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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이다.
(2) 관세음보살은 이름만 불러도 공덕이 된다.
(3) 관세음보살은 몸(불상)만 보아도 그 공덕이 크다.
(4) 관세음보살을 믿는 공덕은 관음의 신통력에서 비롯한다.
(5) 법화행자는 관음의 자비심에 이르는 길을 여실히 보아야 하며
(6) 관세음보살의 자비로 중생의 음성을 관할 줄 알아야 한다.
(7) 관세음보살의 32(33)응신은 간절한 관음의 자비심이다.
1. 3 聖身 ; 불신 벽지불신 성문신
2. 6 天神 ; 범왕신 제석신 자재천신 대자재천신 천대장군신 비사문신
3. 5 人身 ; 소왕신 장자신 거사신 재관신 바라문신
4. 4部大衆 ;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5. 4部 婦人身 ; 장자부인 거사부인 재관부인 바라문부인
6. 2童身 ; 동남신 동녀신
7. 8部 神將 ; 천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인비인 身
8. 金剛身
(8) 관세음보살의 32 응신을 보이는 것은 대중불교를 뜻하는 것이니 중생 의 근기에 따라
그의 몸을 여러 가지로 보여서 제도할 바를 따라서 응신하는 것이니 이는 중생을 먼저 생각하는 자비심에 연유한다.
(9) 무진의보살이 진보인 영락으로 만든 목걸이를 공양하나 처음에는 받지 않음이라. 중생을 불쌍히 여김으로 나중에 받았다.
(10) 그 공양물을 둘로 나누어서 한 쪽은 석가모니불에게 바치고, 다른 한 쪽은 다보불탑에 바쳐 올렸으며
본인은 갖지 않았다. 탐욕이 없음 이나 중생이 공덕을 쌓을 기회를 주는 것이다.
(11) 법화행자는 모름지기 관음행을 배워서 묘법연화경을 유통하는 본화보살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라는 집착을 여윈 자리에서 慈心을 얻는 것이니 이는 진여법성이 자심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집착심을 여위고서 중생의 업장을 소멸하는 노력을 한다면 이는 悲心을 보이는 것이니 이 慈心과 悲心은 서로 맞물려 다니는 것이기에 자비라 고 하는 것이며 관세음보살을 신앙하는 사람은 이러한 자비를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관세음보살을 ‘자비의 화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은 중생들과 더불어서 진여법계에 들어가게 됨으로 관세음보살을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이라고 하는 것이다.
(12) 재가인은 특히나 관음신앙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관음신앙에는 易行道가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13) 명상을 즐기는 사람은 관세음보살을 대상으로 염불선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본래 인도에서 그러했듯이 여기에서 염불은 명상 참구하 는 수행자의‘화두’이다. 관세음보살을 화두로 하여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는 자리가 바로 견성하는 자리이다.
(14) 관세음보살의 신앙은 여래선이요, 조사선이다.
(15) 관세음보살은 이마에 아미타불을 모시고 다니니 이는
중생들로 하여금 무량수여래불을 이루라고 하는 것이니 이는 여래수량품을 이른다.
(16) 관세음보살은 여래수량품을 수행하는 모습이 중생을 제도하는 모습이니 이러한 간절한 자비심에서 신통력은 나오는 것이니 중생을 마치 핏덩이 아이를 사랑하듯 하는 것이다.
(17) 관세음보살이 모든 四중과 하늘 용 인비인 등을 불쌍히 생각하여
그 영락을 받아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석가모니불께 받들어 올리고 하나는 다보불탑에 받들어 올림이라.
물론 불교에만 한한 것은 아니지마는, 불교, 특히 법화경의 신앙에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밝혀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대의명분을 어지럽히는 것을 하극상(下剋上)이라 하는데, 아무리 왕성한 마음으로 신앙을 힘쓴다 하더라도,
거기에 하극상이 있어서는 도리어 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신앙의 대의 명분이 오늘날에 거의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물론 어제오늘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고려(高麗)중엽 이후부터, 특히 이조(李朝)초에 불교를 배척하는 정책을 쓰게 되고부터 오늘날까지,
그러한 풍조(風潮)가 그냥 계속되어 와서 바로잡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역시 오래 전부터 그러했던 모양으로,
일련대사 당시에도 불교의 신앙에 대의명분이 없어 무서운 하극상의 죄를 범하고 있었다. 또 그 당시는 정권을 잡은 자들의
횡포로 말미암아, 국민도덕의 면에서도 하극상이 심하였다. 그래서, 일련대사는 입정안국론(立正 安國論)을 제시(提示)하여,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나라가 망할 것을 경고했다. 여기서 국민도덕에 관한 것은 논외(論外)로 하고, 불교 신앙의 대의명분이란 어 떤 것인가를 좀 알아보기로 하자.
불교 신앙의 대의명분을 구명(究明)하는 데 는, 이 관세음보살 보문품(普門品)의 일절이 가장 적절한 경문이 아닌가 한다.
경전 가운데는 많은 보살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그 보살들에게는 각각 어떤 공덕이 있는가를 설해 있어서, 이로써
사람들의 신앙을 모으고 있다. 물론 때와 사람과 곳에 따라 다르지마는, 통털어 말하여, 이 많은 보살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모으고 있는 이는 관세음보살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따라서, 이 보살의 영험기(靈驗記가
옛날부터 꽤 많이 책으로도 되고, 구전(口傳)으로 전설로도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또한 관세음보살을 모신 당우(堂宇)가
전국 방방곡곡 없는 데가 없다. 이러한 관세음보살이므로, 경전 가운데에도 매우 많아서, 혹은 독립된 경전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고, 혹은 어떤 경전의 한 장(章)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법화경 가운데도 관세음보살 보문품이라는 한 장이 있다.
이 보문품은 많은 관음경(觀音經)중에서도 가장 많이 독송되고 가장 깊이 신앙되고 있다. 그러나, 가령 四월 八일 성탄절에
관세음보살의 명호만을 부다든가, 관음경을 독송한다는 것은, 마치 대통령의 탄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어떤 딴 사람의
공로를 치하하는 것과 같아서, 그것은 불교 신앙의 대의명분을 문란하게 하는 것이며, 따라서 결국은 하극상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한 불교신도라면 먼저 교주이신 석가모니불에게 정성과 신앙심을 회향(回向)해야 할 것이다.
법화경의 보문품은 대략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의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시어, 나무관세음보살을 입으로 부르면, 큰 불, 큰 물, 나찰(羅刹),
칼과 몽둥이. 악한 귀신, 가쇄(枷鏁), 원적(怨賊)등의 일곱 가지 재난을 모면할 수 있으며, 마음으로 염하면, 탐욕(貪慾),진에(瞋恚), 우치(愚癡)의 세 가지 독을 제거할 수 있고 몸으로써 예배하면, 아들을 낳으며 딸을 얻는 공덕이 있음을 말씀하시고, 또한 보살이 서른세 가지의 몸으로 변하여 중생을 구원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관세음보살의 권능(權能)이 한없이 큼에 감격한
무진의보살은,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여, 관세음보살에게 공양하고자, 몇억만금인지 그 값을 알 수 없는 목에
걸었 던 보배 영락을 벗어가지고 관세음보살의 앞으로 나아가, ‘인자(仁者)시여, 이 법에 의하여 드리는 진구한 보배 영락을
받아 주옵소서.’하고 바쳤으나, 관세음보살은 그것을 받으려하지 않았다. 무진의보살은 거듭 받아 주기를 원했지만,
관세음보살은 여전히 잠자코 있었다. 세존께서는 무진의보살의 심정을 어여삐여기시어 관세음보살을 돌아보시고,
무진의를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서 영락을 받으라고 하셨다. 관세음보살은 세존의 말씀에 황공하여
곧 그 영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을 자기 몸에 지니지 아니하고,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세존께 올리고,
하나는 다보여래의 보탑(寶塔)에 바쳤다. 보문품의 내용은 이상과 같이 간단한 것이지마는, 여기서 우리는 그것이 심히 중요함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어찌하여 관세음보살은 무진의 보살의 영락을 받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가 현재 보살이기 때문이다. 또 그 자리에는 세존이 계시므로. 좋아라고 넙적 받아서는 세존께 대하여 무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존의 허락이 있은 다음에야 받았다. 이것이 부처님과 보살, 스승과 제자 사이의 예의인 것이다. 법화경에서의 여래수량품과 관세음보살 보문품의 위치 및 세존과 관세음보살의 지위 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아무리 보문품을 독송하여도 그것은 수박 겉핥기요, 또 관세음보살을 지나치게 존경하는 나머지, 오히려 구원(久遠)의 본불이신 석가모니불의 위치보다 높이 모시어 신앙해서는,
그야말로 불교 신앙에 있어서 더할 수 없는 하극상(下剋上)이 될 것이다. 뛰어난 공덕도, 세존의 대자대비의 광명 가운데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존께서 중생의 성불할 수 있는 유일한 양약으로 전하신 묘법연화경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관세음보살의 권능도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련대사는 ‘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부르면 나무아미타불의 힘도, 나무대일진언(南無大日眞言)의 힘도, 관세음보살의 힘도, 그 밖의 모든 부처님, 모든 경, 모든 보살의 힘도, 죄다 묘법연화경의 힘에 가리워져버린다. 저 여러 경은 묘법연화경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 희작(戱作)과 같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절들을 살펴보건대.
신중 불공(神衆佛供)이니, 칠성불공(七星佛供)이니, 용왕불공(龍王佛供)이니, 지장불공 (地藏佛供)이니, 산신불공(山神佛供)이니 하여 본존인 교주 석가모니불은 도리어 모시지 않는 절을 가끔 볼 수 있다. 부처님께는 예배도 않고 관세음보살에게만 예배를 한다든가, 부처님을 모셔 놓고도 그 앞에서 관음주력(觀音呪力)을 한다든가 하는 것은 이만저만한 하극상이 아니다. 이야말로 불교 신앙의 대상조차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것이 장차 법멸(法滅)의 인연이 되지나 않을까 몹시 염려되는 바이며, 또한 현재와 같이 불교가 쇠퇴해진 원인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아미타불의 제자도 아니요, 약사여래의 제자도 아니요, 관세음보살의 제자도 아니요, 지장보살의 제자도 아니요, 화엄신중의 제자도 아니다. 칠성각(七星閣)이나 산신각(山神閣)의 수직인(守直人)은 더욱 아니다. 말법 세상의 우리가 ‘숭앙(崇仰)하는 바는 오직 구원실성의 석가모니불이요, 믿는 경은 오직 실대승 말세 구원의 경이며 성불의 정법(正法)법화경’이다. 불교 신앙의 대의명분을 문란하게 하거나, 하극상의 죄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명심해야 할 것이다.
[주석]
(관음경 게송편을 번역하고 주석합니다.)
이시무진의보살 이게문왈
爾時無盡意菩薩 以偈問曰 :
세존묘상구 아금중문피 불자하인연 명위관세음
世尊妙相具하시니 我今重問彼니이다. 佛子何因緣으로 名爲觀世音이닛고?
구족묘상존 게답무진의 여청관음행 선응제방소
具足妙相尊이 偈答無盡意하시되 汝聽觀音行 善應諸方所하라.
홍서심여해 역겁부사의 시다천억불 발대청정원
弘誓深如海하여 歷劫不思議토록 侍多千億佛하고 發大淸淨願하니라.
아위여락설 문명급견신 심념불공과 능멸제유고
我爲汝略說하리니 聞名及見身하고 心念不空過하면 能滅諸有苦하리라.
‘ 그 때 무진의보살이 게송으로 물어 가로되
묘한 상을 갖추신 세존이시어, 나는 거듭 이를 묻겠나이다.
저 불자님께서는 어떤 인연으로 관세음이라 하나이까?
훌륭한 상을 갖추신 세존께서 무진의보살에게 게송으로 답하시었다.
너는 관세음보살의 행원이 여러 곳에 잘 응함을 들으라.
커다란 서원은 바다와 같이 깊어서 생각할 수도 없는 오랜 세월 동안에
수많은 부처님을 시봉하고 크게 청정한 원력을 세웠느니라.
이제 너에게 간략히 설하리니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거나 몸을 보고서
마음에 새겨 흘려보내지 않으면 능히 모든 고난을 이겨서 소멸하리라.’
(해설)
관세음보살님의 신통력은 잠시에 얻는 일과성이 아니고 오랜 세월동안에 서원을 하고 수행을 열심히 해서 얻은 결과인 것입니다. 이제 여러 장소에서 여러 환경에서 갖가지 신통력을 내는 것은 철저한 자기 수행과 중생에 대한 끝없는 자비심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32 응신하시는 모습을 보면 이는 분명 재가인을 위한 배려인 듯하고 출가인보다도 재가인의 신앙을 위한 신앙체계 같기도 합니다. 이는 분명 大衆佛敎를 펴시기 위한 불보살의 노력인 것만 같습니다. 그것도 하등한 재가인에게 쉬운 접근을 유도하는
기막힌 방편인 듯 싶습니다.
얼마나 쉽고 자상한지 경문을 펼쳐 가면서 해설하겠습니다.
가사흥해의 추락대화갱 염피관음력 화갱변성지
假使興害意하여 推落大火坑하여도 念彼觀音力하면 火坑變成池하며
혹표유거해 용어제귀난 염피관음력 피랑불능몰
或漂流巨海하여 龍魚諸鬼難하여도 念彼觀音力하면 彼浪不能沒하며
혹재수미봉 위인소추타 염피관음력 여일허공주
或在須彌峰하여 爲人所推墮라도 念彼觀音力하면 如日虛空住하며
혹피악인축 타락금강산 염피관음력 불능손일모
或被惡人逐하여 墮落金剛山이라도 念彼觀音力하면 不能損一毛하며
‘가령 어떤 사람이 해치려는 뜻을 두고 불구덩이에 밀어 넣을 지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불구덩이가 변하여 시원한 연못이 되며
혹 큰 바다에 표류하여 용이나 고기나 모든 귀신의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그 물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며
혹은 수미산 봉우리에서 어떤 사람에게 밀려 떨어질지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마치 해와 같이 허공에 머무르며
혹은 악인에게 쫓기어 금강산에 밀려 떨어질지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아니하며’
(해설)
몸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정신적인 혼란을 크게 당하더라도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타력으로 자력으로
그를 헤쳐나갈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생기며 자연히 주위에서 도움이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저런 어려움을 당하고 살고 있습니다. 허나 지내놓고 보았더니 이런 저런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다 해결되고는 했습니다.결국 어떤 역경을 헤쳐 나가는 길은 고요한 마음 가짐과 주위의 도움입니다.
더군다나 관세음보살을 신앙하는 일은 안팎으로 대단한 힘이 됩니다. 나는 목소리를 높혀서 고성염불을 하고는 합니다.
무서운 꿈을 꿀 적에 관세음보살을 염불해 보십시오. 해결됩니다.
여러분에게도 일심으로 그리고 집중력 있는 高聲念佛을 권합니다.
혹치원적요 각집도가해 염피관음력 함즉기자심
或値怨賊遼하여 各執刀加害라도 念彼觀音力하면 咸卽起慈心하며
혹조왕난고 임형욕수종 염피관음력 도심단단괴
或遭王難苦하여 臨刑欲壽終이라도 念彼觀音力하면 刀尋段段壞하며
혹수금가쇄 수족피축계 염피관음력 석연득해탈
或囚禁枷鎖하여 手足被杻械라도 念彼觀音力하면 釋然得解脫하며
주저제독약 소욕해신자 염피관음력 환착어본인
呪詛諸毒藥으로 所欲害身者라도 念彼觀音力하면 還著於本人하며
‘ 혹은 원적이 에워싸고 칼을 들고 해하려 할지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모두가 곧 자비심을 일으키며
혹은 왕의 환난을 당하여 형장에서 목숨을 다 하려 할 때에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칼이 곧 조각조각 부셔지며
혹 감옥에 갇혀서 칼을 쓰고 쇠고랑으로 수족이 묶였을지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곧 풀리어 벗어나며
어떤 사람이 저주를 하고 독한 약으로 해치려고 할 때에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도리어 본인에게 돌아가며 ’
(해설)
중생들에게 있음직한 일이지만 이러한 일들은 극한상황입니다.
이처럼 위급한 상황에서도 차분히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위급한 상황은 물러가고
오히려 평정을 찾는다는 관음의 신통력입니다.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법화행자가 정말로 위급한 때에 이런 신통력을 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일이 해결될까요, 이런 말들이 상징적인 언어일까요?
이 일은 각자가 이해하고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신통력은 어떤 종교에서 말하듯이 맹신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 종교에서도 성서에 이렇게 써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말이 맞는 말이라고 주장하며
끝내 그 주장을 버리지 않습니다. (패가망신하면서도)
우리 불교인도 그런 우(憂)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신통력은 삼매에 들어서 그 진위를 밝히십시오.
간절한 기도와 투철한 염원으로 이를 확인하십시오.
염피관음력이란 염불삼매에 드는 것을 말합니다.
소망이 간절하여서 다른 생각 없이 관세음보살만을 그립니다.
그렇게 해서 일념으로 염불하니 염불삼매에 들었습니다. 이 염불삼매는
기복신앙에서 수행불교로 가는 기폭제입니다. 삼매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고서는 기복신앙을 청산하고 수행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중불교를 하는 법화행자는 기복신앙을 하는 중생에게 염불삼매를
맛보게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맛을 보면 다음 일은 저절로 해답이 나옵니다.
혹우악라찰 독룡제귀등 염피관음력 시실불감해
或遇惡羅刹하여 毒龍諸鬼等이라도 念彼觀音力하면 時悉不敢害하며
약악수위요 이아조가포 염피관음력 질주무변방
若惡獸圍遶하여 利牙爪可怖라도 念彼觀音力하면 疾走無邊方하며
완사금복갈 기독연화연 염피관음력 심성자회거
蚖蛇及蝮蠍이 氣毒煙火然이라도 念彼觀音力하면 尋聲自回去하며
운뢰고철전 강박주대우 염피관음력 응시득소산
雲雷鼓掣電하고 降雹澍大雨라도 念彼觀音力하면 應時得消散하며
‘ 혹은 악한 나찰이나 독한 용이나 모든 귀신들을 만났을 때에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때때로 감히 해치지 못하며
혹은 사나운 짐승에 둘려 쌓여 날카로운 어금니와 발톱이 무서울지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당장에 멀리 달아날 것이며
독한 뱀과 전갈의 기운이 불이 타오르는 연기와 같을지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소리와 같이 스스로 돌아가며
먹구름 속에 번개와 벼락을 치고 우박과 큰 비가 쏟아질지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때에 따라서 사라지게 되며 ’
(해설)
관세음보살은 지혜의 힘과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과 여러 가지로 응신하는 신통력으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원하는 보살님이십니다. 중생들이 사는 세계를 三界라고 하니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사바세계입니다.
이 삼계를 다시 쉬운 말로 표현하면
1. 욕망의 세계(욕계) ; 탐욕으로 사는 세계
2. 육감의 세계(색계) ; 감정으로 사는 세계
3. 영혼의 세계(무색계) ; 정신으로 사는 세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욕망의 세계란 탐욕스런 욕망들이 앞서니 투쟁이 그 생활의 방법입니다. 지옥 아귀 축생들의 실상입니다.
인간사회에서는 아수라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이끌고 있습니다. 깡패 도둑놈 강도들 속에 숨어있는 투쟁심이
미래의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들은 항상 불안과 공포 속에서 남을 의심하고 세력경쟁을
주로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폭력적인 인물을 제도하여 그 업장이 점점 살아지게 합니다.
오욕에 탐착한 존재들입니다.
2. 육감의 세계란 인간의 감정을 주무기로 사는 세상입니다.
마치 인도적인 행동을 강요하면서도 인간의 가정인 오욕칠정을 사는 사람들이니 좋고 나쁜 것이 선악으로 표현되면서 사는 인간들입니다. 좋으면 취하고 나쁘면 버리는 단순한 존재들입니다.
3. 영혼으로 사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마치 인간이란 ‘생각하는 동물’처럼 주장하며, 온갖 정신적인 미혹 속에서 혼란과 불안 속에 사는 인간들의 세상입니다. 정신이 인간의 존재를 지배한다는 것이니 이들의 불안한 정신적인 작용들에는 온갖 혹세무민하는 종교들이 난무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잡신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신들을 더욱 찬양하여서 자기를 낮추는 것이니 끝에 가서는 위대한 창조신까지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실체를 인정해야 하는 어리석은 종교 속에 스스로가 묶이는 맹신에 빠지는 것입니다.
불교의 기복신앙도 이에서 벗어나지는 못 합니다.
이러한 기복신앙에서 중생을 구원하는 일이 법화행자가 할 일입니다. 욕망의 세계에서
육감의 세계에서 영혼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해탈을 얻을 수 있게 인도하는 것이 법화행자가 할 일입니다.
이러한 三界는 다 인간들의 욕망이 만들어 놓은 세계입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벗어나서 진실한 진리와 행복 속으로 인도하는 것이 불교이며 그 중에서도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은 바로 여기에서 그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중생을 사랑하는 자심과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비심은 하늘같습니다. 자신을 채찍질 하는 계행은 우렁찬 우레 소리와 같으며 사랑스런 자심은 큰 구름과 같으니 감로의 법비를 내려서 항상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니 그 지혜와 자비를 배워서 스스로가 관세음보살이 되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중생피인액 무량고핍신 관음묘지력 능구세간고
衆生疲困厄하여 無量苦逼身하여도 觀音妙智力이 能救世間苦니라
구족신통력 광수지방편 시방제국토 무찰불현신
具足神通力하고 廣修智方便하여 十方諸國土에 無刹不現身하여
종종제악취 지옥귀축생 생노병사고 이점실능멸
種種諸惡趣 地獄鬼畜生의 生老病死苦를 以漸悉能滅이니라.
진관청정관 광대지혜관 비관급자관 상원상첨앙
眞觀淸淨觀하며 廣大智慧觀하며 悲觀及慈觀함을 常願常瞻仰이니라.
무구청정광 혜일파제암 능복재풍화 보명조세간
無垢淸淨光이며 慧日破諸暗하고 能伏災風火하고 普明照世間이니라.
비체계뢰진 자의묘대운 주감로법우 멸제번뇌염
悲體戒雷震하고 慈意妙大雲이라. 澍甘露法雨하여 滅除煩惱焰하느니라.
‘중생의 고액이 무량하여 한량없는 괴로움을 몸으로 받을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지혜의 힘은 묘하여 세간의 고난을 능히 건지느니라.
신통력을 구족하고 널리 지혜로 방편을 닦아서
十방의 모든 국토에 몸을 나타내지 않는 나라가 없으며
가지가지의 모든 악취중생인 지옥 아귀 축생의 무리들이 받는
생로병사의 모든 고통을 점차로 능히 멸하게 하느니라.
진실로 관하며 청정으로 관하며 넓고 큰 지혜로 관하고
대비로 관하며 대자로 관하여서 항상 원하고 항상 우러러볼지니라.
깨끗하고 청정한 광명 같은 지혜는 해와 같이 모든 어둠을 밝히고
능히 재앙의 바람과 불을 조복하고 널리 밝게 세간을 비추느니라.
비체의 계행은 우레가 진동함이요, 자의의 미묘함은 구름 같도다.
감로의 법 비를 내리어서 번뇌의 불꽃을 꺼지게 하노라. ’
(해설)
법화행자는 모름지기 관음행에 드는 일과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염두에 두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관세음보살을 불러서 염불삼매에 드니 관음행을 잘 해서 무량광불을 친견한 것이요, 32 응신하여 어느 종교이던
어떤 사상이던지 간에 중생의 근기에 맞게 化身해서 중생제도에 몰입하여 생명의 실상을 알게 하니 이는 무량수불을
친견한 것입니다.이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잘 한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서 욕망을 끊는 사마타행을 하고 무명을 끊는 삼마제행을 하니, 집중하고 몰입하는 명상수행을
동시에 이룰 수 있습니다. 하기 어려운 염불을 몸을 조복하면서 끊기 지 않도록 계속하는 것이니 여기에서 무아지경을 얻으며,
잡념을 대신해서 관세음보살만을 생각하면서 염불하니 무상한 어리석은 생각을 끊으니 허공성과 한결성을 얻음임입니다.
이 허공성과 한결성을 얻어서 청정한 마음을 이루니 이것이 무량광불의 지혜입니다. 이러한 고요가 중생과 더불어서 꾸준히
그 맥을 이어가면 이것은 무량수불입니다.
이와 같이 무량광불과 무량수불을 얻는 여래선과 대승선(참선)을 동시에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사의 어려움은 다 풀려납니다.
건강한 몸으로 행복한 경지를 맛보며 사는 중요한 수행들입니다.
이러한 관음의 화신들은 청정한 지혜와 청정한 인생을 지니는 것입니다.
앞에서 출가승이 ‘나무아미타불’을 점잖게 하시고
뒤에서 재가인이 ‘관세음보살’을 우렁차게 염불한다면 이는 멋있습니다.
출가수행자가 ‘나무아미타불’해서 얻은 法味를 중생세간에 흘려보내면
재가수행자는 이를 널리 멀리 중생세계에 울려 퍼지게 하는 것입니다.
法으로 장엄하고 법으로 하여금 오래 오래 사바세계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종자는 소중한 부처님의 본체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나무아미타불’을 하시고
어머니가 ‘관세음보살’해서 극락세계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쟁송경관처 포외군진중 염피관음력 중원실퇴산
諍訟經官處하고 怖畏軍陣中이라도 念彼觀音力하면 衆怨悉退散하리라.
묘음관세음 범음해조음 승피세간음 시고수상념
妙音觀世音의 梵音海潮音은 勝彼世間音이니 是故須常念하라.
염념물생의 관세음정성 어고뇌사액 능위작의호
念念勿生疑하여 觀世音淨聖이니 於苦惱死厄에서 能爲作依怙하리라.
구일체공덕 자안시중생 복취해무량 시고응정례
具一切功德하고 慈眼視衆生하며 福聚海無量하니 是故應頂禮니라.
‘ 관청에 쟁송을 당했을 때나, 겁나고 두려운 전장에서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모든 원망과 두려움이 다 물러가리라.
묘한 음성을 지닌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가르치는 진리의 목소리는
저 세간의 괴로운 소리를 이겨내니 이런고로 항상 꼭 생각하여라.
생각 생각에 의심하지 말고 관세음보살을 염불할지니
어떠한 고뇌와 죽음의 액운에서도 능히 의지가 될 것이니라.
일체의 공덕을 갖추고 자비의 눈으로 중생을 바라보며
복이 바다와 같이 한량이 없으니 마땅히 머리 숙여 예배할지니라.
(해설)
만일 중생이 관세음보살의 자재한 업과 보문으로 신통력을 나타냄을 들은 사람은
공덕이 적지 않음을 마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응당히 머리를 숙여서 깊이 예배를 해야 할 것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을 염불하고 또 염불하고 철야 정근하여서 관음의 품속에 들어가서 그 자비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신통력을 배워서 중생을 제도하는 데에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법화행자들은 대중 불교의 큰 틀을 관음신앙에서 찾아야 합니다.
첫째는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아미타불이 계시는 극락세계가 바로 이 땅에 건설되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원효대사의 정토사상과 같습니다. 법화행자는 하나가 전체이요, 전체가 하나인 세상을 이뤄야 합니다.
둘째는 방법입니다. 불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자기의 신앙체계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법화행자가 추구하는
大衆佛敎입니다. 이 불교의 주인은 大衆 각자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미타불을 불러서 묘한 음성과 묘한 법체를 이루는 신통력을 얻으며, 중생을 제도하는 마당에서 32 應身하는 신통력을 얻습니다. 물론이야 위로 부처님을 바라보는 수행도 어렵지만,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는 일도 쉽지는 않습니다. 32 응신 하는 데에 어찌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32가지로 변화하는 몸을 지니는 것 자체도 중생만을 생각하는 일이지 ‘나’라는 존재는 없는 것입니다. 위에로 무아이고 아래로 애도 쓸개도 없는 수행을 하는 것이니 위 아래로 ‘나’가 없는 자리에서 진정한 신통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셋째는 대상입니다. 어느 종교, 어느 직업, 어느 학문,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라도 가리지 아니하며 모두가 더불어서 극락세계에 가는 것입니다.
넷째는 국토입니다. 우리나라는 일향으로 불교에 젖어있는 나라이면서도 지금은 외래종교에 밀려서 대중들의 뒷전에 머무르고 있으며 그나마 남아있는 것이 기복 불교만 남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스님들은 다들 도통한 것처럼 보입니다. 옷깃만 스쳐도
복이 넝쿨 체 올 듯이 선전을 합니다.우리 법화행자들은 여기 기복신앙에서부터 신앙체계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 길이 관세음보살보문품에 자세히 나와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방편은 위로는 나무아미타불이요, 아래로는 관세음보살입니다.
묘법연화경 여래수량품 제십육 자아게를 독송하고 나무묘법연화경을 염불하며, 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독송하고 나무묘법연화경 염불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중생에게는 쉽디 쉬운 易行道를 써야 합니다.
여섯째는 신통력이 있어야 합니다. 수행상, 공덕상으로 신통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을 어찌 말법수행자가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만은 이 일은 관세음보살님을 본받아서 그러해야 합니다.
내 이름만 들어도 다 제도가 되며, 내 모습만 보아도 다 제도될 수 있도록 먼저 자기 수행을 철저히 하고
다음에 중생을 끝없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모범이 되어서 우두머리가 되어야 합니다.
일곱째는 미래 세상에 대한 연구들을 여기에서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은 成겁 住겁 壞겁을 지나서 空겁에 들어섰습니다. 만물이 차츰 본래로 돌아가는 劫이니 이는 말법시대 후오백세입니다.
중생들은 마냥 이런 세월이 계속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일을 잘 가르쳐 주어서 인간들이 구원을 받는 방향으로 교화를
계속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끝내는 극락세계에서 모든 법화행자들이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大衆佛敎의 틀입니다.
[사전]
無等等(무등등); 부처님의 등위.
普門(보문); 널리 구원하다는 뜻.
淨聖(정성); 뛰어난 성인.
爭訟(쟁송); 재판.
悲體(비체);부처님의 대비심
慈意(자의);행복하게 해주고자하는 마음
金剛山(금강산);세계를 둘러싼 철위산을 말함
威神力(위신력); 불가사의한 힘.
[ 무량수여래불의 위신력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으로 신통력을 보이니,
이는 관세음보살이 무량수여래불의 세계로 중생을 인도하는 것이다. ]
◎ 무진의보살이 게송으로 물어 말씀하시되,
묘한 상을 갖추신 세존이시어, 나는 거듭 이를 묻겠나이다.
저 불자님께서는 어떤 인연으로 관세음이라 하나이까?
훌륭한 상을 갖추신 세존께서 무진의보살에게 게송으로 답하시었다.
너는 관세음보살의 행원이 여러 곳에 잘 응함을 들으라.
커다란 서원은 바다와 같이 깊어서 생각할 수도 없는 오랜 세월 동안에
수많은 부처님을 시봉하고 크게 청정한 원력을 세웠느니라.
이제 너에게 간략히 설하리니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거나 몸을 보고서
마음에 새겨 흘려보내지 않으면 능히 모든 고난을 이겨서 소멸하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해치려는 뜻을 두고 불구덩이에 밀어 넣을 지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불구덩이가 변하여 시원한 연못이 되며
혹 큰 바다에 표류하여 용이나 고기나 모든 귀신의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그 물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며
혹은 수미산 봉우리에서 어떤 사람에게 밀려 떨어질지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마치 해와 같이 허공에 머무르며
혹은 악인에게 쫓기어 금강산에 밀려 떨어질지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아니하며
혹은 원적이 에워싸고 칼을 들고 해하려 할지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모두가 곧 자비심을 일으키며
혹은 왕의 환난을 당하여 형장에서 목숨을 다 하려 할 때에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칼이 곧 조각조각 부셔지며
혹 감옥에 갇혀서 칼을 쓰고 쇠고랑으로 수족이 묶였을지라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곧 풀리어 벗어나며
어떤 사람이 저주를 하고 독한 약으로 해치려고 할 때에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도리어 본인에게 돌아가며
중생의 고액이 무량하여 한량없는 괴로움을 몸으로 받을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지혜의 힘은 묘하여 세간의 고난을 능히 건지느니라.
신통력을 구족하고 널리 지혜로 방편을 닦아서
十방의 모든 국토에 몸을 나타내지 않는 나라가 없으며
가지가지의 모든 악취중생인 지옥 아귀 축생의 무리들이 받는
생로병사의 모든 고통을 점차로 능히 멸하게 하느니라.
진실로 관하며 청정으로 관하며 넓고 큰 지혜로 관하고
대비로 관하며 대자로 관하여서 항상 원하고 항상 우러러볼지니라.
깨끗하고 청정한 광명 같은 지혜는 해와 같이 모든 어둠을 밝히고
능히 재앙의 바람과 불을 조복하고 널리 밝게 세간을 비추느니라.
비체의 계행은 우뢰가 진동함이요, 자의의 미묘함은 구름 같도다.
감로의 법 비를 내리어서 번뇌의 불꽃을 꺼지게 하노라.
관청에 쟁송을 당했을 때나, 겁나고 두려운 전장에서도
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모든 원망과 두려움이 다 물러가리라.
묘한 음성을 지닌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가르치는 진리의 목소리는
저 세간의 괴로운 소리를 이겨내나니 이런고로 항상 꼭 생각하여라.
생각 생각에 의심하지 말고 관세음보살을 염불할지니
어떠한 고뇌와 죽음의 액운에서도 능히 의지가 될 것이니라.
일체의 공덕을 갖추고 자비의 눈으로 중생을 바라보며
복이 바다와 같이 한량이 없으니 마땅히 머리 숙여 예배할지니라.
- 중생을 사랑하는 보살의 모습이 이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해서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중생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의 마음이 하나로 통하듯이
관세음보살의 마음이 중생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니 그것이 신통력이다.
부처님의 자비가 중생에게 보인 것이 신통력이다.
이러한 자연스런 신통력으로 중생의 마음을 잡는다.
이것이 관세음보살의 신통력이며 수행자의 법력이다.
말법행자들도 이와 같이 자기의 청정한 수행력으로
중생들과 더불어서 법력을 기르고 중생과 神通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