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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 염려에서의 자유와 성경적 처방
성경 본문 : 빌립보서 4장 4절- 8절
설교 자 : 박 한 서 목사 <2023년 3월19일 주일 오전>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염려로 인해 사망”이라는 말이
실제로 비석에 쓰여 질수도 있습니다.
염려에 있어서 가장 비극적인 요소는
그것이 아주 전염성이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염려는 쉽게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많은 정신 분석가들은 이 염려가
<홍역>이나 <디프테리아>와 <코로나> 같은
병보다도 더 전염성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염려는 당사자 뿐 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파괴적인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인류의 적 제일호가 되는 것입니다.
<잠언>4장 23절 말씀에
23절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 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것 다 희생하더라도
마음의 불안과 근심은 털어버려야 합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염려하지 않으면서 살아간다면 참 좋은 일이겠지만
이 세상에 염려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삶 가운데 다가온 이 염려를 성경 말씀대로 지혜롭게 잘 대처해 나간다면
이 염려로 인하여 우리의 삶이 한층 더 진전되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염려가 무엇일까요?
1. 염려의 정의는
“염려(worry)”란 말은 merimnao(메림나오)라는
<희랍어>에서 생긴 것인데 그것은 두 단어가 합쳐진 것입니다.
“나누다”라는 뜻의 merizo(메리조)와
“마음”(알고 이해하고 느끼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요소를 포함한)이라는 뜻의 nous입니다.
다시 말해 염려는 마음이 나누인다는 뜻입니다.
염려를 함으로 마음은 가치 있는 관심사와
해로운 생각으로 나누입니다.
<야고보>는 마음이 나누인 사람의 불행한 상태를
<야고보서>1장 8절 말씀에서
8절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틸리히>는 죄를 분리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고린도 전서>7장33절-34절 말씀에 보면
33절 “장가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절 마음이 가라지며”
결혼하기 전에는 오직 주님 만 섬기던 사람이 결혼하고 나서
아내를 사랑하는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누이게 됩니다.
그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이런 상태가 염려입니다.
우리가 세상일에 고민이 지나쳐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세상 일로 나누이게 되는 것이 염려입니다.
다시 말해 염려란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도록
우리 마음을 나누이게 하는 마음 상태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신뢰하지 못하도록
우리 마음을 혼란케 하는 것이 염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엄히 경계하신 것입니다.
2. 성서의 염려
1) 구약성서의 염려
인간 삶의 다양한 조건들 속에 있는 염려, 근심, 두려움의 중압감은
구약 성서 전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가뭄은 기근의 위협을
가져다줍니다. (참고 성경 <예레미야>17장8절).
개인적인 염려는 <한나>의 무자함 때문에
<사무엘상>1장16절 말씀에
16절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기 때문이니 이다 ” 라는
말 속에서 알 수 있습니다.
2) 신약에서의 염려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에서 주목되어온 것과
똑 같은 염려들을 많이 반영하고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는 산상설교의 팔복에 있어서처럼 일반적인
삶의 가난, 굶주림, 억눌림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이 보입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들은 구약성서에서처럼,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에게 도움과 구제를 요청하는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결혼상대의 문제들과 염려들이
<고린도전서>9장 말씀에 나오는
<바울>의 충고 속에서 어떻게 반항되고
있는지를 주목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기독교인의 삶 속에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타인을 위해 근심거리를 떠맡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친구들의 사려 깊은 배려를 누립니다.
<바울>자신은 그들에 관해 걱정하며(참고 성경<빌립보서>2장28절),
마음속에 모든 교회들에 대한 근심으로 나날이 억눌리며 삽니다.
3. 염려하는 이유
1) 믿음이 적어서 입니다.
(참고 성경<마태복음>6장30절)
<라스베가스>에 사는 수천 억짜리 호텔을 몇 개나 가진
부자, <Howard Hugh>라는 사람이 죽었는데 영양실조로 죽었다 합니다.
이 사람은 돈은 많은데 의심 병이 들어서 자기를 독살하고 재산을
빼앗아 갈까봐 나돌아 다니지 못하고 음식도 아무데서나 먹지 못하고
호텔 깊은 방에 숨어서 깡통 음식만 조금씩 먹다가 죽게 된 다음에 야
의사를 불렀습니다. 부검해 본 결과 피도 깨끗하고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영양실조가 사망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 엄청난 부자는 쓸데없는
불안, 근심, 염려로 죽은 것입니다
1930년대 <미국> 경제공황 때 그 공황을 타개한 대통령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날마다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도록 연설하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두려움, 그 자체뿐이다”
(We have nothing to fear but for itself)라고 했습니다.
<콜로라도>의 ‘롱의 봉우리’에는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있습니다.
과학도들은 그 나무가 400여 년 간 거기에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 나무는 긴 세월동안 살면서 14번이나 벼락을 맞았고
헤아릴 수 없는 눈사태와 폭풍우를 이겨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는 딱정벌레 떼에게
공격을 받아서 쓰러져 버렸습니다.
벌레들은 나무의 속을 파먹어 나무의 버티는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오랜 세월에도 시들지 않고 폭풍과 벼락을 견뎌온 이 거목은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죽일 수 있는 작은 벌레들에게 쓰러지고 만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거목처럼 인생의 폭풍우와 눈사태, 벼락을 이겨내면서도
근심, 염려라는 작은 벌레에게 심장을 갉아 먹히고 있지나 않은지요?
성경에 “두려워 말라 염려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365회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매일 한 번씩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 염려하지 말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11장 28절 말씀에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데
예수님이 책임도 못질 말씀을 하겠는가?
<요한복음>14장1절 말씀에
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라고 말씀하시고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에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히브리서>13장 6절 말씀에
6절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라고
하나님께서 간곡히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4장 4절 말씀에서
4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하였고
<빌립보서>4장13절 말씀에서는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말씀을 의지하지 못하고 믿음이 연약하여 질 때
근심, 염려, 두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2)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 않아서입니다.
(참고 성경 <마태복음> 6장33절).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구하지 아니하여 모든 것을 더할 수 없기에 염려하게 된다.
3) 조심하지 아니해서입니다.
<누가복음>21장34절 말씀에
34절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처럼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여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4. 염려하지 말 이유
1)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없으니 염려하지 말아야합니다
( 참고 성경<마태복음> 6장27절).
염려는 백해 무익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27절 말씀에
27절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 수 있겠느냐? 라고 말씀하셨다.
키가 작아서 고민인 사람이 염려한다고
그 키가 자랄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염려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염려의 한계를 말씀해주십니다.
2) 염려는 습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열자>라는 책에 보면 옛날 <기>나라에 염려하고
걱정하는 통에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던 사람이 있었다합니다.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자면서 걱정하는 내용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 땅이 꺼져버리면 어떻게 하나”
이것이 염려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염려 걱정을 한다는
뜻으로 <기우>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나라는 기원전 12세기경에 지금의 <하남>성 지역에 있던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 당시 <중국>을 지배한 나라는 <주>나라입니다.
<주>나라 <성왕>은 땅을 친족이나 공신들에게 나눠주어 통치하게 했습니다.
이 <기>나라는 그 중에서도 나라 잃은 유민들이 모여 살던 힘없고 작은
나라였습니다. 늘 설움과 천대를 받았고, 어느 나라가 공격해 오지는 않을까
늘 염려하고 불안에 떨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기>나라 사람들은 염려가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염려가 습관이 되다보니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 까지 가져다가
염려하게 됩니다. 그래서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또 염려는 불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염려는 하면 할수록 커집니다.
3) 주께서 우리를 권고하시니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고 성경 <베드로전서> 5장7절).
<베드로전서> 5장7절 말씀을 보면
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 버리고 주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염려를 맡아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방법으로 우리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4)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고 성경 <요한복음>15장 5절).
<중국> <내지>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는 믿음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협력자와 선교비가 필요했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의 정신적 부담은 밤잠을 설치게 했고
마침내는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심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 <요한복음>15장을 읽어 내려가다가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고
하는 이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 순간 갑자기 태양빛이
비취는 것처럼 그의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나는 그 가지인데
내가 걱정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주님께서 수분과 양분을 공급해 주는 나무이므로
가지인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가지인 내가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려고 애쓰고 있다니
어리석었구나.
주님! 이 시간부터는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맡기겠사오니 책임져 주시옵소서."
이렇게 꿇어 엎드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어리석음을
시인하고 회개하며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평안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는 그 후부터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성공적인 중국 선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고
염려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참고 성경<마태복음>6장 31절 32절)
5. 염려는 죄입니다.
1) 염려는 하나님의 미쁘심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염려할 때 당신은 하나님을 거짓되다고 비난하는 셈입니다.
염려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거짓말로 만드는 것입니다.
<로마서>8장 28절 말씀에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빌립보서>4장13절 말씀에
13절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4장19절 말씀에
19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마태복음>6장 31절-32절 말씀에
31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절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위와 같은 말씀들을 다 거짓으로, 불신으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순전히 위선자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 진실하심의 실재를 무시해 버립니다.
<요한일서>5장10절 말씀에
10절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2) 염려는 하나님의 성전을 해치기 때문에 죄입니다.
<고린도전서>3장 16절 말씀에
16절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염려는 자신의 몸을 쇠약하게하며
하나님의 성전을 망가뜨리기까지 합니다.
염려로 인해 생기는 병에는
심장병, 고혈압, 신경통, 위궤양, 감기, 편도선, 관절염,
편두통, 눈이 침침해짐, 소화 불량증입니다.
또한 맥박을 급하게 뛰게 한다든가 뒷목이 뻣뻣해지게 한다든가
멀미, 변비, 설사, 현기증, 뚜렷한 이유 없는 피로, 불면,
알레르기, 일시 마비 등의 현상을 일으킵니다.
염려는 기도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죄입니다.
기도하면서 동시에 염려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26장 3절 말씀에
3절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 이다.”
기도할 때 그리스도께 집착되어 있기에
그리스도의 확신으로 완전한 평안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염려가 사라집니다.
<마태복음> 5장16절 말씀에서
16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라는
이 말씀을 염려할 때 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염려하는 그리스도인을 보내서 잃어버린 영혼을 다루게 한다면
그것은 마치 즐거운 승마를 하기 위해 영구차를 보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염려는 죄입니다. 성경만이 이 죄의 문제를 올바로 다루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야합니다.
<빌립보서>4장 4절-8절 말씀에
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 시니라.
6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절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절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염려는 죄이나 기도와 찬양은 염려의 해독제입니다.
6. 예수님의 염려 처방입니다.
염려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은 새롭고 근본적인 측면을 일깨워줍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염려를 비율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이교적이며
세속적인 것으로 낙인을 찍습니다.
필수품으로 여기는 모든 여타의 것들에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6장 25절 말씀에
25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십니다.
첫째), 생명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그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일입니다.
사람의 관심은 삶의 본질적인 목적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두 번 째),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이러한 염려는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적 예비하심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새들은 보살핌을 받는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부양하는 섭리는 인간의 염려와는
독립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사람이 염려함으로써 키를 또는 목숨을
한 순간이라도 더 늘일 수 있을 까?
네 번째) 덧없이 저버리는 꽃들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아
그 아름다움이 완전하며,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손으로 입혀주는
최소한의 예비에 확실히 의지할 수 있습니다.
다섯 째), 이러한 염려는 이교적이며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돌보심에 대한 직접적인 모순입니다.
여섯 째), 사람의 첫 번째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이러한 관심이 하잘 것 없는 일들에 대한 염려를 없애 버립니다.
(참고 성경 <마태복음> 6장24절)
<누가복음> 21장 34절 말씀에서
34절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 나라의 삶에
부적합한 것으로 추방하십니다.
7. 염려에서 자유 할 수 있는 성경적 처방
1)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야 합니다.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히면 다른 사람은 다 훌륭해 보이고
자기만 패배자로, 버림받은 자로 생각됩니다.
다른 데는 절대로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이 병이 드니까 버림받은 자, 인생의 낙오자로 보이는 것이지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보면 나를 위하여 독생자까지 주신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한복음>14장 18절 말씀에
18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 전서>10장 13절 말씀에
13절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 금방 죽을 것 같고 인생이 끝장날 것 같지만
믿음으로 생각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살길이 열립니다.
<시편> 23편 4절.6절 말씀에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했고
6절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혹시 지은 죄가 생각나서
“나는 저주 받아 마땅해, 하나님이 나는 사랑하지 않을 거야.
나는 버림받아 마땅해” 하는 생각이 들 때는 하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서 그런 생각을 주는 마귀를 꾸짖어 물리치십니다.
나는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자.
<욥기> 3장25절 말씀에
25절 “나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한 말을 보면, 불행과 재난을 당할 것 같은 불안과 두려운
마음을 털어버리지 못했다가 그대로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Stary Stein이란 사람은 문둥병에 걸려 시력까지 잃어버리고 절망했다가
자기에게 정신만은 건강한 채 남아 있는 것을 알고 글 쓰는 법을 배워
“나는 외롭지 않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거기서 “나는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는 대신
아직 남아 있는 것을 최대한 이용하려합니다”라고 했습니다.
2) 기도로써 하나님과 깊이 대화합니다.
금방 숨이 막혀 죽을 것 같고 자살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어 보여도
깊이 오랜 시간 하나님과 대화하고 기도하면 안개가 사라지듯이
그 모든 불안이 사라지고 맙니다.
두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기도하고 나면
마음도 평안해지고 잠도 잘 옵니다.
<시편> 50편 15절 말씀에
15절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는 해결 못할 문제가 없으시다.
앞은 벽으로 가로막혔고 뒤에서 적이 쫓아오는 상황에서도 그 분은
우리가 빠져나갈 길을 내실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대신 싸울 실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미래의 길을 이성과 경험의 잣대로만 결정하려고
염려하지 말고 그 길을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로써 맡겨 버려야 합니다.
(참고 성경 <시편> 37편 5절).
<바울>은 염려에 대한 해결책은
하나님에 대한 기도라고 말합니다.
안개 속을 달려가듯 한 발 앞이 안 보인다 해도 한 걸음 내디디면 열립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그리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서 매고 가는 무거운 짐도 여호와 하나님께 맡겨 버려야 합니다.
삶의 모든 염려는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서 해결 되어 집니다.
<베드로전서>5장 7절 말씀에
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그 어떤 염려라도 하나님께서는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만일 당신이 염려를 극복하고 싶다면 당신은 항상
기도하는 정신을 유지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을까?
목회자들이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그 옆에 지나가는
청소부 아줌마가 그 말을 듣고 말했습니다.
“그 말씀은 굉장히 단순해요, 나는 항상 기도해요,
잠자리에 들면서 주님의 품안에 쉴 수 있는 기쁨을 감사하지요.
내가 다음날 아침 깰 때는 주님께서 내 눈을 뜨게 해서
하나님 말씀의 새롭고 기이한 것을 보게 해 달라고 간구하지요.
내가 목욕할 때는 내 숨은 죄들을 깨끗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요.
옷을 입을 때는 주님께 겸손과 사랑으로 옷 입혀 주실 것을 간구하지요.
불을 피울 때는 주님께서 내 마음 속에 영혼들에 대한 사랑의 불을
피워 달라고 기도하지요.
식사를 할 때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요 ” 이 분은 아름다운 기도를 쉬지 않고 드림을 알 수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쉬지 않고 기도할 때 마음은
주님께 “머물고 있는” 것이고 그러 할 때 완전한 평안을 갖게 됩니다.
완전한 평안을 갖게 될 때 염려는 물러갑니다. 염려를 극복하고 싶다면
기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산다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찰스 시므온>은 하루 네 시간을 기도에 몰두하였고,
<웨슬리>는 매일 두 시간씩 기도했습니다.
<죤 풀렛취>는 기도하는 입김으로 벽을 얼룩지게 했다고 합니다.
<마루틴 루터>는 매일 아침 세 시간을 기도하지 않으면 그날은
사탄이 승리하게 된다 합니다.
<디엘 무디>는 한 번에 15분 이상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시로 모든 일에 대해 일정하게 기도했습니다.
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마태복음>6장 33절 말씀에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문제는 하나님께 다 맡기라는 것입니다.
우리 문제는 하나님께 다 맡기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만 몰두하라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에게 일천번제의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으셔서
<솔로몬>에게 소원을 말하라 하셨습니다. 그 때 그가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왕의 직무를 잘 감당하기 위해서 지혜를 달라고
청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게 감동하셔서 그가 구하지도 않았던
부귀와 영광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염려를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4) 두려움을 주는 마귀를 대적합니다.
<디모데후서>1장7절 말씀에
7절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은 아니요”
하신 말씀처럼 근심과 두려움은 그 배후에 마귀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너한테 안 속는다. 이 악한 귀신아, 내게서 떠나가라”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꾸짖습니다. 한 번, 두 번에 안 되면 계속해서 보혈의
능력으로 대적하고 꾸짖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악한 영과의 싸움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8절 말씀에
7절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절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표하여 마귀를 정복했습니다.
우리는 이겨놓고 싸우는 것입니다.
두려움, 근심, 불안 배후에 반드시 마귀가
숨어 있음을 알고 대적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5) 한날의 수고를 감사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기 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수고의 원리를 삶의 질서, 창조의 원리로 정하였습니다.
“땅을 경작하라”고 하셨습니다. 범죄 한 인간에게 가시와 엉겅퀴,
찔레가 땅에서 올라와 더 노동의 수고가 많아졌지만 원래 인간은
수고에로의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루 쉬고, 하루 놀고, 하루 잔다면
그 어찌 내일의 염려가 찾아오지 않겠는가?
오늘의 수고를 내일로 미루지 말자.
오늘 기도할 것을 내일로 미룬다면
오늘 밤에 벌써 염려가 침실로 방문합니다.
이 늦어도 오늘의 일을 맞춰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십니다.
염려를 극복하는 지름길입니다. 이마에 땀을 흘리면
불면증을 가져오는 세상 근심, 내일의 염려는 쫓겨 가고 맙니다.
우리는 이상하게 골똘히 생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바쁘게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혈액 순환과 두뇌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역동적인 생명의 에너지가 마음속에서 고민을 몰아내게 됩니다.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목사님이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은 계산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계산은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나아간다면 온전히 하나님께
모든 염려들을 다 맡기고 평안의 자유 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시편>55편22절 말씀에
22절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 하시리로다.
<빌립보서>4장 19절 말씀에
19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라는
말씀같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염려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느껴진다는 것은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두려움이 느껴질 때마다 즉시 하나님께 나아가면 주님의
온전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염려를 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것은 첫째), 주의 일 (참고 성경 <고린도전서> 7장33절-34절)과
둘째), 교회를 위해 (참고 성경<고린도후서> 11장28절).
셋째),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참고 성경 <히브리서> 3장12절)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하나가 이 염려 문제입니다 .
어떤 경우에도 위의 세 가지만 제외하고 염려하지 않고 살아가도록
늘 힘쓰며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 들이고
하나님을 의지한 이상 우리 삶의 현장에서 다가오는 모든 문제를
전적으로 다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을 해야 하겠습니다.
염려를 떨쳐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는,
그리하여 많은 열매와 결실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 지길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아버지!
걱정과 염려를 거두어가소서
오! 하나님, 당신은 평강의 하나님이시오,
나는 걱정이 많은 나약한 인간입니다.
전혀 해결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염려하므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시고 그것들을 단념하여
수용케 하심으로 염려를 물리치게 도우시옵소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염려하지 않게 하시며,
그것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게 하옵소서.
그것이 내게 많은 노력을 요구하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자존심을 꺾어야 할 만큼 어려운 것일지라도 도우시옵소서.
과거의 잘못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며,
비록 내가 죄인이지만 이제 죄의 값을 탕감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기억하게 하옵소서.
장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말게 하시고, 내가 감당할
시험밖에는 결코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오늘 밤 편안한 잠자리가 되게 하시고,
내일은 담대하고 자신에 차며
능동적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쓸데없는 걱정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꿔 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어니 잴린스키의 <모르고 사는 즐거움>중에서-
한마디로 걱정이라는 것은 그 100%가 쓸데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부질없는 걱정일랑 하지 말고 낙천적으로 살자.
그렇다고 낙관적으로 살지는 말자.
낙천적인 것과 낙관적인 것은 전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