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아들을 받은 자로서 Date 2021. 2. 28
Text Ish 9,6-7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1. 오늘은 삼일절기념주일이고 사순절 제 2주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하여 삼일절을 기념하고 사순절을 지키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은혜 받으십시다.
2. 오늘 받은 사9,6절,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는 사순절의 은혜가 무엇인지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한 죄인이 그 흉측한 죄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게 되고 나아가 위대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이 되는데, 그 아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며 평강의 왕이신 분이라고 합니다.
아무 희망이 없고 무가치한 존재였던 인간이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자기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독생하신 아들을 선물로 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믿고 그래서 속죄의 은총을 받았음을 깨달으면서 인생의 새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삼일만세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시고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장 다음으로 권위있는 대통령장을을 받은 91분 중 한 분이신 신석구 목사님은 53세 때부터 63세가 되던 약 10년간 갈등을 겪으셨다고 자서전에 기록하였습니다. 일제에 미운털이 박힌 이유로 30년 가까이 목회를 하셨지만 여전히 생활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생긴 갈등이었습니다. 그렇게 장기간의 갈등을 겪으시던 목사님은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는 중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에 그 갈등을 끝내셨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네게 좋은 집을 주지 아니하고 내가 지던 십자가를 주었다.”
목사님은 이 음성을 듣고서, “너무 감격하여 많이 울었다. 내가 어찌 감히 주님의 지시던 십자가를 질 수 있을까? 이는 나의 영광 중에 가장 큰 영광이다. 다른 사람은 십자가를 괴로운 것으로 알는지 모르나 나에게는 영광의 십자가이다. 그 후에도 간혹 악마의 유혹이 들어왔으나 십자가로 물리쳤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목사님을 마지막까지 위대한 순국선열이요 순교신앙인으로 갈 수 있게 한 것은 ‘십자가 사랑’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예수를 신자가 사랑치 않는 것이 큰 죄다.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의 십자가를 늘 생각하고 안일된 생활을 취하지 않는다. 대개 우리가 잘 입을 때 주님의 벗으신 것을 잊어버리기 쉽고 우리가 잘 먹을 때 주님이 주리신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안일을 구하지 말고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우리 몸에 채우도록 힘쓸 일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성도들은 은혜를 받으려는 열정이 식어졌습니다. 혹시 우리에게는 더 이상 은혜가 필요 없어진 것일까요? 성도들의 사는 것을 보면 분명히 그것은 아닌데 하여간 은혜 받으려는 열정이 식어진 것은 확실합니다. 심령부흥회는 열어도 잘 모이지 않습니다. 대신 쎄미나나 강좌 같은 문화집회에는 상대적으로 잘 모입니다. 어떻게 보면 은혜 받는 것을 싫고 대신 감동 받는 것에는 열심인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그렇게 되면서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 특히 신자가 신앙적으로 더 좋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은, 감동이 아닌,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은혜를 받으려는 의지가 없는 신자가 더 나은 신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은혜가 없이는 위대한 삶을 산 류관순 열사나 조만식 장로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은혜의 물이 마르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국교회에는 똑똑한 사람, 스마트한 사람, 멋진 사람은 많이 등장했지만 일제 시기의 민족 영웅 같은 인물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사람을 180도로 확 달라지게 하는 불의 사자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는 신자도 희소합니다.
여러분, 확인하십시오. 성도가 누굽니까?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즉 성도는 하나님의 독생자를 그 영과 혼과 육신에 받은 사람입니다. 깨달아지기를 축복합니다.
3. 그 다음 구절은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독생자가 보통 분이 아니라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감히 우리가 언감생심 꿈꿀 수도 없는 분인 것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기묘자’란 무슨 뜻일까요? ‘기묘’는 영어 ‘wonderful’의 번역입니다. 성도가 선물로 받은 예수님은 놀라운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고, 죄인이 그분을 믿어 영접하면 죄인이었던 인생이 의인이 되고, 마귀의 종이었던 인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꼼짝없이 지옥에 가서 거기서 살아야할 우리가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천국백성이 된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모사’라 했습니다. ‘모사’라는 말은 영어 성경의 ‘counselor’(상담자)의 번역입니다. 이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은 상담자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고, 지혜를 가지고 인간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7,7-8에서 어떤 문제나, 어려운 일을 가지고 나와 기도하면 그 문제를 해결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7)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아멘.
어떤 목사님이 자기 아들이 학교 기숙사에 있는데 장이 안 좋아 자주 설사를 해서 병원에 데리고 가 진찰 받게 하고 약도 챙겨주고 집에 와서 전화하기를, “아들아, 약 빼놓지 말고 잘 챙겨 먹어!”했는데, 문득 목사가 돼가지고 약만 먹으라 한 것이 옳지 않다 생각이 되어 회개하고 다시 전화를 해서 병을 치료해 달라고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아들의 설사 병이 낫도록 간절히 기도하는데 1주일 후에 아들이 전화하기를, “아빠, 설사병 다 낳았어. 이제 그만 기도해! 아빠가 더 기도하면 나 변비 걸려.” 하더랍니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모사가 되시고 상담자가 되시는 예수님 앞에 나와 상담하고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어떤 방법으로든지 다 해결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선물로 받은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숱한 종교들이 있지만 자기가 믿는 이를 아버지라 부르는 종교는 없습니다. 오직 기독교뿐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연세가 많아지시면 우리 곁을 떠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한 아버지가 되어 우리의 후원자와 보호자로서 돌보아 주십니다. 또한 그렇게 충분히 하실 수 있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아버지의 유업, 천국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확신하십시오.
‘평강의 왕’이라고도 했습니다. 예수 믿고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편해졌다고 합니다. 평안은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독생자는 평강의 왕이라 표현하였습니다. 하루나 이틀 반짝 평안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어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뒤의 7절을 보면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라 했습니다.
참된 평안을 찾아 세상의 온갖 것에 심취했던 성 어거스틴은 훗날 고백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참다운 평안이 없다.”라 했습니다. 세상에는 평강이 없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이 평강을 줄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그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술을 마시고 향락을 즐기며 마약을 합니다만 평안이 생기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이런 위대한 분이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런 대단한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이가 무엇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독생하신 아들, 위대하고 귀하신 아들, 전능하고 영존하시는 아들까지 받은 존재입니다. 무슨 더 큰 선물을 기대하십니까? 더 이상 큰 선물은 없습니다. 이분 안에 다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사순절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우리를 위해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렇게까지 귀한 선물을 주셨기 때문에 군림하여 굳게 세울 것이며 보존할 것이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 일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약속까지 하십니다. 이 말씀이 7절입니다.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여러분, 이 은혜가 이론적으로 머리에만 머물러 있게 하시 마십시오. 감동으로만 가슴에 머무르게 하지도 마십시오. 가슴에 불타오르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선물을 깨닫지 못한 인생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도 없고 따라 할 수도 없는 거룩한 삶을 사십시오. 항해하는 인생의 배를 향해 집어삼킬 듯한 세상의 험한 파도와 바람이 닥쳐오더라도 거뜬히 이겨내시는 기적을 보이시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처음 교회에서는 그랬습니다. 행4,32-37을 보면 내 것 네 것 없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며 살았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첫째는 놀랐고 둘째는 부러워했으며 나중에는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좋아 너도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며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오는데 그중에는 예수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들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이웃들도 그런 교회, 자신들로서는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고, 나도 저 무리에 끼었으면 하고 부러워할 수 있으며, 두려움까지 느끼게 하는 그런 교회가 출현하기를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위대한 선물을 받은 우린 은혜 중에 할 수 있습니다.
이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