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외 2편
김덕남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은 시작된다
출구 없는 덫이었나 필생의 벼랑 같은
내 몸에 기생하는 빚, 알을 까고 웃는데
실종된 길을 찾아 블랙홀을 기웃하다
어둠 속 갈증으로 제 피를 제가 먹듯
황금빛 번호를 달고 불나방이 날아든다
굴절된 레이저가 두뇌를 핥고 간다
한 줄기 빛도 없이 쫓고 쫓기는 외줄 위
또 다른 게임을 찾아 심장을 저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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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월
- 왕건은 병졸의 옷으로 갈아입고
세상 삐끗, 놓쳐버린 사내가 가고 있다
처절한 포복으로 장부의 길을 찾아
달빛의 명도를 높여 끊어진 길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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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부고장
메아리 울려오듯 카톡이 내려앉네
주고받은 눈빛을 무심하게 내려놓고
서늘한 필체 하나로 씻은 듯이 간다네
낙화처럼 날려 보낸 풍문의 틈 사이로
행여나 그대 간 곳 어둡고 외로울까
눈물 괸 생을 감춘 채 꽃등 환히 켜 든다
<시작 노트>
어릴 적 딱지치기, 구슬치기가 빚더미에 눌린 어른들의 게임으로 돌아왔다.
‘오징어 게임’에 세계가 왜 열광할까. 가상 드라마인데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바닥의 삶이 보이기 때문일까. 강자엔 대들지 못하고 힘없는 자는 짓밟아버리는 게임이 현실로 다가온다. 죽음보다 못한 삶에 직면할 때 사람들은 목숨과 맞바꾸는 게임을 선택한다. 그러니 진실이나 선함은 중요치 않다. 프런트맨은 자발적 참여에 의한 공정과 평등의 룰이라 외친다. 하지만 게임 자체가 공정한가는 말하지 않는다. 이를 현실의 정치에 빗대어 말하는 사람도 있다. 1등만이 청와대로 향하고 나머지는 지옥행이라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놀이가 죽음의 게임이 되는 장면에 꼼짝 못 하고 몰입하게 된다.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관객을 위해 다음 편은 더 자극적인 연출이 되겠지. 다음 편이 나오기 전 나는 시조를 써야 한다. 지금부터 주문을 건다. 생각에 시동을 걸고 오감의 문을 연다. 시의 귀가 열릴 때까지 자판을 두드린다. 뭔가 나올 듯한데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는다. 미궁으로 빠지려나? 난산에 난산을 거듭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것이 시를 영접하는 나만의 게임 방식이다.
약력 :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젖꽃판』 『변산바람꽃』 『거울 속 남자』 현대시조100인선『봄 탓이로다』.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수상 등
- 《나래시조》 2021.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