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시계
물시계는 해시계 다음으로 가장 오래 된 특히 그것은 해가 뜨지 않는 흐린 날이나 밤중에도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이런 장점 때문에 물시계는 일찍부터 밤중의 시간을 알려 주는 공식적인 시계로 정착해서 누각(漏刻) 또는 경루(更漏)로 불렸습니다.우리 나라에서 언제부터 물시계를 제작·사용했는가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누각이라는 물시계가 신라 성덕왕 17년인 718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물시계를 전담하는 부서인 누각전(漏刻典)이 설치되어 박사 6명, 사(史) 1명을 두었다고 합니다.그러나 671년 백제의 천문학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물시계의 제작을 지도했다는 기록이 있고 보면 훨씬 전부터 물시계가 만들어져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시간 측정제도는 고려 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을 것이나 전하는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물시계 제작은 조선 세종 때 들어와 획기적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매우 정교한 자동 시보 장치가 붙은 물시계가 제작된 것입니다.
『세종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자격루(自擊漏)라고 불린 이 자동 물시계는 장영실 등이 2년여의 노력 끝에 세종 16년(1434) 6월에 완성해 경복궁 남쪽에 세워진 보루각(報漏閣)에 설치되었습니다.
자격루는 그 해 7월 1일을 기하여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조선 왕조의 새로운 표준시계의 하나로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격루는 제작된 지 21년 만인 단종 3년(1455) 2월에 자동 시보장치의 사용이 중지되고 말았습니다.
장영실이 죽어 고장난 자동장치를 고칠 수 없었던 게 주요한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보루각의 자격루
지 정 : 국보 제229호
소 장 : 덕수궁
연 대 : 1536년(중종 31년)
재 료 : 청동 및 도기
크 기 : 대파수호 지름 93.5cm, 높이 70cm, 소파수호 지름 46cm, 높이 40.5cm, 수수통(受水筒) 바깥지름 37cm, 높이 199cm
보루각의 자격루는 세종 때 장영실이 만든 자동 시보장치가 붙은 매우 정교한 물시계 였습니다.
원래의 자격루는 세종 16년(1434)에 제작되었으나 이것은 현재 남아 있지 않으며, 덕수궁에 있는 유물은 중종 29년(1534) 9월 17일에 시작하여 2년 만인 중종 31년(1536) 6월 28일에 제작이 완료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 해 8월 20일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스며, 이 자격루 유물은 해방 전 경성박물관에 전시되었을 당시만 해도 전(箭)과, 물통을 연결하는 관이 있었고 대석(臺石, 받침돌) 도 있었는데 지금은 물통들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격루 유물은 지금 중국 광동에 남아 있는 명나라 때의 물시계보다 제작년대가 조금 떨어질 뿐 그 규모가 크고 만듦새가 훌륭하여 매우 귀중한
보기 드문 유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첫댓글 이미지 좀 챙겨야 우리가 편리하게 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