에게 폭행당해 정신이상자가 되었다. 그 후 광산을 운영하고 있었던 조부 집으로 이사하여 아픈 상처를 가진 채 성장하다 오산학교 재학 중 14세 때 할아버지 친구의 손녀인 홍단실과 강제로 결혼하게 된다. 소월은 그러나 평소 사랑했던 오순이 그의 남편에게 맞아 사망했다는 소식에 망연자실, 가슴 아픈 마음을 안고 사랑하는 오순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한 편의 시를 지어 바치니 이 시가 바로 ‘초혼’(招魂)’이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끝끝내 마지하지 못하였구나.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붉은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었다.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0 송강 정철의 ‘훈민가’
나는 또 가끔 감상에 젖을 때면 옛 선현들이 남긴 시조를 비롯, 송강 정철선생의 송강가사를 떠올리곤 한다. 정몽주 성삼문 김상헌 양사언 이몽룡 김삿갓 시 몇 수 정도는 지금도 토씨하나 안 틀리고 외우는 것은 학창시절 고시조 외우기 경쟁으로 밤을 지새웠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학입시 때는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은 알아야 마음이 놓였다. 선생이 지은 ‘훈민가’는 또 얼마나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야할 만세불후(萬世不朽)의 덕목을 일깨워 주는가.
송강이 훈민가를 창작한 의도는 유교적인 윤리관에 근거하여 바람직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권유하자는 데 있었을 것이다. 사대부계층의 선험적인 가치체계를 일방적으로 따르도록 명령하는 어법을 사용하지 않고 백성들이 절실하게 느끼는 인간관계를 설정하여 정감어린 어휘들을 사용함으로써 어떤 작품들보다도 강렬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정평이다.
사화와 당쟁이 극에 달했던 시대에서 송강 정철의 삶에는 여러 번 부침이 있었다. 이런 파란만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송강 정철의 안식처이자 휴식처가 된 곳이 바로 전남 담양이었다. 을사사화로 아버지를 따라 유배지에서 생활을 하던 정철은 아버지가 유배에서 풀려나 할아버지 산소가 있던 담양 창평 땅에 자리 잡을 때 송강은 이곳에서 식영정과 서하당을 노래한 ‘성산별곡’을 지었다.
송강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별개로 하고 송강은 당대의 문학 양식들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탁월한 서정의 세계를 열어 놓은 학자요 정치인이었다. 송강 시의 세계를 보는 학자들은 송강이야 말로 감각적인 시선과 청신한 언어를 통해 때로는 활달. 호방한 정서로, 또 때로는 섬세, 애절한 정서가 듬뿍 담겨있다고 평한다. 송강의 뛰어난 언어감각은 우리말 표현에 담긴 사고와 정서를 한층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 거기에 예술적 감각을 깃들게 했다. 이점이 바로 송강의 위대한 시인으로서의 자질이자, 시대를 뛰어넘어 감동을 주는 직접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시창에 송강의 ‘훈민가’를 상재하며 우리시대 우리 모두가 지키고 실천해야 할 좌우명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송강 정철의 훈민가(訓民歌)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같은 끝없는 은덕을 어이 다해 갚으리까.
어버이 살아 신 제 섬길 일은 다 하여라 돌아가신 후에 애통한들 무엇 하리 평생에 다시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 보라 뉘 손에 태여 낳길 래 모양조차 꼭 같은가 한 젖 먹고 자랐으니 딴마음 먹지마라.
한 몸을 둘에 나눠 부부로 태내시니 살았을 때 함께 늙고 죽으면 같이 간다. 어디서 망령의 것이 눈 흘기려 하는가.
아! 저 조카야 밥 없이 어찌 할꼬 아! 저 아저씨 옷 없이 어찌 할꼬 험한 일 다 말 하여라 도와주려 하노라.
이고 진저 늙으니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으니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서럽다 하거늘 짐을 조차지실까.
오늘도 날이 샜다 호미 메고 가자꾸나. 내 논 다 매 며는 네 논 좀 매어 주마올 길에 뽕따다가 누에 먹여 보자 꾸나.
비록 못 입어도 남의 옷을 빼앗지 마라 비록 못 먹어도 남의 밥을 빌리지 마라 한때도 때 묻어 지면 다시씻기 어려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