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까지 11일 남았다. 지난해 10월 30일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 이후 한·일 대립이 심화됐고 파국이 임박해있다. 정부는 일본이 수출 규제를 철회하면 지소미아 파기를 취소하겠다고 하지만, 누가 먼저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갈등의 출발점인 징용 판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일 정상 환담에서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미국도 청와대의 중재 요청을 거절했다.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계는 붕괴될 것이다. 그러면 북한·중국·러시아가 승자가 되고, 전후 한·일 양국이 함께 수호하며 번영을 일궈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전체주의 체제의 대공세 앞에 고스란히 노출될 것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함께 선언했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에 있다. 이 선언에서 “오부치 총리는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 김 대통령은 이러한 오부치 총리의 역사 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뜻을 표명했다.”(선언 2항) 하지만 당시 양국 정상이 마무리한 ‘20세기의 한·일 관계’는 지금도 여전히 끝맺음을 이루지 못하고 있고 ‘21세기의 새로운 파트너십’도 구축하지 못했다.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를 지배했던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미국 등의 국가 중 침략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한 나라는 전혀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고집이 아니라 역사 인식의 한계다. 이제 결단할 수 있는 리더는 문재인 대통령밖에 없다.
누군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결단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가장 나쁜 결정은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일본제철 소유 국내 주식에 대한 법원의 강제 매각 허가 결정이 언제든 내려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한·일 관계는 수렁에 빠질 것이다.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
대타협을 하려면 대담한 결정이 필요하다. 법원 판결을 받은 징용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금을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예산으로 지급하겠다고 선언하고 논란을 종결짓는 방안이 그것이다. 이는 한국이 일본에 더 이상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천명하고 한·일 갈등을 종식시키는 방법이다. 이로써 한국 정부는 1965년 체제를 준수하며 일본 정부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갖게 될 것이다.
1965년 한국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30달러에 불과한 최빈국이었다. 당시 한국의 리더와 외교관들은 그 진구렁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2018년 한국의 GNI는 3만600달러로 세계 30위의 자리에 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로는 12위다. 우리도 최선을 다하자. 힘들지만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국민을 설득하자. 그것이 정치다. 정치는 책임지는 선택이다.
우리 정부의 그러한 선택은 한·일 화해의 길을 여는 크고 당당한 결단이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그만큼 과거 침략 역사에 대한 참회와 사과의 책임을 부과받게 된다. 나치즘을 극복한 독일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는 책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또한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진정한 사죄를 촉구해온 징용 피해자들의 구원을 일본에 지우기 어려운 숙제로 부여하는 길이다. 우리 정부가 결단하고 역사의 승리자가 되길 바란다. 11일의 시간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