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88/ 가라는 허락을 듣고 가는 발람에게 하나님은 왜 노를 발하시는가?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민 22:20~22)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평지에 이르렀다. 그들 입장에서는 출애굽여정이 마쳐 가는 것이지만 모압 왕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모압 왕 발락은 그들을 막기 위해 한 계책을 마련한다. 그것은 메소포타미아 상부의 "강가브돌"(민 22:5)에 살고 있던 이방인 출신 선지자 발람을 초청하는 것이었다. 그의 기도로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함이다. 브돌은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다가 잠시 머물렀던 하란과 가까운 곳이다. 그가 브돌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라 이방의 점술가나 술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는 "선량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선지자였다"(부조, 438), 이는 그가 발락의 사자들에게 "여호와 내 하나님" (18절)이라고 한 말에서도 확인된다.
발락은 발람에게 귀족들을 보낸다.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뇌물을 들려 보낸다. 그들은 "손에 복채를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그에게 전"(민 227) 한다. 그들이 전한 발락의 말 중에는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6절)가 포함되어 있었다. 발람의 자긍심을 자극하는 매우 정치적인 수사이다. 이 말은 들은 발람의 반응이 어떠하였을까? 아니, 발락이 보낸 뇌물은 받았을까? 여하튼 발람은 이때 사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발락의 사신들은 빈손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발락에게 가서 "바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더이다”(14절)라고 보고한다. 이 보고를 받은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15절) 보낸다. 그리고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17절)라고 권력과 재물을 약속한다. 일종의 백지 수표를 전달한 것이다. 그러나 발람은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18절)고 단호하게 답한다. 그러면서 그 사신들에게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19절)고 덧붙인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나타나신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20) 명하신다. 다음 날 아침 발람은 "모압 고관들과 함께"(21절) 발락에게로 가기 위해 출발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22절하셨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들고 좁은 길을 막아선다. 발람이 탄 나귀가 그것을 보고 피하려고 하다가 발람의 발을 담에 짓누른다. 발람이 나귀를 때리자 나귀가 입을 열어 주인을 책망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왜 하나님은 당신이 "일어나 함께 가라"고 명하신 대로 가는 발람에게 진노하시는가?
발람의 태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그가 발락의 사신들에게 보인표면적 반응 너머에 있는 그의 진심을 간파할 때에야 이해가 된다. 물론, 하나님은 그런 발람의 속셈을 다 읽고 계셨다. 사실, 발람은 모압의 귀족들이 맨 처음 방문하였을 때, 그들의 칭찬과 뇌물에 이미 마음이 넘어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뇌물부터 거절해야 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뇌물을 싫어"(잠 15:17)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신 16:19)고 명하셨다. 그런데 발락의 사신들은 "발람에게 뇌물을 주신 23:4었다. 준 자가 있으면 받은 자가 있다. 발람이 그 뇌물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실력을 보여 주고 싶은 공명심에 우쭐해져 있었다.
그는 그런 마음을 감추며 사신들에게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8절)고 하였다. 겉으로는 매우 엄정한 하나님의 선지자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저주의 여부를 묻는다. 하나님은 분명한 답을 주신다.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12절). 이 대답을 들은 발람이 발락의 사신들에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13절). 이 대답을 한 발람의 분위기를 파악해야 한다. 우선, 그는 여호와께서 이르신 대로 말하지 않는다. 화잇은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설명한다.
매우 값진 뇌물과 장래의 부귀영달은 그의 탐욕을 자극했다. 그는 그들의 내놓은 보물들을 탐욕스럽게 받아들이고는 한편으로 하나님의 뜻을 엄격히 순종할 것을 공언하면서도 발락의 소원을 채워 주고자 하였다. 아침에 발람은 마지못해 사자들을 돌려보냈으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바를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많은 이득과 명예에 대한 환상이 돌연히 소실되었기 때문에 화가 난 발람은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여호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느니라”고 부르짖었다(부조, 438).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고 분명하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발락의 사신들은 발람의 분위기를 읽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발락은 발람이 더 많은 뇌물을 요구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높은 귀족들을 파견하면서 백지수표를 약속한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그는 속으로는 웃었을 것이다. 탐욕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는지 알아보리라”(19절)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을 다 주셨다. 그런데 무슨 말씀을 더한다는 말인가? 이것이 발람의 본심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밤에 발람에게 '그들과 함께 가라'고 하신 것은 그런 상황에서 주신 말씀이었다. 그 말씀은 "정 그러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고집을 허용하시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주신 '지시적인 의지(directive will)가 아니다. 그건 인간의 고집을 허락하시는 '허용적인 의지'(permissive will)이다. 발람은 이 말씀을 듣자 마치 그들이 그냥 가 버리는 것이 두렵기라도 하듯,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들과 동행 길에 나섰던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엘렌 G. 화잇의 말대로 교묘하게 순종을 가장하며 뇌물과 권력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라고 선언하신 탐욕의 죄는 발람을 기회주의자로 만들었으며 이 한 가지 죄를 통하여 사탄은 그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부조, 439).
그래서 하나님은 발람에게 진노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나귀의 입을 빌려 그를 꾸짖으셨다. 그는 "불의의 삶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저지하였"(벧후 2:15~16)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발락의 사자들을 따라나선 것은 미친 짓이었다. 그것이 바로 "발람의 어그러진 길유 11)이다. 하나님은 다시 발람을 살려 주시면서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35절)고 당부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영의 감동 아래 발락이 여러 번에 걸쳐 저주를 부탁하여도 이스라엘에 대해 축복만 한다. 그러자 발락은 발람에게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 (23:25) 외친다. 발람을 매수하려던 발락의 계획은 그렇게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끝내 발락의 제안을 완전히 벗어 버리지 못하였다. 그의 탐욕이 다시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발락이 약속한 보상을 얻고자 하였다. 발람은 이스라엘의 번영이 하나님을 순종하는 데 달려 있고 그들을 죄에 빠뜨리지 않고는 그들을 전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그는 모압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주가 내리도록 하는 방법을 따르도록 조언함으로 발락의 환심을 사기로 결심하였다(부조, 451).
발람은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렀을 때, 발락에게 모압의 여인들을이용하여 이스라엘을 파괴시킬 계책을 알려 주었다(민 31:16). 그의 꾀대로 이스라엘은 발락의 미인계에 걸려 바알브올을 섬기게 되고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셨다(민 25:1~9). 이런 역사적 배경을 근거로 요한은 버가모 교회를 책망하면서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계 2:14)고 하였다. 발람은 비참하게 죽었다. 그는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민 23:10)고 하였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멸할 때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기"(민 31:8)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