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統攝, Consilience ; 꿰어 잡음) -포기할 수 없는 환원주의자의 꿈
Consilience -Undefeatable Dream of a Reductionist
consilience
noun
the linking together of principles from different disciplines especially when forming a comprehensive theory
특히 포괄적인 이론을 형성할 때 다른 학문 분야의 원칙을 함께 연결하는 것
consilience (n.)
1840년, "일치, 동시 발생", 말 그대로 "함께 뛰는 것"으로, resilience 의 모델을 따라 만들어졌으며, 이는 라틴어 consilient- 에서 파생되었다. com 의 동화된 형태로부터 유래되었으며, 이는 "함께"를 의미한다 ( con- 참조). 또한, "뛰다"를 의미하는 salire ( salient (형용사))가 함께 사용되었다.
If consilience entails convergence toward a consensus, science is moving away from consilience.
—John Horgan, Scientific American, 25 June 2021
Next question: Is consilience desirable?
—John Horgan, Scientific American, 25 June 2021
But, ultimately, the consilience of doing and being is essential.—Douglas B. Laney, Forbes, 5 Oct. 2021
통섭 (統攝,Consilience)은 "지식의 통합"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 학문 이론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의 본질적 질서를 논리적 성찰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두 관점은 그리스시대에는 하나였으나, 르네상스 이후부터 점차 분화되어 현재에 이른다.
한편 통섭 이론의 연구 방향과 반대로, 전체를 각각의 부분으로 나누어 연구하는 환원주의도 있다.
통섭 연구 학자
통섭이란 말은 20세기말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근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1998년 저서 《통섭, 지식의 대통합》을 통해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사회생물학》(1975년)을 저술한 인본주의적 생물학자로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간격을 메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는 또한 C.P 스노우의 1959년 작 <두 문화와 과학 혁명>에서도 다루어진 바가 있다.
윌슨은 과학, 인문학과 예술이 사실은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분리된 각 학문의 세세한 부분을 체계화시키는 데에만 목적을 두지 않는다. 모든 탐구자에게 그저 보여지는 상태뿐만이 아닌 깊이 숨겨진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간단한 자연의 법칙들로 설명하고자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반대방향으로 연구하지만 오히려 환원주의에서 추구하는 것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윌슨의 제자인 이화여대의 최재천교수가 《통섭, 지식의 대통합》을 번역하여 한국에 통섭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하였다.
통섭이라는 단어는 성리학과 불교에서 이미 사용되어 온 용어로 '큰 줄기를 잡다'라는 뜻을 지닌다.
■ 통섭(統攝, Consilience)과 불교의 연기론
통섭’이라는 단어의 명확한 정의와 개념화가 불분명한 것은 그 단어가 가지는 연기적 속성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여러 학문영역 및 제반현상들은 칼로 제단하듯이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설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연기설은 부처님이 설하신 근본교설로서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는 상의상관적 관계성에 대한 가르침이다. 결국 부처님께서 발견하신 ‘연기의 법칙’은 세상의 진리적 모습 그 자체이다. 진리 그 자체는 하나의 현상이나 모습이 아닌 일종의 법칙성이다. 물론 법칙성이라는 말도 적절한 표현이 될 수 없으며 불교의 표현을 빌리자면 ‘Dharma’라고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상지대의 최종덕 교수는 한국
의철학회에서는 통섭이 마치 학문간 동등하고 상호적이며 양방향적 관점의 합일로 오해하게 하고 있으나
원래 윌슨의 개념은 인문학이 자연과학에 흡수되는 통합을 의미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2006년 창립된 한국 의철학회는 의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학문과 실천과 덕성으로 구성된 의(醫)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하고 학술지와 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웬델 베리는 그의 책 《삶은 기적이다》에서 윌슨의 위 책 《통섭》이 기계적 환원주의에 근거해서 세계를 파악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통섭(Consilience) -포기할 수 없는 환원주의자의 꿈-Consilience -Undefeatable Dream of a Reductionist
현상학과 현대철학
2008, vol., no.36, pp. 197-218 (22 pages)
UCI : G704-001226.2008..36.006
발행기관 : 한국현상학회
박승억 /Seung Ug Park
숙명여자대학교
최근 몇 년 동안 ‘통섭’은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연결시키는 유력한 방법론 중 하나로 주목 받아왔다. 그것은 통섭이 전문화된 분과적 학문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학문 간 의사소통 부재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방법론적 프로그램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유전자·문화의 공진화, 후성 규칙 등 자연과학적 개념에 기초한 통섭적 설명이 사회과학 및 인문학, 예술, 종교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통섭이 학문적 탐색을 통한 논리적 결과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지적 태도라는 점, 그리고 그런 지적 태도가 야기하는 몇 가지 문제점들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통섭’이 전제하고 있는 ‘환원주의’, ‘인과적 설명’, ‘실재론’ 등 몇 가지 중요한 개념들을 둘러싼 논쟁점을 중심으로 통섭이라는 방법론적 전략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였다.
Since a few years ‘Consilience’ has arrested attention of people who want to build a bridge between Snow’s “Two World”. For it presents us with an effective methodological strategy for overcoming the communicational difficulties among the sciences which have been caused by the particularization and specialization of science. In that regard Edward Wilson suggests that his theory of consilience can play a significant role in unifying the various individual sciences today. In this paper I attempt to make it clear that consilience is not a logical consequence of adopting a theoretical stance on the existing sciences but rather a general intellectual attitude towards them, and I point out some philosophical predicaments associated with that attitude. Viewed in this way, the concepts of ‘reductionism’, ‘causal explanation’, and ‘realism’, which are regarded as a distinctive set of core concepts that may constitute the notion of consilience at issue, are explicated. An interesting point is that when the notion of consilience is considered to be some sort of pragmatic suggestion, the issue of whether we should accept it or not turns out to rely not on the matter of theory but that of our existential decision.
환원주의는 철학에서 복잡하고 높은 단계의 사상이나 개념을 하위 단계의 요소로 세분화하여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물체는 원자들의 집합이고 사상은 감각 인상들의 결합이라는 관념은 환원주의의 한 형태이다.
統
꿰차다, 잇다., 거느리다, 다스리다
攝
扌: 손 수 聶: 모양손(扌)으로 많은 귀(聶)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손으로 많은 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적군의 귀를 ‘잡아’ 당김이지요.
잡을 섭
섭취(攝取: 좋은 요소를 잡아 당겨 취함), 섭생(攝生), 섭리(攝理)
* ‘攝’은 손으로 많은 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인 당김을 뜻하여 ‘당길 섭’이라고도 하고, 적군을 잡아서 하는 것인 다스림을 뜻하여 ‘다스릴 섭’이라고도 합니다.