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6. 14
지난 1일 강원도 춘천의 한 리조트에서 V리그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우수 지도자 초청 포럼이 열렸다. 지난해 6월 열린 해외 지도자 초청 세미나에 이어 배구 강국의 지도자가 가진 노하우를 V리그, 그리고 한국 배구가 배워보자는 배경에서 이뤄졌다.
올해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함께 뛰었던 안드레아 가르디니 벤길 베우하투프(폴란드) 감독, 로렌조 베르나르디 노바라(이탈리아) 감독이 초청됐다. 가르디니 감독은 1986년부터 2000년까지, 베르나르디 감독은 1987년부터 2001년까지 자국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이탈리아 배구가 1990, 1994, 1998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 챔피언에 오를 때 활약했던 뛰어난 선수였다. 이후 지도자로 변신해 각각 폴란드, 튀르키예, 이탈리아 등에서 꾸준하게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작년에는 외국인 지도자만 초청했던 행사였는데, 올해는 김상우 삼성화재 감독과 김종민 한국도로공사 감독이 함께 참여했다. 나는 이날 운 좋게 사회를 맡아 윤성호 SBS 스포츠 아나운서와 함께 행사를 진행했다.
V리그 남녀부 각 구단 관계자와 언론인 등 200여 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으려니 다소 긴장됐다.
자칫 딱딱한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2시간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참석자들은 국적과 나이, 성별은 달라도 배구를 향한 마음은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배구를 주제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는 게 무척이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되어 이날 나눴던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 한 시즌 동안 선수 컨디션과 부상, 그리고 멘탈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이 질문의 주제는 체력과 멘탈로 나뉠 수 있었다. 체력적인 부분에서는 나라마다 일정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감독들의 계획에 따라 운영된다. 그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한국 선수들의 준비과정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V리그가 18번째 시즌을 치르면서 선수들의 인식도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유럽 배구와 비교하면 아직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 유럽은 팀 훈련이 시작되기 앞서 선수 각자가 60% 정도의 몸은 만들어 새 시즌을 준비한다.
그래야 팀 복귀 후 팀 스케줄에 맞춰 훈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다면 팀 훈련은 아주 기초적인 부분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별도의 시간이 소요되고, 선수들은 힘들다. 여기에 기술 훈련까지 더해지면 스케줄이 빠듯해질 것이며, 컨디션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안드레아 감독과 로렌조 감독
다음은 멘탈이다. 좋은 경기력으로 시즌을 잘 치른다면 SNS는 선수에게 힘이 된다. 하지만 기사나 SNS에 노출되는 과정에서 경기력 문제 삼아 악성 댓글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SNS의 댓글은 보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견과 선수가 책임감을 갖고 SNS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국내외 지도자가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은 선수 스스로 SNS가 독이 되지 않게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날 모인 지도자들은 체력과 멘탈 모두 리프레시가 중요하다는 점에 입을 모았다.
- 세대교체 시기가 늦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해결 방안은?
이 부분은 한국배구의 시스템의 이야기다.
유럽은 프로팀 산하에 많은 연령대의 유소년 팀을 거느리고 있다. 자연스레 훈련의 일원화와 함께 어린 선수들은 많은 경기 경험을 쌓으면서 프로를 준비한다. 또한 프로와의 자연스러운 연계를 통해 언제든지 성인팀 합류 기회를 받을 수 있다. 어린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매년 각국의 대표팀에서는 새로운 얼굴들이 나오며 팀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 김상우 삼성화재 감독,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
반면 우리나라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중고생은 물론, 대학생 선수도 기본적인 학습권 보장과 함께 다소 부족한 훈련시간을 어떻게 최대한 효율적으로 쓸 것인지, 여기에 해마다 줄어드는 엘리트 선수의 충원 등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
유소년에 대한 중요성은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실타래처럼 엮인 것들을 하나씩 풀어내기 위해서는 한국배구의 미래를 위한 우선순위부터 정해야 할 것이다.
- 스피드 배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최적의 방안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국내 지도자들이 이탈리아 감독들에게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스피드 배구만이 전부는 아니다.’
많은 탑클래스 선수들이 빠른 볼만 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선수인 레온도 빠른 볼을 때리는 선수가 아니라는 것이 이탈리아 감독들의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선수 개인이, 또 팀의 스타일에 따라 최적의 효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모든 감독들이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여기에 김상우 감독은 “스피드 배구라는 말보다는 템포 배구라는 말이 더 맞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스피드에만 치중을 한다면 실속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세터와 공격수 간의 템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김상우 감독의 생각이다.
여기에 로렌조 감독과 안드레아 감독은 서브와 범실 관리 능력을 키워 더 효율적인 배구를 하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를 덧붙였다.
내가 생각하는 스피드 배구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볼이 정말 빠른 스피드, 유럽 선수들처럼 높이에 의한 스피드, 김상우 감독이 이야기했던 세터 타이밍에 의한 스피드까지… 모두 스피드 배구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스피드이건 이를 소화하는 선수 능력이 필요하고, 배구 이해도 역시 높아야 한다.
단순히 사이드 아웃에만 스피드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격 과정 또한 사이드 아웃만큼 중요하기에 공격과 수비 모두가 스피디하고 효율적인 배구를 한다면 경기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열띤 토론을 펼쳐준 국내외 지도자들 덕분에 배구에 대한 깊은 얘기를 하는 귀한 시간을 보냈다.
모두가 알고 있던 주제지만 다시 한번 그 중요성을 상기시키고, 그동안 공유가 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생각을 서로 나누는 경험이었다.
나를 비롯한 현장의 지도자들이 우리 배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하나씩 고민하고 해결해 나간다면 프로배구는 물론, 한국 배구의 미래는 분명 지금보다는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봉우 / 전 프로배구 선수
네이버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