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牛)에 대한 단상 / 신언필
소는 인류의 오랜 동반자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황소 신을 나타내는 벽화라든지 소뿔 신앙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개에 이어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가축화되었으며, 현재 전 세계에서 대략 14억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춘원 이광수는 그의 수필 ‘우덕송’에서 “소는 짐승 중의 군자로서 사람이 가장 본받아야 할 선생이다.”라고 소의 덕을 칭송하기도 하였다.
유년 시절, 소는 농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요긴한 가축이자 재산 형성의 중요 수단이었다. 소를 이용하여 쟁기를 끌어 논밭을 갈았고, 수레를 끌어 무거운 짐을 날랐다. 또한 시골에서 자식들 대학 진학 시에는 한꺼번에 목돈 마련이 어려워 소를 팔아 등록금을 마련하였다. 그래서 당시에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불렀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소 키우기를 몹시 염원하셨다. 하지만 송아짓값도 만만치 않아 한동안 기를 엄두조차 못 내고 지냈다. 그러던 중 둘째 형님이 머슴살이하며 받은 새경으로 송아지 한 마리를 사 왔다. 당시 제대로 된 전답 하나 없는 우리 집에서 송아지는 재산 목록 1호였다. 아버지는 신줏단지 모시듯 송아지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송아지가 집에 들어옴에 따라 나에게도 할 일이 주어졌다. 여름에는 학교가 파한 후 거의 매일 소를 들판으로 끌고 다니며 싱싱한 풀을 배부르게 뜯기는 것이고, 겨울에는 군불을 때서 쇠죽을 끓이는 것이었다.
소에게 부드러운 풀을 뜯겨 배부르게 하는 것은 여간 시간이 걸리는 일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상 불가능했다. 소는 신체 구조상 우측 배는 불룩하게 나왔으나 좌측 배는 고관절 있는 쪽이 푹 들어가 있다. 그래서 아무리 풀을 뜯겨도 불룩해지지 않았다. 저녁에 소를 몰고 집에 들어갈 때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계시는 쪽에 소의 우측이 보이도록 늘 신경을 썼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날따라 아버지께서 소를 들판에 매어 놓을 테니 풀을 배불리 뜯겨서 저녁에 끌어 오라고 특별히 당부하셨다. 그런데 친구들과 노는데 정신이 팔려 아버지의 당부를 깜빡 잊고 말았다. 이미 땅거미가 밀려온 후에야 생각이 났다. 부리나케 소를 매어 놓은 곳에 가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혹시 겁 많은 소가 어둠이 밀려오자 쇠말뚝을 뽑고 어디론가 달아난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되어 주변을 찾아보다가 하릴없이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나는 아버지에게 야단맞을까 마음을 졸이며 살금살금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소는 외양간에 매여 있었다. 아버지가 끌어 오신 것이다. 나를 본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솔선수범을 통한 무언의 가르침. 나에게는 이 세상 다른 무엇보다도 설득력이 있었다. 그 후로는 결단코 아버지의 말을 어겨 본 기억이 없다.
그렇게 키운 소가 어느 날 외양간에서 사라졌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알았다. 큰형님이 진 빚을 갚기 위해 팔았다는 사실을. 큰형님은 집안의 맏이로서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켜 세우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남의 밭을 빌려 지황, 담배와 같은 특용작물 재배도 하고, 한지 공장을 빌려 닥종이 제조도 해보았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결국 큰형님은 그 후 고향을 등졌고 남겨진 빚을 갚기 위해 애지중지 키운 소를 팔아야 했다. 그 후 외양간은 헛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몇 년 전 무려 54일 동안 긴 장마가 지속된 적이 있었다. 전국이 수해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이 역대급 장마 속에서 살아난 소들의 이야기가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어떤 소는 강을 따라 55km를 떠내려가 바닷가 무인도에서 발견되었다. 더 극적인 경우는 불어난 물에 떠올라 축사를 빠져나와 옆집 지붕에 올라타 결사적으로 버티다가 3일 만에 구출된 소들도 있었다. 그중 한 마리는 임신한 소로 다음 날 쌍둥이를 낳는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 냈다.
거대한 몸집의 소가 물에 뜬다는 것도 신비스럽지만, 수십 km를 떠내려가다 결국 살아남았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거기에는 평소 우둔하게 보이지만 사람보다도 더 나은 지혜가 숨어 있다. ‘우생마사(牛生馬死)’. 장마기에 홍수가 나서 소와 말이 빠졌을 경우, 소는 살아나오지만 말은 익사하고 만다는 말이다. 말은 헤엄을 잘 치지만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려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 지쳐서 물에 빠져 죽고 말지만, 소는 물살을 등지고 떠내려가면서 물가로 조금씩 헤엄쳐 나와 마침내 살아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제 능력만 믿고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며 발버둥 치다가는 제풀에 지쳐 결국 좌절하고 만다. 하지만 소처럼 때로는 세파에 몸을 맡기고 순리에 따라 지혜롭게 헤쳐나가면 어떠한 어려움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나온 삶을 잠시 돌아본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을 비웃기나 하듯 한낱 젊음의 치기로 오르고 맞서려고만 했다. 아직도 그 치기를 버리지 못하고 알량한 일말의 자존심에 때로 속앓이를 하곤 한다. 사막에서 차가 모래에 빠졌을 경우 탈출하려면 자동차 바퀴의 바람을 빼야 하듯이, 치열한 생존경쟁의 각축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치기와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삶의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는 문턱에서 깨닫는다. 결국 인생은 힘 빼기 과정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