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야사 "성종과 폐비윤씨"
조선조 제9대 임금인 성종 임금은 몇 안되는 성군중 한분이시다
세종대왕(4대)의 찬란한 업적이 태종(3대)의 피바람을 일으키는 난세평정 위에 꽃피운 역사라면 성종의 태평성대는 세조(7대)의 피바람 위에 꽃피운 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구 성종은 수신제가를 제대로 하지못한 임금이다
좀 치사하게두 여인네의 투기를 이유로 국모를 폐위시킨 오점을 남겼다
폐비의 직접적인 이유가 용안(임금의 얼굴)을 손톱으루 할퀴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얼굴을 할퀸건 부부 싸움이구 폐비는 국사다
아무리 그 시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이라 하여두 그건 좀 심했다
얼굴을 할퀴기까지 별 앙탈을 다 부리구 투기하며 속을 썩였겠지만 원인 제공자는 자신이다
또한 그런건 국사 하구 무관한 부부 문제다
얼굴을 할퀸일은 아무두 모를 부부만의 일이다
그걸 감추구 지혜루 극복하지 못하구 어미한테 일러서 일을 크게 만들어 버렸다
다만 성종이 총애하는 후궁을 죽이려는 음모가 발칵 되였다 하나 그것은 부수적인 문제일 뿐 빈으로 강등시키려 하다 용서해버린 지난 이야기다
얼굴은 괜히 할퀴었겠나
유난히두 여색을 밝히는 임금이였단다
거기엔 어머니 인수대비두 한목 거든다
자신의 권력이 며느리에게루 옮겨가는게 싫어서 예쁜 후궁 들이는데 앞장 섰구 그 후궁들을 뒤에서 조정했겠지 그러니 고부간의 갈등이 좀 심했겠나 투기하는 마눌보다 예쁜 후궁 얻어주는 어미편을 들어준게 폐비까지 가구 사사까지 간게다
영웅 호색이란 말이 있지만.....
어진 임금이며 호색은 하였지만 영웅은 아니였나보다 왜냐 하믄 .....
호색은 좋은데 영웅은 투기하는 여인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왕의 권위로 색만 탐하였지 색을 탐하므로 야기되는 여인네들의 투기를 지혜로 다스리지 못하구 그것조자 권위로 다스려 엄청난 역사의 역류를 격게 하였지
문제의 심각성은 폐비가 아니라 폐비의 사사다
아무리 미워두 한때 사랑한 사이 아니었나
그러니 첫째 왕비가 죽자 여러 후궁 중에서 왕비로 책봉되지 않았겠나
세월이 흐르면 미운정이 고운정으루 바뀌기두 하구 최소한 측은한 마음이야 어쩌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그런데 사약을 내려 목숨마저 끊은건 주위 여인들의 투기를 다스리지 못함이지 결코 폐비가 그토록 미워서는 절대 아닐 것이다
만약에 복위라두 되는날 자신들의 운명을 예견한 영악스럽기 그지없는 여인들이 가만 있었겠나
결국은 성종두 치마폭에 휩싸인 귀엷은 임금일 수 밖에 없었든게 드러난다
투기하는 여자가 후궁이라면 문제가 다르지만 엄연히 왕세자의 생모요 나라의 국모다
폐비에 이어 폐비의 사사까지만 갔더라두 큰 화는 막을 수 있었다
폐비를 사사 했으면 무리가 따르더라두 폐세자두 했었다면 말이다
"내 사후 100년간 폐비의 일을 입에 담지말라"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만 생각한 한심한 엄명이다
자신의 사후 100년을 어찌 명령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죽으면 온 세상이 다 아는 일을 어찌 왕이되였을 아들만 모르라고 그런 멍청한 명령을 내렸을까
자신들의 앞날을 예견해 왕을 꼬득인 후궁들 만큼만 앞날을 예견 했어두 ....
우찬성 허종은 사약을 가지고 가야할 입장 이었는데 입궐하다 다쳤다구 핑계대구 결근을 해서 .....
훗날 연산군으로 부터 죽임을 면했다 한다
이렇듯 아랫 사람들은 앞날을 예견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보존 하는 지혜를 보이는데 말이다
시화와 서예에 능하여 어느 임금보다 문화의 꽃을피워 경국대전등 수 많은 책을 편찬한 훌륭한 임금 임에두 수신제가 하지못하구 권력의 힘에젖어 사후를 예견하지 못해 우를 범하는 오점을 남겼어...
그 오점은 자신의 재위시절에 그냥 오점일 수 있었지만.....
훗날 아들인 연산군이 휘두루는 피바람의 갑자사화 원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